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종류의 추수
두 개의 추수 장면이 나온다. 14-16절은 곡식을 추수하는 것이고, 17-20절은 포도를 추수하는 장면이다. 곡식 추수는 구속에 대한 것이고, 포도 추수는 심판에 관한 것이다. 최종 종말의 도래에 대한 생생한 영상이다.
14절.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인자와 같은 이가 앉으셨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 |
요한은 흰 구름을 보고 구름 위에 인자와 같은 이가 앉으신 것을 봅니다. 흰(‘거룩함’ 의미) 구름 위에 보좌 있는 모습입니다.(욜 3장 12절) 20장 11절에는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가 나옵니다. 보좌를 흰 구름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심판자로서 앉으신 모습입니다. 구속하시는 일과 심판하시는 일을 행하심이 그 다음에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흰 구름 위에 앉으신 “인자와 같은 이”기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하나는 천사로 보는 해석입니다.(레온 모리스) 15절에 다른 천사가 구름 위에 앉은 이에게 명령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천사가 그리스도께 명령할 수 있겠는가? 또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로 보는 해석입니다. 구름은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이 있습니다.(단 7장 13절. 계 1장 7절) 성경에 천사를 인자와 같은 이라고 한 곳이 없습니다. 천사가 하나님의 명령을 전달하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보는 것이 합당해 보입니다.
머리에는 금 면류관(헬. 스테파노스)을 썼습니다. 면류관은 경기에서 우승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승리의 관일 수도 있고 통치자의 권세를 나타내는 왕관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인 영광과 통치권을 나타냅니다.
그 손에는 예리한 낫을 가졌습니다. 아주 날카로운 낫입니다. 낫은 추수할 때 사용되는 도구입니다. 예리한 낫은 추수하기에 아주 좋습니다.
15절.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당신의 낫을 휘둘러 거두소서. 땅의 곡식이 다 익어 거둘 때가 이르렀음이니이다 하니 |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옵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나옵니다. 천사는 구름 위에 앉은 인자 같은 이에게 큰 음성으로 외치면서 말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낫을 휘둘러 거두소서. 땅의 곡식이 다 익어 거둘 때가 이르었음이니이다.”고 외칩니다.
세상의 최종 종말을 추수 시기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3장 30절에 “추수 때”를 최종 종말 시기로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4장 29절에도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추수를 성경에 구속과 관련해서 예수님께서 사용하시기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9장 37-38절, 요한복음 4장 31-38절(‘영생에 이르는 열매’)에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는 역사로 추수를 표현하셨습니다.
우리 한국 상황으로 가을이 되어 곡식이 다 익으면 추수하여 거두어들입니다. 거둘 때가 되었다는 것은 충분히 익었다는 뜻입니다. 추수한 곡식은 곳간에 들입니다. 세례 요한이 곡식을 사용하여 말씀을 전하기도 하였습니다.(마 3장 12절) 세상의 최종 종말은 추수 시기입니다. 역사의 추수 시기가 점점 가까이 오고 있습니다.
16절.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매 땅의 곡식이 거두어지니라. |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휘둘러 땅의 곡식을 거두십니다. 마태복음 24장 31절에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두시는 곡식이 된다는 것은 큰 복입니다. 하늘의 곳간에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때까지 우리는 계속해서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해야 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시는 일을 알 수 있고 그분의 열망을 알 수 있습니다. 추수 때까지 복음의 농사를 계속해서 우리는 열심히 지어야 합니다.
17절.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는데 역시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 |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옵니다. 하늘은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고,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합니다. 성전에서 나오는 천사이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천사가 가지고 있는 것은 또 다른 예리한 낫입니다. 이 낫은 심판을 위한 낫입니다.
