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의 개별성이 우주의 가장 근원적인 본질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중심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루돌프 슈타이너 자서전, 2018. 157)." 여기에서 나는 '루돌프 슈타이너'이다.
위 문장은 필자가 슈타이너의 자서전에서 읽은 문장 중에서 가장 감동적인 문장이다. 인간은 우주의 한 가운데에 위치, 우주의 가장 근원적인 본질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우주의 에너지를 받을 수 있으며, 그 에너지가 나의 '의지'와 연결되어 움직인다. 인간의 의지가 그 에너지이지만, 내가 그 에너지를 활용하도록 정신이 빛을 발해야 한다. 무의식 중에 이루어지는 생명작용 역시 이 에너지이며, 그 에너지에 영혼과 자아도 함께 작동한다. 나아가 이 에너지가 우주 사고내용으로 인간이 얻어야하는 직관-궁극적인 정신이다. 그래서 이 문장이 가장 감동적이었으며, 인간은 자신이 우주의 한 가운데에 위치한 존재, 우주에 연결되어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곳에서 모든(?) 것이 출발되기 때문이다. 물리적으로 전혀 관계없는, 심지어는 닿지도 않는 우주와 연결되어있다고 하니 믿기는 어려울 것이다. 여기에서 물리적이라는 낱말은 전혀 관계가 없다. 보이지 않는 정신, 나의 근본 존재가 우주에 연결되어있다는 의미이다. 이 보이지 않는 나의 근본 존재는 살아있는 한 그 끈이 절대로 노출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를 파악하는 일이 어렵고, 이를 깨닫는 것이 통상 우리가 알고 있는 '깨달음'이다.
어떻게 깨닫느냐와 깨달으면 어떻게 되느냐가 질문이다. 깨닫는 시작은 질문이다. 누구라도 살면서 어떤 질문이 떠오를 것이다. 그 질문을 잡고 해결해 나아가는 와중에서 깨달음을 얻는다. 그 와중에 여러가지 주의사항도 있고 또 유념하면 깨달음에 도움이 되는 사항이 있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사항은 언제나 자신의 내부에 집중하는 것이다. 인간의 내부, 들어갈 구멍 하나 없는 내부에 집중하라니 마치 다른 세계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의문)이 언젠가 자신의 내부에 들어가게 해 준다. '내부에 집중하라니 도저히 이해가 안되네'. '어떻게 내부에 집중하지'라고 생각하면, 이 생각이 외부의 나는 모르지만, 내부에 전달되어서 차츰 내부의 문이 열리는 것이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단어가 간절함이다. 나는 현실에서 상속에 들어가 있는데 상을 벗은 나에게 연결될려면 간절해야 하는 것이다. 즉 내가 온전하게 그것을 원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나의 내부는 언제나 나와 연결되어 있고 함께 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시간이 길수도 짧을 수도 있지만, 이런 생각이 언젠가는 깨달음으로 반드시 연결된다.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면 자신의 잠재의식에서 무언가 이루어지는 생각이 있다. 평소 내가 간절하게 원하는 것이라던지 정말 싫은 경우 등 이런 생각들이 자신의 자아에게 연결되고, 이런 생각들이 모여서 자신을 형성, 점차 그 상황으로 자신을 끌고간다. 그러므로 자신의 잠재의식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에컨대 나쁜 생각을 하면 그런 생각으로 자신이 향하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을 끌고 가는 이유는 본질 자아(상 속이 아닌)가 우주에 연결되어 있으므로 힘, 에너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미국의 프로그램, '비밀'에서 '내가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잠재의식에 도달할 정도로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부자(어떤 사람)가 되고자 하면, 자신의 방에 그 부자의 사진을 붙여놓고, 직접 그 집에 가보는 등 어쨌든 나의 잠재의식에서 원해야 한다. 하지만 깨달음은 이보다 더 강력하게 원해야 한다.
여담으로 그 당시 사람들이 슈타이너에게 질문을 하였다. '당신의 이론이 미신, 공상과 무엇이 다른가'라고. 슈타이너가 답하기를 통상 미신은 인간의 잠재의식에서 이루어지는 경우를 말하는데, 자신의 이론은 무의식에서 이루어진다고. 다음은 슈타이너의 답변이다. "잠재의식적인 영혼의 힘은 신체에 작용하는 힘으로부터 충분히 독립해 있지 않다. 때문에 그렇듯 잠재의식적인 영역에서 걸러낸 가르침들은 위험할 수가 있다. 그런 가르침들은 다시 잠재의식적인 영역으로 수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 그렇지만 인지학에서는 이 모든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인지학은 모든 가르침을 무의식적인 영역으로 부터 끄집어내기 때문이다(위 책. 478)." 슈타이너의 이론은 인간의 무의식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사고를 통해서 징신세계로 들어간다. 그래서 미신으로, 공상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더불어 누구라도 들어갈 수 있도록 슈타이너가 자신의 이론을 구조화해 놓았는데, 이것이 '인지힉'이다.
