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론의 멸망
1절.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 |
요한은 하늘에서 다른 천사가 내려오는 것을 보는데, 그 천사는 큰 권세를 가졌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천사일 것입니다.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집니다. 에스겔 43장 2절의 반영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으로 다시 돌아오고(43장 2-9절) 온 땅이 그 영광으로 빛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천사의 영광은 하나님의 영광을 반사하는 모습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2절. 힘찬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며.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
힘찬 음성은 권세 있는 음성입니다. 아주 권위 있게 선포를 합니다.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며” 이미 요한계시록 14장 8절에 바벨론의 붕괴를 말씀하셨습니다. 바벨론은 반드시 무너집니다. 붕괴가 됩니다. 이사야 21장 9절의 반영입니다. “함락되었도다. 함락되었도다. 바벨론이여. 그들이 조각한 신상들이 다 무너져 땅에 떨어졌도다.”고 하였습니다. 바벨론 멸망에 대한 선포의 말씀입니다. 예레미야 51장 8절에도 “바벨론이 갑자기 넘어져 파멸되니”라고 하였습니다. 바벨론은 그 죄악으로 붕괴되었습니다.
바벨론이 귀신의 처소(소굴), 각종 더러운(혐오스러운) 영이 모이는 곳(감옥),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썩은 고기를 먹는 새일 것) 모이는 곳(감옥)이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처소와 대조가 됩니다. 구약에서 황폐함을 표현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사야 13장 21-22절, 예레미야 50장 39절을 연상하게 합니다. 이사야 13장 21-22절에 “오직 들짐승들이 거기에 엎드리고 부르짖는 짐승이 그들의 가옥에 가득하며 타조가 거기에 깃들이며 들양이 거기에서 뛸 것이요, 그의 궁성에는 승냥이가 부르짖을 것이요 화려하던 궁전에는 들개가 올 것이라. 그의 때가 가까우며 그의 날이 오래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황폐화 된 도시를 묘사하였습니다. 악한 영들의 소굴이 되고 악하고 부정한 것들이 가득한 황무지가 된 모습입니다. 바벨론을 닮은 세상은 붕괴되고 황폐화 될 것임을 가르쳐 주십니다. 죄악은 황폐함을 가져옵니다.
3절.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로 말미암아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인들도 그 사치의 세력으로 치부 하였도다 하더라. |
만국이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로 무너집니다. 음행으로 만국이 악한 바벨론과 함께 멸망합니다. 바벨론만 멸망하고 몰락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바벨론의 죄악에 가담한 만국도 무너집니다.
왜 멸망합니까? 음행과 사치 때문입니다. 음행은 우상 숭배가 중심에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땅의 상인들은 로마 제국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엄청난 상품을 판매하였습니다. 그들은 물질주의의 사치를 누렸습니다. 무절제한 방탕에 빠지고, 물질을 과시하는 풍조를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허영심으로 살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무너집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부가 하나님의 심판을 막아낼 수 없습니다.
4절.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
요한은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는 것을 듣습니다. 그 음성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음성입니다.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 재앙들을 받습니까? 죄 때문입니다. 그 멸망 받을 도시 바벨론과 함께 하지 말고 거기에서 나오라고 하십니다. 창세기 19장에는 죄악으로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는 사건이 나옵니다. 그 성이 멸망할 때 성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하십니다.(창 19장 12-13절) 롯의 사위들은 그 말씀을 농담으로 여겼다가 소돔의 멸망과 함께 심판을 받았습니다. 바벨론에서 나와야 한다는 말씀은 예레미야 50장 8-9절, 51장 6-9절, 45절, 이사야 48장 20절, 52장 11절의 반영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부패한 사회, 죄악의 도시에 참여하지 말아야 합니다. “죄에 참여”하지 말아야 합니다. 죄에 참여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심판에, 멸망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6장 14-15절에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의 불법, 그들의 어둠, 그들의 우상 숭배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에베소서 5장 11절에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레온 모리스는 “하나님의 백성이 박해 받으며, 괴롭힘을 당하면서 그들은 그 성과 타협하도록 심하게 유혹받아야만 했다.”고 설명합니다. 핸드릭슨은 “바벨론은 말세의 도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어느 시대나 해당하는 유혹의 중심 역할을 하는 세상을 말한다. 바벨론을 떠난다는 것은 죄악과 관계를 끊으며 그 유혹과 꾀임에 넘어가지 않는 것을 뜻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시대도 죄악으로 가득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죄악에 참여하여 함께 해서는 안 됩니다.
