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고속도로를 넘다

[조지종]

호남고속도로를 넘다

새해 첫 산행이다. 기다렸었다. 첫 산행이어서가 아니고 오늘 오를 새로운 들머리가 궁금해서였다.

많은 눈을 예상했다. 실제 그러했다. 골에도 능선에도 나뭇가지에도 온통 눈이었다. 시작부터 끝까지 눈이었다.

드디어 호남고속도로를 넘어섰다. ‘감개무량’이란 단어는 이럴 때 쓰는 모양이다. 새로운 정(精)이 스며듬을 느낀다. 종착지인 무주가 가까워져 가고 있다는 흔적들이 새록새록 묻어난다.

역시, 시간은 멈춰 서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지난주에는 금남정맥 여섯 번째 구간을 넘었다. 이 구간은 논산시 벌곡리에 있는 덕목재에서 시작하여 수락재까지 가는 코스이다.

이 구간에는 월성봉, 바랑산, 533봉 등 이름난 산들과 물한이재, 수락재 등의 잿등이 있다.

이 구간도 지난번에 넘었던 구간과 마찬가지로 이정표와 안내리본이 비교적 잘 설치되어서 길 잃을 염려는 없다. 다만, 물한이재에서 다음 능선을 찾기 위하여 절개지를 타고 올라 능선에 이르는 길이 조금은 어려울 수가 있다. 절벽이기 때문이다. 절벽을 타지 않으려면 아주 먼 곳까지 우회해야 된다.

반면, 바랑산을 지나면서부터는 암릉과 노송으로 이루어진 능선의 경관이 너무 수려해 산행의 진미를 느끼게 한다. 추위도 허기도 잊고 발길을 멈추게 한다. 그런데 지금과 같은 겨울철에는 절대적인 주의가 필요하다. 천길 낭떠러지가 있는 좁은 능선을 타야하기 때문이다. 이번처럼 눈이 있거나 얼기라도 하는 날에는 정말 조심해야겠다.

관심있는 분들을 위해 후기 올린다.

금남정맥 여섯 번째 구간(2011.1.8, 토, 맑음)

덕목재에서(09;57)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6시 30분에 출발한 버스는 8시 7분에 대전에 도착한다. 버스가 정차한 곳은 터미널이 아니고 맞은편에 있는 임시 버스정류장이다. 버스터미널은 공사중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201번 시내버스를 타고 도마큰시장까지 또 가야한다. 다행이도 버스는 바로 온다.

8시 12분에 출발한 201번 버스는 20분이 조금 넘게 걸려 도마큰시장에는 8시 38분에 도착한다.

오늘 산행의 들머리인 덕목재까지는 여기서 또 21번 버스를 타고 한시간 정도를 달려야 한다.

버스비로 낼 잔돈을 확보하기 위해 도마큰시장에 들른다. 따끈따끈한 떡을 구입한다. 당장 먹고 싶을 만큼 김이 모락모락 오른다.

원래는 벌곡행 21번 버스가 1시간에 한번꼴로 운행된다고 했는데 바로 나타난다. 아다리가 제대로 되는 모양이다. 오늘 웬일이지?

버스에 오를 때 서너명이 보이던 승객이 시 경계를 벗어나고부터는 운전기사와 나 둘만 남는다. 안내방송이 나온다. 시 경계를 벗어났으므로 지금부터 내리는 승객은 추가요금을 내야된다,라고. 그러면서 승객은 앞문으로 내리라고 연거푸 두 번이나 방송이 나온다. 승객은 나 뿐인데.....나 들으라는 소린가?

도로 양쪽에 있는 논밭은 흰눈 일색이다. 수로도 논두렁도 사라져버렸다. 하얀 눈이 모든 것을 덮어버린 것이다.

그래도 지난번에 한 번 봤다고 기억이 살아나는 낯익은 벌곡마을의 정경들이 하나씩하나씩 나타난다. 벌곡농협앞 정류장에 나를 내려준 버스는 쏜살같이 내뺀다. 9시 38분이다. 이곳에서 덕목재까지는 또 걸어야 된다. 덕목터널을 통과하니 인삼밭이 나온다. 오늘 산행 들머리인 덕목재에 다 온 것이다(09:57).

눈이 쌓인 한기에도 불구하고 토요일 아침 덕목리 마을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덕목리 마을의 고요와는 달리 좌측 호남고속도로 위는 쌩쌩 달리는 자동차들로 정신없이 소란스럽다. 하기사, 겨울인들 여름인들, 밤인들 낮인들 고속도로에게 무슨 소용이 있으랴.......

