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이 여행을 좋아해서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 30대 때는 산악회(우리들의 산)에 가입하여 명산을 두루 섭렵하였고, 40대 때는 국제신문사와 지금은 문을 닫아버린 부산의 향토기업인 동보서적에서 주체했던 문학기행을 통해 문학적 향취가 있는 곳들도 두루 살폈고, 여건이 주어지는 대로 해외여행도 웬만큼은 하였다.
그런데 수많은 여행 중에 가장 가슴 깊이 남는 여행은 혼자서 떠난 두 번의 여행이다. 그 첫 번째는 한용운 선생님이 독립자금을 숨긴 곳으로 알려진 다솔사를 다녀 온 여행이고, 또 다른 한번은 지리산 쌍계사 부근으로 차 (茶) 꽃을 보러 간 여행이다.
혼자서 다솔사 여행을 다녀 온지는 벌써 30여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그 여행에서 내가 보고 느꼈던 것들은 아직도 내 속에 오롯이 남아있다. 나는 학교를 졸업하고 20대 때, 광안리에 살던 재종 언니 집에 얹혀살며 중앙동에 있는 사무실로 출퇴근을 했다. 출근길에 광안리 동방오거리에서 탄 버스는 남천동 대연동을 거쳐 문현동을 빠져나와 자성대를 휘돌아 부산진시장 조금 밑으로 있는 고가 도로 위를 달렸다. 그런데 그 고가도로를 지날 때마다 부산진역에서 뻗어 온 기차 레일이 늘 여행에 대한 내 동경심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비라도 내려 기차 레일이 젖어있는 날에는 여행에 대한 갈망이 극한으로 치달아 출근을 그만두고 그만 부산진역에서 내려 여행길에 올라 버릴까 싶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봄비가 그친 일요일 아침, 나는 무작정 부산진역으로 가서 안내판에서 역명을 훑어보고 가장 마음에 와 닿는 역명 한 곳을 여행지로 잡고 떠나게 되었다. 그곳이 바로 다솔사역이었다. ‘다솔사역에서 내리면 多率寺는 멀지 않으리라.’그 곳은 광주행 구간에 있는 한 지점이었다. 열차표를 구하고 기차에 올랐다. 급할 것이 없는 완행열차는 느릿느릿 봄 들판을 가로질러 서너 시간이 지나고서야 들판 가운데 역사도 역무원도 없는 다솔사 간이역에 나를 내려 주고 산모퉁이를 돌아 사라졌다.
그 역에서 내린 사람은 오로지 나 한사람뿐이었다. '다솔사역'이라는 역명을 알리는 이정표 외엔 그 무엇도 없었다. 들판 한가운데 있는 텅 빈 역에서 사방을 한 번 휘 둘러보는 내 눈에 그리 멀지 않는 마을에 하얀 꽃이 무더기로 핀 거대한 이팝나무 한 그루가 보였다. 나는 그 꽃나무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10여분을 걸어 당도한 마을 입구의 이팝나무는 이미 고목에 가까울 만큼 수령(樹齡)있어 보였는데 온 동네가 다 환하도록 주저리주저리 하얀 꽃을 달고 서 있었다. 비까지 살짝 내린 늦봄의 한적한 그 마을을 한 바퀴 휘돌아 논두렁도 걷고 산길도 걸어 물어물어 다솔사 입구에 들어서니 절에서 이른 저녁을 짓는지 피어 오른 연기가 대웅전 뒤 비에 젖은 대나무 밭을 지나 뒷산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경내를 찬찬히 둘러보고 발길을 돌리니 절 앞에는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삼나무들이 마치 사열이라도 하듯 서 있었는데 비에 젖은 삼나무에서는 싱그러운 나무냄새가 흘러 나왔다. 한참을 더 걸어오다 절에서 내려오는 차를 얻어 타고 곤양으로 나와 돌아오는 길에는 버스를 타고 왔다.
그리고 또 한 번의 혼자 한 여행은 그로부터 몇 년 후에 쌍계사 쪽으로 茶 꽃을 보러 간 여행이었다. 막 녹차 맛을 알아가던 무렵 차나무도 꽃이 핀다는 기사를 신문에서 보고 그 꽃이 궁금하여 떠났던 것인데 그 곳에서의 경험들도 어제의 일인 듯 선명하다. 그 때는 늦은 가을이라 쌍계사 가는 길에 박경리 선생님 토지의 무대가 되었던 악양 마을 앞 섬진강가의 벚나무들은 붉디붉게 물들기 시작했고, 서쪽으로 기우는 저녁 햇살은 섬진강물에 한 무리 은어 떼의 군무를 연출해 놓고 있었다.