5절. 그의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
4절에 바벨론의 죄에 참여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그 바벨론의 죄는 하늘에 사무쳤다고 하십니다. ‘사무치다’는(국어사전. ‘깊이 미치다’는 뜻) 말은 원래 “함께 마주 붙다”는 뜻입니다. 마치 아교로 붙여 놓은 것 같은 의미입니다. 그의 죄가 하늘에 사무쳤으니까 하늘 가까이 닿아 있다는 뜻입니다. 창세기 11장 4절에 바벨탑을 “하늘에 닿게 하여”라고 하였습니다. 예레미야 51장 9절에 바벨론은 화가 하늘에 미쳤고 궁창에 달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런 내용을 상기시킵니다. 죄가 하늘에 닿도록 쌓여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십니다. 기억은 곧 행하심입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기억하신다는 것은 그 죄에 대한 심판을 행하심을 의미합니다.(계 16장 19절) 로마서 2장 5절에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고 말씀하셨는데 죄악을 쌓는 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입니다.
6절.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위대로 갑절로 갚아주고 그가 섞은 잔에도 갑절이나 섞어 그에게 주라. |
5절에 바벨론의 죄가 하늘에 사무치는데 하나님께서 그대로 갚아주신다고 하십니다. 그가 준 그대로, 즉 그가 다른 사람에게 행한 그대로 행하십니다. 예레미야 50장 29절에서 가져왔을 것입니다. 예레미야 50장 29절에 “그가 일한 대로 갚고 그가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라. 그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여호와를 향하여 교만하였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외에도 행한 대로 갚는 것에 대한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시 28편 4절. 62편 12절. 잠 24장 12절. 사 3장 11절. 전 12장 14절 등) 하나님의 공의에 근거해서 심판하십니다. 요한계시록 2장 23절, 20장 12절, 22장 12절에도 그대로 갚아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의 행위대로 “갑절”로 갚아주신다고 했는데 ‘두 배’의 형벌을 내린다는 의미라기보다 충분한 보응, 철저한 보응을 하신다는 뜻입니다. 시편 79편 12절에 “칠 배나 갚으소서.”라고 하였습니다. 핸드릭슨은 “그가 받아야 할 형벌을 꼭 받는다.”는 뜻으로 해석하였습니다. 구약 율법에 손해를 끼치면 두 배로 배상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출 22장 4절, 7절, 9절) 손해를 끼쳤다면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7절. 그가 얼마나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만큼 고통과 애통함으로 갚아주라.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왕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함으로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
바벨론의 죄를 언급합니다. 첫째,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습니다. 자신을 높이고 자신이 영광을 받는 길을 추구하였습니다. 둘째, 사치하였습니다. 이기적인 탐욕을 가지고 육체적 방종의 삶을 살았습니다. 자기 과시의 삶을 추구하였습니다.
그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고통과 애통함”입니다. 고통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사람들이 겪어야 할 괴로움입니다. 애통함은 죄를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으로 인해서 오는 애통입니다. 바벨론은 오만하였습니다. “나는 여왕이다. 나는 과부가 아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사야 47장 7-8절 말씀에서 가져왔을 것입니다. 이사야 47장 7-8절에 “말하기를 내가 영영히 여주인이 되리라. 하고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지도 아니하며 그들의 종말도 생각하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므로 사치하고 평안히 지내며 마음에 이르기를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도다. 나는 과부로 지내지도 아니하며 자녀를 잃어버리는 일도 모르리라 하는 자여. 너는 이제 들을지어다.”고 하였습니다. 고대 세계에서 과부는 고아와 함께 불쌍한 위치에 놓은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은 망하지도 않고 애통함도 겪지 아니할 것이라고 자만하였습니다. 그러나 고통과 애통함이 현실이 될 것입니다.