바로 들머리로 향한다. 인삼밭 가장자리를 따라서 지하통로로 향한다. 호남고속도로를 통과하기 위해서다.

고속도로를 관통하는 대부분의 지하통로는 차량이 통과할 정도의 공간으로 조성되어 있다. 지금까지 종주하면서 지나 온 모두가 그러했다. 그러나 이곳은 아니다. 사람이나 자동차를 위한 통로가 아니고 수로 역할을 하는 그저 좁은 공간일 뿐이다. 물이 많이 내리는 시기라면 사람 한 몸도 통과하기 어려울 것 같다. 지금도 물이 졸졸 흐르고 있다. 사이사이에 놓여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는 돌멩이를 딛고 겨우 통과한다.

            * 호남고속도로를 건널 수 있는 지하통로

통과하자마자 눈앞엔 은빛세계가 펼쳐진다. 드넓은 공간에 온통 눈 천지다. 그 위에 가느다란 나무들이 서 있다. 나무 사이사이는 모두 흰눈으로 채워졌다. 눈 위에 서 있는 나무에는 안내리본이 매달려 있다. 흰눈과 대비되어 더욱 뚜렷하게 보이는 것이 애처롭기까지 하다. 불쌍한 것, 이 추운 날에.......

            * 호남고속도로를 건너 초입으로 들어설 때

안내리본과 함께 사람 발자국도 보인다. 종주객이 이 지점을 통과했다는 표식인 것이다. 안내리본이 가리키는대로 따라 오른다. 밭이 나온다. 산밭이다. 밭 역시도 온통 흰색 일색이다. 밭을 통과하고 산으로 오르니 절개지 상단부에 이른다.

여기서부터 다시 능선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오늘 산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능선을 따라 오른다. 눈이 쌓여 길은 보이지 않지만 어디로 가야할지는 알 수 있다. 먼저 지나간 선답자의 발자국이 있기 때문이다. 인삼밭이 나온다. 처참하다. 햇빛과 바람을 가리고 있던 가림막이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모두 쓰러졌다. 일부는 받침대까지 쓰러져 마치 전장의 폐허를 방불케 한다. 이걸 보는 농부의 심정이 어떨까......

          * 가림막이 망가진 인삼밭

인삼밭이 끝나고 등로는 우측 산길로 이어진다. 오르막이 시작된다. 가파르다. 작은 봉우리를 서너개 지난다. 봉우리마다 오르막길은 눈이 쌓여있고 내리막길은 비교적 눈이 적다. 거의 녹아버린 곳도 있다. 능선 오른쪽은 넓은 낙엽송 지대가 이어진다. 그 중턱에는 임도가 개설되어 능선 아래로 이어져 오고 있다.

완만한 능선을 따라 내려가다가 삼거리에 이른다. 곰치재에 이른 것이다(11;10).

곰치재에서(11;10)

곰치재에도 눈이 쌓여있긴 마찬가지다.

낙엽송 지대 중턱으로 이어지던 임도가 이곳 곰치재에서 능선과 만난다. 이곳에서 임도는 좌측으로 계속 이어지고 정맥은 직진으로 가파른 오르막을 넘게 된다. 스틱 두개를 사용해 힘껏 반동을 주며 오른다.

            * 곰치재

가파른 오르막이 끝나고 평범한 능선길이 이어지더니 삼거리에 이른다. 삼거리에서 정맥은 좌측으로 이어진다. 평평한 길이다. 걷기에 좋다. 다시 작은 봉우리를 넘으니 너덜길이 나온다. 너덜길만 보면 광주의 무등산을 걷던 생각이 난다. 무등산의 너덜지대는 아주 길었다. 이곳 너덜길은 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너덜지대를 지나 5분여를 걸으니 무명봉에 이른다. 무명봉에는 안내리본이 매달려 있다. 오늘 같은 날 안내리본의 역할은 막중하다. 길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안내리본마저 없다면 종주객들은 무엇을 믿고 찾아갈까?

다시 봉우리를 넘으니 큰 바위가 있는 곳이 나온다(11:36). 소위 말하는 전망암이다. 이곳 전망암에서 보는 바랑산과 월성봉이 아주 가깝게 보인다. 조금 후면 밟게될 봉우리들이다. 우측으로는 골짜기에 있는 마을의 모습이 보인다. 전형적인 산골의 모습이다.

이곳에서 정맥은 암릉길로 이어진다. 큰 바위가 나오고 다시 봉우리를 넘는다. 계속해서 바위가 나오고 무명봉에 이른다. 무명봉에서도 우측 산골짜기에 있는 마을이 뚜렷하게 보인다. 무명봉에서 좌측으로 내려가니 안부사거리에 이르고 안부사거리에서 정맥은 직진이다.

