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만에 연락이 온 친구를 강남 고속터미널 광주행 대기 의자에서 한 시간을 기다리며 행여 못 알아보지는 않을까에 대하여 두렵기도 하였습니다.눈이 유난히 큰 친구는 섬세하고 가늘은 파리한 손가락으로 연신 조잘조잘 이야기를 길게 하였죠.그리고 훗날 결혼하면 이웃하며 담 넘어 이야기 하자고 하였고 저녁 반찬은 1~2가지만 만들어 교환하면 늘 새로운 식단이 될거라는 얘기도 하며...같이 여행을 가면 먼저 이부자리를 펴고 어김없이 준비하여온 아이 크림을 눈 주위에 발라 번쩍거렸고 대답이 없어 돌아보면 벌써 가볍게 코를 골며 제일 먼저 취침을 하고 아침에는 우리들 중에 먼저 일어나 코펠에 밥을 지으며 큰 눈에 웃음 가득 담아 요 잠꾸러기들! 일어나라며 이불을 들추기도 하였던 내 친구는 내가 이곳으로 직장을 옮긴후에도 우리 어머니 벗되어 집에 놀러 가곤하여 어머니께서 더 가끔씩 그리워 하던 친구가, 늦은 내 결혼식을 마지막으로 홀연히 사라져 연락이 두절되었고 지방 초등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던 친구의 아버님도 정년퇴직하여 옛집은 흔적이 없었으며 이제나 저제나 결혼할때는 연락할거라는 막연한 그리움속에 살 같은 시간들이 흐른 지금 난 너무나 변해버린 우리의 모습을 서로 못 알아보는 것일까를 염려하며 가슴이 두근거리며 두리번거렸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온다던 친구는
마치 머나먼 여행길에서 돌아오는 듯이 버스 승차장에서 나타났고 공중전화를 찿아서 승차장 안으로 들어갔다고 하였습니다.나는 3번이나 친구의 이름을 불렀으며 여전한 목소리로 다가와 이렇게 말하였죠.니도 와 이리 말이 느리노.니나 내나 남들은 충청도 사람인 줄 알겠다.내가 서울 오기전에 청주에 좀 살았는데 내보고 충청도 사람처럼 말이 느리다고 안 하나.그리고 나는, 왜 결혼할때도 연락을 안 했노? 니가 죽은 줄 알았다.
밥 생각이 없다는 친구앞에는 도가니탕을 시키고 나는 칼국수를 앞에 놓고 그저 서로 먹으라고 권하기만 하며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이라는 내 친구의 먼 이야기속에 빠져가고 있었습니다.강남 고속터미날의 실외 식당가에서 우리는 그 옛날 같이 공부하고 미팅하고 직장다니며 휴가때 여행다니던 내 친구의 몰락한 집안 이야기를 들으며 가슴속이 애잔함으로 미어지듯 아파왔고 바쁘게 오가는 인파를 먼 시선으로 바라보며 우리는 우리의 흘러간 시간속에서 지금의 연륜을 잠시 잊어버렸습니다. 친구의 큰 눈가에는 여전히 옛날처럼 아이 크림이 그 자리에 반짝임을 발견할수 있었고 긴 세월의 세파에도 그때 눈가의 주름만큼만 나에게 보여졌습니다.그리고 첫 강의실에서 본 그 선하던 눈빛은 여전하였지요.지하철역에서 헤어지며 안 변하였다고 하였더니 말이라도 고맙다며 너도 여전하다고 하였고 그 옛날 만큼의 눈웃음을 짓곤 우리는 헤어졌습니다.솜털이 보송하던 20대 우리의 미래에 대한 그때의 꿈과 낭만과 사랑이 지금이 된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