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2. 2
“위험한 일자리요? 공부를 못 해서 그런 데 간 거죠. 우리 학교엔 중학교 때 좋은 성적 받은 학생들이 옵니다. 실력있는 애들이 오니까, 그런 일자리 안 가요. 신입생 모집 기간에 이런 일이 터져서 학생 모집이 안 될까 걱정이네요.”(서울의 한 공업고 교장)
귀를 의심했습니다. 특성화고 학생들이 현장실습을 나가 죽거나 다치는 일이 일어나서 안타깝다는 기자의 말에 서울의 한 공업고 교장은 저런 답변을 했습니다. 아동 노동이 성행했던 19세기 산업혁명 시기 영국도 아닌데, 21세기 한국에서는 10대 청소년이 공장에서 일하다 손가락이 잘리고 발가락이 잘립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이 일을 바라보는 학교의 인식입니다. 어쩌다 사고를 겪은 학생의 불운으로 여기거나, 좋은 일자리 경쟁에서 승리하지 못한 학생의 책임으로 돌립니다. 특성화고의 선호도가 떨어지는 일을 학생들의 안전이나 인권보다 더 걱정했습니다 (한겨레신문 "위험한 일자리? 공부 못해 그곳에 갔다"는 교장 선생님)
기자가 귀를 의심할만하다. 만약 그가 교육현장을 좀 더 알았더라면 귀를 의심하기보다 씁쓸한 입맛을 다실 수도 있었겠지만. 내가 근무한 학교도 특성화고였다. 십년 전쯤의 일이다. 내가 근무하던 학교에서도 불행한 일이 있었다. 선박 안에서 일을 하다가 배가 뒤집어지면서 현장 실습생 한 명이 소중한 목숨을 잃은 것이다. 그 후에도 현장실습 환경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내가 직접 가르친 학생은 아니었지만 나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없지 않다. 당시 나는 언론 매체에 교육관련 기사를 연재하고 있었지만 제자의 불행한 죽음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했던 것이다. 사립학교로서는 학교의 존폐가 달린 신입생 유치가 목전에 있던 상황이라 학교를 그만 둘 생각이 아니라면 실행하기 어려운 일이긴 했다.
그때의 일이 내게는 일종의 트라우마가 되었을까? 특성화고 현장실습 사고 이야기만 나오면 나는 내 자신으로부터 침묵을 강요당한다. 사실 무슨 글이든 써보려고 했어도 무엇을 써야할지 막막하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다가 오늘 아침 한겨레신문 기사를 접했다. 기자가 쓴 글은 고스란히 나의 마음이었다.
“10대 현장실습생이 사고를 당한 이유를 ‘공부를 못해서’라고 한 교장선생님의 말은 거짓말입니다. 10대 실습생에게 최소한의 안전도 인권도 보장해주지 못한 우리 사회의 법과 제도 탓이고, 사람 귀한 줄 모르고 질 낮은 일자리가 만연한 기업의 천민자본주의 탓입니다. 가난한 집에 태어나서, 대학 대신 취업을 선택한 뒤, 질 낮은 일자리로 내몰리는 헬조선의 흙수저들, 이들을 언제까지 개인 탓으로 돌려야 하나요.”
신입생 유치를 할 때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좋은 학생’ ‘나쁜 학생’이었다. 성적이 좋은 학생이나 성적이 나쁜 학생이라고도 말하지 않는다. 그냥 좋은 학생이고, 나쁜 학생이다. 상당수의 교사들이(거의 모든 교사들이라고 썼다가 수정했다) 그러하니 서울의 한 공업고 교장의 말이 결코 귀를 의심할만한 일은 아닌 것이다. 기사는 이렇게 갈무리 된다.
“1일 김상곤 사회부총리는 사회관계장관회의에서 “조기취업 형태의 현장실습을 내년부터 전면 폐지한다”고 밝혔습니다. 학생을 노동력 제공 수단으로 활용하는 조기 취업 형태는 이제 금지되고 학습 중심의 현장실습만 가능합니다. 현장실습 기간도 현재 6개월에서 최대 3개월로 줄이기로 했습니다. 이 시점에서 문득, 현장실습 기간을 줄이면 특성화고 정체성이 사라지고 존립이 흔들린다며 지난 9월 반대 성명서를 낸 서울특성화고 교장회가 떠오릅니다. 아이들이 죽고 다치는데, 특성화고 교장선생님들은 이번에도 반대하고 나설까요. 위험한 일자리에서 사고를 당한 건 질 낮은 일자리에 간 개인 탓이고, 실습생에게 벌어진 안전사고 보다 학생 모집을 걱정하던 교장선생님이 답할 차례입니다.”
어찌 해당학교 교장선생님 뿐이랴? 초임 교사시절 썼던 시다.
현장 실습 떠나던 날
개찰구에 들어서면서
선주가 먼저 손을 흔들어 보였다
갸름한 턱조가리에
고구마만한 혹이 아니었으면
더 환했을 미소를 지어 보이며
몸집이 작은 성권이와 준범이가 뒤를 따랐다
월 급여 35만원, 보너스 300프로에
하루 12시간 줄창 등짐만 지는
경기도 안산 염샘공장이 그들의 실습지였다
컴퓨터 박사 성모
판매사 자격증을 딴 종훈이
세련되게 글씨를 잘 쓰는 성호도
그 동안 이루어 놓은 것 잘 버리고
묵묵히 뒤를 따랐다
열차가 떠날 때까지
아무도 묻지 않았다
저임금으로 생산라인에 직투입되는
대통령령으로 정해진 5학기제
대통령령이라 그랬는지
힘 없는 담임 선생의 주제를 알아서인지
따져서 될 일이 아닌 것을 벌써 터득한 것인지
아무도 아무도 물어오지 않았다.
첫댓글 가슴 먹먹하고 슬픈 일입니다. 말문도 막히는....
그래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가슴 아프고 미안하고 죄스러운....
아무리 생각해도 샘이 삶에 대한 애착이 저보다 더 쎈거 같습니다 ㅋㅋ
그러냐? 아닌 거 같은데...
글고 비교하는 습관은 버리는 것이 좋다. 나도 한때는 그랬는데 지금은 고쳐졌다. 그것만으로도 많은 것이 좋아지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