안부사거리를 지나 나지막한 능선을 오르고내리다가 다시 봉우리 정상에 이른다. 363.9봉이다(12;12). 363.9봉에는 삼각점이 있다. 벌써 시장기가 든다. 부실하게 먹은 아침밥 탓일 것이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한다.

다시 출발이다(12;26). 눈 위에 찍힌 발자국이 이렇게 위대해 보인 적이 있었던가? 만약 오늘 같은 날에 선답자의 발자국이 없다면 어떻게 이 길을 찾아갈 수가 있을까? 고마울 따름이다.

앞쪽에 물한이재로 오르는 도로가 보인다. 물한이재 뒤쪽에는 아주 거대한 산이 떡 하니 버티고 서 있다. 겁이 난다. 저 높은 곳을 또 올라가야 한다니......

내리막길이다. 갈수록 양촌면에서 물한이재로 올라오는 도로가 뚜렷하게 보인다. 다시 무명봉을 하나 넘는다. 급경사가 시작되더니 바로 절개지 상단부에 이른다. 물한이재에 다 온 것이다(12:40).

물한이재에서(12:40)

물한이재는 논산시 양촌면과 벌곡면을 잇는 2차선 포장도로이다. 옛 사람들은 이 높은 재를 걸어다녔을 것이다. 그 높은 잿등은 온데간데 없고 지금은 이렇게 초현대식 터널을 뚫어 놓았다. 물한재터널이다. 도로도 최근에 닦아놓은 듯 깨끗하다.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인다. 산뜻하다.

물한이재 도로 양쪽에는 아주 길게 낙석방지용 철망이 설치되어 있다. 사람이 뚫고 나갈 틈이 보이질 않는다. 어디로 올라가야 되나? 잠시 생각에 빠진다. 낙석방지용 철망을 뚫고 절개지를 오를 수는 없다는 판단이다. 그렇다면 상당한 거리를 돌아 우회해야 된다.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 같다. 도로까지 내려가지 않고 바로 터널 위로 통과하기로 한다.

터널 위로 내려가 건너편 절개지에 이르니 90도 각도의 직벽이 가로막는다. 도저히 오를 수가 없다. 우측으로 우회하기로 한다. 이곳도 길이 보이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길이 온통 눈으로 덮여버렸기 때문이다. 이곳도 70~80도 각도의 가파른 눈산이다. 조금은 위험하다. 간신히 넘는다. 절개지 상단부에 이른다.

절개지 상단부에서부터 다시 정맥이 이어진다. 바로 출발한다.

여전히 길은 눈으로 덮혀 있다. 사방에 하얀 눈만 보여 조금은 단조롭다는 생각이다. 그저 눈산이란 생각만. 흙길을 밟는 아기자기함이 덜하다. 돌길을 걷는 촉감도, 낙엽을 밟는 서걱거림도 느낄 수가 없다.

고개들어 좌측을 쳐다보니 첩첩 산중. 봐도 봐도 끝도 없이 산 뿐이다. 우측에는 도로가 보인다 양촌에서 물한이재로 올라가는 도로이다.

조금 올라가니 무명봉이 나온다. 암릉길이 이어진다. 더 내려가니 직벽길이 나타난다. 로프가 설치되어 있다. 아주 위험한 곳이다. 특히 오늘 같은 날엔. 단 한번의 미끄러짐으로도 그대로 황천길로 이어진다. 조심조심 스틱을 찍고, 또 찍어보고 한 발 한 발을 내딛는다.

직벽길이 끝나고 급경사 내리막이 시작된다. 안부에 이르고, 안부에서 직진하니 갈림길이 나온다.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내려가고 다시 또 안부에 이른다. 작은 봉우리를 넘어서니 다시 잿등에 이른다. 작은물한이재에 이른 것이다(13:35).

작은물한이재에서 더 오르니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된다. 오른쪽에 로프가 설치되어 있다. 아주 투박하게 생긴 굵은 로프이다. 힘이 든다. 그냥 땅을 밟고 오르는 것과 발이 빠지는 눈길 중 어떤 곳이 더 힘들까를 생각해 본다. 괜한 생각일까?

로프를 잡지 않고 스틱에 의존해 오른다. 이젠 스틱이 편해졌다. 한참을 오르고 나니 무명봉에 이른다(14:00). 봉우리 중앙에 빈 공간이 있다. 아래쪽으로 절이 보인다. 영주사라고 한다. 머무르지 않고 바로 출발한다. 바위가 나온다. 곧 이어서 봉우리에 이른다. 421봉이다.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이정표는 월성봉이 1.46킬로미터 남았다고 알리고 있다.

