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민들의 숙원인 수원고등법원 설치 법안이 정치계·시민단체·경기도와 수원시가 혼연일체로 각고의 노력끝에 8년만에 통과돼 도민들이 헌법상 보장된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게 됐다고 밝히는 장성근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장. /임열수기자
2006년부터 변호사회·지역의원·시민 노력 '경기도 숙원' 설치 법안 지난달 국회 통과 도민 항소장 들고 서울行 경제적부담 덜어 변호사 선임료 인하·상권활성화 효과볼듯
위치·예산규모 미정… 2019년 본격가동 예정 지법과 떨어진 최초 고법 관계부처 협의 중요 "도민 사법권리 위해 북부에 원외재판부 둬야"
"경기도의 사법 독립을 이뤄냈다."
경기도민들의 숙원인 수원고등법원 설치 법안이 지난달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번에 통과된 법안은 '각급 법원의 설치와 관할 구역에 관한 법률 개정안'으로 수원고등법원과 수원가정법원 신설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법안 통과에 따라 앞으로는 도민들이 1심에 불복, 항소할 경우 소장을 들고 상경하는 웃지 못할 풍경은 이제 없을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는 물론 정·재계, 도민들까지 너나 할 것 없이 법안 통과를 반기고 있는 가운데 그 누구보다 기뻐한 사람은 바로 장성근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장.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는 지난 2006년, 제17대 국회 때부터 당시 가칭 '경기고법' 설치를 위해 뛰었지만 법안은 계속 표류했다.
매번 법안은 자동폐기되기 일쑤였고, 주무부처인 법원행정처와 기획재정부는 3천여억원에 달하는 재원조달 문제에 이견을 보였다.
그러나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가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무려 8년 만에 법안이 통과됐다. 그 결실을 보기까지의 과정을 장성근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장을 만나 들어봤다. |편집자 주
-수원고법 설치에 관해 소감 한마디 해 달라.
환영, 또 환영이다. 수원고법 설치 법안이 통과된 것은 경기도민의 꿈이 현실이 된 것과 같다. 인구 1천250만, 경기도는 서울보다도 인구가 많은 지자체다. 경기도에 고법이 없다는 것은 법이 추구하는 바와도 배치된다. 사법 절차적 기본권은 경기도민들도 타 지자체 주민들과 똑같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도민들은 지금껏 헌법상 보장된 권리를 보호받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다. 도민들은 항소장을 들고 서울을 오갔고, 변호사도 서울 변호사를 선임해야 했다. 도민들은 더 비싼 선임료를 내고도 푸대접을 받아가며 소송을 진행해야 했다.
이에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에서는 지난 8년간 고등법원 설치를 위해 뛰었다. 이 과정에서 언론의 뜨거운 관심이 큰 힘이 됐고, 그 힘으로 8년간 고등법원 설치 입법 운동을 펼칠 수 있었다. 또 정치인을 비롯해 시민단체, 도와 수원시가 혼연일체로 노력해 소중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입법을 위해 국회를 수십 번도 더 오가면서 느낀 점은 국회가 참 멀다는 것이었다. 사실 수원 사무실에서 국회까지는 가까운 거리다.
수원역서 무궁화호 타고 영등포역까지 간 뒤 택시 한 대 잡아타면 기본요금만 내고도 도착할 수 있다. 물리적으로는 이렇게도 가까운 거리지만, 심리적인 거리는 너무나도 멀게 느껴졌다.
수원고법 설치 노력은 지난 17대 국회 때부터 시작됐다. 당시 이기우 의원 등 국회의원 44명은 2007년 6월 '서울고법 관할구역에서 경기도를 빼고, 광교신도시에 경기고법을 설치한다'는 내용이 담긴 법률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이 개정안은 법사위조차 통과하지 못하고 회기 종료와 함께 2008년 자동 폐기됐다.
18대 국회에서도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8년 7월에는 정미경 의원이 가정법원을 설치한다는 내용을 추가해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이 역시 2012년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매번 같은 상황이 반복되자 19대 국회에서도 마찬가지 아니냐는 우려가 많았다. 김진표·원유철 지역 국회의원들의 노력에도 개정안이 법사위에서 표류했기 때문이다.
또 법원행정처 등 관계부서도 고민이 많았다. 우선 판례의 통일성이 깨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현재 고법은 서울, 부산, 광주, 대구, 대전 등 5곳이다.
그런데 수원고법이 설치되면 재판부는 늘어나는 셈이 되고, 자연히 판사 숫자도 증가해 재판부 판단이 난립한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단 한 번이라도 개정안이 본회의에 상정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계속 뛰었다. 그러던 중 법원행정처에서 지난해 5월 영통구 기재부 소유의 땅을 수원고법 부지로 물색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수원고법, 왜 꼭 필요한가.
우리나라에서 고법이 마지막으로 설치된 해는 1992년이다. 대전고법 설치 이후 20년 넘도록 고법이 생기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수원지법에서 항소한 사건은 수십년째 서울고법에서 관장, 서울고법의 업무량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은 상태다.
