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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希望) 영촌은 무척 작은 마을이었다. 마을 전체를 한바퀴 빙 도는데 걸어서 한 시진이면 족하고, 인구는 서른 가구에 백여 명 남짓했으니 말이다. 마대위를 구해준 노인은 성이 황(黃)씨요 이름은 면(沔)이라 했는데 평소 워낙 조용한 성격이라 마을사람들에게는 무심옹이라 불렸다. 무심옹 황면은 언뜻 보기에는 낚시를 즐기는 평범한 시골의 촌로 같다. 하지만 죽었어도 열 번은 더 죽었을 마대위를 거뜬히 살려낸 걸보면 가히 신의라 불러도 손색이 없으리라. 황도에 가서 귀족들을 상대한다면 만금을 얻을 수 있을 사람이 이처럼 궁벽한 시골에 숨어 있으니 뭔가 사연이 있음이 분명할 것이다. 황면에게는 손녀가 한 명 있었는데 바로 마대위를 극진히 간호해 준 향아다. 향아에게는 안타깝게도 부모가 없었다. 한번은 마대위가 이를 궁금하게 여겨 황노인에게 물어보았지만 아무 대답이 없었다. 뭔가 말 못할 사연이라도 있는 모양이었다. 어쨌든 마대위는 이 두 조손의 도움으로 한 달 만에 다시 자리에서 일어서게 되었는데, 이러한 기적적인 회복력에 놀랄 만도 하건만 황노인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향아는 마대위가 평생 침대에 누워서 살아야 할 줄 알았는데 거뜬히 일어나니 무척 놀랐고 기뻐했다. 마대위가 이처럼 빨리 일어난 건, 회복하고자 하는 그의 의지가 강했던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태극혜검결로 끊임없이 선천지기를 북돋워주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자신을 지켜주던 대력금강기는 이미 사라졌고, 따라서 예전과 같은 초인적인 힘이나 놀라운 기공은 보여주지 못했다. 단지 천천히 걸어 다닐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된 것만 해도 기적이었다. 마대위는 여기에 멈추지 않고 의욕적으로 태극혜검을 익히려 했다. 잠을 자는 시간 세 시진을 제외하고는 끊임없이 태극혜검결을 외웠는데, 심지어는 잠꼬대로 검결을 중얼거릴 정도였다. 이러한 노력이 성과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한달이 더 지나서부터였다. 마대위는 무서운 속도의 회복력을 보이며 이제 뛰어다닐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최소한 그의 신체만은 무공을 익히지 않은 건강한 청년과 비슷한 정도였다. 마대위는 머지않아 무공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며, 예전의, 아니 그보다 훨씬 진보된 경지에 이를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하지만 그건 마대위의 착각이었다. 태극혜검은 마대위의 신체적 능력을 정상으로 돌려놓는 데는 기적과 같은 위력을 보였지만 무공의 회복에는 전혀 일조를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건 마대위가 과거 무당에 있었을 때, 태극혜검을 익혀 무공을 증진시키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진전이 없던 것과 동일한 상황이었다 . 마대위는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크!” 쨍그렁! 술병 하나가 날아가 바위에 부딪치며 산산이 부서졌다. 조용히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며 어느 강기슭 널찍한 바위위에 드러누운 채 술병을 기울이다가, 다 마신 후 뒤로 던져 깨어버린 술병이 벌써 다섯 병째다. “향아! 향아!” 마대위가 걸걸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잠시 후, 열 살 정도의 꼬마 계집아이가 나타났는데, 두 팔을 허리에 척 걸치고 마대위를 노려보는 모습이 여간 앙칼져 보이지 않았다. “아저씨! 이제 그만 좀 마시세요. 그러다 술독에 빠져 죽겠어요.” “향아! 이 아저씨께 한병만 더 갖다 다오.” “그만 좀 마시라니까요, 아저씨!” “향아! 이번엔 꼭 약속하마. 한병만 더 마시고 그만 마시기로.” 향아가 마대위를 잠시 노려보더니 입을 삐죽였다. “좋아요. 정말 마지막이에요!” 그녀는 즉시 뒤돌아 뛰어갔는데 두 갈레로 땋은 머리가 찰랑거리는 모습이 무척 귀여웠다. 마대위는 그녀가 뛰어가는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았다. 은근한 미소가 입가에 스쳤지만 이내 참담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의 입에서 세상을 다 산 것 같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휴! 