8절. 그러므로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곧 사망과 애통함과 흉년이라. 그가 또한 불에 살라지리니 그를 심판하시는 주 하나님은 강하신 자 이심이라. |
자기를 영화롭게 하고 사치한 그 죄악 때문에(7절) ‘하루 동안’에 재앙들이 이릅니다. 아주 오만한 자랑을 하였습니다. 자신은 결단코 애통함을 당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재앙들이 임합니다. ‘하루 동안’은 아주 짧은 시간이기도 하지만 갑자기 임한다는 의미도 가집니다. 사망과 애통함과 흉년이 재앙으로 임하고, 불에 살라지는 재앙이 임합니다. 그들의 죄가 그들을 멸망으로 이끌 것입니다. 그를 심판하시는 주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강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을 행하실 때 그 심판을 피하거나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심판은 하나님의 주권으로 이루어집니다. 바벨론의 죄악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을 행하실 것임을 의미합니다.
9절. 그와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땅의 왕들이 그가 불타는 연기를 보고 위하여 울고 가슴을 치며 |
땅의 왕들이 울고 가슴을 칩니다. 애통해합니다. 땅의 왕들은 어떤 사람일일까요? 첫째, 그와 함께 음행을 하였습니다.(14장 8절. 17장 2절, 4절. 18장 3절) 바벨론과 함께 우상 숭배를 하고 음행을 하였습니다. 1세기에는 로마 제국과 함께 우상 숭배하고 음행을 했던 통치자들입니다. 둘째, 그와 함께 사치하였습니다. 사치는 세상적인 욕망입니다. 다른 사람을 희생시켜서 축적한 부를 가지고 자신의 탐욕을 만족시킵니다. 에스겔 27장 33절이 반영되고 있습니다. 바벨론의 부는 세상 왕들을 풍부하게 하여 사치를 누리게 합니다. 땅의 왕들은 바벨론과 함께 사치를 즐기던 이 세상 권력가들입니다.
그 땅의 왕들이 무엇을 봅니까? “불타는 연기”를 봅니다. 요한계시록에는 두 가지 연기가 나옵니다. 하나는 8장 2-3절에 향과 기도의 연기입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한 연기입니다.(9장 17-18절. 18장 9절, 18절) 불타는 연기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한 연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실 때 연기가 치솟았습니다.(창 19장 28절)
10절. 그의 고통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이르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한 시간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 하리로다. |
땅의 왕들이 바벨론의 고통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있습니다. 불타는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서 있습니다. 고통에 대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그 심판을 함께 받지 않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바벨론이 멸망한다면 바벨론과 함께 한 그들도 함께 멸망한다는 것은 분명한 일입니다. 바벨론의 멸망을 보고 “화”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 멸망하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한 화입니다. 바벨론은 세상적인 큰 것, 견고한 것을 추구하였습니다. 그 바벨론에 한 시간에 심판이 이르렀다고 하십니다. 한 시간은 ‘순식간에’라는 의미도 있고, ‘갑작스럽게’라는 의미도 될 수 있습니다.
11절. 땅의 상인들이 그를 위하여 울고 애통하는 것은 다시 그들의 상품을 사는 자가 없음이라. |
9절에는 땅의 왕들이 통곡을 했는데 이제 땅의 상인들도 통곡을 합니다. 17-19절에는 선장들과 선객들과 선원들과 바다를 생계 수단으로 삼는 사람들이 통곡을 합니다. 1세기에 로마 제국의 교역을 통해 부를 축적하는 상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벨론 멸망을 보고 그를 위해 울고(큰 소리로 울부짖는 것) 애통해합니다. 왜 울고 애통해합니까? 제국의 멸망 때문이 아닙니다. 이제 더 이상 교역을 할 수가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끝까지 자신들의 욕심을 챙기고 있습니다.
12절. 그 상품은 금과 은과 보속과 진주와 세마포와 자주 옷감과 비단과 붉은 옷감이요, 각종 향목과 각종 상아 그릇이요 값진 나무와 구리와 철과 대리석으로 만든 각종 그릇이요 |
상품의 목록이 나옵니다. 29개의 항목입니다. 에스겔 27장 12-24절의 목록이 어느 정도 포함이 됩니다.
