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느새 한해도 저물어 가니 마음부터 분주하다. 연초에 전반기 리그전 게임에 참여했던 탁구동호회에서 후반기 리그전에 참여하라는 연락이 왔다. 내가 소속된 시니어 동호회, 여성연맹에서도 연말 대회가 있다는 소식이 줄을 이었다. 참여하지 못할 것 같아 답답하다.
2. 지난 6월, 거실 바닥의 물기에 미끄러져 무릎을 다쳤다. 덤벙대기는 하지만 조심하려고 애쓰는데 하필이면 옛날에 한 번 다친 곳이다. 절뚝거리며 낫기를 기다렸으나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점점 더 심해져 병원을 찾았다. 우려했던 대로 연골파열이란다. 관절경 수술을 받았다.
3. 퇴원 후 2개월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조심하라는 의사의 당부가 있었건만 참지 못하고 탁구장으로 간 것이 화근이었다. 그동안 다리도 조금 회복되어 가는 것 같아 게임을 했더니 다시 심하게 아팠다. 수술이 문제가 아니라 관리를 잘해야 한다는 의사의 엄한 경고를 듣고 쉬고 있을 무렵이었다.
4. 소속된 동호회에서 시합이 있어 조를 맞추는데 혼합복식에 여성 한 사람이 모자란다는 연락이 왔다. 간곡한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더 쉬어야 함에도 참여하기로 했다. 그사이 다리도 많이 회복되어 걷기에는 별 지장이 없었다. 그래도 무리하지 말고 승부에 집착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답답하던 차에 몸도 풀고 활기 넘치는 동호인들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예선전을 거쳐서 본선 게임을 했다. 다리가 염려되어 일찌감치 탈락하면 좋겠다는 속마음도 있었으나, 게임이 시작되니 승부욕이 발동하여 또 뛴다. 응원하는 회원들의 함성에 힘입어 최선을 다해 게임을 했다. 본선에서 먼저 탈락한 회원들이 쉬어서 안 된다고 하더니 늦게까지 살아있다며 응원의 목소리를 보내 주었다.
5. 결승의 문턱에서 탈락했으나 기대 이상이었다. 결승게임을 지켜보며 나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조그만 공이 덩치 큰 남자들도 쩔쩔매게 만든다. 한 점수를 얻기 위해 선수들은 할 수 있는 기술을 다 동원한다. 남들이 치는 것을 보면 감이 오는데 해보면 쉽지 않다. 수많은 기술이 있으나 치는 사람의 자세나 라켓의 회전방법에 따라 공의 도착점이 달라진다.
6. 십여 년 전, 동네 문화 센터에서 처음으로 라켓을 잡았을 때였다. 평소 운동신경이 남달라 자신감이 있었다. 탁구 치는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즐거웠다. 출발이 좋았다. 특히 백스메싱이 잘 되어 요긴하게 쓰는데 효과가 컸다. 역시 함께 시작한 다른 회원들보다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7. 중학교 시절이었다. 학교에 탁구대 하나, 라켓이 고작 몇 개 있었으나 우리 같은 여학생들은 만져보지도 못했다. 친구들과 라켓 대신 빳빳한 노트로 공을 넘겨주었다. 가끔 게임도 했는데 공을 떨어트리는 사람은 다음 사람과 교체하고 오래 살아남아 점수를 많이 내는 팀이 이겼다. 나는 늘 승리자 편이 되었다. 그때의 감각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 같아 뿌듯했다.
8. 지난여름 중국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어린 탁구선수 신유빈 신드롬이 대단했다. 시상식 때는 중국 관중석이 떠나가도록 함성이 메아리쳤다. 그 이후 신유빈이 5살 때부터 탁구 신동으로 tv에 출연한 영상까지 각 방송사와 유튜브에서 시청률을 휩쓸었다. 어린 신동은 아니어도 시니어 신동을 꿈꾸었으나 만만치 않았다.
9. 탁구래야 학창 시절 라켓 대신 노트로 넘겼던 실력을 시작으로 동네 똑딱 탁구를 가끔 쳐본 게 다였다. 이미 굳어진 자세를 교정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라켓에서 90도로 나가는 공은 팔목의 위치에 따라 도착하는 방향이 다르다. 이 기술을 익히기 위해 코치의 호된 잔소리를 들으며 기초부터 익혀나갔다.
10. 탁구의 기본은 끝까지 공을 잘 넘겨주면 이긴다. 선수들은 기회가 있을 때 스매싱을 하는데 중간에 있는 네트에 걸려 실수하는 경우가 많다. 상대가 실수하도록 유도하는 것도 실력이다. 아직은 갈 길이 멀다. 그래도 낮은 단계지만 부수 안에 들어 어디에서나 게임에 끼일 수 있으니 늘그막에 탁구를 시작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11. 상쾌한 핑퐁이 노년의 삶에 멋진 운동이 되어 건강관리가 따로 필요 없을 정도다. 다양한 연령층이 즐기는 스포츠로써 보는 사람도 하는 사람도 다 즐겁다. 동호인들은 이구동성으로 어디 가서 이런 즐거움이 있겠냐며 입을 모은다. 승리의 짜릿한 감동과 한 가지씩 기술을 익혀가는 재미에 푹 빠진다. 남들이 잘 친다고 하니 덤으로 받은 칭찬에 기분도 좋다.
12. 때로는 시합을 하다가 갈등도 종종 생긴다. 탁구대 위에서 보는 시각에 따라 공이 떨어지는 위치가 각각 달라 애매할 때가 있다. 심판이 없을 때는 노플레이하고 다시 하면 되는데 끝까지 우기기도 한다. 성격에 따라 라켓을 던지며 나가는 사람도 있다.
13. 동호회 시합 이후 다리가 계속 불편하여 연말이 되어도 쉬고 있다. 아픈 다리가 빨리 회복이 되어 포핸드, 백핸드로 종횡무진 누비던 탁구장에 가고 싶다. 핑퐁 소리 쟁쟁한 탁구장이 눈에 어른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