이 꼬라지로 살아서 뭘 해!” 퍽! 신경질적으로 바위를 내리친 마대위는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았다. “저기 콱 빠져서 뒈져버릴까, 그냥.” 금방이라도 뛰어들 듯이 몸을 확 일으켰던 마대위는 잠시 갈등하는 표정을 짓더니 다시 들어 누웠다. 하늘에는 뭉게구름만 속절없이 떠가고, 시원한 바람만이 불어와 머리카락을 쓸고 지나갈 뿐이었다. “여기요!” 향아의 목소리와 함께 술 한 병이 코앞에 불쑥 나타났다. 병목을 쥔 향아의 예쁜 손이 보인다. 휙! 마대위가 벌떡 일어나 술병을 잡아채듯 뺏어들었다. 그리고는 곧바로 목구멍으 로 쏟아 붇기 시작했다. “어휴! 아저씨!” 향아가 고운 아미를 찌푸리며 마대위를 노려보았지만 그는 거의 반이나 들이킨 후에야 병을 내려놓았다. “캬! 좋구나!” “치! 그 독한 게 뭐가 좋다고 그래요?” 향아가 또다시 입을 삐쭉이자 마대위가 한탄하듯 말했다. “향아! 너도 커서 어른이 되면 이 아저씨의 마음을 이해하는 날이 올 거다.” 향아는 말도 안 된다는 듯 마대위를 향해 눈을 한번 흘겨 주고는 쪼르르 달려가 버렸다. 마대위는 다시 뒤로 들어 누웠다. 그리고는 술병을 얼굴위로 들어올린 후 기울였다. 독한 술이 흘러내려 그의 얼굴에 떨어져 내렸다. 그가 입을 크게 벌리자 일부는 입 속으로 흘러들어갔지만 눈이나 코로 들어가는 술도 있었다. 그 때문에 마대위는 사래가 들어 가슴을 움켜쥐고는 기침을 해대기 시작했다. “콜록! 콜록!” 기침은 쉽사리 그치지 않았고 마대위는 몸을 돌려 엎드리고는 속에 든 것을 게워내기 시작했다. “웩! 우웩!” 먹은 거라고는 술 밖에 없는지라 맹한 물만 올라올 뿐이었다. 그래도 속은 시원해지지 않았고, 기침만 더욱 맹렬히 나왔다. 가슴이 불에 타는 듯 화끈거렸고, 마대위는 고통에 안색을 잔뜩 찌푸렸다. 그때 누군가 그의 등을 두드려주는 게 아닌가. 톡톡톡……. 순간 마대위의 기침과 구역질은 거짓말처럼 멎었다. 마대위는 그 손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정확히 혈도를 찾아 적당한 힘으로 충격을 주어 내식을 안정시킬 수 있는 사람은 이곳에서 황노인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황노인은 잠시 마대위의 등을 쓸어주었다. 마대위가 다소 안정되는 듯 하자 그는 아무 말 없이 걸음을 옮겼다. 마대위는 가슴을 문지르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저만치 걸어가는 황노인을 바라보았다. 항상 무뚝뚝하고 말이 없는 노인. 하지만 주정뱅이로 전락하다시피한 마대위의 토악질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돌보아주는 자상함을 갖추고 있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마대위가 술에 입을 대기 시작한 이래 단 한번도 싫은 기색을 내보이지 않았다. 어찌 생각하면 무관심한 것이지만 그의 태도를 보면 조용히 지켜봐주고 있다고 해도 될 듯 하다. 무척 신비한 부분이 많아 호기심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마대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신경을 끄기로 작심했던 것이다. 복수는 고사하고 제 몸 하나 건사하지도 못하는 주제에 남에게 호기심 따위를 가져서 뭣 하겠는가. 마대위는 계속해서 술에 의지해 살았고, 그렇게 두세 달이 지나자 몸과 마음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지고 말았다. 시원한 가을바람이 불어오는 어느 날, 마대위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강기슭 바위위에 앉아 술로 세월을 달래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눈동자는 이미 풀려 있었고, 피부도 거무튀튀해 이미 주독에 찌들대로 찌든 모습이었다. 뜻 모를 노래를 흥얼거리며 이리저리 뒹굴고 있던 마대위 앞에 낚싯대를 멘 황노인이 나타난 것은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갈 황혼 무렵이었다. “낚시나 한번 해보지 않겠는가?” 마대위가 고개를 삐딱하게 들고는 황노인을 올려다보았다. 황노인이 어깨에 걸치고 있던 낚싯대 하나를 불쑥 내밀었다. “어어…….” 마대위가 얼떨결에 낚싯대를 받아들자 황노인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먼저 걸어갔다. “여, 영감님!” 아무리 소리쳐도 황노인이 뒤돌아보지 않자 마대위는 할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손에 든 낚싯대를 다소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뜬금없이 낚시는 무슨 낚시야.’ 