귀금속류 | 금 | 귀금속 가운데 가장 중요하다. 부의 상징이다. 주로 스페인에서 수입을 한다. |
은 | 2세기 후반에 침상, 목욕통, 접시 등이 사용되었다. | |
보석 | 주로 인도에서 수입을 한다.(4장 3절. 21장 19-20절) 여성 장신구, 술잔, 남성용 반지 등에 사용 된다. | |
진주 | 각종 보석 가운에 가장 비싼 품목에 해당이 된다. 여성들이 진주를 매달고 다니는 것은 사치의 표였다. | |
의류 | 세마포 | 부자들이 입는 옷이다. |
자주옷감 | 지중해 근처에서 잡히는 작은 조개(뿔 고둥)에서 추출되는 것으로 만든다. 조개 하나에서 겨우 한 방울 정도 나온다. 부유층임을 표시한다. 주로 페니키아에서 수입하였다. | |
비단 | 주로 중국에서 수입해온다. | |
붉은 옷감 | 왕족이 선호하였다. | |
값비싼 나무와 건축재료 | 각종 향목 | 북아프리카 등에서 수입하는 비싼 목재다. 향목으로 만든 식탁이 약 30억 원이나 60억 원 정도 했다고 한다. |
각종 상아 그릇 | 이 때문에 시리아 코끼리가 거의 멸종 위기에 처했단다. 조각품, 접시, 마차, 가구, 책상 다리 등에 사용되었다. | |
값진 나무 | 가구, 판벽, 조각품을 만드는데 사용된다. 예, 단풍나무. 사이프러스 나무. 백향목 등 | |
구리 | 놋쇠. 방패나 가구 등을 만드는데 사용되었다. 고린도에서 생산되는 구리가 질이 좋았단다. | |
철 | 그리스와 스페인에서 생산되었다. 단도, 검, 조상, 장신구 등에 사용되었다. | |
대리석으로 만든 각종 그릇 | 대리석은 이집트, 그리스, 아프리카에서 생산되었다. 공공건물, 부유한 집, 목욕통 등을 만드는데 사용되었다. |
13절. 계피와 향료와 향과 향유와 유향과 포도주와 감람유와 고운 밀가루와 밀이요, 소와 양과 말과 수레와 종들과 사람의 영혼들이라 |
향품류 | 계피 | 동아프리카나 동양에서 수입되는 상당히 비싼 것. 향수, 방향제, 약품, 포도주 등에 사용 |
향료 | 향기를 풍기는 것. 주로 인도에서 배로 수입 | |
향 | 여러 가지 성분을 합성해서 만들었고 종교의식과 방안의 감미로운 냄새를 위해 사용되었다. | |
향유 | 주로 소말리아에서 수입된다. 향수들 가운데 가장 비싸다. | |
유향 | 주로 소말리아에서 생산된다. 향유 값의 절반 정도. 종종 장례식에서 썩어가는 시체의 냄새 방지에 사용.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아기 예수께 드린 품목에 속한다. | |
식품류 | 로마 사회는 호화로운 연회로 유명하다. 예, 비텔리우스 황제는(8대 황제) 연회에 1년에 음식 값으로 25억 원 정도 사용했다고 함. | |
포도주 | 주로 시실리아와 스페인에서 수입 | |
감람유 | 지중해 연안 도처에서 생산되었으나 특히 아프리카, 스페인에서 수입 | |
고운밀가루 | 이집트에서 수입. 부유 계층만 먹을 수 있었다. | |
밀 | 거의 이집트에서 수입 | |
가축류 | 소 | 일과 우유 공급에 필요 |
양 | 고기로도 사용되나 양모를 얻는데 사용 | |
말 | 마차 경주에 사용. 군대, 일에도 사용 | |
수레 | 경주용이나 군사용 마차가 아니고 운송에 필요한 사륜마차임 | |
사람 | 종들(몸들) | 노예 매매가 이루어짐 |
사람의 영혼들 | 노예무역임 | |
노예는 전쟁, 채무, 돈을 받고 자녀를 파는 부모, 유괴, 죄수에 대한 처벌, 버려져 죽음의 위기에 있는 아이들 등으로 생김. 사람들을 사고파는 것을 행하는 것은 그들이 얼마나 악한가를 드러낸다. |
핸드릭슨은 “그가 환상을 보고 또 본대로 전하는 이 바벨론의 모습의 본질은 사실 어느 시대에나 해당되는 것이다.”고 설명합니다.
