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수네 사랑방

[강신구]

영수네 사랑방

오르면 왼쪽이고 내릴 땐 길옆 오른쪽으로 마당과 이어졌다. 첫째 집이다. 모롱이를 돌면 먼저 보이는 집이다. 장터에서 오르자면 차도는 아랫마을 창마까지다. 한참 뒤에야 작은 길을 경운기가 다니거나 우마차가 지나도록 넓혔다. 그러다 차도가 됐다. 달구지가 고물고물 구르다 산판 트럭이 다닐 수 있도록 다듬었다.

“그 험한 길 오르는 지엠씨가 힘도 좋아”

“나무를 한 차 가득 싣고 기우뚱 간들거리며 가네”

“넘어질 듯”

돌이 있어 울퉁불퉁하다. 깊은 산골로 들어가듯 한참을 올라야 집들이 보인다. 아랫마을과 뚝 떨어져 있다. 비 오면 진탕이어서 푹푹 빠진다. 아이들 학교에 다녀야 하고 시골 장날 기제사 상에 생선이라도 사와야 한다. 농산물을 팔기 위해 5일 장에 들리거나 삼십 리 내성 읍내까지도 가야 한다. 걷는 일에 이골이 났다. 그렇게 살아왔다.

“그런 산골짝으로 들었나.”

“물 맑고 인심 좋다 해서”

그 전엔 오르내리기 험한 꼬불꼬불한 길이다. 언덕 위로 다니다가 밤나무 아래로 길이 났다. 낮은 좀 덜 한데 밤은 으스스하다. 지형이 생길 때 큰 골에서 토사가 밀려 내리며 바위와 돌들이 엉겨 마을에 덕지덕지 박혔다.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담을 쌓고 큼직한 것은 그냥 두고 지나다닌다. 덩치 큰 것들이 구석구석에 웅크렸다. 이를 피해 살 집을 마련했다.

“소복 귀신이 나올 것 같다.”

“도깨비가 눈을 부라리며 툭 나올 것도 같다.”

“돌 덩치가 달려들 범처럼 보인다.”

가벼운 흙과 자갈은 떠내려가 창마와 소란, 너다리, 송장기, 장터로 이뤄졌다. 큰 돌만 멀리 가지 못하고 산 아래 걸쳐 남았다. 거기다 마을을 세웠으니 바위와 함께 산다. 20여 호 될까. 옹기종기 둘레둘레 붙어산다. 아이를 부르면 다 들린다. 각성바지이다. 논밭 농사 외에 담배와 사과를 가꾼다. 앞집 영수네는 개울 건너 조그만 밭이 있어 채소와 콩, 옥수수를 지어 먹는다.

“마을 이름 거렁골이 뭔가.”

“누가 지었는지 모르고 사네”

큰골에 나무하거나 봄나물 뜯으러 갔다. 더덕 캐는 김에 꼭대길 올랐는데 엄청 웅장하고 높다. 아래 축서사가 있는 문수산과 서쪽은 부석사가 있는 봉황산이다. 위쪽 생달 고갯길이 보인다. 학교에서 보면 가장 우뚝해 제일 먼저 하얗게 눈이 내려 쌓인 산이다. 건넛산은 보부상들이 허리 휘어지게 다니던 박달령과 바로 옆의 한배령이다. 다 이름이 있는데 이 산은 웅장하기만 했지 이름이 없다. 정상에 여러 번 올라봤다.

“여기만 처음이다.”

“수많은 골짝에 마을이 잔잔하게 보인다.”

올망졸망한 곳 구석구석에서 산다고 아옹다옹하다. 동쪽으로 서벽이 좀 넓게 터졌고 가운데 시냇물이 흐른다. 그 끝에 춘양이 보인다. 북쪽으로 쑥밭 약수터와 오빡골, 곰직이, 죽터, 밤마, 생달이고 한때 살았던 불기, 덕고개, 오전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서쪽으로 압동과 서들기, 샘실, 사골, 제기이고 남쪽으론 절단, 소란, 도사리, 무양, 서리, 두문 등이다.

“골 이름이 재밌다”

하얗게 운동장이 드러나 아담하게 자리 잡은 물야초등학교가 눈에 들어온다. 아주 편한 모습이다. 쪽 바른 십 리 신작로가 보이는 북지에도 작은 초등학교가 앉았다. 분교로 갈라질 때 안 가겠다고 떼쓰는 친구들을 장터까지 바래다줄 때 생각이 난다. 울고불고 멀어도 다니겠다는 걸 억지로 보냈다. 뒤돌아보는 모습이 어련하다.

“그 친구들 어디서 뭘 하나”

쑥밭 위 한배령 중턱에 머문 적이 있다. 생식하는 대구 정평화 노인과 지냈다. 월남했는가. 함경도 사투리를 쓴다. 거렁골 친구 임종수도 찾아와 일 년 가까이 함께 있었다. 초가삼간을 짓고 혼자 살기에 우물도 파서 나무 홈을 내 부엌으로 이었다. 비 오거나 추울 때 밥을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린 한 방에 지냈다.

