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960]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민가(民家)에 장정(壯丁, 나이가 젊고 혈기가 왕성한 남자)이 많지 않아 대개 어린아이와 부녀자로 야경을 돌게 하니, 어떻게 도둑을 막는 데 보탬이 되겠습니까? 조금이라도 미치지 못하면 벌을 주거나 벌 대신 재물을 바치는 것이 뒤따르니, 연곡지하(輦轂之下, 임금이 타는 수레 밑이라는 뜻으로, 곧 서울)의 백성들이 밤에 편안히 자지 못하게 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혁파하는 것이 편하겠습니다.“
이는 《성종실록》 241권, 성종 21년(1490) 6월 24일 기록으로 승정원이 임금에게 올린 말입니다. 임금이 야경을 돌게 하는 법은 본래 도둑과 화재(火災)를 막아서 백성을 편안하게 하려는 것으로서, 입법(立法)한 이후 이를 고통스럽게 여겨 원망하여 탄식하는 자가 많다고 하니, 혁파(革罷)하는 것이 좋을지 그 여부를 함께 의논하도록 하라고 한 뒤 승정원이 올린 뜻대로 혁파하였습니다. 좌경하는 법은 독신녀도 면할 수 없어서 간혹 사람을 사서 하기도 하고 간혹 여인이 스스로 하기도 했기에 원망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 조선시대 순라군들이 야경을 돌 때 썼던 조족등(그림 이무성 작가)
《고종실록 27권, 고종 27년(1890) 8월 30일 기록인 대왕대비의 행장(行狀, 사람이 죽은 뒤 그 평생에 지낸 일을 기록한 글)에 보면 ”도성 아래에서 야경 도는 법을 폐지하였는데, 가난한 백성에게 이보다 더 심한 고역이 없었기 때문에 이런 명령을 내린 것이다.”라는 얘기가 나옵니다. 조선시대 임금들조차도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백성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것이라면 이를 혁파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