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이야기 1부는 에스라서에 나오고, 에스라 이야기 2부는 느헤미야서 8장부터 나옵니다. 느헤미야서에 느헤미야 이야기만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에스라의 이야기도 나옵니다. 느헤미야서 1-7장은 3차 포로귀환 공동체의 지도자 총독 느헤미야 이야기이고, 느헤미야 8-13장은 2차 포로 귀환 공동체 지도자였던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 이야기입니다.
먼저, 에스라서가 총독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한 예루살렘 성전 재건(1-6장)과 에스라를 중심으로 유다 백성들의 영적인 삶을 재건하는 내용(7-10장)이라면, 느헤미야서는 총독 느헤미야를 중심으로 예루살렘 성의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는 이야기(1-7장)와 에스라를 중심으로 유다 백성들의 무너진 삶을 다시 일으키는 영적 부흥 이야기입니다(8-13장).
@ 에스라서 & 느헤미야서 한 눈에 보기
에스라서 | 느헤미야서 |
예루살렘 성전 재건(1-6장) (스룹바벨) | 예루살렘 성벽 재건(1-7장) (느헤미야) |
유다 백성 영적 부흥(7-10장) (에스라) | 유다 백성 영적 부흥(8-13장) (에스라) |
느헤미야는 페르시아의 아닥사스다 왕의 술을 따르는 일을 한 신하(술관원)였습니다. 당시 왕을 독살(술에 독을 넣어서 죽임)하려는 시도가 자주 있었기 때문에, 왕 곁에는 항상 왕이 마실 술을 미리 맛보는 신하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느헤미야'였습니다. 왕의 생명을 지킬 책임이 느헤미야에게 있었습니다. 왕과 느헤미야의 관계가 아주 특별했겠지요?
그러던 어느 날, 느헤미야의 형제 하나니가 유다에서 와서, 포로로 끌려오지 않고 예루살렘 성에 남아 있던 유다 사람들의 안타까운 형편을 전해주었습니다. 하나니는 느헤미야에게 유다인들이 자기 나라, 자기 고향에서 업신 여김을 받고 있다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 성벽이 허물어지고, 성문들이 불에 탔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전해주었습니다.
소식을 들은 느헤미야는 주저앉아 울면서 며칠 동안 금식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 응답으로 하나님께서 아닥사스다 왕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느헤미야를 예루살렘으로 보내셨습니다. 물론 페르시아 아닥사스다 왕의 통치 기간에 이집트에 반란이 일어나서 느헤미야를 유다 총독으로 보냈다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 내용을 잠시 소개합니다.
BC 460년에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던 이집트에서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페르시아가 반란을 지압하려고 했는데, 페르시아와 세 번에 걸친 전쟁에서 승리한 그리스(헬라)가 이집트를 지원했습니다. 이집트에서 발생한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페르시아 왕 아닥사스다가 강 서편(시리아/ 당시 예루살렘은 시리아에 속해 있었음) 총독 메가비주스를 보냈습니다.
시리아 총독 메가비주스가 반란을 진압했지만 이집트는 항상 위협적인 나라였습니다. 페르시아 입장에서 이집트와 페르시아 사이에 완충지대가 필요했습니다. 이를 위해 페르시아 왕 아닥사스다가 유다 지역에 총독을 파견했습니다. 총독만 보내기 뭐하니까 포로로 끌려온 유다 백성들도 함께 보냈습니다. 이것이 BC 458년 이루어진 2차 포로 귀환입니다.
하지만 얼마 후, 시리아 총독 메가비주스가 페르시아에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아닥사스다 왕이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혔습니다. BC 445년 메가비주스가 반란을 철회하고 항복했지만 아닥사스다는 메가비주스를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총독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이 황폐해졌다는 소식을 듣고 고민 고민하다가 고향에 보내달라고 왕에게 간청했습니다.
총독 느헤미야도 예루살렘에 가고 싶었고, 아닥사스다 왕도 이집트를 견제하기 위해 유다 지역을 완충지대로 만들 수 있는 믿을만한 사람을 보내야만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닥사스다 왕이 흔쾌히 느헤미야를 유다 총독으로 파견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BC 444년에 이루어진 3차 포로 귀환입니다. 느헤미야가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했습니다.
