부름을 찾아 떠나는 여정
주께서 개인이나 무리를 선정하거나 택하실 때 그는
또한 일반적으로 그들을 봉사하도록 부르신다.(경전안내서, "택하다")
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요 15:16)
신권회 시간에 형제들과 "부르심과 택함"에 대한 토론을 하는 중에 내가 우리는 이 교회에 다니면서 큰 축복을 받았는데 교회 회원이 된 것은 나의 선택에 의해서 이기도 하지만 좀더 살펴보면 나의 선택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미 오래 전에 주님에 의해 선택되었다는 것을 위의 구절이 말하여 준다. 당시에는 이 구절이 기억나지 않아 적확한 설명을 할 수가 없었지만 읽은 기억만 가지고 이야기하려니 그 형제가 "그런 말씀이 있습니까? 어디에 있죠? 나의 선택이 아니라 주님의 선택이란 말 말입니다."
그때는 즉시 대답할 수가 없었다. 집에 와서 경전안내서에 의존하여 살펴보니 내가 밑줄도 그어 놓은 것을 확인했다. 바로 위의 요한복음 말씀이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위의 말씀이 옳다는 것을 다시 경전안내서가 뒷받침 해 주고 있다.
"전세의 합당성을 근거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과 이스라엘 가문, 그리고 성약의 백성이 될 자들 (신 32:7~9; 아브 2:9~11). 이러한 사람에게는 그들이 세상의 온 나라를 축복할 수 있도록 특별한 축복들과 의무들이 주어졌다(롬 11:5~7; 벧전 1:2; 앨 13:1~5; 교성 84:99). 하지만 이러한 택함을 받은 자들조차도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이 생에서 부름을 받고 택함을 받아야 한다."(경전안내서, "택함")
우리는 전세에서 이미 부름과 택함을 받았다. 망각의 휘장을 넘어 온 우리는 지상 생활을 하면서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이 생에서 부름받고 택함을 받아야 한다. 전세에서의 선택에 걸맞은 우리가 되어 가야 하는 것이다. 달리 말한다면 전세에서 이미 부름과 택함을 받았다 할지라도 지상에서 우리는 선택의지를 활용하여 부름과 선택을 받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지상에 오는 모든 사람은 나름대로 이미 부름과 선택을 받은 상태인 것이다. 세상에서 영적 학습을 통해 구원을 얻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 자라면 침례의 물에 들어가고 안수례를 받아야 한다.
그래야만 어떤 형태로든 주님께서 원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이에 부합하는 말씀을 주님께서 해주셨다.
5 그러나 보라,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내가 부른 자로서 성임을 받은 자가 많으나 택함을 받은 자는 적도다(교성 95:5)
35 지금까지는 부름의 날이었거니와 택함의 날을 위한 때가 이르렀으니, 합당한 자는 택함을 받을지어다.
36 그리고 택함을 받은 자들은 영의 음성으로 나의 종에게 나타내어지리니, 그들은 성결하게 되리라.
37 그리고 그들이 받는 권고를 따르는 만큼, 그들은 많은 날 후에 시온에 관련된 모든 일을 성취할 권능을 가지게 되리라.(교성 105:35-37)
세상에 와서 부름과 택함을 받기 위해서는 유혹이 난무하는 세상에 맞서서 의로운 것만을 추구해야 한다.
의로움이란 과연 무엇인가? 경전과 그가 택하여 세우신 종들의 말씀에 따르는 것이다.
"택함 받은 자는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를 기쁘게 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제자로서의 그러한 삶을 사는 사람은 언젠가는 주에 의하여 그가 택하신 자녀 가운데 있도록 선정될 것이다."
(경전안내서, "택함 받은 자")
34 보라. 부름을 받는 자는 많으나 택함을 받는 자는 적도다. 어찌하여 그들이 택함을 받지 못하느냐?
35 이는 그들의 마음이 이 세상 일에 지나치게 얽매여 있고 사람의 명예를 갈망하여 그들이 이 한 가지 교훈을 배우지 아니함이니—
36 곧 신권의 권리는 하늘의 권능과 불가분하게 연계되어 있고, 하늘의 권능은 의의 원칙이 아니고서는 통제되거나 다루어질 수 없다 함이니라.
