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막을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자.
1. 38장은 성막 뜰에 있는 번제단과 물두멍, 그리고 성막 뜰을 둘러친 세마포장과 문이 만들어지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막 건축에 사용된 예물의 규모가 소개됩니다.
2. 번제단은 성막의 문으로 들어오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제일 먼저 대하게 되는, 성막에서 크기가 가장 큰 기구였습니다. 여기서는 언제나 불이 타오르고 있었고 이 불은 꺼져서는 안 되었습니다(레 6:12~13). 이곳 번제단에서 희생 제물이 태워졌습니다. 죄인은 제물이 없이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예배자는 제물이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자기 생명을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서 피 흘려 죽임을 당하였다는 것과 그 피 흘림으로 인해 자신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했습니다.
3. 죄인은 제사장 앞에 제물을 가지고 와서 안수하여 죽일 때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이것은 저의 희생제물입니다. 하나님, 이것을 저를 대신하여 받으시며 저의 죄의 대가로서 그 죽음을 받으시옵소서.” 번제단은 피 흘림을 통해서 우리를 받아주시는 하나님을 보여줍니다. 그 피 흘림은 수송아지나 염소의 피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림입니다.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다(히 9:22).”
4. 물두멍은 놋으로 만들어진 큰 대야로, 성소에서 일하는 제사장들이 언제나 피로 더럽혀져 있는 그들의 손과 발을 씻는 곳이었습니다. 이 일은 제사장들이 번제단에서 성소로 들어갈 때마다 반복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반 포이트레스(Vern Poythress)는 물두멍을 번제단과 함께 이렇게 설명합니다. “처음 바깥문을 통해서 들어오면 번제단을 만나고 그다음에 성소로 가기 전에 물두멍을 만난다. 이는 애굽에서 유월절 어린양의 희생을 통하여 구원받은 것이 번제단으로 상징된다면, 홍해를 건너는 정결 의식, 곧 세례가 물두멍으로 상징되는 것과 같다.”
5. 물두멍은 죄를 씻고 정결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제사장들에게는 죽고 사는 문제로 직결됩니다(출 30:20~21). 물두멍은 성화가 결코 선택 사항이 아니라는 것도 보여줍니다.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볼 수 없습니다(히 12:14). 하나님은 우리를 물로 씻어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6. 성막 뜰은 흰색의 울타리 세마포 장막으로 둘러쳐졌습니다. 이 긴 세마포 장을 지탱하도록 기둥들이 세워졌고, 각 기둥은 놋 받침 위에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동쪽에 오직 하나의 문이 있었습니다. 이 성막 뜰을 두르고 있는 세마포 장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오직 하나의 길, 하나의 문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죄인들이 당신께 나아올 수 있도록 오직 하나의 문, 예수 그리스도만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주님은 친히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요 10:9).
7. 마지막으로 성막 건축에 사용된 예물의 규모를 밝힙니다(24~31). 사용된 금은 24절에 29달란트와 730세겔이라고 했는데 거의 1톤에 해당하는 양입니다. 이 모든 것을 다 드린다고 하더라도, 감히 하나님이 영광에 합당하게 드렸다고 결코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의 하늘이라도 감당할 수 없는 우주의 창조주이십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는 어떤 것들을 얻기 위해서 가볍게 부를 수 있고, 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필요한 신이 아닙니다.
8.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제공하신 유일한 제물인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림을 믿고 의지하여 나아오는 자들을, 정결하게 씻어주시고 그들을 용납하시며, 모든 삶의 필요를 신실하게 공급하시고, 그들에게 생명과 빛을 주시며, 그들과 함께 교제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앞서 가시면서 우리 인생길을 안전하게 인도하시고, 우리를 다스리고 통치하시며 모든 전쟁을 이기고 결국에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자기 백성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들의 구주와 주가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건축된 성막을 통해서 하나님은 이렇게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9. 이러한 성막의 의미를 알고 믿는다면, 이제 우리는 이렇게 화답해야 마땅합니다.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가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으로 영광스러우며 찬송할 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가 누구니이까(출 15:11).”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위로 하늘과 아래로 땅에 주와 같은 신이 없나이다 주께서는 온 마음으로 주의 앞에서 행하는 종들에게 언약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시나이다(왕상 8:23).”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과 그 기업에 남은 자의 허물을 사유하시며 인애를 기뻐하시므로 진노를 오래 품지 아니하시나이다(미 7:18).”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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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막 본체와 성막 내부 기구 작업을 마친 브살렐은 오늘 본문에서 성막 외부 기구를 만듭니다. 성막과 내부 기구는 금을 주재료로 만들었지만 외부 기구에는 놋을 사용한 것은 공사가 중요도 순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오늘 본문은 성막 외부 기구 3가지에 따라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1-7절까지의 번제단, 8절의 물두멍, 그리고 9-20절까지의 성막 울타리입니다. 본문 흐름대로 번제단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번제단을 만들다(1-7절)
번제단은 희생제물을 태워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단으로서 일반인과 제사장 모두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번제단은 성막에 들어오면 가장 먼저 마주치는 성물이었습니다. 즉, 번제단에 희생제사를 드림으로 번제단을 통과해야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번제단의 모양은 가로, 세로 모두 다섯 규빗 즉, 2.28m의 정사각형이었고, 높이는 세 규빗 즉, 1.36m였습니다.
