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천사의 메시지
14장 6-13절은 세 천사가 전하는 메지시의 내용이다.
6절.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주하는 자들 곧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
요한은 특별한 장면을 봅니다. 한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 장면입니다. 천사는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는데 자주 쓰임을 받습니다. 공중에 날아가고 있다는 것은 신속성(즉시)을 의미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신속하게 수행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 첫째 천사가 가지고 있는 것은 “영원한 복음”입니다. 영원한 복음이라고 한 것은 복음은 일시적인 문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고 영원한 것을 다루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복음의 효력이 영원하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죄 사함을 받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의롭다 함을 받고 예수님을 믿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그 구원은 영원합니다. 복음은 영원한 효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원한 복음을 들어야 할 대상은 전 세계입니다. “땅에 거주하는 자들 곧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외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어느 한 시대만이 아니라 주님 오실 때까지 모든 시대의 사람들에게 전해져야 합니다.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큰 목적이 바로 복음 전파게 있습니다. 주님 오실 때까지 멈추어서는 안 되는 것이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7절. 그가 큰 음성으로 이르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이니(확실함을 의미)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
영원한 복음을 가진 천사가 큰 음성으로 말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고.(15장 4절과 16장 9절을 보면 회개한 사람의 모습임)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함을 의미합니다.(잠 1장 7절. 9장 10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신자들이 해야 할 마땅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목적이고, 인생의 제일 되는 목적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감사와 찬송으로 예배한다는 의미를 중심에 가집니다. 그리고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분이십니다. 사도행전 14장 15절에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우상 숭배)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에는 하나님은 창조주이심을 고백함이 있습니다. 불신자는 회개도 하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도 돌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까?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이미 도착한 것으로 말씀하십니다. 긔 이유는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분명하고 확실한 진리입니다.
7절은 6절의 영원한 복음과 연관 됩니다. 영원한 복음을 받아들이면 어떻게 됩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은 복음의 내용입니다. 이 복음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영원한 복음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을 경배(예배)하는데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 받은 자로 산다는 것은 이런 내용의 삶을 신실하게 사는 것입니다.
8절.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에게 그의 음행으로 말미암아 진노의 포도주를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
둘째 천사가 첫째 천사의 뒤를 따르면서 말합니다. 바벨론의 멸망을 선포합니다. 이것은 요한계시록의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라고 합니다. ‘무너짐’을 두 번 쓰고 있는 것은 무너짐이 확실하다는 뜻입니다. 구약성경에서 바벨론은 주전 586년에 남 유다를 멸망시키고 예루살렘과 성전을 파괴했던 나라입니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고 박해했던 대표적인 나라입니다. 인간의 교만을 나타내는 나라입니다. 구약성경에 바벨론의 멸망이 예언되었고(사 21장 9절. 렘 51장 8절) 실제로 역사 속에서 멸망하였습니다.
신약시대에는 로마를 바벨론이라고 불렀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 13절에 “바벨론에 있는 교회”라고 했는데 로마에 있는 교회를 의미합니다. 바벨론과 로마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벨론이 예루살렘과 성전을 파괴했듯이 로마도 주후 70년에 예루살렘과 성전을 파괴합니다. 모두 하나님의 백성을 박해한 나라입니다. 바벨론을 언급한 것은 1세기에 바벨론이라는 나라가 실제로 있어서가 아니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이 세상의 대표로 내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바벨론이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했듯이 이 세상도 그렇게 될 것임을 나타냅니다. 6절에 “영원한 복음”을 언급했는데 바벨론은 그 영원한 복음을 받아들이기는 거부한 사람들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바벨론은 영향력이 큽니다. “모든 나라에게 그의 음행의 말미암아 진노의 포도주를 먹이기” 때문입니다. 바벨론에게 영적인 의미를 부여(‘음행’)하고 있습니다. 바벨론은 유혹의 중심지이고 죄악의 중심지입니다. 요한계시록 17장 5절에 바벨론은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머니입니다.(18장 18절) 18장 3절에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로 말미암아 민족이 무너졌도다.”고 하시는데 그 중심지입니다. 예레미야 51장 7절에 “바벨론은 여호와의 손에 잡혀 있어 온 세계가 취하게 하는 금잔이라. 뭇 민족이 그 포도주를 마심으로 미쳤도다.”고 하셨습니다. 바벨론은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입니다.(계 19장 10절) 진노의 포도주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사 51장 17절. 렘 25장 15절. 시 75편 8절) 포도주를 마시는 것은 삶의 방식이나 운명에 참여하는 것을 상징하는 심상이기도 합니다.(그랜트 오즈번)
우리 그리스도인의 사명은 멸망해가는 세상에 영원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9절.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
셋째 천사가 큰 음성으로 선포하는 내용입니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짐승의 표를 받으면 어떻게 될 것인지를 말씀하십니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짐승의 표를 받는 것은 13장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그 표를 받지 않으면 경제적인 규제를 받고 죽음으로 위협 받습니다.