내심 투덜거렸지만 그동안 술독에 빠져 있는 자신을 지켜보기만 할뿐 단 한마디도 하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낚시를 가자고 하니 마대위로서는 얼떨결에 그의 말에 따르고 말았던 것이다. 바꾸어 말해 평소 황노인이 마대위에게 이런저런 잔소리를 했더라면 오늘 그가 낚시를 가자고 해도 콧방귀도 뀌지 않았으리라. 마침내 마대위는 어기적거리며 황노인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잠시 후, 마대위는 황노인이 항상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던 장소에 도착했다. 마치 용마루처럼 불쑥 튀어나온 바위 위가 바로 그 장소였는데, 그 아래쪽 강물은 수심이 가장 깊어 큰 물고기가 잘 잡히는 곳이었다. 그곳에는 나무로 만든 작은 의자가 두개 놓여 있었는데 아마도 황노인이 마대위와 같이 오기로 작심을 하고는 미리 갖다 놓았던 게 분명했다. 황노인은 이미 그곳에 도착해 강에다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본 마대위도 헛기침을 한 차례 한 후 낚싯줄을 풀었다. 그리고는 황노인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뭐야! 없잖아!” 마대위가 황노인에게 물었다. “영감님. 미끼는 어디 있는 거요?” 황노인은 마대위를 돌아보지 않고 그 자리에서 대답했다. “없네.” 순간 마대위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미끼도 없이 낚시를 한단 말이오?” 황노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마대위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허허허!” 마대위는 순간 깨달았다. 지금까지 향아가 요리해주어 먹은 생선은 모두 황노인이 낚시로 잡은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아마도 마을사람들을 치료해주고 받은 게 주로 생선이었던 모양이다. 마대위는 미끼로 쓸만한 게 없나 싶어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문득 낚시 바늘을 보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작고 뭉뚝한 쇠막대가 하나 달려있을 뿐 바늘 또한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없었던 것이다. 황노인 옆에 있는 작은 나무의자에 마대위가 털썩 앉았다. 그리고는 낚싯대를 들고 미끼도 바늘도 없는 낚싯줄을 강에 드리웠다. 잠시 멍하니 황노인마냥 흘러가는 강물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마대위가 고개를 들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휴! 내가 미쳤지…, 미쳤어. 지금 뭐하는 거야!” 마대위가 낚싰대를 옆에 대충 팽개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황노인이 입을 열었다. “사흘만 나를 따라 낚시를 하거라.” 갑작스러운 노인의 하대에 마대위는 미간을 찌푸렸다. 황노인이 다시 말했다. “다시 앉지 못하겠느냐?” 그의 목소리에는 은은한 노기마저 실려 있었다. 마대위는 내심 화가 불끈 치솟았지만 꾹 눌러 참았다. “사흘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요?” 황노인이 아무 대답도 없자 마대위가 다소 짜증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젠장, 사흘만 지나면 내 몸이 다 낫기라도 한다는 거야, 뭐야…….” 황노인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마대위를 바라보았다. “아무 말도, 생각도 말고 그냥 강물이나 바라보란 말이야.” 다른 누군가가 다른 장소에서 마대위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면 욕지거리와 함께 엎어버렸을 마대위였지만 황노인에게만큼은 그럴 수가 없었다. 자신의 목숨을 건져 준 은인이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황노인의 말고 행동에서 묘한 힘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마대위가 슬그머니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그리고 황노인의 말대로 그냥 멍하니 강물을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좀이 쑤셔 미칠 것 같더니 어느 정도 참고 시간이 지나자 다소 편안해지는 게 아닌가. 