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수필과비평작가회의

핑퐁 소리 /서영숙 1. 어느새 2023년 12월이다. 연말이 되니 마음부터 분주하다. 연초에 1차로 전반기 게임에 참여했던 탁구동호회에서 후반기 리그전에 참여하라는 연락이 왔다. 내가 소속된 시니어 동호회, 여성연맹 등에서도 연말 대회가 있다는 소식이 줄을 이었다. 참여하지 못하니 답답하다. 2. 지난 6월, 거실에서 물기가 있는 곳을 보지 못해 미끄러져 무릎을 다쳤다. 덤벙대기는 하지만 요즘은 조심하려고 애쓰는데 하필이면 옛날에 한 번 다친 곳이다. 절뚝거리며 낫기를 기다렸으나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아 병원을 찾았다. 우려했던 대로 연골파열이란다. 관절경 수술을 받았다. 3. 퇴원 후 2개월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조심하라는 의사의 지시가 있었건만 참지 못하고 탁구장으로 간 것이 화근이었다. 그동안 다리도 조금 회복이 되어가는 것 같아서 하루 쳤더니 다시 심하게 아팠다. 수술이 문제가 아니라 관리를 잘해야 한다는 의사의 엄한 경고를 듣고 쉬고 있을 무렵이었다. 4. 어느 날 동호회에서 시합을 나가기 위해 조를 맞추는데 혼합복식에 여성 한 사람이 모자란다는 연락이 왔다. 간곡한 부탁에 아직은 더 쉬어야 하는데도 참여하기로 허락했다. 그사이 다리도 많이 회복되어 걷기에는 별 지장이 없었다. 그래도 무리하지 말고 승부에 집착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답답하던 차에 몸도 풀고 활기 넘치는 동호인들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예선전을 거쳐서 본선 게임을 했다. 일찌감치 탈락하면 좋겠다는 속마음도 있었으나 게임이 시작되면 그 마음은 사라지고 또 뛴다. 응원하는 회원들의 함성에 힘입어 최선을 다해 게임을 했다. 본선에서 탈락한 회원들이 쉬어서 안 된다고 하더니 늦게까지 살아있다고 응원의 목소리를 보내 주었다. 5. 결승의 문턱에서 탈락했으나 기대 이상의 성적이었다. 결승게임을 지켜보았다. 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조그만 공이 덩치 큰 남자들도 쩔쩔매게 만든다. 한 점수 차이로 이기고 지는 것이니 선수들은 그 한 점수를 위해 있는 기술을 다 동원한다. 남들이 치는 것을 보면 감이 오는데 해보면 쉽지 않다. 기술도 다양하다. 같은 기술이라도 치는 사람의 방법이나 라켓 각도에 따라 다르다. 6. 십여 년 전, 문화 센터에서 처음으로 라켓을 잡았을 때였다. 운동신경이 남들보다 발달 되었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으나 나이를 생각하니 자신이 없었다. 탁구 치는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즐거웠다. 출발이 좋았다. 특히 백스메싱이 잘 되어 요긴하게 쓰는데 효과가 컸다. 역시 같은 날짜에 시작한 다른 사람들보다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7. 옛날 중학교 시절로 거슬러 가본다. 학교에 탁구대 하나, 라켓이 몇 개 있었으나 우리 같은 여학생들은 만져보지도 못했다. 친구들과 라켓 대신 빳빳한 노트로 공을 넘기는 놀이를 했다. 공을 떨어트리는 사람은 다음 사람과 교체했는데 오래 살아남아 점수를 많이 내는 팀이 승리했다. 나는 늘 승리자 편이 되었다. 그때의 감각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 같아서 옛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8. 지난여름 중국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어린 탁구선수 신유빈 신드롬이 대단했다. 시상식 때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관중석이 떠나가도록 함성이 메아리쳤다. 그 이후 신유빈의 5살 때부터 탁구 신동으로 tv에 출연한 영상까지 각 방송사와 유튜브에서 시청률을 휩쓸었다. 어린 신동은 아니어도 시니어 신동이라도 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해보니 만만치 않았다.9. 탁구래야 학창 시절 라켓 대신 노트가 기본이었던 똑딱 탁구에 불과했다. 이미 굳어진 자세를 교정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라켓에서 90도로 나가는 공은 팔목의 위치에 따라 상대방에게 떨어지는 위치가 다르다. 이 기술을 익히기 위해 코치의 호된 잔소리를 들으며 기초부터 시작했다.10. 탁구의 기본은 끝까지 공을 잘 넘겨주면 이긴다. 선수들은 기회가 있을 때 스매싱을 하는데 중간에 레트에 걸려 실수하는 경우가 많다. 상대가 실수하도록 유도하는 것도 실력이다. 아직은 갈 길이 멀지만 그래도 부수 안에 들어 어디에서나 게임에 끼일 수 있으니 기대 이상의 효과가 있다. 탁구를 시작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11. 상쾌한 핑퐁 소리가 노년의 삶에 멋진 운동이 된다. 움직임이 많으니 건강관리가 따로 필요 없을 정도다. 스포츠는 보는 사람도 하는 사람도 다 즐겁다. 동호인들은 이구동성으로 어디 가서 이런 즐거움이 있겠냐며 입을 모은다. 승리의 짜릿한 감동과 한 가지씩 기술을 익혀가는 재미에 푹 빠진다. 남들이 잘 친다고 하니 덤으로 받은 칭찬에 기분도 좋다. 12. 때로는 시합을 하다가 갈등도 많이 생긴다. 탁구대 위에서 보는 시각에 따라 입장이 각각 다르다. 심판이 없을 때는 노플레이하고 다시 하면 되는데 끝까지 우기기도 한다. 성격에 따라 라켓을 던지며 나가는 사람도 있다. 13. 동호회 시합 이후 다리가 계속 편하지 않아 연말이 되어도 쉬고 있다. 아픈 다리가 빨리 회복이 되어 포핸드, 백핸드로 종횡무진 누비던 탁구장으로 뛰어가고 싶다. 핑퐁 소리 쟁쟁한 탁구장이 눈에 어른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