10절.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
짐승에게 경배하고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진노를 행하시는 하나님)를 마시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 시 75편 8절. 사 51장 17절. 렘 25장 15-38절) 요한계시록 13장 15-17절에 짐승의 표를 받지 않고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으면 큰 박해를 받고 경제적인 제재를 당한다고 하였습니다. 14장 9-11절은 반대로 짐승의 표를 받고 짐승에게 경배를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로 인한 영원한 고통을 당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포도주에 대해서는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고 하였습니다. 1세기 사람들은 물과 포도주를 섞는데 1:1, 3:2, 3:1 비율로 섞었다고 합니다. 물을 섞지 않은 포도주는 완전히 포도주에 취하게 만듭니다. 섞인 것이 없는 포도주를 마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에 완전히 빠지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심판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집니까? 불과 유황(화산 지역에서 나는 것으로 뜨겁고 지독한 냄새가 난다고 함)으로 심판을 받습니다. 불과 유황은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연상시킵니다.(창 19장 24절) 요한계시록 19장 20절, 20장 10절, 21장 8절에도 나옵니다. 마가복음 9장 43절에는 “꺼지지 않는 불”이라고 하였습니다. 심각한 고통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1장 9절에는 영원한 멸망의 형벌이라고 하였습니다.
11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
하나님의 심판의 형벌로 인한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갑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영원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극렬할 뿐만 아니라 영원합니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이 이 심판을 받습니다. 누가 불못에 들어갑니까? 사탄, 두 짐승,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불신자들입니다.
“밤낮 쉼을 얻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사 34장 9-10절 반영. 계 20장 10절). 잠시도 하나님의 형벌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안식이 제공되지 않습니다. 밤낮 영원히 고통을 받게 될 것입니다.
12절.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
참된 믿음은 인내하게 합니다.(‘인내’는 요한계시록에서 강조되고 있다. 1장 9절. 2장 2절. 3절. 19절. 3장 10절. 13장 10절. 14장 12절) 끝까지 견디게 합니다. 인내한다는 것은 적극적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12장 17절) 예수에 대한 믿음(충성. 신뢰)을 끝까지 지켜나갑니다. 종말 시대를 사는 참된 하나님의 백성의 삶의 모습이 여기에 있습니다.
13절.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원문. ‘그들과 함께’가 있다. 영어 ‘them’(그들)이다. 정확히 번역하면 ‘그들을 따름이라’) 하시더라. |
요한은 하늘에서 나는 음성을 듣습니다. 지금은 그런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계시가 종결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기록된 성경이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기록하라”고 했기 때문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지금 이후로”(요한 시대부터 주님 오실 때까지. 종말 시대 전체)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요한계시록에는 7가지 복이 나오는데(1장 3절. 14장 13절. 16장 15절. 19장 9절. 20장 6절. 22장 7절. 22장 14절) 그 가운데 두 번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죽는 자들이(순교를 포함) 복이 있습니다. 그랜트 오즈번은 “주 안에서 죽는 것은 끝까지 충성됨을 유지한다는 것, 그리스도를 자신의 삶의 영역으로 삼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였습니다.
성령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러시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치성이 있습니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매”라고 하십니다. 수고는 복음을 전하면서 박해를 받고 순교를 하는 것, 그러면서 그 모든 것을 인내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12절에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것을 말씀하시는데 그 인내의 삶을 살면서 겪는 모든 일들입니다. 그들에게 죽음은 수고를 그치게 하고 “안식”을 줍니다. 14장 11절에 불신자의 죽음에는 쉼이 없는 것과 대조가 됩니다. 신자에게는 참된 안식이 주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안식입니다.
참된 안식을 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행한 일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원문에는 “그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행한 일이 그들을 따릅니다.(2장 23절. 22장 12절) 그리스도인의 삶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면서, 믿음으로 살면서 인내해온 그들의 모든 삶이 그들을 따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운 상이 주어집니다. 22장 12절에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고 주님께서 약속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8절에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면서 행한 주의 일에 헛된 것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