왠지 허한 마음에 마대위의 입에서 도인 같은 말이 새어나왔다. “그놈의 강물…, 무심하기도 하다.” 그의 말을 받기라도 하듯 이번에는 황노인이 말했다. “강물이 무심한 게 아니라 세월이 무심하지.” 마대위가 고개를 돌려 황노인을 바라보았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시선을 강으로 향했다. 어느 듯 주위가 어두워지자 달이 두둥실 떠올랐다. 시골이라 그런지 반달이었지만 보름달만큼 밝게 느껴졌다. 흘러가는 강물이 잔물결을 일으키며 달빛에 반사되었는데 이 모습이 마치 수만 마리의 반딧불이가 떼를 지어 아름다운 군무(群舞)를 추는 듯 했다. 마대위는 어린 시절 은혜원에서 고아들과 함께 살던 때가 생각났다. 그때 비월강은 푸르렀고, 수많은 반딧불이가 그 위를 떼 지어 날아다녔다. 그러면 매령령과 나란히 강가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중에 크면 은혜원의 고아들과 모두 함께 행복하게 살자는 내용이었다. 하 지만 지금 그들은 모두 비명횡사하고 오직 자신만 남았다. 어린 시절 소중한 추억을 나누었던 이들 모두가 채 봉우리를 피워보지도 못한 꽃처럼 세상을 떠나고 말았던 것이다. ‘천외패황궁 놈들…….’ 마대위의 마음속에서 불같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의 흥분을 반증이라도 하듯 낚싯대가 부르르 떨었다. 작은 파문이 수면에 일었지만 이내 강물에 휩쓸려 사라졌다. 황노인이 슬쩍 고개를 돌려 마대위를 바라보았다. 그는 마대위가 무척 격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지만 아무 말 없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매령령과 은혜원 고아들 생각은 가셨지만 이번에는 무당파에서 단전을 파괴당한 채 금마동에 버려졌던 때가 생각났다. 다행히 대종사와 오마왕들의 도움으로 사람구실은 할 수 있었지만 무당파 도인들만 생각하면 저도 모르게 이가 갈리는 것이었다. 무당파에 대한 분노가 가라앉자 이번에는 대종사와 오마왕들을 배신한 사마가 생각났고, 위선에 가득 찬 진주 언가, 사천 당가의 만행들이 차례로 떠올랐다. 그 어느 것 하나 노엽지 않은 것이 없었지만, 최근에 광뢰마를 만나 사강룡과 생사를 모른 채 헤어졌 고 자신은 무공을 모두 잃은 일이 가장 통탄스러웠다. 하지만 그 분노는 광뢰마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향했다. 사마들이 거느리고 있는 암중세력의 능력으로 보아 자신의 행로도 훤히 꿰뚫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했어야만 했다. 그리고 훨씬 은밀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했어야 마땅했다. 더구나 무림 최정상들의 밀담을 주선하는 막중한 임무를 띠었음에랴. 온 몸을 부르르 떨며 격정에 휩싸여있던 마대위는 어느 순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감정이 다소 가라앉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하릴없이 흘러가는 물만 바라보고 있으니 온갖 생각들이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다. 기뻤던 일, 슬펐던 일, 기고만장하여 천하를 다 얻은 것 같은 승리감에 취했던 일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 모든 감정들은 결국 현재 자신의 모습에 대한 비관으로 모아졌다. 비관은 다시 지독한 감정의 분출을 야기했고, 마대위는 불같은 분노에 휩싸여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렇게 온갖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마대위는 끊임없이 분노하고 슬퍼하고, 비관했다. 그러는 동안 어느새 날이 밝았고, 태양이 따사로운 햇살을 자신에게 내려주는 것을 알지 못했다. 향아가 음식을 들고 찾아왔다가 황노인의 제지를 받고 돌아간 것도, 해가 다시 기울어 황혼이 찾아온 것도 몰랐다. 고즈넉한 저녁에 마을에서 밥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이름 모를 물고기들이 자맥질이라도 하듯 물 위로 튀어 오르는 아름다운 광경도, 그는 보지 못했다. 마대위는 타오르는 분노 속에서 온 몸을 다 사르고 살라 재가 되려는 듯 했다.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나고 사흘째가 되었다. 마대위는 사흘을 꼬박 먹지도, 자지도 않았지만 작은 나무의자에 처음 앉았던 모습 그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낚싯줄에 달린 길쭉한 나무 찌가 물살을 따라 아래로 흘러가면, 부드러운 낚싯대는 활처럼 휘어지며 사선으로 고개를 숙였다. 