“기도하고 찬송하며 성경을 봉독한다. ”

“보면 늘 묵상하고 있다.”

주인은 저 안쪽에 자고 문 가까이는 둘이서 사과 상자를 놓아 책을 보며 글 썼다. 날 것을 들 때 솔잎을 대패 날로 눌러 잘게 썰고 콩가루를 조금 섞어 먹는다. 꺼칠하고 송진내가 나 먹겠나 했는데 맛있게 든다. 먹을거리 솔잎은 주위에 지천이다. 또 느릅나무 뿌리를 캐내 껍질을 벗겨 칼로 두드려 진을 뭉쳐 한 덩어리씩 끊어 먹기도 한다. 고기 맛이 나는가. 한참 쫄깃쫄깃 씹는다. 가끔 장만하지 못했을 땐 쌀을 물에 불려 그냥 떠먹는다.

“단맛이 나게 사카린이나 당원을 약간 뿌려 먹는다”

“반찬은 열무나 배추를 소금에 절여 들었다.”

그래도 건강하게 살아간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그렇게 살았다며 따라 한단다. 찬송과 예배도 드렸다. 사랑에도 사람이 들어왔는데 한 남자에 두 여자가 따라와 살았다. 봄날 내내 산나물을 뜯어말렸다. 주로 고사릴 캐러 다녔다. 남자는 한량 기가 있어 놀기 좋아하고 퉁소도 잘 분다. 저 아래 약수터를 향해 쪼그려 앉아 청승을 떨 땐 멋지다.

“서북쪽에 소백산이 커다랗게 가로막아 섰다.”

“둘레둘레 앉았다.”

아득히 천지가 넓은데 온통 산과 산으로 이어지고 둘러싸였다. 그 골짜기에 논밭 갈아 은신해 산다. 답답할까 해도 거렁골도 있는데 어쩔까. 그래도 춘양면은 두메산골에 우뚝한 도시다. 아파트와 슬레이트 기와집이 보인다. 기찻길이 놓일 때 펑퍼져 드러누웠단다. 얼마나 방해를 놓는지 작업을 할 수 없다. 철길과 전깃불이 들어오면 양기가 빠져나가 흉흉한 일이 생겨 살기 어렵다.

“억지 춘양이다.”

가까운 울진 서면 황장목인 금강송 군락지에서 벌목한 나무를 차에 실어 춘양역으로 날랐다. 봉화 영주를 거쳐 부산으로 가져가 일본 배에 실었다. 왕궁과 사찰, 관청을 짓기 위해서다. 이 귀한 나무가 금강산에서 발견되어 이름 붙여졌고 양양과 삼척에 보이며 서면 군락지를 찾게 됐다. 반만년 동안 우린 알지 못했는가.

“춘양목이라 불렀다.”

한배령 아래는 납 광산이 있었고 건너는 금정 금 광산이다. 많이 캐 일본으로 가져갔다. 금광이 한창일 땐 이 좁은 골짜기에 집들이 다닥다닥 게딱지처럼 붙어있었다. 장사꾼들이 전국에서 모여들었다. 금맥을 따라 들어가면 맺힌 곳이 나온다. 누리끼리한 돌을 제련소 통에 넣어 돌린다. 사과 굵기의 쇠뭉치를 함께 넣어 가루를 만든다.

“귀한 우구치 황금이 그렇게 쏟아졌나.”

수은을 넣고 움직이면 가루 속에 금은 녹아 누렇게 된다. 수은을 거둬 끓이면 증발하고 순금만 남게 되는 야금이다.

“산속에 나마리가 있는 줄 어찌 알았을까.”

“아까워라. 모두 일본으로 가져가고 폐허가 됐다.”

장날 지게에 지고 양손에 들며 머리에 얹어서 다니는 게 일이다. 그래도 겨우내 따뜻한 방에서 산다. 우람한 뒷산 큰골 나무가 흔해 갈비며 솔가질 많이 쌓아 놓고 지난다. 저 아래 사람들은 땔 나무하는 거리가 멀다. 겨우내 나무꾼들이 길을 이었다. 장터 사람들까지 올라온다. 하루에 두 짐 져 나른다. 그래야 농사철을 지날 수 있다.

“산이 높아 웅장하다.”

“그게 든든한 느낌이다.”

“의지가 된다.”

농사 철은 곤해 집에 들앉아 있다. 새벽에 나가야 하니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그러나 가을 겨울은 마을 가운데 사랑방에 붙어산다. 추울 땐 낮부터 들앉아 있다. 군불을 때 뜨끈뜨끈하다. 분탕질하면 싫어서 그만 오라 할 텐데 괜찮다. 그러니 맘 놓고 드나든다. 화투와 윷놀이 술판을 벌이기도 한다.

