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9월 7일
그레이스
✿ 2002년 9월 7일 12년 만의 남북대결,
남북통일축구경기 개최
▲7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남북통일축구경기가 끝난 뒤 박항서 한국 감독(왼쪽에서 세 번째)과 리정만
북한 감독(왼쪽에서 네 번째)을 비롯한 남북 선수단이
대형 한반도기를 들고 그라운드를 돌고 있다.
“다음엔 평양에서 만납시다.”
북한 축구선수단이 8일 오후 신라호텔에서 답례 오찬을
가진 데 이어 5시 인천공항을 통해 북으로 돌아가면서 3박4일간의 남북통일축구경기 일정이 모두 끝났다.
답례 오찬에서 리광근 북한 선수단 단장은 “형제적인
성원을 보내 준 서울 시민과 남녘동포들에게 사의를 표한다”며 “우리 모두 평양에서 다시 만나자”고 건배를 제의했다.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도 “통일축구경기가 평양
능라도 경기장에서 다시 열리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겠다”며 화답했다.
북한 선수단은 오찬에 앞서 말끔한 단복 차림으로 한반도기를 손에 든 채 1시간 동안 경복궁 나들이에
나섰다. 장웅 IOC위원의 아들인 GK 장정혁은 “북에서는 역사공부를 중시한다”며 “사진으로만 보던 조선왕조의 대표적인 유적을 실제로 보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90년 10월 이후 12년 만에 7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통일축구경기는 0대0 무승부로 끝났다. 6만여석의 경기장이 꽉 찬 가운데 ‘아리랑’ 가락 속에 입장한 남북대표팀은 경기 전 함께 사진촬영을 하며 선전을 다짐했다.
한국은 당초 한수 위의 전력으로 평가받았으나 이동국과 김은중, 이천수 등 최전방 공격수 트리오의 호흡이 맞지
않아 고전했다. 전반전은 오히려 북한이 날카로운 역습을 선보이며 경기 주도권을 쥐었다. 북한은 전반 4분
전영철의 슈팅을 시작으로 여러 차례 득점 기회를 만드는
등 잘 짜여진 조직력을 선보였다.
한국은 후반 들어 체력이 떨어진 북한을 압도했으나 골 결정력 부족으로 득점에 실패했다. 아시안게임 우승이 목표인 한국으로선 미드필드와 공격의 짜임새에서
문제점을 확인한 경기였다.
남북 선수들은 경기 후 대형 한반도기를 함께 들고 그라운드를 돌아 관중의 환호를 받았다.
리정만 북한 감독은 “모든 선수들이 통일의 열망을 안고
잘 싸웠다”며 “이런 대결의 기회가 앞으로도 자주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항서 한국 감독은 “북한은
공격수들의 스피드가 빠르고 공수전환도 빨랐다”며 “역사적인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러 보람을 느낀다”고
소감을 밝혔다.
▶2013년 오늘,
2020년 하계 올림픽 개최지가 도쿄로 선정
▶2010년'희극 연기 40년' 배우 서희승씨 별세
▶2009년경북 군위에서 세계 최대 익룡 발자국 발견
경북 군위군에서 발견된 세계 최대 익룡 발자국 화석.
2009년 9월 7일 세계에서 가장 큰 것으로 추정되는 익룡(翼龍·Pterosaur) 발자국 화석이 경북 군위에서 발견됐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김봉건) 천연기념물센터는 군위군 군위읍의 약 9000만년 전~1억1000만년 전 지층에서 지금까지 보고된 것 중 가장 큰 익룡 발자국 화석을 찾아냈다고 7일 밝혔다. 길이 35.4㎝, 폭 17.3㎝인 이 발자국은 익룡의 오른쪽 앞발로 찍은 것으로, 전형적인 익룡 앞발자국의 특징인 비대칭형 세 발가락이 선명하게 나타난다. 지난 1996년 전남 해남군 우항리에서 발견돼 세계 최대 익룡 발자국으로 보고된 ‘해남이크누스’의 앞발자국(길이 33㎝, 폭 11㎝)이나 뒷발자국(길이 35㎝, 폭 10.5㎝)보다 크다.
익룡과 공룡 발자국에 대한 세계적 전문가인 마틴 로클리 미국 콜로라도대 교수는 “익룡 발자국이 틀림없고, 이렇게 크고 잘 보존된 경우는 거의 없다”고 평가했다. 백악기 익룡 발자국이 발견된 지역은 9개국에 불과하며, 그중에서도 한국과 스페인이 가장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해남 이외에 경남 하동군 금성면과 사천시 서포면, 거제시 남부면 갈곶리 등지에서 발견됐다.