14절. 바벨론아. 네 영혼이 탐하던 과일이 네게서 떠났으며 맛있는 것들과 빛난 것들이 다 없어졌으니 사람들이 결코 이것들을 다시 보지 못하리로다. |
바벨론은 탐심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과일은 12-13절의 사치품들입니다. 그것이 떠났습니다. 그 맛있게(기름기 있는 것. 주로 음식 류) 여긴 것들, 빛난 것들(반짝거리는 것. 화려하고 매력을 주는 것들. 주로 옷들과 장식류임)이 다 없어졌습니다. 사람들이 다시는 볼 수 없다고 합니다. 그들의 탐심의 대상이 되는 것들이 더 이상 볼 수 없도록 다 없어졌습니다.
15절. 바벨론으로 말미암아 치부한 이 상품의 상인들이 그의 고통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울고 애통하여 |
상품의 상인들(11절. 땅의 상인들)은 바벨론으로 말미암아 치부하였습니다.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곧 바벨론의 죄에 참여했다는 뜻입니다. 상인들이 바벨론의 고통, 바벨론의 멸망을 무서워하였습니다.
상인들이 울고 애통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죄를 회개하는 슬픔이 아닙니다. 또한 바벨론의 멸망이 슬픈 것이 아닙니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것들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슬픔입니다. 아주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슬픔입니다. 그들이 가질 수 있는 이권을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슬픔이기 때문입니다. 바클레이는 “그들을 슬프게 하는 것은 로마의 처지가 아니라 그들은 그들의 시장을 잃었다는 것이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16절. 이르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이여. 세마포 옷과 자주 옷과 붉은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민 것인데 |
“화, 화”는 계속 나오고 있는 외침입니다.(18장 10절, 16절, 19절) 그들의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하나님의 심판의 역사로 멸망하는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가지는 두려움을 표현합니다. ‘세마포 옷, 자주 옷, 붉은 옷, 금, 보석, 진주’로 치장한(12절에 나오는 품목임. 17장 4절) 바벨론이 멸망을 합니다. 부함을 나타내는 것들을 모두 잃어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17절. 그러한 부가 한 시간에 망하였도다. 모든 선장과 각처를 다니는 선객들과 선원들과 바다에서 일하는 자들이 멀리 서서 |
16절에 언급되고 있는 부가 한 시간에 망하였습니다. ‘한 시간’은 ‘신속하게, 갑자기’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순식간에, 신속하게 경제적 붕괴가 왔습니다.(약 5장 2-5절) 경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사회 전체가 붕괴가 왔습니다. 세상은 그런 것입니다. 경제 시스템은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번에는 모든 선장, 각처를 다니는 선객들(정확히 누구인지는 알 수가 없다. 사업차 여행하는 사람들로 보기도 한다.), 선원들, 바다에서 일하는 자들(어부나 상인들, 바다에서 진주를 찾는 사람들 등. 바다를 가지고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임)이 이제는 애통해합니다.(겔 27장 29절에서 가져 왔을 것) 그들은 바다의 지주들입니다. 해상 교역으로 이득을 취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 역시 바벨론의 죄악에 동참하는 사람들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18절. 그가 불타는 연기를 보고 외쳐 이르되 이 큰 성과 같은 성이 어디 있느냐 하며 |
9절에 땅의 왕들이 불타는 연기를 보고 울고 가슴을 쳤습니다. 불타는 연기는 하나님의 심판이 실행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하는 바벨론을 보고 외칩니다. “이 큰 성과 같은 성이 어디 있느냐?”(겔 27장 32절에 비슷한 외침에 나온다.)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큰 성이 모두 파멸되고 멸망하여 세상의 영화와 화려함을 모두 잃어버리게 됨을 의미합니다.