“민화툰 싫에 나이롱뻥 하자”

“두장삐 가기 해”

떠드는 소리에 끌려 뭐하는가 해서 실 들어간다. 그 집 아들 덕구와 같이 끼어들면 구석에 비집고 앉아 질펀한 얘길 듣는다. 우릴 보고 조심해서 말한다. 간간이 먹을 것도 내놔 얻어먹는다. 노랠 시키면 불러야 한다. 심부름도 해 줘서 어른들을 편하게 해 준다. 전쟁 때 사용했던 탄약통을 팔걸이 삼아 목침 겸 사용한다.

“투박하고 튼실한 게 보물이 들었나.”

“끼고 돌아”

때 되어 아버지 모시러 갔다가 거기서 한술 들곤 한다. 어떤 분은 얘길 침을 삼켜가며 구수하게 하는데 찬찬히 서두부터 긴장되게 말한다. 한때 살이 짓무르는 나병에 걸려 고생했단다. 화투를 치는데 담배 가칠 쭉 놓고 한다. 어떤 건 알이 빠져 헐렁한 것이 왔다 갔다 한다. 방안은 연기로 자욱하다. 지루해서 빨리 갔으면 하는데 통 갈 생각이 없다. 살살 빠져 집으로 간다.

“안주 먹는 게 좋다”

“심부름하면 개평도 준다”

뭣에 끌렸는지 저녁마다 따라간다. 또 나를 곁에 끼고 가길 좋아한다. 윗목에 앉을 땐 엉덩이가 시리다. 아랫목은 뜨거워 견딜 수 없다. 조그만 탄약통을 꿀단지처럼 조심조심 곁에 두고 있다. 주인이 움직일 때마다 밀거나 들고 다닌다. 늦게 가면 윗목 차진데 그게 거기 있다. 터질까 만질 수 없다. 탄탄한 나무 상자에 정말 총알이 들어있을까.

“하도 만지작거려 손 떼로 우중충하고 가무잡잡하다”

집집이 담배 농사를 해 건조실에 말린 뒤 공판장에 내다 판다. 그게 짭짤하다. 돈이 꽤 된다. 벌레도 잘 안 먹는 담배는 잎이 호박잎이나 오동잎처럼 너풀너풀하다. 그걸 따 엮어 건조실에 잘 말리면 노랗게 상품이 된다. 그래야 돈을 더 받을 수 있다. 우그러지거나 어두운 건 하품이다. 그걸 손으로 비벼 피운다. 가락 담배나 봉지 연초는 사 피워야 하는데 이게 어딘가.

“그 담배 연기에 찌든다.”

“어른들 얘기에 배를 잡고 웃는 게 재밌다.”

“술과 안주 심부름을 하니 끼워줬다. 또 그들 자녀이다.”

해방되자 가게에 담배가 떨어져 피우던 사람들이 환장한다. 아이들 책이나 학습장을 찢어 가랑잎을 비벼 피워댔다. 숙제 검사하던 담임이

“책이 왜 이 모양이냐.”

“아버지가 담배 피운다고--- ”

조수가 차 후진할 때 「오라이 오라이」 하다가 뒤로 벌렁 넘어졌다. 도랑에 박힌 차에서 운전자가 나와 화를 내고 「스톱」해야지 한다. 얻어맞아 울며

“오라이 했는데---”

트럭 앞부분에서 쇠줄을 내어 나무에 걸고 걸걸하며 올라왔다는 게 신기하다. 큰골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나 싶다. 눈에 보는 듯 얘기가 질펀하다. 껌벅껌벅 졸다가 우우 나가면 같이 따라 눈을 비비고 집을 찾아간다. 한 번은 일하란다. 망치 같은 쇠도장을 찍는다. 돈도 준다니 신났다. 방학 때 할 일이 생겼다.

“산판을 구경하게 됐다.”

산 중턱 현장에 찾아가 쌓아 놓은 나무 좌우에 쇠망치로 쾅쾅 먹물을 찍는 일이다. 쉽다. 이런 일은 매일 시켜도 할 수 있겠다. 할만하고 재미있다며 서둘러 열심히 일했다. 웬걸 손에 물집이 생기며 아려 아프다. 겨우 마치고 내려오니 손바닥에 진물이 철철 난다. 돈 벌기 어렵다. 쑥 들어간 나무는 도장 찍기 힘들다.

“우리하게 쓰라려 잠을 잘 수 없다”

“피도 찔끔거린다”

눈치 없이 따라가선 담배 연기만 마신다. 잠도 많아 일찍 자는데 심심할 땐 또래 집으로 간다. 그만 마실가는 버릇이 생겼다. 거긴 사랑에 할아버지가 계셔 안방에 모여든다. 그게 영수 집이다. 큰 바위 옆에 은신해서 지은 초가삼간이다. 오글보글 지지고 볶는 방이다. 어머니 단양댁과 고모, 여동생 춘희가 있다. 몇 해 전에 맏이 영호가 갑자기 열감기로 세상을 떠났다.

