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카봉

[권오훈]

셀카봉

                                                                                                                             권오훈

  사진 찍기에 매달려 정작 보고 즐기기는 소홀한 사람들, 여행을 가든 행사를 하든 남는 건 사진뿐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카메라 앞에서 열심히 포즈를 취한다. 포즈를 취하는 모습이 유명 모델이나 연예인 못잖다. 나는 카메라 앞에 서면 늘 어색하다. 카메라 셔터는 열심히 누른다. 아내는 좋은 경치를 눈에 넣고 가슴에 담아갈 것이지 왜 그렇게 사진에 집착하느냐고 한다. 여행 목적이 구경하고 즐기는 것인지 사진 찍는 것인지 의문스럽단다.

  전문가 수준은 못되지만 나는 똑딱이 카메라로 스냅사진 찍기를 즐긴다. 딸아이 태어나면서 구입한 S사의 미놀타 카메라 구입부터 시작하여 용량을 키워가며 디지털 카메라를 세 개째 구입했다. 많은 사진들 덕분에 아이는 자기 어린 시절을 회상할 수 있고 사랑을 듬뿍 받은 걸 알겠다고 고마워한다.

  찍은 사진은 재미있는 상황설명까지 곁들여 단체 카페 앨범 방에 속속 올린다. 다른 이들은 찍고도 올려주지 않으니 내게 찍히고 싶어 한다. 어느새 나는 어느 모임에나 카메라맨으로 낙인찍혔다. 내가 올린 사진에 달린 댓글을 보며 흐뭇해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뭔가 아쉬움이 남았다. 내 모습이 찍힌 사진은 거의 없지만 어쩌다 다른 사람이 찍어 올린 내 사진은 내 기대수준에 맞지 않았다. 심지어는 굴욕적인 모습도 올려 있다. 지금은 사진작가 수준인 동생과 부부동반으로 하롱베이- 앙코르왓 여행을 갔을 때다. 내가 찍은 배경과 피사체 인물의 시선, 인물구도가 조화를 이룬 동생 내외의 사진과 그가 찍어준 우리 부부의 사진을 카페에 나란히 올렸다. 사촌 누나가 보고 동생내외는 연예인 뺨치게 멋있다고 극찬의 댓글을 달았다. 은근히 부아가 나고 동생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내가 찍은 사진을 돌려 보여주며 구도와 각도를 가르쳐 주었는데도 우리 부부 사진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솜씨 좋은 이발사의 비애가 떠올려졌다. 두 이발사가 근무하는 이발관의 이발사 머리는 서로 깎아주는데 솜씨 좋은 이발사의 머리는 언제나 우스꽝스럽다.

  내가 찍어 올린 사진 속에는 사람들이 배경에 맞는 구도와 멋진 포즈로 찍혀 있지만 그 속에 정작 내 모습은 없었다. “자네는 찍어 주기만 하고 사진에는 없네 그려” 란 말에 “나도 사진 속에 있는데 착한 사람 눈에만 보이지” 라며 애써 아닌 척 했다. 간혹 찍어주겠다며 카메라를 뺏어들고 찍어주지만 성에 차지는 않았다. 나에게는 나 자신을 숨기고 남을 높이는 희생정신을 찾아보기 어려웠던가.

  공전의 히트 상품인 셀카봉이 출시되었다. 유명 여행지마다 젊은이들이 들고 다니며 직접 자신의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동생들이 나의 회갑기념 가족여행을 마련해줘서 부부동반 강원도로 여행했다. 신세대 축에 드는 막내 동생이 셀카봉을 가져와 여덟 명 형제부부가 남에게 부탁하지 않고 한 화면에 옹기종기 사진을 찍었다. 아쉬운 건 타이머 작동으로 순간포착이 어렵다는 것이었지만 나름대로 괜찮아 보였다. 흥미 있어 하는 나를 보고 둘째 동생이 휴게소에서 리모컨이 딸린 것을 선물로 사주었다.