19절. 티끌을 자기 머리에 뿌리고 울며 애통하여 외쳐 이르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이 큰 성이여. 바다에서 배 부리는 모든 자들이 너의 보배로운 상품으로 치부하였더니 한 시간에 망하였도다. |
티끌을 자기 머리에 뿌리는 것은 가시적으로 슬픔을 표현하는 것입니다.(수 7장 6절. 삼상 4장 12절. 삼하 13장 19절. 욥 2장 12절 등) 에스겔 27장 30절의 반영입니다. 에스겔 27장 30절에 “너를 위하여 크게 소리 질러 통곡하고 티끌을 머리에 덮어 쓰며 재 가운데 뒹굴며”라고 하였습니다. “화”를 외칩니다. 바다에서 배 부리는 모든 자들이 바벨론의 보배로운 상품으로 치부하였더니 순식간에 망하였습니다. 그들이 바벨론의 죄악에 참여했다는 뜻입니다. 바벨론의 멸망은 그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죄악에 참여한 그들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바벨론과 함께 한 그들도 곧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20절.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그에게 심판을 행하셨음이라 하더라. |
앞에서 바벨론의 죄악에 참여한 사람들은 바벨론의 멸망으로 슬퍼하고 애통해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바벨론의 멸망을 기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12장 12절에 “하늘과 그 가운데에 거하는 자들”이 나오는데 이 20절에는 그 하늘에 거하는 사람들을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이라고 하십니다. 성도들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사도들은 신약의 사도들입니다. 사도들 뒤에 선지자들이 나오는 것을 보면 선지자들도 신약 시대의 선지자들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모두 바벨론의 체제를 따르지 않고,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으며, 바벨론의 죄악에 동참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바벨론의 멸망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그에게 심판을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정당하게 심판을 행하신 것입니다. 심판은 하나님의 공의의 시행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의로운 행위를 즐거워하라고 하십니다.(시 96편 10-11절. 사 49장 13절. 렘 51장 48절) 하나님께서 그 공의를 나타내는 심판을 행하셨습니다.(신 32장 35절. 계 2장 23절. 6장 9-11절. 11장 5절. 18절. 14장 8절, 10절, 16장 5-7절, 18장 16절) 또한 “너희를 위하여”라고 하셨습니다. 즉 고난받은 성도들이 옳았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바벨론은 그들의 법정에서 그리스도인들을 정죄하여 박해하였습니다. 하늘의 법정에서는 바벨론과 그와 함께 한 사람들을 정죄하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하나님의 백성들의 정당함을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21절. 이에 한 힘센 천사가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져 이르되 큰 성 바벨론이 이같이 비참하게 던져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하리로다. |
한 힘센 천사가 나옵니다. 어느 정도 힘이 세느냐 하면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질 수 있을 정도입니다. 여기서의 맷돌은 여자들이 곡물을 갈리 위해 돌리는(마 24장 41절) 작은 돌이 아니라 나귀가 끌도록 되어 있는 연자 맷돌(막 9장 42절) 같은 큰 돌입니다. 많은 양의 곡식을 갈 수 있게 되어 있고 맷돌의 무게가 엄청납니다. 너비가 4.5-6m, 두께 30cm, 무게 450kg 정도 된다고 합니다. 이 맷돌을 바다에 던지는 것은 예언적 행위입니다. 예레미야 51장 63-64절의 반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51장 63-64절에 “너는 이 책 읽기는 다한 후에 책에 돌을 매어 유브라데 강 속에 던지며 말하기를 바벨론이 나의 재난 때문에 이같이 몰락하여 다시 일어서지 못하리니 그들이 피폐하리라 하라”고 하십니다. 거대한 돌이 바다에 던져지면 바다 깊은 곳에 가라앉아 다시는 볼 수가 없게 됩니다. 비참하게(NIV. 격렬하게) 종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22절. 또 거문고 타는 자와 풍류 하는 자와 퉁소 부는 자와 나팔 부는 자들의 소리가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들리지 아니하고 어떠한 세공업자든지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보이지 아니하고 또 맷돌 서리가 결코 네 안에서 들리지 아니하고 |
“결코 〜아니하다”가 반복해서 쓰이고 있습니다. 21절에도 쓰이고 여기에도 쓰이는데 하나님의 의지가 분명함을 나타냅니다. 다섯 가지 상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① 거문고 타는 자, 풍류 하는 자, 퉁소 부는 자, 나팔 부는 자의 소리가 결코 다시 들리지 아니합니다. 예술 활동이 없어집니다. 삶을 잠시 동안 즐겁게 해주는 음악을 잃어버립니다. 아주 삭막함이 흐릅니다. 이사야 24장 8절, 에스겔 26장 13절에도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② 어떠한 세공업자들도 다시는 보이지 않습니다. 세공은 기술입니다. 세공업자는 도시 경제 활동의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세공업자는 물질적 쾌락의 기반이 되었는데 이제 그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경제 활동의 붕괴가 일어난 모습입니다.