우선 인구를 보면, 서울고법이 관할하는 서울, 인천, 경기 등 수도권과 강원까지 2천600만명을 넘는다. 서울고법 관할 인구가 전체 인구의 50%를 초과하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서울고법의 항소심 접수사건 수는 연간 4만건에 육박하는 실정이다. 수원고법의 부재로 서울고법의 업무가 과중되는 문제는 어쩌면 필연적이었다.
특히 서울고법서 처리되는 사건 중 수원지법 사건이 20%를 차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내에는 원외재판부마저 없었다.
원외재판부는 제주, 전주, 청주, 춘천, 창원 등 고법이 없는 광역지자체에 모두 있지만 경기도만 역차별 당해 온 것이다.
잠재적 사법 수요까지 합치면 더 많은 도민이 불편을 겪었을 테다. 고법이 서울에 있어 항소를 염두에 두고 소송을 벌이는 경우 애시당초 서울에 소장을 제출한 도민들도 다수이기 때문이다.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 서울고법의 업무 분담을 위해, 특히 도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수원고법 설치는 반드시 필요했다.
-효과와 전망은?
수원고법이 오는 2019년부터 본격 가동에 들어가면 서울고법 업무의 20% 이상이 수원고법으로 내려온다. 이렇게 되면 도내 변호사 수임료는 수백억원까지 증가할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경기남부지역 변호사는 670여명인데, 사건 수요가 늘어나면 자연히 변호사 숫자도 더 증가하는 것은 물론 대형로펌의 진출에 따라 변호사 시장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대신 도민들의 변호사 선임료는 낮아지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고법과 고검을 넘나들며 활동하는 변호사들로 인해 민원인들이 받는 서비스의 질도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또 경기도 출신 변호사는 최근 증가추세로, 도민들은 해당 지역사정에 밝은 변호사들에게 사건을 믿고 맡길 수 있을 것이다.
이 밖에 국내 변호사 1만5천여명 중 70% 이상이 서울에서 활동하는 기형적인 구조에서도 탈피할 수 있게 된다.
가시적인 경제효과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수원고법은 아직 법안만 통과된 상황이라 정확한 예측은 어렵지만, 서울고법과 비슷하거나 더 큰 규모가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자연스레 고법과 고검 주변에 상권이 형성되고, 소비 규모도 커져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보탬이 될 것이다.
또 고법과 고검에는 판사, 검사, 일반직 직원까지 수백여명이 상주하게 된다. 수원지법과 지검만 있었을 때에는 순환근무체계로 매년 인사발령이 있어 이들에게 수원은 단순히 거쳐가는 곳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앞으로는 인사교류가 있다고 해도 지법과 고법, 지검과 고검을 오가게 돼 수원에 상주하는 직원들이 크게 늘어날 것이다.
로스쿨생들도 혜택을 볼 수 있다. 현재 로스쿨 입학 정원은 2천명으로 고법 중심으로 인원이 배정되는데, 현재 도내에는 아주대에만 50명 정원의 로스쿨이 있다.
향후에는 수원고법이 들어선 도의 위상에 걸맞게 로스쿨 정원도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선전담 변호사의 경우에도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에서 20명을 신청했지만 단 한 명도 안 됐다. 마찬가지로 고법 설치 후에는 상황은 역전될 가능성이 높다.
-남은 과제는?
이제 막 법안이 통과됐다. 아직 수원고법의 위치와 규모, 예산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현재 설계가 진행 중인 수원지법, 수원지검의 광교 신청사에는 함께 입주할 수도 없게 될 터라 지법과 고법이 따로 떨어져 있는 최초의 고법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는 데에 우선 힘써야 한다.
수천억원의 예산이 들어가는 사업인 만큼 토지를 무상으로 제공받고, 교통요지를 물색해 민원인들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넓은 부지 확보도 필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는 물론 국회의원, 경기도, 수원시, 시민단체 모두 법안 통과에 안주하지 말고 초심으로 돌아가 고법이 설치되는 날까지 혼연일체가 돼 뛰어야 한다는 점이다.
수원고법 설치가 늦춰지지 않도록 계획을 꼼꼼히 짜 법원행정처, 법무부 등 관계기관과의 긴밀한 협조도 필요하다.
또 경기북부지역에 대해 관심을 쏟아야 한다. 수원고법 설치 법안이 통과됐지만, 의정부지법은 수원고법 관할구역이 아니다. 도민들의 사법권리를 온전히 되찾기 위해서는 경기북부에 원외재판부를 둘 수 있도록 남은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장성근 회장은?
▲건국대 법학과 졸업 ▲사법시험(24회) 합격 ▲사법연수원(14기) 수료 ▲해군 군법무관 ▲수원지검 검사 ▲변호사 ▲경기사회복지공동모금회 부회장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 회장 ▲경기도 고문변호사 ▲수원지방법원 조정위원 ▲수원경실련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