(1) 그가 또 조각목으로 번제단을 만들었으니 길이는 다섯 규빗이요 너비도 다섯 규빗이라 네모가 반듯하고 높이는 세 규빗이며
번제단은 건조한 광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카시아 나무의 일종인 조각목으로 제작했습니다. 나무 널판으로만 제작하면 불에 쉽게 타버리기 때문에 조각목에 놋을 입혔습니다.
(2) 그 네 모퉁이 위에 그 뿔을 만들되 그 뿔을 제단과 연결하게 하고 제단을 놋으로 쌌으며
놋은 섭씨 1,000도 이상의 고열에도 녹지 않기 때문에 제단 소재로 적합했습니다. 이처럼 번제단을 놋으로 둘러쌌기에 놋제단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특별히 제단 모양 중 눈여겨 봐야할 곳은 네 모퉁이에 달린 뿔입니다. 뿔은 희생 제물을 묶어두는 목적으로 사용했지만 신적인 힘을 상징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고대 근동에서는 제단에 뿔을 만듦으로 제단과 신을 동일시했습니다. 따라서 사죄와 화목의 기능을 담당했던 성막 제단의 뿔은 죄를 사하는 하나님의 권세를 나타냈기에 제단에서 가장 거룩한 부분이었습니다.
이러한 뿔을 잡는 것은 곧 하나님만을 의지한다는 뜻이었고, 하나님께서도 제단 뿔을 잡는 자의 생명을 보호하여 죽지 않게 하셨습니다(왕상1:50). 이처럼 뿔은 구원을 나타냈기에 다윗도 ‘구원의 뿔’이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시18:2). 우리에게도 구원의 뿔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자신을 의지하는 모든 자에게 구원의 뿔이 되어주십니다. 아무리 다급하고 해결이 어려운 난제여도 구원의 뿔이신 예수님을 붙잡을 때 우리도 다윗처럼 찬송하게 될 것입니다.
제단에서 희생제사를 집전할 때 필요한 5가지 기구 또한 놋으로 만들었습니다.
(3) 제단의 모든 기구 곧 통과 부삽과 대야와 고기 갈고리와 불 옮기는 그릇을 다 놋으로 만들고
5가지의 부속기구로는 첫째, 희생제물을 태울 때 발생하는 재를 담는 통, 둘째, 제단의 재를 긁어내어 제단을 청소하는 부삽, 셋째, 희생제물의 피와 기름을 담는 대야, 넷째, 희생제물이 불에 잘 타도록 고기를 배열하는 삼지창 모양의 고기 갈고리, 다섯째, 번제단의 불을 성소의 분향단으로 옮길 때 쓰는 불 옮기는 그릇이 있었고, 모두 놋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를 한글 성경에는 단수로 번역했지만 원문에는 복수로 되어있는 것으로 보아 여러 개를 만들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제단의 구조는 희생제물을 불에 태우는 데에 최적화되어 있었습니다. 바로 석쇠 기능을 하는 놋 그물과 불이 바람에 꺼지지 않도록 바람막이 역할을 해주는 조각목 때문이었습니다.
(4-7) 제단을 위하여 놋 그물을 만들어 제단 주위 가장자리 아래에 두되 제단 절반에 오르게 하고 그 놋 그물 네 모퉁이에 채를 꿸 고리 넷을 부어 만들었으며 채를 조각목으로 만들어 놋으로 싸고 제단 양쪽 고리에 그 채를 꿰어 메게 하였으며 제단은 널판으로 속이 비게 만들었더라
7절과 같이 제단은 속이 텅 비어있었습니다. 텅 빈 중간에 고기를 올려놓는 놋 그물만이 제단의 절반 높이에 끼워져있었습니다. 이로써 공기가 원활히 공급되어 고기가 잘 탈 수 있었습니다. 놋 그물 네 모퉁이에 고리를 만들어 제단에 끼웠는데 어떤 방식으로 끼웠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네 고리 중 각 2개에 놋을 입힌 긴 막대기인 채를 끼워 이동에 용이하게 했습니다.
우리는 성막이 거룩한 곳이기에 고요한 곳이리라 막연히 추측합니다. 그러나 현실 속 성막은 정반대였습니다. 성막은 번제단에서 태우는 고기 냄새와 연기로 자욱했습니다. 성막은 제사 드리러 온 사람이 자신의 짐승을 침으로 짐승의 비명 소리가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이처럼 번제단에서 드려지는 성막의 제사는 거칠고 원시적이었습니다. 이러한 번제단을 통과해야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거칠고 야만적인 번제단의 희생제사를 보며 십자가에 야만적으로 못 박혀 희생당하신 어린양 예수님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고통과 죽음이라는 대가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을 믿음으로 붙잡아 하나님과 깊이 만나기를 바랍니다.