37 신권의 권리가 우리에게 부여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사실이니라. 그러나 우리가 우리 죄를 은폐하려 하거나 우리의 교만, 우리의 헛된 야망을 만족시키려 하거나 조금이라도 불의하게 사람의 자녀들의 영혼을 통제하거나 지배하거나 강압하려 하면, 보라, 여러 하늘은 스스로 물러가며, 주의 영은 심히 슬퍼하나니, 주의 영이 물러가면, 그 사람의 신권 곧 권세는 아멘이니라.
38 보라, 그는 미처 깨닫기 전에 홀로 있게 되어 가시채를 뒷발질하며, 성도를 박해하며, 하나님을 대적하여 싸우는도다.
39 우리는 슬픈 경험을 통하여 배웠나니 곧 거의 모든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기에 조그마한 권세를 가지자마자, 즉시 불의한 지배력을 행사하기 시작하려는 천성과 기질이 있도다.(교성 121:35-39)
아름다운 구절을 통하여 우리가 평생을 걸어가야 할 길을 보여 주고 있다. 신권 권세는 하나님에게서 온 것으로서 전능한 것이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우리의 한계성 때문에 주의 뜻을 다 나타낼 수는 없다. 그러나 최소한의 것이라도 나타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그의 말씀을 부지런히 묵상함으로써 영에 영양분을 공급하여 언제 어디서나 필요성이 생겼을 때 즉시 활용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하겠다. 영이 피곤하여 깨어 있지 못하면 언제 생길지 모르는 응급상황에 대처할 수 없는 불쌍한 처지가 되고 만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신다. 우리의 말일이 언제 올지 모르니 늘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신다
나는 전세에 어떤 부름을 받은 상태였을까? 주님의 가르침을 보면 육신을 가지고 신앙을 갖게 되면 종래에는 우리가 신이 된다고 한다. 세상에 사는 동안 우리를 다스린 그 신이 우리를 다스릴 것이라고 하였다. 무신론자들에게는 신이 없을 것이다. 그들은 최소한 내가 왜 세상에 왔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단 말인가? 사는 게 너무 바빠서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한 것은 아닐테고 아니면 그냥 그런 생각 자체가 귀찮아서 일부러 안 하는 것인가? 그들을 다스린 신이 없기 때문에 다음 세상에서 그들은 누가 다스릴까?
그들의 운명은 어떤 결말을 맞을까? 분명히 주님께서는 우리의 영은 영원하여 멸할 수가 없다고 하시는데 그들의 처지가 궁금하다. 그러면 내가 추종하는 신은 어떤 신인가?
16 그리하여 주 하나님께서는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 행하게 하시었나니, 그런즉 사람은 이편이나 저편에 의해 이끌리지 않고서는 스스로 행할 수 없었느니라.(니파이후서 2:16)
8 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나니, 그러므로 너희는 진정 자유로우며, 법률 또한 너희를 자유롭게 하느니라(교성 98:8)
나를 이끄는 그 무엇이 나의 신이 되고 그 신이 다음 세상에서도 다스릴 것이라는 추론은 합리적이다.
나는 은혜와 진리의 영원하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를 따르려 하고 있으니 굳이 그들과 비교한다면 매우 행복한 사람이다. 나는 세상에 왔고 누군가 나를 지었다는 사실, 특히 영의 존재를 알고 있다면 반드시 의심해 봐야 할 사실을 일찍 깨달아 신앙이란 피난처에서 다가올 미래를 기다린다는 것은 또다른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그 미래는 세상에서처럼 한시적이 아니라 영원하다고 한다. 영원은 상상조차 불허되는 그 무엇이다. 가보지 않고는 언급할 수가 없다. 경전을 읽어봐도 다음 세상은 개괄적 또는 상상적 기사만 있을 뿐이다. 교회 지도자의 말씀에 따르면 행복한 가정의 연장선상에 천국이 있다고 한다. 원리는 동일하다는 것이다. 그곳에도 부모님이 계시고 그 구성원은 각자 무슨 일인가 할 것이라는 것이다.
출퇴근 시간은 있을까? 여기서의 일상처럼 기본적 교환기능이 존재하는 것일까? 인간의 필요에 의해 생긴 화폐같은 것도 있을까? 생각해 보면 모두가 궁금하기만 하다. 한 번 가면 돌아오지 않기에 우리는 알 수가 없다. 오직 신앙으로 자기만의 방법으로 상상만 할 뿐. 그곳에 나아가게 되면 애초에 나의 부름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을까? 그리고 세상 생활에서 이룬 업적은 그 애초의 부름에 얼마나 근접했는지를 스스로 평가해 볼 수 있는 방법은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