“방이 따뜻하네.”

미안해서 한마디 한다.

얼마 뒤 할아버지도 돌아가시고 사랑이 비었다. 그래도 버릇처럼 안방에 모여 이런저런 얘길 하다가 헤어진다. 저녁 먹곤 한 번씩 들러야 잠이 온다. 황영수는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는가. 안 가면 궁금해 견딜 수 없다. 작은 방에서 복닥거리다 와야 잠이 온다. 겨울밤은 길고 춥다. 화로를 방에 들이면 불 머리가 생겨 어질어질하다.

“뒷집 사랑채에 이사 온 사람이 서울말을 해”

“험한 농살 지을란가”

영수 아버진 봉화 경찰이었는데 재산 전투에서 전사했다. 군경 유가족이다. 얼마 나오는 돈으로 살아간다. 춘희는 고등학교를 나왔다. 웃을 때 덧니가 보이지만 예쁜 편이다. 오빠 영수는 상급 학교가 싫은가 더 가지 않았다. 늘 집안에 죽치고 사는 고모가 있는데 처음은 깜짝 놀랐다. 정말 도깨비처럼 닮았다. 두 눈을 부릅떴다. 위로 치 째져 붉은 게 무섭다.

코는 문드러져 코맹맹이 소릴 한다.

“어서 옹나 충제”

하고 화로를 뒤져 빨간 잉걸불을 올라오게 한다. 건넛마을로 시집가 살았는데 무단 얼굴이 일그러져 갔다. 아이도 못 낳고 쫓겨 왔다. 무슨 병인지도 모르고 오갈 데 없는 고모는 치료 한번 받지 못하고 부모 집 친정에 얹혀살았다. 싫은 내색 없이 받아 함께 살아간다. 고부간에 따스함이 오갔다. 가족이 한 번도 큰 소리 내거나 구차하게 하는 모습을 본 적 없다.

영수와 춘희도 그런 고몰 덜 좋아하는 기색을 안 한다. 빈둥거리는 고모에게 따뜻이 대하는 게 우리가 다 고맙게 여겨졌다.

“신둥거리질 않아”

“부끄럽게 여기지도 않네”

비좁게 살다가 버리고 아래로 내려왔다. 그동안 큰 농사 없이 지낸 건 나라에서 주는 유가족 위로금이다. 좀 모아뒀는가 승철이네 집 앞 밭에다 근사하게 지었다. 마을 제일 앞집이다. 시원해서 좋다. 웅크린 좁아터진 집에서 내려오니 큰 도시로 온 기분이다. 마당도 넓어 자전거로 빙빙 돌 수 있다. 차가 마당으로 바로 들어간다.

“승철 자네 집이 가려서 어쩌나 감천 어른이 답답하실 텐데.”

“이웃이 생겨 좋네”

친구 사이여서 잘 됐다. 삼간 기와집으로 널찍한 툇마루도 내었다. 오가는 사람들이 쉬었다 가도록 했다.

“이 마실에서 제일 명당일세”

“이리 좋은 자릴 왜 몰랐나.”

든든히 믿었던 영호를 잃고 영수와 춘희를 보고 살아온 단양댁은 수심 낀 얼굴이어도 늘 가늘게 잔잔한 웃음을 띠고 살았다. 쪽 머릴 틀어 비녀를 단정하게 꽂았다. 흰 저고리에 검정 치마를 입었다. 「몸빼」 걸친 허튼 매무새를 못 봤다. 깔끔하다. 청상과부로 되나마나 산 여인이 아니다. 나라를 위해 몸 바친 유가족답게 살았다. 춘희를 장성으로 시집보냈다.

“엄마와 친구처럼 지낸 딸인데 그리 멀리”

영수도 장가들었다. 춘희 가고 새 식구가 들어왔다. 새집에서 새롭게 살아간다. 툇마루에 자주 만나다 사랑방으로 들어간다. 여름엔 마루에서 쉬고 겨울엔 사랑채가 생겼다. 승철이와 친척인 덕중이, 영복이, 종기, 신학이, 달영이, 덕호, 덕구가 뻔질나게 드나든다. 멋진 또래끼리나 비슷한 나이의 놀이터다. 참 잘 됐다. 저녁만 되면 갈 생각으로 밥이 쉽게 넘어간다.

“영수네 집 잘 지었다.”

“사랑도 널찍해 좋다”

미안해서 인사를 던져야 한다.

몇 해 전에 보리타작을 하다가 껍질이 눈에 들어갔다. 비벼도 나오지 않아 붉게 핏줄이 서고 아리며 눈을 뜰 수가 없다. 대야 물에 씻어도 여전히 박혔다. 나올 생각이 없다. 거울을 보니 퉁퉁 붓고 피멍이 들어 터질 것 같다. 낭패다. 혼자 어찌할 줄 몰라 쩔쩔매는데 덕중 모친 문단댁이 사발 물그릇을 들고 불렀다. 혀를 씻은 뒤 눈 속에 넣고 좌우를 훑어 말끔히 걷어줬다.