놋 물두멍을 만들다(8절)
번제단이 일반인과 제사장 모두를 위한 성물이었다면 번제단을 지나 만나게 되는 물두멍은 제사장만을 위한 성물이었습니다.
(8) 그가 놋으로 물두멍을 만들고 그 받침도 놋으로 하였으니 곧 회막 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의 거울로 만들었더라
물두멍은 번제단에서 제사를 집전하던 제사장이 손과 발에 묻은 짐승의 피와 이물질을 씻기 위해 마련된 성물이었습니다. 제사장이 물두멍에서 손과 발을 씻고 성소에 들어와야만 죽지 않았을 정도로 씻는 것은 중요했습니다(출30:17-21).
출처를 밝히지 않았던 다른 놋 기구들과 달리 물두멍은 그 놋의 출처가 회막 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의 거울임을 밝혔습니다. 이로 보건대 얼굴을 비추는 거울의 기능처럼 제사장 또한 물두멍에서 손과 발을 씻으며 심령의 정결함을 비추어 봤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습니다.
여인에게 있어 거울은 미모 관리를 위한 필수품이었을 것입니다. 이미 회막 문에서 수종들며 노동으로 헌신했음에도 자신의 아름다움에 필요한 물건까지 하나님께 헌납했던 여인들은 시편 84:10의 고라 자손처럼 하나님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혔던 것 같습니다.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시84:10)”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자기 인생을 가장 가치롭게 쓰는 것이라 여겼던 여인들의 지혜가 우리에게도 있기를 바랍니다.
성막 울타리를 만들다(9-20절)
성막 공사는 성막 울타리를 만듦으로 마칩니다. 성막 울타리는 사람, 짐승 등이 접근하여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소가 훼손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외부 세계와 구별하여 쳤습니다.
울타리는 5규빗 즉, 2.28m 높이의 기둥을 일정한 간격으로 세우고, 거기에 흰 세마포 포장을 둘러 만들었습니다. 울타리 높이는 10규빗이었던 성소 높이의 절반이었지만 밖에서 안을 들여다볼 수는 없었습니다. 만드는 순서는 남북서동 순으로 진행했는데 남과 북은 100규빗인 45.6m, 서와 동은 그 절반인 50규빗으로 22.8m였습니다. 그래서 성막 전체는 2:1 비율의 직사각형 모양이었고, 넓이가 약 314평 정도인 풋살장 크기였습니다. 먼저 긴 면인 남과 북을 살펴보겠습니다.
(9-11) 그가 또 뜰을 만들었으니 남으로 뜰의 남쪽에는 세마포 포장이 백 규빗이라 그 기둥이 스물이며 그 받침이 스물이니 놋이요 기둥의 갈고리와 가름대는 은이며 그 북쪽에도 백 규빗이라 그 기둥이 스물이며 그 받침이 스물이니 놋이요 기둥의 갈고리와 가름대는 은이며
100규빗의 길이에 20개의 기둥을 세웠기에 기둥 간 간격은 5규빗 즉, 2.28m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기둥은 받침, 갈고리, 가름대, 기둥 머리 싸개로 구성됐습니다. 받침은 놋으로 만들었고, 땅에 묻었습니다. 갈고리와 가름대, 기둥 머리 싸개는 모두 은으로 만들었지만 정체가 불분명했습니다. 갈고리는 흰 세마포 포장을 기둥에 연결하는 데에, 가름대는 기둥과 기둥을 연결하여 서로 넘어지지 않도록 하는 가로대였을 것이라 추측합니다. 17절에 나오는 기둥 머리 싸개는 기둥 머리를 보호하며 외관을 장식하는 용도로 쓰였을 것입니다.
바람과 먼지가 많은 광야에서 흰 세마포 포장으로 울타리를 친 것은 비실용적이고 비효율적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성막 가장 깊숙한 곳에서부터 외부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제사장의 거룩한 의복 재료도 흰 세마포를 쓴 것은 성막 전체가 거룩하고 성결한 처소임을 확실히 보여줍니다.
