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는 항구다 榮山江霧中汽笛-영산강 안개 속에 기적이 울고 三鶴島燈下鷗鳴-삼학도 등대 아래 갈매기 우는 思慕我鄕木浦港-그리운 내 고향 목포는 항구다 木浦港發動船淚-목포는 항구다 똑딱선 운다
儒達草茅遊過去-유달산 잔디 위에 놀던 옛날도 冬柏抱擁泣過去-동백꽃 쓸어안고 울던 옛날도 思慕我鄕木浦港-그리운 내 고향 목포는 항구다 木浦港口回憶鄕-목포는 항구다 추억의 고향 !! 농월(弄月) 번역(飜譯)
영산강 안개 속에 기적이 울고 삼학도에 갈매기 우는!!
위의 “목포는 항구다” 노래가사다 작사 조명암 작곡 이봉룡 노래 이난영이 불렀다
사람의 애간장을 녹이는 이 노래가 전해지는 사연은 아래와 같다. 일본 식민지 시대인 1942년 목포항은 똑딱선이 “통통통 소리 내는” 작은 선창이었다. 그 선창에서 애환(哀歡)이 얽힌 노래가 “목포는 항구다”이다.
목포항은 영산강 푸른 물결이 마지막 모이는 곳이다. 전남 담양(潭陽) 용추봉(龍楸峯)에서 물줄기가 처음 생겨(發源) 광주(光州).나주(羅州).영암(靈巖)을 굽이굽이 흐른 물이 목포 삼학도(三鶴島)품에 안긴다 삼학도(三鶴島)를 품는지도 모른다.
예전에 40여 년 전 목포 나주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목포항에서 내륙 영산포와 나주까지 똑딱선이 오고 가면서 환희와 슬픔이 교차되는 뱃고동이 울렸다고 하였다.
유적지 답사 관심이 있는 필자는 목포 출장시에 일부러 영암을 둘러 전두환 정권 때 치수 공사인 목포 하구언(河口堰)을 둘러 가기도 하면서 영산강을 굽이굽이 구경하였다.
영산강은 이별과 만남의 뱃고동을 울리면서 흑산도 홍어등 해산물을 내륙으로 실어 나르던 시절이 있다고 회고했다.
기록에는 “목포는 항구다”는 일제강점기 말기인 1942년에 발표됐다. 그 이후 대중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필자의 애창곡이기도 하다
1950년 6·25 한국전쟁 중에 이난영은 남편 김해송과 생이별을 한다. 평안남도 개천이 고향인 남편이 전쟁 통에 북으로 끌려갔기 때문이다. 이후 이난영은 “목포는 항구다”를 부를 때면 1절과 2·3절 사이에 중간대사를 낭송하였다. 절절하기가 그지없었다.
유달산 잔디밭에 놀던 시절도 동백꽃 쓸어안고 울던 그 밤도 생각하면 아쉬운 흘러간 옛이야기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삼학도 파도 너머 쌍고동 소리 아 그리운 항구, 목포는 항구다 여보 사랑해요라는 말 한마디 못한 채 나는 남편과 헤어져야만 했다~~~~~~~~~
이난영에 관한 기록에는 아래와 같이 적고 있다. 이난영(본명 이옥례)은 1916년 목포시 양동에서 태어났다. 목포공립보통학교를 4학년까지 다녔다. 이후 엄마와 함께 제주도에서 생활했다. 극장을 경영하는 주인집 아이를 업고서 흥얼거리는 노래 소질을 본 주인이 가수인생의 길을 열어준 것이다.
이난영의 나이 열여섯살 무렵이었다. 우리는 경험에서 알지만 세상살이는 때가 있다. 밀물로 물이 들어올 때와 썰물로 빠져나갈 때가 있다. 운수(運數)가 들어올 때와 운수(運數)가 빠져나갈 때가 있다. 이난영의 이때는 밀물이 들어 올 때였다. 그래서 “목포는 항구다”는 오늘까지 전한다.
목포는 현대식 항구가 되었지만 지난세월 “목포는 항구다” 아픔은 노랫속에 영원할 것이다
농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