잔뜩 수그렸던 낚싯대가 다시 탄력적으로 펴지고, 나무 찌는 작은 포말을 일으키며 원래 있던 자리로 풀쩍 뛰어 돌아오기를 반복했지만 마대위의 눈길은 그곳을 향해 있지 않았다. 때로는 작은 잠자리 한 마리가 수면을 스치듯 날아와 지친 날개를 접고 그의 어깨에 매달려 쉬어가기도 했지만, 마대위는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머물러 있는 작은 공간 안에서 꽁꽁 얼어붙은 듯 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마침내 마대위의 얼어붙었던 입이 열리고, 한숨이 새어나왔다. “휴…….” 마치 마음속에 남아있는 감정의 찌꺼기를 모두 뱉어내려는 듯 그의 한숨은 길고 깊었다. 사흘 간 미동도 하지 않고 함께 앉아있던 황노인이 마대위에게 고개를 돌렸다. “뭘 보았느냐?” 마대위가 의외로 무척 공손하게 대답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분노와 증오를 보았습니다.” 황노인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쯧쯧…, 아직 멀었구나.” 마대위가 고개를 떨궜다. 황노인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사흘간 더 있거라.” “휴! 사흘이 아니라 삼십일을 더 있어봐야 무슨 일이 있겠습니까?” 절망에 찬 마대위의 말에 황노인은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조용히 물었다. “네가 이루고자 하는 일이 목숨보다 소중하느냐?” 마대위가 지체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그럼 뭘 망설이느냐?” 마대위는 황노인의 질문이 무슨 뜻인지 몰라 머뭇거렸다. 그러자 황노인이 다시 말했다. “뜻을 이루지 못하면 차라리 죽겠다는 심정으로 하란 말이다.” “아!” 순간 마대위는 황노인의 뜻을 깨달았다. 그러고 보면 자신이 대공을 이루었던 순간은 모두 죽음의 위기와 관련이 있었다. 화근이 되기는 했지만 어쨌든 독공을 익힐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던 것도 목숨을 걸고 만독혈지로 걸어 들어간 때문이요, 북해성녀를 만나 단전을 고치고 무공을 익힌 것도 절정고수들 조차 얼어 죽는다는 빙곡에 내공도 없이 들어가 실제로 빙인(氷人)이 되는 위험을 감수했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물론 처음 무당파의 금마동에서 대력금강기를 얻게 된 것도 죽는다는 심정으로 석순 앞에서 대종사께 간절히 빌었기 때문이었다. 마대위는 다시 한번 그때의 심정으로 되돌아가 죽기 살기로 매달려보기로 했다. 확신은 없었지만, 황노인이 예사로운 사람이 아니며, 그의 말을 따르면 뭔가 이룰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나무의자에서 내려와 가부좌를 한 마대위는 눈을 반개한 채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았다. @@@ 금마동을 빠져나온 오마왕들에게 있어 가장 시급한 문제는 자신들의 종적을 감추는 일이었다. 아마도 지금쯤 무당파는 발칵 뒤집어졌을 것이요, 추적대의 파견준비에 한창이리라. 게다가 3, 4일정도면 전서를 통해 무림맹에도 알려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다시 5일 후에는 천하 각대문파에 소식이 들어가 천하 정파의 집중적인 추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정파의 추적이 두렵지는 않았다. 그들 다섯 명이라면 웬만한 문파 하나쯤은 거뜬히 상대하고도 남을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종사와 북해성모까지 모시고 있는 상황에서 정파와 충돌하게 되면 혹 두 사람의 신상에 위험한 일이 생길수도 있어 일단 안전하게 몸을 감추기로 한 것이다. 오마왕들은 우선 산길을 꼬박 하루 동안 달려 무당파에서 최대한 멀어진 후, 산 속 깊은 곳에 숨었다. 그리고는 비천마왕이 산을 내려가 인근 마을에 숨어들어 옷과 음식등을 구해왔다. 그들은 숲 속에서 며칠간 머물며 앞으로의 행로에 대해 의논했는데, 결국 수라마왕의 가문인 수라검문으로 가기로 했다. 혈영마왕은 마교를 떠난 순간 이미 사문을 버린 셈이었고, 만독혈왕은 제 정신이 아닌 상황에서 가문을 뛰쳐나왔는지라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 수 없어 신독문으로 돌아가기를 꺼려했다. 그리고 혼세마왕이나 비천마왕은 딱히 찾아갈 곳이 없어 결국 수라검문으로 결정했던 것이었다. 