남북쪽에 이어 서동쪽을 공사합니다. 서동쪽의 길이는 남북쪽 길이의 절반인 50규빗이었는데 이중 동쪽 작업은 마지막에 나올 뿐만 아니라 상세히 설명했습니다. 이는 동쪽에 출입문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12-20) 서쪽에 포장은 쉰 규빗이라 그 기둥이 열이요 받침이 열이며 기둥의 갈고리와 가름대는 은이며 동으로 동쪽에도 쉰 규빗이라 문 이쪽의 포장이 열다섯 규빗이요 그 기둥이 셋이요 받침이 셋이며 문 저쪽도 그와 같으니 뜰 문 이쪽, 저쪽의 포장이 열다섯 규빗씩이요 그 기둥이 셋씩, 받침이 셋씩이라 뜰 주위의 포장은 세마포요 기둥 받침은 놋이요 기둥의 갈고리와 가름대는 은이요 기둥 머리 싸개는 은이며 뜰의 모든 기둥에 은 가름대를 꿰었으며 뜰의 휘장 문을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수 놓아 짰으니 길이는 스무 규빗이요 너비와 높이는 뜰의 포장과 같이 다섯 규빗이며 그 기둥은 넷인데 그 받침 넷은 놋이요 그 갈고리는 은이요 그 머리 싸개와 가름대도 은이며 성막 말뚝과 뜰 주위의 말뚝은 모두 놋이더라
남북쪽 길이의 절반으로 짧은 면인 서동쪽은 기둥도 그의 절반인 10개만 세웠습니다. 서쪽은 10개의 기둥을 일렬로 세우고 바깥에 흰 세마포 포장을 둘렀지만 동쪽은 출입문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동쪽에는 10개의 기둥 중 출입문이 있는 가운데에 4개, 나머지 양쪽에 각 3개씩 세웠습니다. 출입문은 동쪽 총 길이 22.8m중 9.12m나 되어 상당히 넓게 만들어졌습니다. 게다가 출입문의 휘장은 지금껏 사용한 흰 세마포 포장이 아닌 청색, 자색, 홍색 삼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을 사용하여 만들었습니다. 이 재료들은 모두 성소와 지성소 출입문에 동일하게 사용했던 것입니다. 하늘의 색을 상징하는 이 실들은 세 문 모두 모두 하늘로 들어가는 문임을 보여줍니다.
분명 성막은 울타리를 침으로 닫힌 공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출입문은 9m가 넘을 정도로 열려있었습니다. 하나님 자체가 이 세상과 구별된 거룩하신 분이기에 그분이 임재해 계시는 성막 또한 외부 세계에 닫힌 공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성막은 이방인이든 여인이든 하나님께 나오기 원하는 모든 사람이 나올 수 있도록 열린 공간이었습니다.
이처럼 교회는 닫혀있지만 동시에 열려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피조물을 우상으로 모시는 세속적 가치관에 철저히 닫혀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강도 맞은 우리 이웃에게는 활짝 열려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일상 중 구별된 시공간을 내어 구별된 하나님을 만날수록 우리 삶은 세상을 향해 하나님을 드러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속적 가치관에 열려있다면 정작 손과 발을 열어야 할 강도 맞은 우리 이웃에게 닫힌 채로 살 것입니다. 이처럼 구별됨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명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번제단, 물두멍, 성막 울타리 모두 하나님의 디자인으로부터 시작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완성됐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죄인 된 우리가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하나님 편에서 주어진 은총이었습니다. 이로 보건대 우리를 만나고 싶어하시는 하나님의 열망은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습니다. 이러한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지금도 우리의 구원을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행동을 그저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땅에 떨어져 불에 던져질 날을 기다리던 마른 나뭇가지와 같던 우리를 농부 하나님께서 주우사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접붙여주셨습니다. 농부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자비로운 접붙여주심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뿐입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상대는 과소평가하며 오만과 편견으로 가득 찼던 죄인이었습니다. 이런 우리를 성막을 지으면서까지, 십자가에 매달리면서까지 구원하러 오신 하나님의 열정을 향해 눈을 드십시다. 의지하는 모든 이에게 친히 구원의 뿔 되어주시는 예수님을 붙잡으십시다. 그리하여 묵은 것 내어버리고, 변화된 새 포도주의 사람 되어 세상을 새롭게 하는 오늘 하루 보내기를 축복합니다.
모세의 명령대로(21-23)
오늘 본문은 성막과 성막뜰을 만드는 데 사용되었던 재료를 소개합니다. 출애굽기 25장 1절부터 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자원하여 기쁜 마음으로 성막을 만들 예물을 가져오라고 말씀하시는데 이렇게 가져온 이스라엘의 예물이 얼마나 쓰였는지가 언급됩니다. 주로 사용된 금과 은과 놋의 사용량에 대한 요약적인 진술이 있고, 20세 이상의 이스라엘 장정들의 숫자대로 은을 거두어 은이 가장 많았다는 점이 도드라집니다. 마지막으로 아론의 네 명의 아들 중, 이다말이 이 재료의 목록을 작성하는 책임을 맡고 있었다는 것이 새로운 정보입니다.
(21) 성막 곧 증거막을 위하여 레위 사람이 쓴 재료의 물목은 제사장 아론의 아들 이다말이 모세의 명령대로 계산하였으며
보통은 하나님의 임재하시는 장막이라고 해서 다른 장막과는 구별된다는 의미로 성막이라고 불렀지만, 이 성막의 가장 본질적인 표현은 증거막이었습니다. 증거막 안에는 언약궤 또는 법궤라고도 불리는 증거궤가 있고, 증거궤 안에는 십계명이 기록된 두 돌판 곧 증거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증거막이라고 할 때, 무엇에 대한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체결하시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셨다는 것을 증거하는 막이라는 의미입니다.