“지금껏 알 수 없다.”

“앞집인데 그런 내 눈을 어떻게 알았을까.”

“혀로 씻어주는 게 쉽나. 두고두고 고맙다.”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면 낮잠 자는 날이다. 그런 사랑방이 마을 중간쯤 풍산 어른이 거처하는 덕구네 사랑이었는데 이리로 바꿨다. 가끔 밤참을 내 올 때도 있다. 많이 모일 땐 예닐곱이고 적어도 서넛은 온다. 다른 집은 일찍 불이 꺼져도 여긴 늦게까지 호롱불이 켜졌다. 왁자지껄하다. 방이 꽤 크지만 많으면 좁게 앉아야 한다. 싱거운 얘길 해야 웃고 재밌다.

“담밸 피워제껴 연기가 자욱하다.”

“시쿰한 발 냄샐 풍긴다.”

신방을 차지해 갈 때까지 신부는 안방에서 도란도란 있다가 들어오는가 보다. 거기도 고부간에 재밌는가. 저쪽 방에서 가끔 웃음소리가 들린다. 좀 미안한 데도 영수는 그저 오란다. 속없이 사는 친구다. 우리가 염치없지 다시 덕구네 사랑채로 가서 죽치고 들앉아야 하나 보다. 어른들 피해 왔다가 마땅히 우리 또래 갈 곳이 없다.

“스피커가 달린 집들이다.”

“유선방송에 뉴스가 나오고 연속극을 듣는다.”

“극 중 얘기로 다음은 어떻게 될 거라 자자하다”

좌우 야트막한 산이 가리고 뒤는 큰 산이 있어 겨울이어도 햇볕이 자글자글 내려 따스하다. 마루에 둘러앉아 있다. 가는 사람 오는 이에게 들어와 쉬라 하면 마지못해 엉덩이를 들이민다. 장에 내려가야 한다며 양잿물이 떨어졌단다. 헉헉하고 올라오던 감천댁도 들어와 털썩대고 앉았다. 바로 뒷집인데도 툇마루가 좋은가 한숨 돌린다.

“장날 아래윌 다니며 파는 우황청심환이 좋대”

“죽을 사람도 깨 난데”

“굵은 목소리로 외치는 젊은 장수 맞제”

승철이는 아까부터 자전거로 마당을 설설 돌고 있다. 포마드를 발랐는가 머릿결이 반짝인다. 옆을 지날 땐 향수 냄새도 난다. 여유롭게 타는 모습이 감질난다. 그에게서 젊음이 넘쳐나는 것 같다. 장터 중간쯤에서 부부가 양품점을 한다. 오늘은 쉬는가 올라와서 멋을 잔뜩 부리고 있다. 다들 키가 작달막한데 길다. 뻣뻣하고 찌르는 말을 곧잘 받아넘긴다.

“어이 철이 장사 안하고 뭐해”

남자들은 밤에 모이고 비 오거나 저녁나절 한가한 때는 아낙들이 모인다. 온갖 수다를 하다가 하나둘 간다. 머쓱하다가 마지막 풍산댁도 떠난다. 방이 마루로 바뀌었는데 그것도 너무 시끄러우면 아기가 낮잠을 못 잔다. 새댁 보기 미안해서이다. 그런데도 모여 들끓는 건 뭔가. 영수네 식구들 모두 사람 오는 걸 반기고 만남을 즐겨한다.

“아기를 재워야 일하제”

“토끼잠 재우고 손자를 데려와 보자”

영수 아들 범수는 기골이 장대하다. 장군감이다. 방글방글 웃을 땐 귀여워 못 산다. 풍산댁은 남의 손자 보고파 자주 오는 것 같다. 단양댁은 세상에 없는 손자라고 자랑삼아 안고 나오는데 오늘은 졸려서 칭얼대는가 보다. 건강하게 오래 사라고 범수라 지었다. 남편 일찍 여의고 장자도 요절하자 맘이 맺혀서이다. 마루에 눕혀놓고선

“고추를 쓰다듬는 게 일이다.”

“그러면 자다가도 다릴 쭉쭉 뻗는다.”

다들 집에 사랑이 있다. 또 새마을 사업 때 마을마다 회관을 가운데 짓고 상수도를 만들었다. 회의하거나 놀 때 쓰라고 지은 것이다. 오래도록 방치되어 지날 때 보면 외딴 곳간이나 빈집처럼 문풍지가 떨어져 너덜너덜하다. 어두컴컴한 방엔 뭣이 들앉아 있는 것 같다. 쓸모가 적어 버려지고 있다. 죽자사자 영수네 집이다. 어디가 그리 좋을까.