오마왕들중 수라마왕이 남아 대종사를 지키기로 한 후, 나머지 사마왕들은 일단 말끔하게 차려입은 후, 마을을 찾아갔다. 그리고는 그 마을에서 가장 부자이면서 악질적인 수전노로 악명을 떨치고 있는 자의 집에 몰래 들어가 위협한 후, 돈을 있는 데로 들고 나왔다. 돈을 충분히 구한 오마왕들은 우선 크고 호화로운 가마를 하나 구입했는데, 그건 부자들이 첩들과 함께 유람을 할 때 타는 것이었다. 오마왕들은 대종사와 북해성녀가 앉아있는 석순을 통째로 가마에다 싣고 움직일 작정을 한 것이다. 나중에 실제로 그렇게 해 보니 계획대로 딱 들어맞았고, 두터운 휘장까지 쳐져 있어 바깥에서는 도저히 안을 볼 수 없었다. 게다가 오마왕들 중 네 명이 가마를 메고 혼세마왕이 길잡이를 하니 마치 부자가 유람이라도 떠나는 그를 듯한 모습이 완성되었다. 오마왕들은 다음날 즉시 길을 떠났는데, 지나가는 사람들 대부분이 다소 경멸스러운 눈길을 보내기만 했을 뿐 이상하게 보는 이는 없었다. 하지만 산길을 가다가 몇 차례 산적들을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들은 혼세마왕의 한수에 혼쭐이 나 도망갔다. 그렇게 별다른 어려움 없이 길을 가던 오마왕들은 마침내 산서성에 도착하게 되었고, 수라검문을 찾아가게 되었다. 하지만 수라검문은 이미 진주언가에 의해 멸문해 그들을 반겨 주는 것은 폐허뿐이었다. “이, 이럴 수가…….” 수라마왕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다 쓰러져가는 장원을 바라보았다. 수라검문이라 쓰인 편액은 아예 보이지도 않았고, 연무장에는 잡초만 무성해, 이미 사람이 살지 않은지 수십 년은 더 된 듯 하다. “게 아무도 없느냐?” 수라마왕이 연병장 한가운데서 소리쳤지만 들려오는 건 희미한 메아리뿐이었다. 그는 주먹을 불끈 쥔 채 온 몸을 부르르 떨었다. “며, 멸문을 당했단 말인가…….” 그는 하늘이 다 무너지는 듯한 절망감을 느꼈다. 자신의 가문이 그래도 산서성에서는 진주 언가와 함께 수위를 다투는 세력을 지니고 있었는데 어찌 몇 십 년 사이에 이렇게도 완전하게 멸문을 해 버렸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어떤 놈들이…….’ 수라마왕은 멀쩡한 가문이 저절로 망했을 리가 없을 테니, 다른 문파의 침입을 받았음이 분명했다. 그 는 산서성에서 수라검문을 멸문으로 이끌고 갈만큼 강한 문파가 어디인지 생각해 보았다. “혹시 언가놈들이…?” 그렇다. 언가가 아니라면 산서에서 수라검문을 어찌할 수 있는 문파란 존재하지 않는다. 수라마왕은 즉시 이를 확인해 보기로 했다. 그는 혼세마왕등에게 말도 하지 않고 급히 신형을 날려 사라졌다. @@@ “에고고, 허리야…….” 양지바른 곳에서 거적에 붙은 벼룩을 잡고 있던, 비루먹은 망아지 모양의 늙은 거지 한 명이 뱃속에서 들려오는 꼬르륵거리는 소리에 한숨을 내쉬었다. 태현에서도 가장 목이 좋다는 영웅루 모퉁이. 며칠 안에 송장이라도 치를 것 같은 늙은 거지가 이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젊고 힘 있는 거지들이 서고 차지하기 위해 줄을 서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 노개(老?)는 무슨 수를 썼는지 그의 자리를 뺏으려드는 젊은 거지들을 모두 물리쳤고, 이제는 자타가 공인하는 거지들 중의 고수로 인정받게 되었다. 항상 구부정하게 구부리고 앉아 햇볕을 쬐고 있어 새우등 거지라고도 불리는 이 노개에게는 범인들은 모르는 신분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개방의 태현분타주 삼족개(三足?) 진용(榛勇)이다. 삼족개 진용은 오늘따라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그로서는 태현에서 가장 큰 주루인 영웅루를 찾아오는 손님들이 주 고객이었는데, 오늘은 영웅루가 개점휴업의 상태인지라 삼족개 진용에게도 손님이 있을 턱이 없었다. 몇 번이나 뒤척인 끝에 겨드랑 부근에서 찾아낸 살이 통통하게 오른 벼룩을 손톱을 터뜨려는 순간, 그의 두 눈에 기광이 번뜩였다. 검이라 부르기에도 좀 뭣한, 기괴한 형태의 쇠몽둥이를 왼손에 든 채, 자신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오는 웬 노인을 발견한 것이다. 무공을 익힌 기세도 느껴지지 않았고, 머슴살이할 때나 입는 허름한 마의를 입은 것으로 보아 크게 경계할 필요는 없는 듯 하지만 그의 좌수에 들려있는 쇠몽둥이가 다소 마음에 걸리기는 했다. 삼족개 진용은 다시 고개를 숙이며 벼룩을 잡는 데 열중했다. 그때였다. 마의 노인이 그의 바로 앞에 멈춘 것은. 진용이 하던 일을 멈추더니 잽싸게 고개를 숙였다. “아이고, 나으리! 한 푼만 줍쇼! 이 늙은 것을 불쌍히 여겨…….” 삼족개 진용은 구걸하기 전, 언제나 읊는 노래를 마치지 못했다. 마의노인이 돌연 그의 멱살을 잡아 일으켰기 때문이다. 진용의 두 눈에 기광이 번뜩였지만 워낙 순간적인 일이라 알아보기 어려웠다. 