③ 맷돌 소리가 결코 다시 들리지 않습니다. 예레미야 25장 10절에서 취했을 것입니다. 맷돌 소리는 일상의 삶을 나타내줍니다.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경제적으로 심각한 위기가 와서 먹을 것이 거의 없다는 뜻입니다. 사람의 삶의 필수품인 식량의 고갈 상태가 왔다는 것입니다.
23절. 등불 빛이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비치지 아니하고 신랑과 신부의 음성이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너의 상인들은 땅의 왕족들이라. 네 복술로 말미암아 만국이 미혹되었도다. |
④ 등불 빛이 결코 다시 비치지 아니합니다. 등불은 밤에 어둠을 밝히는데 사용이 됩니다. 횃불이 아니라 가정에서 사용하는 작은 등잔의 불입니다. 일상생활에서 밤에 사용하는 것인데, 그 등불 빛을 볼 수가 없습니다. 어둠의 세계입니다.
⑤ 신랑과 신부의 음성이 결코 다시 들리지 아니합니다. 결혼은 가장 큰 기쁨이 됩니다.(렘 25장 10절. 렘 7장 34절. 16장 9절) 결혼은 인간관계의 가장 기본이 됩니다. 그 신랑과 신부의 음성이 끊어지는 것은 기쁨을 잃은 사회가 된 것 뿐만 아니라 사회 제도 자체의 붕괴도 나타냅니다.
그럼, 왜 바벨론이 멸망을 합니까? 이미 18장 7절에 자기를 영화롭게 하며 사치를 즐기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들의 영광을 추구하였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영광을 추구하면서 하나님을 무시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여기서는 첫째, 상인들은 땅의 왕족들이라고 하십니다. 상인들은 부, 사치, 탐욕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땅의 왕족들로 살았습니다. 이사야 23장 8절에 “면류관을 씌우던 자요, 그 상인들은 고관들이요, 그 무역상들은 세상에서 존귀한 자들이었던 두로”라고 하였는데, 그 말씀을 반영하고 있을 것입니다. 에스겔 28장 2절에 두로는 심지어 “나는 신이라”고까지 하였습니다. 교만한 마음의 표출입니다. 1세기 로마 군대가 세계를 정복할 때 상인들의 힘을 빌렸다고 합니다. 18장 12-13절의 품목들은 다른 나라를 지배하고 착취함으로 얻은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들의 삶의 목적은 다른 사람의 것을 착취해서 자신의 쾌락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이익 중심의 인생관입니다.
둘째, 복술로 만국을 미혹하였기 때문입니다. 복술은 마술(9장 21절. 21장 8절. 22장 15절)일 것입니다. 속임수를 쓰는 것입니다. 바벨론이 악한 속임수를 쓴다는 것입니다. 미혹은 요한계시록에 여러 번 언급이 되고 있습니다.(12장 9절. 13장 14절. 19장 20절, 20장 3절, 8절, 10절) 사탄이 사용하는 무기가 미혹입니다. 복술은 우상 숭배와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만국을 우상 숭배로 이끌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주석은(LAB) 번영하는 경제가 주문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그들의 문화가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 주문을 걸어놓았다는 것입니다. 가능성이 있는 해석입니다.
24절.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그 성 중에서 발견되었느니라 하더라. |
⇒ 셋째, 교회에 대한 박해입니다. 바벨론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박해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1세기에 로마는 황제 숭배를 강요했고, 그것을 거부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였습니다.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는 제국의 힘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 모든 사람들(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모두)일 것입니다. 예레미야 51장 49절의 “바벨론이 이스라엘을 엎드러뜨림 같이 온 세상이 바벨론에서 죽임을 당하여 엎드러지리라.”는 말씀과 비슷합니다. 바벨론이 힘을 가지도 폭력을 행사한 것입니다. 1세기 로마가 말하는 평화는 힘과 폭력으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이유가 분명하게 주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