“꿀을 발라놨나.”

나이별로 간다. 식사 때 아버님 모시러 갔던 제일 위쪽 사랑채는 늙수그레하다. 다 돌아가시고 가운데 덕구네 집에서 들썩들썩했다. 거기 엉거주춤 덕구와 들어가선 담배 연기에 시달리고 왔다. 그 궁금한 탄약통은 열어 보이질 않는다. 거기 뭣이 있을까. 열어봤다간 혼날 것 같아 곁눈질로 보기만 했다.

“정말 터질까.”

“외출 땐 문을 걸어 잠그네”

얼마나 잎 담밸 피워대는지 자욱하다. 저 구석 사람이 안 보인다. 희미한 호롱불이 발갛게 가물거린다. 얘기들이 질펀해 좋았다. 처음 들어보는 말씀에 귀가 솔깃하다. 훈육 비슷한 얘길 하다가 너절한 말이 튀어나왔다. 삼룡이 아빠를 보고

“산판 때 일하러 왔다가 함바에 자면서 일 냈제”

“일성이네 딸을 건드렸어”

“그것도 저 담배건조실에서”

씩 웃으며

“그런 거 없어”

봄날 농사준비를 서두를 땐데 탄약통을 연다. 어쩌려고 저러나. 마타리 손잡이를 잡고 마루로 들고 와서 뚜껑을 만진다. 산 넘어 금광이 있는데 싸라기라도 담아놨나.

“뱀이다”

“누런 구렁이가 똬릴 틀고 있다”

저걸 안고 베고 잤나. 냄샌 안 날까. 소변보면 물기도 배 나올 텐데. 뚫고 나와 설설 이방 저방 나다니면 어쩌려고 아무튼 뱀은 징그러워 못 본다. 겨우내 안 죽고 살았나. 문양이 좋다지만 섬뜩해서 꼴도 보기 싫다. 머리는 세모고 까만 눈은 반들거리며 갈라진 혀는 널름널름 댄다. 꾸물꾸물 힘없이 움직인다. 주위가 시끄러워서인지 뭔가 귀찮게 구나 살핀다.

“어 무저워라”

“오래 굶어도 살았다”

그런 풍산 어른은 돌아가시고 어머니만 남겨둔 채 덕구 부부는 태백 탄광촌으로 갔다. 택시 운전을 한다니 강원도 아름다운 산천은 실컷 구경하겠다. 이젠 갈만한 사랑방이 없다. 영수네 마루뿐이다. 고모는 시름시름 앓다가 지난해 세상을 떴다. 영수 아들 황범수는 어느덧 이방 저방 걸어 다닌다. 단양댁은 손자가 귀여워 어찌할 줄 모른다.

영수가 몸살기가 있다며 어슬어슬 춥단다. 꿀물을 먹이고 쉬라 했는데 큰덕 밭을 마저 갈고 오겠다며 나갔다. 해거름에 「청소깝」을 한 짐 지고 들어와서 훌러덩 벗어놓고 방으로 들어갔다.

“아빠 저녁 칼국수다”

“애비야 열은 좀 내렸나.”

새댁은 절판에 홍두깨로 늘려나가는 일이 서툴다. 이 골짝에 들어와 처음 해 봤다. 가운데서 주물럭거려 가장자리로 밀고 나간다. 그러면 조금씩 길어지는데 붙지 말라고 콩가루를 뿌려야 한다. 펼치면 치맛자락처럼 펑퍼짐하다. 그걸 고이 접고 접어서 칼로 싹둑싹둑 썬다. 가늘어야 여러 그릇 나온다.

“꼬타릴 좀 끊어 도 구워먹게”

실파 간장에 풋고추를 썰어 넣으면 맵싸한 게 맛나다. 어린 배출 데쳐 풋풋하고 감자와 호박도 들어가 감칠맛 난다. 새댁 앞의 질그릇엔 가득한가 달라는 대로 퍼준다. 가족이 즐겨 맛있다며 드는 게 보기만 해도 배부르다. 범수가 쪽쪽 빨아당기며 먹는 게 신기하다. 콧등을 치며 들어가는 게 귀엽다. 다들 한 그릇 퍼뜩 해치우고 또 한 그릇 게눈 감추듯 한다.

“옹가지가 화수분이다”

“물로 배 채워 오줌싸겠네.”

해가 중천에 떴는데 영수가 일어나질 못한다. 곤한가. 새댁이 부엌에서 걱정스레 일한다. 수야는 부산하다. 소릴 지르고 집안이 들썩인다. 겨우 일어나 아침을 조금 떴다. 열이 내려가지 않는가. 얼굴이 푸석하다. 그래도 범수의 장난기를 보고 웃는다. 가을 김장 배추와 무씨를 뿌려야 한다며 가족들 겨울 채비를 걱정한다.