쌍계사 근처의 차 밭에서 본 茶 꽃은 가지와 잎 사이에 한 쌍씩 핀 것도 있고, 한 개씩 달린 것도 있었다. 작은 것은 좁쌀 크기만 한데 푸른 잎 색에 가깝고, 꽃이 클수록 색이 점점 엷어져 중간 크기의 것은 꼭 완두콩 같았다. 꽃이 핀 것은 다섯 장의 하얀 꽃잎이 꽃술을 감싸 안은 듯 안쪽으로 오므라져 피었는데 그 속에 노란 꽃술이 가득 찬 게 엄지 손톱만하지만 모양은 동백과 흡사했다. 꽃구경을 하고는 마당에 소국이 지천으로 피어 있던 민박집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따뜻한 구들목에 배를 깔고 여행지에서 책을 읽고 글을 썼던 것이며, 차 꽃 보러 온 여행이라는 말에 수더분한 주인 아낙이 저녁상을 물린 후에 갖다 주던 녹차 한 잔의 향기도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혼자 여행을 한 덕분인 것 같다. 여럿이 여행을 하다보면 함께 간 동행이나 지인에게 마음을 나누어주어야 해서 내가 보아야할 대상에 오롯이 빠져 들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혼자 여행은 철저히 내가 보는 대상에 몰입할 수 있어 그 대상에 대한 인상이 오래 간다. 그리고 마침내는 그 사물과 더 불어 내 본연의모습도 들여다보게 되는 것 같다. 앞으로도 가끔씩 혼자 여행을 떠나야겠다. 내 자신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삼기위해서라도.
첫댓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혼자하는 여행 디기 운치 있고 나도 억수로 좋아합니다~!~^^
둘 서이 너이서 하는 거도 재미나지만 나는 억지로 같이 갈 동행자를 구하진 않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
해외여행 혼자서 참 많이 다녔네요~!~^^
회장님은 중국에 딴살림차렸느냐고 핀잔을 주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
홋가이도를 혼자 갔더니 어느 교회 여자성도들이 무더기로 와서 한 삼일 겪어보더니
내가 싱글이라 단체사진을 잘 찍어 주엇죠~!~^^오는 날 버스에서 나를 빙 둘러 앉더니 왈:
혼자 사시는 거 같은데 저거교회에 딱~ 안성맞춤 과부가 하나잇는데 선생님하고 너무 잘 어울리겟다며
선을 함 보지 않겠냐고 그럽디다~!~^^ ㅋㅋㅋ
떡 줄사람은 꿈도 안 꾸는데 이 양반들이 김치국물부터 먼저 마시는 걸 보고 참참참~~~
실망시키기가 넘넘 어려운 일이지만 나는 기러기아빠라 혼자서 여행 잘 다닌다고 했더니 그 실망감이란~~~^^ 우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ㅏㅏㅏㅏㅏㅏ
꼭 행세가 싱글 같아서 영판 맞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넘 실망하는 모습을 보고서 나도 그만 미안해서 쥭을 뻔 했다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행 갈 동행을 억지로
구할 필요가 없는 것 맞습니다.
우리는 가끔 혼자 있는 시간을
필요한데 그 시간에 여행을 할 수 있다면 그 보다 더 좋을 수 없겠지요. ^^
@15/류지걸 선배님, 은근 싱글로 보이시고 싶었던
건 아니었는지요. ㅎㅎ
그 여자분들 실망하는 모습이 눈에 선 합니다.
선배님처럼 두루 갖춘 분이 임자가 있으시다니 그 실망 이 오죽 했겠습니다. 혼자 사시는 싱글 분과 잘
되었으면 중매 했다는 핑계로 멋진 선배님을 언제던지 볼 수 있었을 텐데. ㅋㅋ
@22회 초승달 그건이니고 내가워낙 여성들을 한의원에서 많이 대하니 참 아무나편하게 지낼수가 있어요~^^ㅋ
단체사진들 또 웃끼놓고 찍사노릇해주니좋아할수밖에~^^ㅋㅋ
오늘도 좋은저녁 엮어시고 평강이 충만하시길~~^^ㅎㅎㅎㅎㅎㅎ
@15/류지걸 예, 선배님 부산에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비가 조금 내립니다.