성막이라는 이름과 아울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만나시는 장소라는 의미로 회막이라고도 하지만 사실상 여기에 등장하는 증거막이 이 장소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는 말입니다. 증거막이 여전히 이스라엘 가운데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에게 언약의 말씀을 주시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셔서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신실하게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알게 되고, 만나게 됩니다. 이 증거막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두 언약의 당사자가 만나서 함께 살아가는 장소입니다.
이곳은 지성소와 성소로 나뉘어집니다. 지성소는 언약의 한쪽 당사자인 하나님을 위한 공간입니다. 그곳에는 증거궤와 증거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반면에 성소는 이스라엘을 위한 공간입니다. 성소에는 진설병상이 있고, 등대와 향단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데 필요한 이런 기구들은 스스로,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해서 늘 깨어 있어야 하며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데서도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언약의 말씀의 테두리 안에서 섬겨야 함을 알게 해줍니다. 이른바 증거막의 두 방은 시내산에서 언약을 행했던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만남을 그대로 재현해놓은 장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증거막 제작을 위해 레위 사람이 쓴 재료의 리스트를 제사장 아론의 아들 이다말이 모세의 명령을 받아 레위 사람들과 함께 계산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다말은 성막과 성막뜰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의 출납을 레위 사람들과 함께 담당하며, 그 명세서를 작성하는 일을 관리감독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다말은 민수기 4장과 7장에서도 특정 영역에서 관리감독하는 책무를 맡은 것으로 나옵니다.
아론의 아들들 중에서 제사장으로서 본연의 역할을 했던 다른 형제들과 달리 이다말은 이런 일들을 주로 감당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중요한 것은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이 다소 달랐음에도, 이다말이 불평하는 대신에 이 일들을 책임감 있게 감당하며, 임의대로 진행한 것이 아니라 지도자 모세의 명령대로 일을 수행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모세라는 권위와 질서 속에서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레위 지파와 함께 수행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다말이 자신에게 맡겨진 일의 범위와 역할을 잘 알고 협력하여 맡겨진 일을 성실하게 수행했기 때문에 우리가 이스라엘이 자발적으로 드린 예물 중에서 성막과 뜰을 만드는 데 사용된 금속의 양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이는 이다말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이다말을 도와 이 기록을 남겼던 레위 자손들도 최선을 다했고, 성막의 각종 기구를 만든 브살렐과 오홀리압도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모든 것을 만들었습니다.
(22-23) 유다 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살렐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모든 것을 만들었고 단 지파 아히사막의 아들 오홀리압이 그와 함께 하였으니 오홀리압은 재능이 있어서 조각하며 또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 실로 수 놓은 자더라
이 둘은 성막의 제조책임자로서 임의로 만든 것이 아니라 모세가 만들라고 말한 모든 것을 만들었습니다. 이스라엘 중에서도 가려 뽑힌 사람이었습니다. 그 분야에서는 다른 이의 추종을 불허하는 장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모세가 말한 것을 듣습니다. 작업의 책임자인 브살렐의 지도 아래에서 일을 해나갑니다. 각자 자기 일을 하는 것 같지만 결국은 성막을 짓는다는 거대한 목표를 향해 저마다 일을 해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질서와 조화가 필요합니다. 우리 각자가 하나님이 주신 역할을 신실하게 감당하려고 할 때, 조화로울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보여주신 자기 부인의 겸손을 바탕으로 편견과 오만을 벗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삶의 자리에서 함께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갈 때 비로소 우리의 손과 발로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실현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오늘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하는 지혜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성소 건축 비용(24-31)
다음으로는 구체적인 성소의 건축 비용이 소개됩니다.
(24-26) 성소 건축 비용으로 들인 금은 성소의 세겔로 스물아홉 달란트와 칠백삼십 세겔이며 계수된 회중이 드린 은은 성소의 세겔로 백 달란트와 천칠백칠십오 세겔이니 계수된 자가 이십 세 이상으로 육십만 삼천오백오십 명인즉 성소의 세겔로 각 사람에게 은 한 베가 곧 반 세겔씩이라
금은 성소의 세겔로 스물아홉 달란트, 730세겔이 쓰였고, 은은 성소의 세겔로 100달란트와 1,775세겔이 쓰였습니다. 은의 양이 압도적으로 많은데, 이 은은 20세 이상 남성 603,550명에게서 1인당 반 세겔씩 의무적으로 거둔 결과였습니다. 이는 속전과 성막의 건축 비용으로 모두에게 징수하라는 출애굽기 30장 11절부터 16절에 이르는 말씀을 그대로 행했던 것이며, 여기에 등장하는 인구수는 민수기 1장 46절에 나오는 인구조사 결과와 동일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증거막을 짓는 데 필요한 비용을 기꺼이 부담해야 했습니다. 의무적으로 거둔다고 해서 하나님을 원망할 수 없습니다. 크신 능력으로 구원해주신 하나님과 만나는 장소를 만들기 위함이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셈이기 때문입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아낌없이 드리는 것이 구원 받은 백성의 자세입니다.