18절. 또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예리한 낫 가진 자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불러 이르되 네 예리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헬. 포도나무)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느니라 하더라. |
요한은 제단으로부터 나오는 다른 천사를 보는데 그 천사는 “불을 다스리는 천사”입니다. ‘불’은 심판의 이미지는 가집니다.(14장 10절. 불과 유황) 마태복음 3장 12절에 쭉정이가 들어가는 곳은 꺼지지 않는 불입니다. 이 천사는 불로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다는 의미일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8장 3-5절에 제단이 나오고 천사가 제단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제단의 불과 관련된 천사일 수도 있습니다.
예리한 낫을 가진 천사에게(17절) 큰 음성으로 말합니다. 그 낫을 휘둘러 포도나무에서 포도송이를 거두라는 것입니다. 그 포도가 익었습니다. 포도가 익었으면 추수를 해야 합니다. 최종 종말과 관련된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19절.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
포도를 추수하는 데는 두 단계가 있습니다. 첫째, 포도송이를 거두는 것입니다. 둘째, 포도송이를 포도주 틀에 넣고 밟아서 포도주를 생산하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포도주 틀에다 포도를 넣고 밟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은유로 여러 번 사용이 되었습니다. 요엘 3장 13절에 “너희는 낫을 쓰라. 곡식이 익었도다. 와서 밟을지어다. 포도주 틀이 가득히 차고 포도주 독이 넘치니 그들의 악이 큼이로다.”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63장 1-6절에도 나옵니다.(애 1장 15절도)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음을 이렇게 묘사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최후의 심판”이 있을 것임을 가르쳐주십니다. 끝까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살면 그 사람은 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죽음을 부정하고 싫다고 하여 죽음이 없는 것이 아니듯 하나님의 최후의 진노의 심판도 없다고 부정하고 싫다고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하여 없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진실하시고 하나님의 말씀도 진실합니다. 하나님의 최후의 진노의 심판은 받드시 옵니다.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20절.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 굴레에까지 닿았고 천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 |
포도주 틀이 있는 곳이 “성 밖”입니다. 여기서의 성은 요한계시록 11장 8절에 언급되고 있는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과 관련되어 있는 예루살렘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 밖에서 처형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에게서 끊어진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3장 12절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은 성 밖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성문 밖에서 죽으신 것은 예수님께 죄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예수님을 믿은 우리는 하늘의 예루살렘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성 밖은 심판의 장소입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5절에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느니라.”고 하십니다. 성 밖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다는 것이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은 성 밖에 있는 자들이고,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다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예수님께서 성 밖에서 우리가 받아야 할 하나님의 심판을 대신 다 받으셨기 때문에 더 이상 하나님의 형벌의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최후의 심판은 얼마나 큽니까? 피가 흐르는 지역의 길이가 1,600스다디온이라고 합니다. 1스다디온은 약 192m 정도 됩니다. 1,600스다디온은 약 300km 정도입니다. 대개 팔레스타인 남북 길이와 맞먹는다고 합니다. 1,600은 4⨉4⨉10⨉10입니다. ‘4’는 세상을 뜻하는 수이고 ‘10’은 ‘많음’을 나타내는 수입니다. 이 수는 하나님의 심판의 범위가 전 세계에 해당이 됨을 의미합니다. 온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됩니다. 하나님의 심판에서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최후의 심판이 얼마나 극렬한가도 가르쳐 주시는데 피가 말굴레에까지 닿았다고 합니다. 말굴레는 말의 머리에 씌우는 것입니다. 보통 가죽 끈이나 삼줄로 만들며 고삐나 장식, 방울을 답니다. 즉 피가 말 머리에까지 차올랐다는 뜻입니다. 얼마나 피를 많이 흘렸는지 말굴레에까지 닿았습니다. 엄청난 피입니다. 전쟁을 연상해보십시오. 전쟁에서 사람이 많이 죽습니다. 얼마나 죽어야 피가 말굴레에까지 닿을 수 있을까요? 무시무시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표현해줍니다. 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피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밖에 없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 14장 6절)이라고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답이 없습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전서 1장 10절에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왜 복음을 전해야 하는지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