인간이 무의식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사고가 곧 정신세계이다. 늘 내가 하는 사고, 그 사고에는 무의식의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정신세계와 연결되어서 이루어지는 사고가 있는 것이다. 또한 인간의 무의식이 늘 정신세계와 연결되어있기 때문에 인간이 사고를 통하여 들어갈 수가 있는 것이다. 되풀이 하지만 이곳에 들어가면 자신의 근본 존재가 우주의 한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음을 파악한다.
중요한 것은 여기에 들어가는 것이다. 두 번째는 영혼세계의 소재가 감정이라는 것을 파악하고 자신의 감정에 유의해야 한다. 사실 영혼은 언제나 자신의 세계 소재인 감정으로 연결되어있다. 다만 내가 모를뿐이므로, 나의 감정에 관심을 가지고 유의해야 하는 것이다. 증오, 짜증과 같은 감정은 특히 조심해야한다. 짜증과 같은 감정을 내면 영혼 자체가 그런 감정에 휩싸이므로 몸이 무기력해지기 때문이다. 우리 몸의 에테르체를 건강하게 하는 감정은 우주 에네지와 같은 감정, 삼라만상의 생명을 움직이는 힘과 같은 감정이다. 길가에 난 풀 한포기에도 사랑하는 마음, 겸손, 경외, 존경과 같은 감정이다. 이런 감정이 우주 에테르 감정이므로, 내가 우주 에테르에 닿을려면 이런 감정을 내어야 한다.
세 번째로 정신세계에 들어가야 한다. 정신세계의 소재는 사고내용이다. 따라서 사고를 통해서 들어갈 수가 있는데, 인간이 현실 삶에서 하는 사고는 정신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사고의 잔영이다. 그렇다면 정신세계의 사고는 무엇인가? 사고의 '원형'이라고 하는데, 슈타이너의 주장을 따라 들어가보면 다음과 같다. "원형식물은 모든 식물에 담겨있는 식물의 객관적인 본질이다. 그러나 원형식물이 지각에 나타나는 현존을 획득하려면 , 인간의 정신이 원형식물을 자유롭게 구성해야만 한다. <.....> 원형식물은 모든 식물 안에 들어있고 정신의 구성적인 힘을 통해서 식물계로 부터 추정될 수 있지만, 그러나 그런 그 어떤 단일하고 개별적인 형태도 전형적인 것으로 간주될 수없다(위 책, 225-226)."
나의 정신은 이러한 원형식물을 자유롭게 구성하고, 또 거기에서 유래하고 있다. 즉 나의 정신도 인간 정신의 원형이다. 그리고 이러한 원형이 정신세계의 사고 내용이다. 더불어 말한다면 정신세계에 들어가야 이러한 원형을 파악할 수가 있다. 나는 현실에서 육체를 가지고 이러한 사고 원형의 반사를 보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정신세계에 들어가야 하고 이러한 사고의 원형을 알아야 하는가란 질문을 할수가 있다. 사고의 원형이 우리가 하는 사고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나의 정신을 가만히 살펴보면, 그 정신이 사고의 원형에서 비롯되었음을 파악할 수가 있는 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을 미워한다면, 그 미움의 본질이 나로부터 나왔다는 것, 내 모습을 보기 때문에 싫어한다는 것, 결국은 내가 그것을 고쳐야 하는데 고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더 나아가면 그 사람과 내가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이런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다. 인간 원형에 대한 이해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결론이 파악된다. 이것이 정신세게에 들어가야 하는 이유이고 사고의 원형을 알아야 하는 이유이다.
이런 사고가 언제나 나의 정신, 무의식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들어가는 방법이 육체를 통해서 이루어지거나 드러나는 사고가 아닌, 육체를 벗어난 사고를 할 때이다. 슈타이너는 이 순간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영혼이 평소와는 완전 다른 체험을 하는 순간이 등장하는데, 그 대부분은 어스름하게 깨어나 꿈을 꾸고 있는 상태와 비슷하게 시작한다. 그러나 꿈은 아니다. 영혼 내부로 진입한 것이다(인간 자아인식으로 가는 하나의 길, 2018, 34)." 우리는 가끔, 이런 상태로 영혼 내부로 진입하는데, 그러나 그 사실을 모르고 지나친다. 늘 우리가 명심해야 하는 것은 정신세계가 함께 한다는 사실, 그리고 내가 평소에 얻는 직관이 사실 정신세계에서 오는 통지란 사실이다. 그러므로 나는 언제나 정신세계에 들어가 있다. 다만 참을 성있게 지속적으로 열성을 다해 영혼 생활을 강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과학적인 사고방식을 배운 세대인 필자도 인간이 우주 한가운데에 위치한다는 사실, 우주에 연결되어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우주에 연결된 필자의 본질 존재를 체험하였다. 참 신기하였는데, 그렇다고 해서 필자가 깨달음을 얻었다거나 그렇지는 않다. 한 체험을 한 것인데, 여기에서도 지금보다 더 많고 깊은 단계가 앞에 있다. 다만 그 전에는 믿지 않았지만, 이제는 정신 존재를 믿고 나아간다는 것, 분명한 것은 여전히 해야 할 공부가 더 많다는 사실이다.
이런 생각의 바탕에는 영혼세계와 정신세계가 시공간을 초월하여 물질세계와 함께 존재한다는 슈타이너의 주장이 깔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