그는 두 팔을 허우적거리며 당황스럽다는 듯 말을 더듬었다. “왜, 왜 이러…, 켁켁! 사, 살려 주십쇼, 나으리!” 그는 죽는 소리를 하면서도 교묘히 손을 놀려 마의노인의 곡지혈을 슬쩍 쳤다. 무공을 익인 무인이라도 그 한수면 팔이 저려 더 이상 힘을 쓸 수 없을 테지만 마의노인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삼족개 진용이 헛바람을 집어삼키며 당황해 했다. “헉! 이, 이럴 수가…….” 그는 오히려 자신의 팔이 저릿하며 마비될 지경에 이르자 두 눈을 부릅떴다. 그러나 강호에서 칼밥을 먹으며 살아온 지 수십 년이나 되는 노련한 그에게 숨겨둔 한 수가 없을 리 없다. 삼족개 진용은 왼쪽 무릎으로 마의노인의 낭심을 차올렸고, 동시에 우수로는 두 눈을 찔러갔다. 이 일초는 흉악하기 그지없었고, 따라서 최소한 상대의 손아귀만은 벗어날 줄 알았다. 하지만 이 또한 삼족개 진용의 착각에 불과했다. 그의 왼쪽 무릎은 마의노인의 낭심에 정확히 적중했지만 물컹한 느낌이 전혀 없었다. 마치 바위를 올려 찬 듯 했다. 게다가 그의 우수는 어느 사이엔지 마의노인의 우수에 잡혀 있었는데, 갑자기 온 몸이 저릿하더니 힘을 하나도 쓸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는 이 허름한 마의를 입은 세가의 종복 같은 노인이 자신의 능력으로는 측량할 수 없는 고수임을 깨닫고 경악했다. “도, 도대체 누구…, 크악!” 삼족개 진용은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에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그의 좌수가 움직이기 불가능한 각도로 꺾여 있었던 것이다. 마의노인의 입에서 으스스한 살기가 묻어나는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내가 질문을 하면 너는 대답만 하거라. 너는 개방의 인물이 맞느냐?” “크으…, 개, 개방이라니……. 그 무슨…, 크악!” 삼족개 진용이 그 자리에서 고꾸라지며 비명을 토했다. 이번에는 그의 좌측 다리가 앞으로 꺾여버린 것이다. 마의노인, 즉 분노에 찬 수라마왕이 다시 말했다. “사지가 모두 부러져야 대답을 하겠느냐? 다시 묻겠다. 너는 개방의 인물이냐?” 진용은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었다. “그…, 그렇소.” 수라마왕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후, 다시 물었다. “수라검문은 언제 멸문을 했느냐?” 삼족개 진용은 지독한 고통에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힘겹게 대답했다. “삼십 여 년 전에 거의 며…, 멸문 했소.” 순간 수라마왕의 두 눈에 기광이 번뜩였다. ‘멸문을 했으면 했지 거의라는 건 또 뭔가?’ 그는 뭔가 사연이 있음을 직감하고 삼족개 진용을 다그쳤다. “어떤 놈들이냐?” 수라마왕의 물음에 삼족개 진용은 잠시 머뭇거렸다. 산서성에서 수라검문이 멸문한 사실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인데, 그걸 물어보는 순간 직감했었다. 마의노인이 무림에 처음 나왔거나, 아니면 수십 년 간 은거를 하다가 다시 나온 것이라고. 결국 무림에 다시 나온 은거기인이라면, 게다가 수라검문의 멸문사실에 이토록 흥분한다면 그의 정체를 짐작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최소한 수라검문 출신의 전대기인이거나, 아니면 깊은 우호관계를 지니고 있는 인물이라는 사실이다. 빠드득! “크악!” 뼈가 부서지는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삼족개 진용이 다시 비명을 질렀다. 잠시 생각을 하느라 머뭇거린 대가치고는 너무 컸다. 그의 우측다리가 부러진 것이다. “으으……. 지, 진주 언가요.” 순간 수라마왕의 온 몸에서 질식할 것 같은 살기가 피어올랐다. 삼족개 진용은 뼈가 부러진 지독한 고통조차 느끼지 못한 채 온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가 강호에 나선 이후 이보다 더 지독한 살기, 그리고 온 몸을 짜부라뜨릴 것 같은 강한 기세는 느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살을 저미는 듯한 공포감에 정신이 다 나가는 듯 했다. 하지만 그토록 지독했던 살기가 사라지는 데는 촌각도 걸리지 않았다. 수라마왕은 즉시 살기를 거둔 후, 냉기가 뚝뚝 떨어지는 것 같은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그건 짐작했던 일이다. 그보다 숨겨진 비사를 이야기해 보거라.” “히, 힘이 모자라 싸움에서 진 것 뿐, 그…, 그런 건 없…, 크악!” 