‘날개를 가진 도마뱀’이란 뜻의 익룡은 공룡은 아니며, 공룡이 살았던 시대인 중생대에 하늘을 지배했던 파충류다. 중생대 트라이아스기 후기(약 2억2000만년 전)에 처음 등장했다가 공룡이 멸종했던 백악기 후기(약 6500만년 전)에 공룡과 함께 멸종됐다.
임종덕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은 “그동안 거대 익룡 화석들은 모두 백악기 후기(약 6500만년 전)의 것이었는데, 이번 발견으로 약 1억년 전인 백악기 전기에도 거대 익룡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이번에 함께 발견된 작은 공룡 발자국 화석들은 익룡의 먹잇감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이번 발견 결과를 이달 말 영국 브리스톨에서 개최되는 제69차 세계척추고생물학회에서 발표하고, 세계 최대 크기의 익룡 발자국 화석으로 공인받을 예정이다.
▶2005년증시 11년 만에 사상 최고치 경신
▶2005년노무현 대통령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청와대서 영수회담
▶2004년비제이 싱, 세계 1위 타이거 우즈(264주)
제치고 골프황제에 등극
▶1999년재일교포 무기수 권희로씨,
복역 31년 7개월 만에 가석방-귀국
조국에 첫발을 디딘 권희로씨가 도착 직후 어머니의 유골을 부산 자비사에 모시고 숙소인 조선비치호텔로 떠나면서 환영나온 사람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일본내 최장기 복역수였던 재일동포 권희로(·71)씨가 1999년 9월 7일 부산 김해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권씨가 1998년 작고한 어머니 박득숙씨의 유골을 안고 후견인 박삼중 스님과 함께 오후 1시40분 JAL기 957편으로 공항에 도착하자, 100여명의 취재진과 500여명의 시민들로 공항은 북새통을 이뤘다.
이에 앞서 일본 정부는 우익단체들의 테러에 대비, 권씨가 수감중이던 형무소에서 4일 그를 출감시켜 모처에서 보호하다 이날 가석방과 동시에 출입국관리법 위반 혐의로 그를 추방했다.
권씨는 지난 1968년 2월20일 일본 폭력단 간부 2명을 살해한 뒤 재일 한국인 차별에 울분을 토로하며, 13명의 여관투숙객을 상대로 88시간동안 인질극을 벌인 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31년 7개월간을 일본 교도소에서 복역해 왔다.
권씨는 1979년 옥중결혼한 부인과 고국에 정착하는 듯 했으나 부인이 권씨의 전 재산을 갖고 도준한 뒤 한때 실의에 빠지기도 했다. 더구나 자신의 후원자 박모 여인과 가깝게 지내던 중 박여인의 남편을 살해하려 한 혐의로 2000년 9월5일 구속됨으로써 고국에의 정착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1999년골프선수 김미현, 미국 LPGA 스테이트팜레일클래식에서 우승. 미국 진출후 첫 승
▶1997년모부투 前 자이르 대통령 사망
▶1995년러시아, 북한에 조소동맹조약 폐기 통보
▶1994년‘007 시리즈’의 테렌스 영 감독 사망
▶1993년공직자 재산공개
▶1992년조지 슐츠 전 미 국무장관,
제2회 서울평화상 수상
▶1991년넵투늄(초우라늄원소)을 발견한
미국의 핵물리학자 맥밀런 사망
▶1987년호네커 동독공산당 서기장, 분단후 첫 서독 방문
구독일 사회주의통일당 서기장 에히리 호네커
동서독 분단 후 처음 서독 방문
▶1984년교황청, 해방신학의 기수 보프신부 사문
▶1980년연세대, 충북 단양서 6~10만년전의
인류 유골 발견
▶1975년레바논 내전상태로 돌입
▶1969년신민당 임시 전당대회. 당 해산을
결의하고 동시에 신당 발기위원회 구성
▶1962년일본의 소설가 요시카와 에이지 사망
▶1962년 오늘,
서울 한남동서 나룻배 전복. 37명 익사
한남대교 개통으로 마지막 승객과 자동차를 실은 나룻배가 다리 옆으로 강을 건너고 있다
경향신문 1969년 12월 26일자
한강 다리가 몇 개 안 되던 시절 나룻배가 사람과 차를 실어 날랐다.
서울 남북의 한강변에는 1960년대에 모두 19곳이 있었다.