하나님께 기꺼이 드릴 마음과 드릴 것이 있는 인생은 복됩니다. 그 마음이 없으면, 우리가 가진 것은 그저 우리 것이지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움켜쥔 모든 것이 우리의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가 가진 것도 모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가 살아가는 데 쓰도록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달란트, 우리의 물질, 우리의 시간까지도 하나님께 아낌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수 있습니다. 봉사하고 계시다면, 그 봉사의 자리를 나에게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기꺼이 드릴 수 있는 마음으로 가진 것의 일부를 드릴 수 있다면, 이것이 내 것이 아님을 알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헌신된 마음으로 교회를 섬길 수 있다면 그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27-31) 은 백 달란트로 성소의 받침과 휘장 문의 기둥 받침을 모두 백 개를 부어 만들었으니 각 받침마다 한 달란트씩 모두 백 달란트요 천칠백칠십오 세겔로 기둥 갈고리를 만들고 기둥 머리를 싸고 기둥 가름대를 만들었으며 드린 놋은 칠십 달란트와 이천사백 세겔이라 이것으로 회막 문 기둥 받침과 놋 제단과 놋 그물과 제단의 모든 기구를 만들었으며 뜰 주위의 기둥 받침과 그 휘장 문의 기둥 받침이며 성막의 모든 말뚝과 뜰 주위의 모든 말뚝을 만들었더라
성막을 만드는 데 필요한 공간과 시설 규모, 거기에 들어간 금속의 양이 생각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놋까지 드렸는데 놋은 70달란트와 2,400세겔을 드렸습니다. 흔히 생각하면 놋이 훨씬 더 흔하니까 놋을 더 많이 드렸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아닙니다. 자발적으로 드렸던 금과 놋을 합친 양보다 은이 훨씬 더 많습니다.
금은 성소의 가장 핵심적인 곳을 꾸미는 데 썼고, 은은 성소의 받침과 문의 기둥 받침, 기둥 갈고리, 기둥 머리, 기둥 가름대를 만드는 데 썼다고 합니다. 놋은 회막 문 기둥 받침, 제단, 그물과 제단 관련 기구, 성막 뜰 주위의 기둥 받침, 성막의 모든 말뚝, 뜰 주위의 말뚝을 만드는 데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여기의 놋이 황동인지 청동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일종의 합금으로 보다 단단하여 울타리의 말뚝을 만드는 데 적절하게 쓰였음을 알 수 있고, 하나님의 임재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차례로 금, 은, 놋이 쓰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각자가 하나님 앞에 다른 방식으로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9장 21절에 나오듯이, 토기장이가 만드는 그릇 중에 귀하게 쓰임 받는 그릇도 있고, 덜 귀하게 쓰임 받는 그릇도 있습니다. 내가 귀한 그릇이냐, 덜 귀한 그릇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일에 쓰임새가 있는 그릇이 된다는 것이고, 그 쓰임을 결정하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로서는 우리를 정결하게 가꾸어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적합한 존재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옛사람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새 포도주를 받은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레위를 새롭게 세워주셨던 것처럼 우리도 세워주실 것이며 새 포도주의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성막이 완성되었습니다. 25장부터 31장을 통해 모세에게 보여주신 청사진대로 장막과 도구를 완성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지시하신 기준과 방식에 따라서, 철저하게 순종하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가야 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보내는 오늘 하루가, 하나님께서 주신 역할과 기대에 부응하는 한 날 되시길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기준과 방식에 따라 철저하게 순종하시는 오늘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오늘 나에게 주신 것들로 감사하며, 하나님께 드릴 것이 있는 열매 맺는 삶을 살아가시는 새 포도주의 사람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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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8장1-7
1절로 7절까지 말씀은 번제단에 관한 내용입니다.
번제단은 조각목으로 만들었는데, 길이와 폭이 각각 2.3m , 높이가 1.4m 정도가 됩니다. 그리고 그 네 모퉁이에 뿔을 만들어 달았는데, 단과 연결되게 달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불에 의해 손상되지 않도록 놋으로 싼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외 번제단에 소용되는 물건들도 다 놋으로 만들었습니다. 통과 부삽과 대야와 고기 갈고리와 불 옮기는 그릇 등이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4절에 보니 놋 그물을 만들어 단 사면 가장자리 아래 두되, 단 절반에 오게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아래에서는 불을 지피고 놋 그물 위에는 제물을 얹고 태울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번제단’이라 하는 것은 ‘희생제물을 잡아 불태워 그 향기를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제단(출 38:1)’입니다. 그래서 한자로 ‘태울 번(燔)’자를 써서 번제단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이 번제단은 하나님께서 그 백성 이스라엘을 만나는 장소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시는 장소이며, 그 교제를 인치는 장소였습니다. 제단은 하나님과의 화목의 장소임에도 백성은 피가 아니면 그 장소에 나아갈 수 없었고, 제사장을 통하지 않고 하나님께 이를 수가 없었습니다. 분명 ‘하나님의 단’이 은혜의 처소임에도 그곳에 가는 길에는 반복되는 죽음과 피, 그리고 중보자가 요구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옛 백성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만나는 방식이었습니다.