421봉에서 월성봉 방향으로 진행한다. 갈수록 눈이 많다.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오르니 바위가 나온다. 주변 조망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양촌면 일대가 훤히 보인다. 날씨만 괜찮다면 이곳에서 더 머물고 싶은 심정이다.

다시 무명봉이 나오고 무명봉에서 좌측으로 꺾어서 오르니 다시 봉우리 정상에 서게 된다. 바랑산이다.

바랑산 정상에서(14:38)

바랑산 정상에는 삼각점이 있다. 눈이 쌓였는데도 삼각점은 보인다. 나무에는 바랑산임을 알리는 팻말이 매달려 있다. 모처럼 산 이름을 알리는 팻말을 보니 반갑기 그지없다. 계속 걸으면서도 어쩔 때는 이곳이 정말로 그곳이 맞는가? 하고 긴가민가하게 되는데 이렇게 팻말이 설치된 곳을 만날 때는 확신을 하게 된다. 사람들이 다녀간 흔적이 뚜렷하다. 쌓인 눈에 찍힌 사람 발자국이 선명하게 보인다. 최근에 누군가 다녀간 것 같다.

*  바랑산 팻말을 보고서야 제대로 온 것을 확인했다

바랑산에서 정맥은 우측으로 이어진다. 내리막길이다. 길은 온통 눈으로 덮여 있어 그냥 미끄럼을 지치면서 내려갈 수가 있다. 잠시나마 동심으로 빠져본다. 주변이 탁 트인 곳이 나온다. 이정표가 있다. 월성봉이 1.3킬로미터 남았다고 알리고 있다. 우측 아래쪽은 절벽인데 그 아래아래에는 절이 있다. 법계사라고 한다.

삼거리가 나오고 계속 직진하여 오르니 바위 절벽이 있는 곳이 나오고 어느 분의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아마 이곳 산행중에 사고를 당한 분을 위로하는 비석인 것 같다. 추모비에 적힌 글이 가슴에 와 닿는다. ‘네가 외로울까봐 이곳에 우리의 정을 남긴다’라는 의미의 글이다. 친구들이 바친 글이다.

추모비를 지나 오르니 다시 봉우리 정상에 선다. 547봉이다(14:58). 바위로 된 봉우리이다. 547 암봉에서 좌측으로 내려가니 안부사거리에 이른다.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이정표에는 월성봉이 0.26킬로미터, 법계사가 0.8킬로미터 남았다고 알리고 있다.

안부사거리에서 정맥은 직진이다. 조금씩이지만 바람이 점점 더 세게 인다. 추워진다. 얼굴을 가린 마스크도 이젠 입김에 젖어 축축해졌다. 갈수록 눈도 더 많이 쌓여 있다. 가파른 오르막이 나오고 삼거리에 이른다.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오르니 다시 봉우리 정상이다. 월성봉에 이른 것이다(15:31).

*월성봉에 세워진 탐방로 안내판

* 월성봉 정상 공터

월성봉에 들어서니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넓디넓은 흰 눈밭이다. 바로 이정표가 보인다. 흔들바위가 0.18킬로미터, 수락계곡이 1.36킬로미터 남았다고 알리고 있다. 이정표 옆에는 탐방로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탐방로 안내판을 통과하니 더 넓은 눈밭이 나온다. 이곳이 헬기장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금은 알 수가 없다. 온통 하얀 눈으로 덮여 있으니.

이곳에서 지나온 길을 뒤돌아 보니 바랑산과 547암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법계사와 양촌면 일대도 하얀 눈으로 덮여 시골의 겨울 풍경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바로 출발이다.

길 우측은 천길 낭떠러지다. 정말 조심해야 할 곳이다. 바로 넓적한 바위 있는 곳이 나온다. 소위 흔들바위다(15;39). 두 개의 넓적한 바위가 나란히 놓여있고 그 옆에 나무 의자가 설치되어 있다. 바위에 올라서면 바위가 흔들거린다고 했는데 시도하지 못했다. 무서워서다. 눈길에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간식을 먹기로 한다.

* 흔들바위

출발이다. 우측은 낭떠러지 좌측은 완경사를 이루는 눈 밭이다. 우측엔 바위와 노송이 어우러져 최고의 설경을 연출한다. 이런 설경이 계속 이어진다. 시간만 있다면 좀 더 머무르고 싶다.