광나루, 송파나루, 마포(삼개)나루, 서강나루, 뚝섬나루, 신천나루, 한강진나루, 새말·사평나루, 동작(동재기)나루, 노들나루, 양화나루, 공암나루 등이다.
나룻배는 가축과 화물, 마차, 손수레, 자동차까지 실어 날랐다.
1970년대 초반 나룻배 요금은 사람은 버스 요금과 같은 20원, 용달차는 100원이었다.
뚝섬과 봉은사 사이를 다니던 나룻배는 폭 5m, 길이 12m의 뗏목 형태로 뒤에서 모터보트가 밀어서 운행했다.
말이 끄는 마차와 비슷하다고 해서 ‘마차배’라고 불렀다.
갑자기 모터가 멈추면 노를 저어야 했다.
배에 직접 모터를 달고 ‘제비호’ 등의 이름을 붙인 철선도 있었다.
강북의 학생들은 나룻배를 타고 봉은사로 소풍을 갔다.
이용객은 많을 때는 하루 500여명, 한 해 4만여명에 이르렀다.
경향신문 1964년 3월 26일자
장마철에 한강 물이 불면 나룻배 운행이 중단됐다.
지금은 강남의 중심부인 잠원동과 신사동은 장마철이면 섬처럼 고립됐다.
이곳에 살던 어느 회사원은 홍수로 나룻배가 끊겨 강북에 있던 회사에 한 달이나 출근을 하지 못했고 어느 고등학생은 학교에 가지 못해 학기말 고사를 치르지 못했다.
나룻배는 밤 11시면 끊어지기 때문에 한남파출소에는 밤에 나룻배를 놓쳐 재워 달라는 사람이 매일 10여명이나 있었다고 한다.
경향신문 1969년 12월 26일자
나룻배는 적정 인원을 넘겨 태우기 일쑤였고 침몰 사고가 잇따랐다.
나룻배가 침몰해 49명이 익사한 사건은 1963년 경기도 여주에서 일어난 참사였다.
1962년 9월 7일에는 한남동에서 잠실 쪽으로 가던 나룻배(마차배)가 전복돼 36명이 목숨을 잃었다.
철거민촌인 사당동 배나무골에서 흑석동에 이르는 도로는 비가 많이 오면 범람해 주민들은 나룻배로 버스가 다니는 이수교 쪽으로 이동해야 했다.
'강남'이라고 불리는 강남.서초구 지역은 1963년 1월 1일 서울시에 편입됐다. 당시 강남은 대부분 배밭인 조용한 농촌었다.
1963년 말 인구는 2만7천명 정도였다.
제3한강교가 개통된 후 강남구 삼성동 일대. 1970년 모습
영동개발계획의 첫삽을 뜬 후 삼성동에서 강남사거리로 이어지는 도로의 윤각은 드러나고 있지만 아직 그 주변에는 농가와 작은 야산과 논,밭이 그대로인 농촌모습이다.
▶1961년흐루시초프-네루 회담
▶1959년미국-영국-프랑스-소련 4국,
10개국 군축위 설치에 합의
▶1956년노예제도 폐지 국제조약,
제네바에서 31개국 조인
▶1950년필리핀, 미곡 만톤 의료약품 등 송한(送韓)
▶1949년독일연방공화국 성립(서독)
▶1949년멕시코 화가 호세 클레멘테 오로스코 사망
▶1945년미국 극동사령부 남한에 군정 포고
▶1940년독일기, 영국 본토 폭격. 독일공군, 영국 런던 대공습
▶1929년안익태, 첼로독주회를 경성공회당에서 가짐
▶1924년독립운동가 안무 장군 사망
▶1921년제1회 미스아메리카 선발대회 개최
▶1909년 오늘,
미국 영화감독․연출가 #엘리아 카잔 (Elia Kazan)오스만 제국
콘스탄티노폴리스 에서 출생 (~ 2003년 9월 28일 미국 뉴욕주 뉴욕시에서 사망)
작품-「파지장(波止場)」 「에덴의 동쪽」 등
▶1901년청, 의화단사건 후 열강 11개국과
최종의정서 12조에 조인(신축조약)
▶1822년브라질, 포르투갈로부터 독립
브라질, 포르투갈로부터 독립,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큰 나라(러시아-캐나다-중국-미국-브라질)면적 852만 1,965km,인구 1억3,500만 공용어 포르투갈어
수도 브라질리아 1808에 나폴레옹에게 쫓겨 도망 온 포르투갈의 돈 페드로 황태자가페드로1세라 칭하고 브라질 독립 선언
▶1533년엘리자베스 1세 영국 여왕 출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