2. 8절
8절은 물두멍에 대한 기록입니다.
“제사장이 성소에 들어가기 전 손과 발을 씻고 몸을 정결하게 하는 데 사용된 청동제 놋대야다(출 30:18-20). 성막 뜰 번제단과 성소 사이에 위치하였으며(출 30:18; 레 8:11), ‘두멍’으로도 불렸습니다(출 30:19).
솔로몬 성전에서는 성전 남쪽에 5개, 북쪽에 5개씩 모두 10개가 있었고, 바퀴가 달려 있어 이동이 용이한 물통을 가리킨다. 직경은 대략 1.8m(4규빗)이며 대략 920ℓ 정도(40밧, 1밧은 약 22ℓ)의 물을 담을 수 있었고(왕상 7:38-39), 희생제물을 씻는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성전에서는 성막의 물두멍과 비슷한 위치에 ‘바다’라 하는 성물을 두었는데, 제사장은 이곳에서 손발을 씻어 정결하게 하였습니다(왕상 7:30; 왕하 16:17; 대하 4:6).”-출처: 라이프성경사전
만약 그들이 씻지 않고 성소에 들어가거나 제사를 드리는 행동을 하게 되면, 그들은 필시 죽임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거룩에 합당치 않기 때문입니다.
옛 역사에서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제사장으로 하여금 육체의 정결함 가운데 그 앞에 나오게 하셨습니다. 거기에는 반복되는 씻음과 끝없는 육체의 정결함이 요구되었습니다. 씻지 않고 그 앞에 나아갈 수 없고 육체의 정결함 없이 하나님을 섬길 수 없습니다. 율법이 정한 정당한 절차를 밟지 않고는 합당치 못한 자가 되어 죽음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전 역사에서 그 백성이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 갖는 한계였습니다.
3. 8장9-31
9절부터 31절까지는 성막뜰과 예물의 합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먼저, 9절부터 20절까지는 성막뜰을 만드는 내용입니다.
모세는 규정대로 성막뜰에 기둥을 세우고 포장을 쳐서 회막안과 밖을 구분했습니다. 회막 안은 거룩한 공간이요, 회막 밖은 거룩치 못한 공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거처와 세상을 구별시켰습니다.
그러나 그곳은 열린 곳이어서 지성소처럼 제사장만이 들어가는 닫힌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누구나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자리입니다. 누구나 그곳에 나아가므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덧입는 것이요, 거룩하게 된 자로서 하나님의 열납하심을 받는 자리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 이상 나아갈 수는 없었습니다. 제한 된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 그 이상의 나아옴을 허락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것이 구약시대의 백성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한계였습니다.
4. 21-31절
21절부터 31절에는 그동안 성막을 세우는데 들어간 예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먼저는 성막을 짓는 일에 수고한 자들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21절을 보면, 성막 곧 증거막을 위하여 레위 사람의 쓴 재료의 목록은 제사장 아론의 아들 이다말이 관리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그는 물품의 출납을 맡아 수고한 것입니다. 그리고 유다 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살렐은 총 감독을 맡아 제반 물품을 만드는 일에 수고하였습니다. 그는 특히 금형을 만들어 금과 은과 놋으로 온갖 물품을 만들고, 보석을 가공한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그와 함께 수고한 자가 있는데, 단 지파 아히사막의 아들 오홀리압입니다. 그 또한 재능이 있어서 조각하는 일과 수놓는 일을 맡았습니다. 이러한 재능 있는 자들의 수고와 헌신으로 성막이 만들어졌습니다.
24절 이하에는 성막에 소용되어진 금속에 대해 정리해 놓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금이 약 1.2톤, 은 약 4톤, 놋 약 3톤 정도가 성소를 만드는데 소용되어졌습니다. 모세는 지금 이 기록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금과 은과 놋이 성막을 짓는데 들어갔는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곧 백성들의 수고와 헌신, 그들의 봉사가 얼마만큼 컸는가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봉사에 육십만의 백성 모두가 함께 참여하였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도 빠짐 없이, 이십 세 이상, 성인 모두가 다 이 일에 참여한 것입니다. 여하튼 이 성소는 백성들의 헌신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그들은 자원하는 마음으로 즐거이 자신의 것들을 헌납하였고, 그들의 이러한 자원하는 헌신을 통해 성소 건축은 순조롭게 이루어졌습니다. 이 일에는 모두가 다 함께 참여했습니다. 재능이 있는 이들은 자신들이 가진 재능으로, 재물이 있는 이들은 자신들의 재물로, 그렇지 못한 이들은 반 세겔의 은전을 내는 것으로 이 일에 함께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막을 짓는 일을 통해 본문에서 배운 것처럼 하나님을 섬기고 주를 위한 봉사는 특정한 사람이나 정해진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참여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참여함으로 함께 기쁨을 누리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이 사실을 믿고 믿음으로 나가는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 믿음의 선물은 모두에게 주시기를 원하시며 성전에서의 제사와 봉사와 섬김을 통해서 더욱 자라게 되고, 큰 믿음으로 자라게 됩니다. 이같은 섬김과 봉사를 성전에서 뿐만 아니라 세상을 그 실천의 현장으로 삼고 하나님사랑과 사람사랑을 구현해나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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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장부터 시작된 성소 건축은 오늘 본문 38장에 이르러 번제단과 놋물두멍과 성막울타리를 만듦으로써 마쳐집니다. 어제 살펴본 언약궤와 상과 등잔대와 분향단이 성막 내부의 풍경이었다면, 오늘 본문의 번제단과 놋물두멍과 성막울타리는 성막 외부의 풍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성막은 이스라엘 열두지파 진의 한 가운데에 있었습니다. 