조금 전에 우산을 쓰고 울 양반이랑
텃밭에 다녀 왔습니다.
가뭄에 목 말랐을 풋것들 비 맞는 거 보려구요. 선배님도 평온한 저녁 맞으시길 바랍니다. ^^
@15/류지걸 원장님 댕기면서 과부들 울리고 하마 아니되옵니더 ㅎㅎㅎㅎㅎ
@16회 임종복 과부친구들이 앵통~~^^
과부는 안 울렸습니데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5/류지걸 과부는 안 울리셨지만 과부 친구들을
울리셨으니 도진개진 아닌가요? ㅋㅋ
@22회 초승달 달님아~가만이 보마 과부는 회장님이 잘울릴 스타일이데이~^^
우하하하하하하하하하ㅏㅏㅏ
헤헤~이~차가왜이리밀리노
ㅊㅊㅊㅊㅊㅊㅊㅊㅊㅊㅊ
여행기를 읽고나니 다솔사 여행기는 단편영화의 시나리오로도 손색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광수생각입니다.
글 잘 쓰시는 분들이 부럽습니다.
과찬의 말씀이시지만
감사합니다. 다솔사는 꼭 한 번 더 혼자서 가보려고요.
그때의 그 고즈넉함들이 그리울 때가 많습니다. ^^
혼자만의 여행!
꿈꾸긴 했으나 한번도 실행에 옮겨보지 못했는데 용기있는 울 친구 달님은
두번이나 다녀왔구나!! 역시 멋진 친구야~~^^
달님아, 한 편의 정갈한 수필을 본 느낌이 든다. 고운 글 잘 봤어~~!!^^
미소야,
꿈을 한 번 실천해 봐.
꼭! 너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시간이 될거야.
댓글 고마워.^^
간도 크다
여자가 혼자 댕기는 것 보면 내가 겁나더라~
우기가 있는 날 산에 혼자 갔다가 여자를 만나면 머리 끝이 뻐떡 쓰든데 ㅎㅎㅎ
사실은 두사람이 다녀도 뜻이 달라 자기가 보고 가고 느끼고 싶은 것을 만끽 못하고 다니니까 혼자 여행이 젤 자유롭고 한번 쯤 나를 돌아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닌가 생각하네 ㅎㅎㅎ
회장님,
정말 간 큰 여자들은
산에 혼자 가는 사람들이고예
지는 간이 작아서 안전한 곳만 혼자서. . .
ㅋㅋ
@22회 초승달 엉간하마 산에는 혼자 가마 안되겠더라
우리 동네에서도 몇 년전 여자 혼자 간크구로 산에 댕기다가
불미스런 일이 있었다 아이가~~ 세상이 험하니 무섭기는 하다 그자?
여자들이 맘 놓고 다닐라카마 남자들이 잘해야 되는데
이상한 남자들이 와그리 많습니꺼~~~~ 에휴
멀쩡한 남자들까지 덤태기로 욕먹게 하는 그런 나뿐 늠들은
말카 가다뿌야 됩니더~~~ !!!
@22회 밝은미소 안 이뿌마사고안난다~^^울 둘째는 좀 근량이 나가서 늦게들어와도 걱정은안한다~^^ㅋㅋㅋㅋㅋㅋ
@15/류지걸 도시한복판이라 그런거 아닌가예? 호신술이라도 배우라 카이소 세상이 하도 얄궂어서예~~~
@15/류지걸 형님! 빵~~ 터졌십니더....ㅎㅎㅎ
지가마 둘째 따님한테~~ 꼰질러 바치뿌까예....
아~~1그래서 뒷산에 올라가마 혼자가는 여성들이 힐끔힐끔 경계를 하는구나..
나는 아무짓도 안했는데 말입니더....
선배님은 타고난 시인이네예~~
지는마 2명이상이 좋던데예...아직은 혼자서 여행을 안가봐서...
외롭지는 안켔십니꺼?
후배님, 혼자도
함 가 보이소.
또 다른 맛이 .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