수라마왕이 다시 그의 하나 남은 우수조차 꺾어버린 것이다. “아무리 힘이 약해 멸문의 길을 걸었다고는 하나, 무림공적으로 지목당하지 않고서야 어찌 후손 하나 남기지 못했겠는가? 여기에는 분명히 사연이 있을 것인 즉, 개방이 모른다면 말이 되지 않겠지.” “그, 그런 건 없소. 차라리 날 죽이시오.” 수라마왕의 검미가 꿈틀거렸다. “사지가 모두 부러져 나가고도 할 말이 없다? 좋다. 다행이 인체에는 수많은 뼈가 있으니 그것들 모두가 부러지는 고통을 겪고서도 말하지 않을지 두고 보도록 하마.” 말을 마친 수라마왕은 즉시 검지를 갈고리처럼 구부린 후 삼족개 진용의 우측 가슴 아래쪽을 후벼 팠다. 우드득! “크악!” 순간 갈비뼈 두개가 부러져나가며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때였다. 백정이 소 잡듯 하는 무서운 고문장면이 백주대로에 펼쳐진 모습을 보고, 행인들마저 모두 숨어버린 이곳에 대여섯 명의 거지들이 나타나 주위를 둘러싼 것은. “멈춰라, 이놈!” “타주님!” 거지들은 모두 개방의 제자인 듯 무공을 지니고 있었는데, 처참하게 뒹구는 삼족개의 모습을 보고는 분기탱천하여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타주가 수라마왕의 손에 잡혀 있어 차마 덤비지는 못했다. 수라마왕은 그들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삼족개 진용에게 말했다. “왜 수라검문이 후손조차 남기지 못하고 완전히 멸문해 버렸나?” 삼족개 진용이 이를 소리가 나도록 갈았다. 으드득! “개방의 그리 호락호락한 곳인 줄 알았소? 나, 진용은 지금까지 살아오며 누군가의 위협 따위에 굴한 적은 단 한번도 없소. 그리고 마침 나도 내 뼈마디가 얼마나 단단한지 궁금하던 차였소. 어디 한번 부러뜨려 보시오.” 과거의 수라마왕이었더라면 벌써 분노가 폭발하여 피로 목욕을 하고도 남을 대답이었지만, 그는 가볍게 냉소를 치는 정도에 그쳤다. “흥! 제법 영웅호걸 행세를 하려는 모양인데, 노부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말을 마친 그는 으스스한 눈빛으로 주위에 있는 개방도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노부가 오랜만에 살계를 한번 크게 열어야겠다. 곧 늙어 죽을 네놈의 목숨이야 중요하지 않겠지만 앞날이 구만리 같은 저들이야 그렇지 않겠지.” 수라마왕은 진용을 내팽개친 후 서서히 등을 돌렸다. 비잉! 차마 검이라 부르기에도 뭣한 쇠몽둥이에 불과했지만 수라마왕의 내공이 주입되어 검강을 형성하자, 그 어떤 절세의 보검보다 위협적으로 보였다. 수라마왕을 둘러싼 개방도들은 이글이글 타오르는 듯 한 붉은 검강을 보자 아예 얼굴이 노래졌다. 이들 중, 검강은커녕 검기도 제대로 보지 못한 자들도 태반이나 되었다. 그런데 한자가 넘게 뻗어 나온 검강을 보았으니 어찌 떨리지 않겠는가. 삼족개 진용은 고민이고 뭐고 할 것도 없었다. 눈앞의 이 마두는 단 일검에 수하들 모두를 참살하고도 남을 실력이 있었고, 그보다 중요한 건 단순한 협박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할 의사까지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즉시 모든 걸 말하겠노라고 외친 후, 수하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둘러보았다. 말이 수하들이지 실제로는 자신이 주어다 길러 개방도로 만들었으니 자식이나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삼족개 진용이 수하들에게 소리쳤다. “지금 당장 분타로 돌아가라. 이건 타주로서의 명령이다.” 그의 명령에도 개방도들은 결코 그럴 수 없노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진용이 고통을 참고는 억지로 엄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혀를 깨물고 죽는 꼴을 보아야 가겠느냐?” “타, 타주님…….” 개방도들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이끌고 사라졌다. 검강을 거둔 채 상황을 주시하던 수라마왕은 개방도들이 모두 물러가자 삼족개 진용의 혈도를 점했다. 그리고는 정신을 잃은 그를 허리에 끼고는 신형을 날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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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이러다가는 수라마왕이 진주언가를 쳐서 무림맹과 담을쌓을수도 있겟네요
비밀이 밝혀지나요
마대위는 또 다른 기연이 연결 되겠지요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