  사진 찍기가 달라졌다. 거의 모든 사진에 내 모습이 포함되었다. 그것도 사진의 중심에. 내가 구도를 잡고 내게 최적의 순간에 리모컨 셔터를 누르니 그야말로 “따봉”이다. 언제 어디서나 남에게 부탁할 필요 없이 스스로 포즈를 취하고 배경과 구도를 맞춰 셔터를 누르면 된다. 그야말로 나를 위해 발명된 제품이다.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니다. 내가 봉을 잡고 찍으니 거리가 충분하게 확보되지 않아 전신사진을 찍을 수 없다. 상반신만 잡힌다. 배경의 폭도 제한적이다.

  등단지 출신 작가들의 하계세미나 때는 그야말로 절정의 위력을 발휘했다. 해상도 높은 카메라 기능을 탑재한 최신 스마트폰을 셀카봉에 장착한 나는 의기양양하게 행사장과 문학기행 장소를 누비고 다녔다. 함께 찍고 싶은 작가에게 다가가 양해를 구하고 포즈를 취한 후 셔터를 눌렀다. 다른 작가들이 단체사진 찍는 가운데로 성큼 뛰어들어 리모컨을 누르기도 했다. 그야말로 사진 찍기에는 무소불위의 위력을 발휘하는 신병기였다. 바야흐로 내가 세상의 중심에 선 기분이었다. 찍은 사진들을 호기롭게 카페에 올렸다. 카페는 온통 내 사진으로 도배되었다.

  카페에 올린 사진의 가장자리에 섰던 여성작가 한분이 자신의 모습이 반쯤만 나온 사진을 보고 “어머나 내 반쪽, 찾아주세요” 란 댓글을 올렸다. 읽는 순간 아차 했다. 뜨거운 긴을 씌운듯 후끈 얼굴이 달아올랐다. 강한 햇살 때문에 선글라스를 끼고 찍다보니 화면이 잘 안보여 잘린 걸 미처 몰랐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자기의 취향과 수준대로 피사체를 앵글에 담는다. 피사체는 찍는 이의 처분에 자신을 맡길 수밖에 없다. 나는 그것을 마뜩치 않게 여겨 셀카봉을 애용한 것이다. 찍히는 입장과 찍는 입장이 동시에 될 수 있는 셀프카메라는 어쩌면 자기중심적인 도구이다. 자신을 중심에 두고 자신을 최적의 상태로 찍으려는 이기심으로 자칫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잃지는 않았는지.

  L작가가 찍은 사진들을 카페에 올렸다. 그는 전문사진작가다. 아웃 포커스, 줌인, 줌아웃과 접사, 연속촬영 등의 사진기법들을 구사할뿐더러 카메라와 렌즈도 전문가용이다. 생동감 넘치는 화면을 포착하여 작품성 있는 사진을 올렸다. 프로필사진으로 고맙게 활용하겠다는 댓글도 보인다. 그의 사진에는 셀카봉을 든 내가 가운데 서있고 짤렸던 가장자리의 여자분도 온전한 모습으로 찍혀졌다. 그가 올린 어느 사진에도 그의 모습은 없다.

  세상의 중심이라 기고만장했던 나는 사진 속에서만 중심일 뿐, 진정한 중심은 남들의 모습을 성심껏 찍어서 프로필 사진으로 사용할 수 있게 올려준 그가 아닐까? 찍힌 사람은 찍어준 사람을 사진 속에 담는 것이 아니라 가슴속에 담아둘 것이다. 가슴속 그의 모습은 오래토록 기억될 것이다. 나도 한 때는 그런 마음이었는데 셀카봉을 가지면서 변질되었다. 저 잘난 듯 아무 사진에나 얼굴 드러낸 나란 사람, 이기심과 자기과시의 표상인 사진 속의 내 모습이 참 작아 보인다.

2009년 <수필과비평> 등단

대구문인협회, 대구수필가협회, 영호남수필문학회, 수필과비평작가회의 회원

수필집 <가지 않은 길을 보다>, omejong@hanmail.net

010-5230-1633 대구시 달서구 상화로58길 86, 107동1201호(도원동,롯데캐슬레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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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

떨어져야 할 때 떨어지지 않은 갈참나무의 떨켜에 많은 공감을 보냅니다. 나도 그런 시절에 직장생활을 하다가 결국에는 밀려나왔지요. 나이가 많다는 이유 하나로....

[권오훈]

죄송합니다. 신작으로 바꿔치기했습니다. 떨켜는 다른 곳에 발표한 작품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