“다음날 해라”

“아님 갈아놨으니 오후에 고부 가서 뿌리마”

오전에 골 타고 이랑 만들어 놓겠단다. 큰덕과 산 아래 좌우 논밭이 많아 마을 사람 살기는 넉넉하다. 큰골에서 내려오는 여울물이 항상 끊이지 않아 가뭄 걱정이 없다. 마을 옆 논 가운데 우물을 퍼먹었다. 개구리 알이 있고 버들치가 다니며 가재가 설설 기는 논두렁 물이다. 어떨 땐 뿌옇다. 그런 물을 대대로 마시고 살았어도 배탈 나지 않았다.

“빨래하고 머리도 감는다.”

“그릇 갖고 와 설거지도 한다.”

“집안일을 다 쏟아놓고 까발리며 노닥거리다 간다.”

가끔 열나고 어지럽다며 드러눕는 영수는 그만그만하고 만다. 수야가 아버질 많이 위로한다. 그의 어리광에 아프던 것도 가신다. 한밤중에 열이 올라 새댁이 동동걸음을 친다. 수건에 찬물을 적셔 얹는다. 해열제를 먹인다. 헛소리할 때 되게 놀란다. 잠깐씩 정신을 잃는가. 열이 심하게 날 때 그렇다. 울컥 올리기도 한다.

“안동 큰 병원에 가 보자”

“보건소 약을 먹고 있어요.”

“그러다 괜찮아져요.”

감기처럼 시작했다간 낫곤 한다. 이번엔 꽤 오래 간다. 밤은 열나고 낮은 미열로 일하면서 지난다. 수야가 이마를 짚으며

“아빠 머리 아파”

할 땐 낫는 것 같다. 그러길 겨울 봄 내내 지나니 심상하다. 그러려니 하면서 무디게 지난다. 마루에 모여 얘기하면 빙긋이 웃으며 이불 걷고 나와 앉는다. 덕중이가

“어디가 나빠 싸매고 살아”

“감기야 낫겠지 뭐”

“내성 군청 부근에 한의원이 좋대 한번 가봐”

친구들도 걱정하며 위로한다. 불기 한약방에 들러 병 한약 한 재 지어먹었지만 그때뿐이다. 시름시름 아픔은 더해 갔다. 한밤중에 열이 나 가족을 힘들게 한다. 낮에는 일하라고 봐주는가 덜하다. 노모가 걱정할까 영수 부인은 끙끙거리며 혼자 애썼다. 녹용 인삼을 넣은 보약도 한 재 달여먹었다. 굵은 더덕과 도라질 삶기도 했다.

“내성한의원에 가 진맥하고 침을 맞았다.”

“숨이 차고 기침도 난다.”

할 일이 많은데 기력이 쇠해 선뜻 나서지 못한다. 누워 삐친다. 가물거려 잠만 자꾸 잔다. 구수골 못에 가서 낚시하던 게 자주 떠오른다. 버들치를 잡아 어탕을 해 먹던 게 생각난다. 그게 꿈에도 가끔 나타난다. 두 마리가 끌려올 땐 신났다. 너무 세게 당겨서 논 가운데 떨어졌다. 퍼덕거리며 도망가는 걸 줍는다.

“반짇고리의 바늘을 호롱불에 달궈 꼬부려 만들었다.”

“비늘 없어 빨리 당겨야 한다.”

그 위 폭포에 가끔 산돼지와 노루를 줍는다. 건너뛰다가 떨어져 죽은 것이다. 밭 가에서 알 갈비를 끌기 위해 잔 나무를 베내는데 꿩을 주웠다. 약을 먹고 여기 와서 죽은 것이다. 며칠 됐는가. 꾸덕꾸덕하다. 솔 갈비 짐에 알록달록 예쁜 꿩이 달랑거린다. 아버지와 형을 만나 화롯불에 구워 먹는 꿈도 보인다.

“사람도 낭떠러지는 위험한데 동물은 칠흑 그믐에 잘 빠진다.”

“사이나 먹은 꿩은 내장을 버려야 한다.”

아들 범수를 꼭 껴안고 잔다. 손목을 만지면 토실토실한 게 귀엽다. 볼을 막 비비면 수염이 따갑다고 기어나간다. 그런 부자 모습을 보는 아내는 벙긋벙긋 웃음을 보이며 흐뭇한 얼굴이다. 그럴 땐 아픔도 잊고 화색이 돈다.

비명을 지른다.

“수야 아빠가 잠든 게 아니어요.”

“숨을 쉬지 않아요.”

불심이 대단하고 보살계를 받은 덕중 모친 문단댁이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단숨에 내려왔다. 염불을 낭랑히 외며 깨어나길 빌었다. 승철 모친 감천댁도 달려왔다. 마을 사람들이 이른 아침에 마루와 사랑채에 그득하다. 어찌 된 거냐며 울음 섞인 목소리로 곡소리가 진동한다.

