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 - 김민정(1976~ )
예컨대
미용실 옆자리에 앉은 여대생이
가수 현미처럼 파마해주세요라고 주문할 때
예컨대
택시를 타고 남가좌동 명지대를 가는데
서울31바9896남진우 기사 이름이 하필 그럴 때
예컨대
베이징 올림픽 남자 핸드볼 경기에서 해설자가
조치효 선수 참 좋지요라고 말장난을 칠 때
예컨대
쿠싱증후군에 걸린 둘째 이모 양미미씨가
아침에 짠 스웨터를 밤에 죄다 풀며 죽어갈 때
학창 시절 한 집의 가훈이 정직이면 대개 그 집안이 정직에 맺힌 게 있고 성실이면 성실과는 거리가 있는 법이라고 그래서 자기 집 가훈은 정직과 성실이라고 흰소리를 하던 친구가 있었다. 나는 신문과 방송에서 통합, 대화 따위의 말을 들으면 그 친구 생각이 난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 사회의 훈은 소통일 것이다. 세대, 지역, 종교, 성별 등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경계와 장벽들 간의 소통. 시인은 소통 대신 ‘콜’이라고 한다. 여대생이 가수 현미 파마를 주문하는 미용실에서의 콜, 남가좌동 명지대를 가는 택시 운전기사 이름이 명지대 문창과 교수인 남진우 시인과 동명인 기막힌 우연의 콜, 멋진 경기를 펼치는 조치효 선수의 이름을 참 ‘좋지요’라고 변주하는 경기해설자의 기분 좋은 콜, 쿠싱증후군에 걸린 이모가 아침에 짠 스웨터 올을 풀어 가며 편안히 눈을 감는 콜. 이질적인 것들이 차이를 딛고 통하게 하는 인천 촌년 김민정 시인, 맨날 안 통한다던 우리, 오늘 아침에 간만에 콜이다, 콜! [곽효환, 시인·대산문화재단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