다시 내리막길이 나온다. 가만있어도 그냥 미끄러져 내려가게 된다.

갈림길이 나오고 정맥은 우측 급경사로 이어진다. 안부사거리가 나오고 이정표가 있다. 수락계곡이 1.75킬로미터 남았다고 알리고 있다. 안부사거리에서 직진하여 완만한 능선길을 오르니 다시 봉우리에 서게된다. 533봉이다(16:07).

533봉 봉우리는 바위로 되어 있는 암봉이다. 바로 내려간다. 계속 바위길이다. 정말 조심해야 할 곳이다. 바위길에 이어서 나무계단이 나온다. 나무계단이 설치되지 않았다면 도저히 이동할 수 없는 지형이다. 나무계단이 끝나고 다시 오르니 전망대가 나온다.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가장자리에 난간을 설치해 놓았다. 순전히 등산객들을 위한 시설이다.

전망대에서 보는 주변 조망이 놀랍다. 좌측에는 수락계곡에 있는 대둔산 승전탑이 장엄하게 보이고, 지나온 뒷쪽으로는 월성봉이, 진행방향으로는 대둔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시원스럽게 보인다. 전망대에서 또 나무계단으로 이어진다. 몇백개인지 모를 정도로 긴 나무 계단이다. 좁고 가파른 나무계단, 더구나 눈으로 덮여 있어 정말 조심해야겠다.

드디어 나무계단이 끝나고 길은 급경사 내리막으로 이어진다. 바로 잿등에 서게 된다. 수락재에 이른 것이다.

수락재에서(16;25)

수락재는 수락계곡에서 양촌면으로 넘어가는 잿등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좌측으로는 수락계곡이 0.73킬로미터, 우측으로는 양촌면이 2.75킬로미터, 직진방향으로는 대둔산 마천대가 4.25킬로미터 남았다고 알리고 있다.

이곳에서 고민을 하게된다. 여기서 더 갈 것인지, 아니면 이곳에서 오늘 산행을 중단할 것인지. 중단하기로 한다. 일기는 계속 나빠지고, 좀 더 갈 수는 있겠지만 가더라도 귀경길이 염려되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 고민거리가 생긴다. 좌측으로 내려갈 것인지, 우측으로 내려갈 것인지. 귀경길 교통편이 관건이다.

혹시나 하면서도 논산시청에 전화를 해본다. 토요일 늦은 오후지만 전화를 받는다. 좌측 수락계곡쪽으로 내려가라고 한다. 수락계곡으로 가면 주차장이 나오고 시내버스가 있다고 한다. 마음이 놓인다. 지체 없이 좌측 수락계곡쪽으로 내려간다. 달린다.

길은 그런대로 괜찮다. 시간도 그렇게 걸리지 않는다. 생각도 못했던 계곡의 눈꽃송이를 덤으로 보게된다. 주차장에 내려오니 한 두 사람씩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등산객도 있고, 수락계곡의 겨울 풍경을 감상하러 온 관광객도 있다. 알고 보니 수락계곡이 논산에서는 꽤 유명한 관광지이다.

버스정류장으로 내려오면서 앞서가는 등산객을 따라잡고서 서울로 올라가는 교통편을 물었다. 이곳에 정기적으로 운행되는 시내버스가 있으니 그 버스를 타고 논산역으로 가라고 한다. 안심이다.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이다. 수락재에서의 혼자 끙끙 앓던 고민거리가 한방에 해결된 것이다.

버스정류장으로 사용되고 있는 ‘대둔산 식당’ 앞 공터는 제법 사람들의 웅성거림으로 활기를 찾는다. 승용차에 등산장비를 쳐넣는 사람, 화장실로 달리는 사람, 한잔 걸치기 위해 식당으로 향하는 사람들이다. 하루일정을 마치고 가정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사람들의 막바지 모습들이다.

식당 문 앞에는 버스 운행시각이 적힌 종이딱지가 붙어 있다. 이곳에서 논산으로 나가는 버스는 5시 25분에도 있고 6시 10분에도 있다. 시골인심을 그대로 내보이듯 삐뚤삐뚤한 글씨체이지만 반가운 글씨다. 정감이 간다.

이렇게 또 하루가 저문다. 잠시 후면 나를 논산역까지 싣고갈 버스가 도착할 것이다. - 끝 -

[이옥현]

그림이 있어 지대로 구먼/고맙고 고생했네

[포사령관(김승대)]

잘 보고 가네

[박수례]

후~와!!! 대단하네요~!!!

[마음성지골]

하여튼 알아줘야할 싸나이 조지종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