“나 죽어, 이넘아 너마저 가면 난 어찌 사나”

“어이구 어이구 내 팔자야”

“영수야 눈 떠라 떠봐--”

“에미 앞에 가는 게 어딨나.”

영수 어머님은 뚤뚤 구르며 바닥을 친다. 남편 전사하고 영호 어려서 죽었다. 너를 믿고 사는데 이게 뭐냐. 새집 짓고 대 이을 금쪽같은 손주 범수가 있는데 왜 이런 일이 생기나. 수야는 무서워 운다. 아빠 품에서 자다가 호들갑 통에 일어났다. 이불을 덮어쓰고 말이 없자 그만 냅다 울음보를 터뜨린다.

“아빠 일어나--”

삼우 지나고 친척도 모두 떠난 뒤 무덤을 찾았다. 수야 엄마는 엎드려 통곡한다. 남편 잃은 박복하고 칠칠치 못한 여편네라 대놓고 울지도 못했다. 큰골 입구 양달 진 곳이다. 조부모와 아버님 모신 곳이다. 주위에 형 영호와 고모 무덤도 가까이 있다. 수야는 무덤 주위를 뛰어다니다가 엄마가 큰절할 때 같이 숙인다.

“수야 아빠 없어 난 어찌 살아요”

“이제 내려놓고 편히 쉬세요”

“어머님 정성껏 모실게요. 수야 잘 키우---.”

뻐꾹 뻐꾹 아주 선명하게 들린다. 고요한 큰골 기슭 어디에서 낭랑히 울려온다. 범수 아빠인가 대답이다.

“범수 엄마! 일찍 가서 미안 미안해”

“어머님과 수야를 부탁해”

시무룩하고 파김치가 돼 지난 지 달포쯤 됐나 시어머님이 안방으로 부른다. 봉투를 내민다. 열어보더니

“어머 이게 무슨 돈이에요”

“적다. 집 짓는데 쓰고 얼마 안 된다.”

“왜 저를 주세요”

“범수는 내가 잘 키울게. 좋은 남자 찾아가거라”

어머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저는 여기서 살다가 이 집 귀신이 되겠습니다. 모시고 수야 잘 키우겠습니다. 부디 저를 내치지 말아주세요. 고마운 며느리 그 말에 왈칵 쏟아지는 눈물을 겨우 참는다. 내 욕심으로 붙들어서 만 리 같은 장래를 나처럼 망칠 수 있나.

“내일 아침 떠나거라”

“이 골짝일랑 잊고 살아라”

“네 필요한 옷가질 싸뒀다.”

범수를 안고 자다가 이게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기가 막힌다. 배 아파 낳은 새끼를 버리고 어찌 가나.

“할머니 말씀 잘 듣고 혼자 나가지 말아라”

“왜 엄마 어디 가”

“우리 수야 아프면 안 돼 건강해라”

뜬 눈으로 새우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울컥울컥 숨 막히게 울음이 나와 참을 수 없다. 눈물이 비 오듯 쏟아진다. 옷소매로 닦다가 치마를 올려 훔쳐야 한다. 서방 보내고 친정에 어찌 들어가나. 마을 사람들을 무슨 낯으로 보나. 팔자를 고칠 수 있나.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생때같은 내 자식을 두고 어딜 가나.

조손이 한 상에 마주 앉아 생선을 발라 먹여준다. 더듬더듬 받아먹는 수야를 보며

“잘 있어 엄만 간다.”

속으로 인사하고

“숭늉 가져올게.”

문 닫고 나왔다.

동네 사람 뜸한 틈을 타 얼른 나섰다. 아래 구빌 돌다가 돌아본다. 6년 가까이 살던 정든 집이다. 흐릿해져 볼 수 없다.

“새끼도 엄만 이리 가는데 인사도 없나.”

지나는 사람이 볼까. 섶 숲으로 들어가 한없이 울다가 쳐다본다.

“범수야 잘 있어.”

“아프지 말아야 해”

머리를 쓰다듬고 또 만진다. 반찬 묻은 입가를 손등으로 썩썩 닦아준다. 할미는 눈물로 손주를 바라보면서 밥이 입으로 넘어가나. 국물만 홀짝홀짝 삼킨다.

“수야 밥 먹고 거랑에 가재 잡을까.”

“엄마도 같이 가”

파도가 밀려왔다가 여지없이 쓸려가듯 엄마라는 말에 그만 휑한 게 찬 바람이 몰아친다. 짧은 순간에 하늘같이 높고 바다보다 넓은 이름이구나 번쩍 섬광이 인다.

“엄마 찾는 수야를 어찌 키울거나”

“가도 참 무심타. 가란다고 떠나나. 미련 피우고 떼쓰면 억지로 밀치겠나.”

내려가다가 학교 앞에 멈칫 섰다.

“범수야 곧 여길 다니겠네”

“그때 앞에서 기다릴게”

“보자 꼭 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