어디에 머물건, 성막을 중심으로 열두지파는 진을 쳤고,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그들은 진의 중심 곧 성막으로 나와야 했습니다. 이렇게 진영 한 가운데 위치한 성막 외부의 풍경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중요한 하나의 메시지 였습니다. 실질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상번제라 하여 매일 아침 저녁으로 번제를 드렸습니다(출29:38~39). 바꾸어 말하면, 진 한 가운데 성막에서 아침과 저녁으로 어린양을 태우는 연기가 하늘로 피어올랐고, 그 냄새가 사방으로 퍼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상번제 외에도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 등 제물을 불살라 드리는 제사가 진영 중심 번제단에서 끊이지 않았습니다. 진영의 중심에서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연기를 보고, 순식간에 퍼진 제물의 탄 냄새를 맡으며 진영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엇을 생각했겠습니까. 그들의 제사를 흠양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았겠습니까. 번제단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과 기억 중심에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삶과 진영 중심에 있는 성막 외부의 풍경을 통하여 하늘과 땅을 연결하시며, 그들이 당신의 백성임을 늘 확인하도록 하셨습니다.
더불어 36장부터 기록하고 있는 성막건축 과정의 대부분은 ‘그가~만들었더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문 38장 1절도 ‘그가’라는 주어로 시작하여 7절에서 ‘만들었더라’는 동사로 끝나며, 8절도 ‘그가~만들었더라’고 기록했고, 9절 또한 ‘그가 만들었으니’ 라고 기록합니다. 성막을 만드는 주체는 다름아닌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혼돈과 공허 위에 천지를 창조하신 능력 있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하여 성막을 짓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하여 일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단 한번도 성막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노예살이하던 그들에게는 차라리 대제국 이집트의 거대한 신전과 건축양식이 더 익숙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실질적으로 그런 건축노동에 동원되곤 하였습니다. 그것은 대부분 이집트의 왕과 기득권층을 위한 노동이었고 희생이었습니다. 그것이 노예인 그들의 삶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성막건축은 그들에게 전혀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노예로 생각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집트의 왕처럼 자신을 위해 건축하게 하지도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과 함께 머무시고자 성막을 그들로 건축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말씀의 설계도를 따라 성막을 세워가는 건축과정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성막건축에 참여했던 브살렐과 오홀리압과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들이 이 과정을 통하여 새로운 지평의 하나님을 만났을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하여 일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모자라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회복시키시고, 그들을 새로운 지평으로 인도하고자 하심이었습니다.
마지막에는 특이하게 성소 건축비로 든 금과 은과 놋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금 이십구 달란트 칠백삼십 세겔, 은 백 달란트 천칠백칠십오 세겔, 놋 칠십 달란트 이천사백 세겔로 이스라엘 백성이 바친 금과 은과 놋의 양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 달란트를 오늘날 단위로 환산하면 약 28.2킬로그램 정도 인데 이렇게 본문을 보면 금 825킬로그램, 은 2835킬로그램, 놋1996킬로그램에 해당하는 방대한 양을 기록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왜 이 방대한 양의 금과 은과 놋에 대해서 출애굽기 38장에 이렇게도 자세히 기록해 놓으셨을까요. 한치의 오차도 없이 그 금과 은과 놋의 양을 기억하시고, 기록하실만큼 그 숫자가 의미있었기 때문일까요. 그것은 마치 어느 들판에서 다윗의 고백이 오늘날 우리에게 시편으로 전해지는 것과 같습니다. 시편 8편 3절~4절에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아무도 없는 고요한 들판에서 누워 밤 하늘의 달과 별을 보며 다윗은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하늘과 달과 별을 만드신 것이 나를 위함이시구나! 도대체 사람이 무엇이기에 하나님께서 이렇게도 돌보신다는 말입니까! 감격하며 읇조리는 다윗의 고백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셨고, 오늘날 시편 8편으로 우리에게 전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린 금과 은과 놋을 마지막 한 세겔까지 정확하게 기록하신 것은 금과 은과 놋이 하나님께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요, 그 안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진실된 고백이 담겨있었기 때문입니다. 광야 한가운데서 울리는 금과 은과 놋으로 드려진 그들의 중심을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기뻐하시고 기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중심을 받으시는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새 날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이 하루도 어떤 상황과 환경 속에 살던지 중심을 하나님께 드리며 살아갈 때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은 하나님께서 기억하실 금과 은과 놋이 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