에스라-느헤미야를 공부하는데, 고레스 왕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왕이 아닥사스다 1세입니다. 아닥사스다 1세가 통치하던 시대에 두 차례에 걸쳐 포로 귀환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2차 포로귀환은 BC 458년 학사 겸 제사장 에스라의 주도로 이루어졌고(스 7:10-25), 3차 포로귀환은 BC 444년 총독 느헤미야의 주도로 이루어졌습니다(느 1장).
BC 444년,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유다 백성이 느헤미야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이것이 3차 포로 귀환입니다. 느헤미야는 12년 동안 총독으로 일하면서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과 불에 탄 성문들을 재건하는데, 월급도 받지 않고 정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데, 방해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호론 사람 산발랏, 종 노릇하던 암몬 사람 도비야와 아랍 사람 게셈이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쌓는데 심하게 방해했습니다. 총독 느헤미야가 그들 때문에 목숨의 위협까지 느낄 정도였습니다.
느헤미야 4:11절에 보면, 원수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쳐들어와서 성벽을 재건하려는 느헤미야 총독을 죽여서 성벽건축 공사를 못하게 하려고 했습니다. 이때, 느헤미야는 젊은이들을 무장하게 하고, 지도자들과 함께 성벽을 재건하는 백성들을 지켜주었습니다.
짐 나르는 자들은 한 손으로 짐을 나르고, 다른 한 손으로 무기를 잡았습니다. 성벽을 쌓는 자들은 허리에 칼을 차고 일했습니다. 보초들은 잘 때도 옷을 벗지 않고 성벽을 재건하는 자들을 지켜주었고, 물 길러가는 이들도 무기를 들고 다녔습니다. 느헤미야와 지도자들, 모든 백성은 온 힘을 기울였고, 성벽은 52일 만에 완공되었습니다(느헤미야 6:15).
느헤미야 총독은 3차 포로 귀환 지도자이기 때문에 3차 포로 귀환자들의 명단과 숫자가 나와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이상하게 느헤미야 7장에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1차 포로 귀환자들의 명단이 나옵니다. 느헤미야 7장에 나오는 1차 포로 귀환자들의 명단은 에스라 2장에 나온 1차 바벨론 포로 귀환자 명단과 거의 비슷합니다.
에스라 2장에 나오는 1차 포로 귀환자들의 명단은 페르시아를 떠나기 전의 것이고, 느헤미야 7장에 나오는 1차 포로 귀환자들의 명단은 실제로 페르시아를 출발해서 예루살렘에 도착한 사람들의 명단입니다. 느헤미야 총독은 예루살렘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수를 49,942명으로 집계했고, 에스라는 49,897명(스 2:64,65)이라고 기록했습니다.
@ 1차 포로 귀환자들 비교
에스라 2장 | 느헤미야 7장 |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기 전 명단 | 예루살렘에 도착한 사람들 명단 |
49,897명(2:64,65) | 49,942명(7:66,67) |
그런데 궁금한 게 하나 있습니다. 느헤미야 7장에 3차 포로 귀환자들의 명단이 나와야 하는데, 왜 1차 포로 귀환자들의 명단이 다시 한 번 더 나오는 걸까요?
무너진 성벽을 건축해야 하는 백성들에게 1차 포로 귀환자들을 통해 무너진 성전이 건축된 것처럼 3차 포로 귀환자들을 통해 무너진 성벽도 건축될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한 마디로, 원독자들에게 낙심하지 말고 용기를 가지라는 말입니다.
느헤미야서 8장에 모든 백성들이 수문(예루살렘 여러 성문 가운데 하나) 앞 광장에 모였을 때, 새벽부터 낮 12시까지 서서 율법을 읽어주는 에스라 이야기가 나옵니다. 백성들은 학사 겸 제사장 에스라가 읽어주는 하나님의 율법을 듣고 울면서 회개하였습니다. 말씀을 통해 백성들은 무너지고 끊어진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를 다시 회복하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아주 중요한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에스라 곁에서 에스라가 읽어주는 하나님의 율법을 설명해주는 레위인들이었습니다. 율법을 설명하는 레위인들의 수고로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밝히 알고 기쁨을 누리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느헤미야 8:7,8,12)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백성들은 즉각 회개했습니다. 그 회개기도가 느헤미야서 9장입니다. 에스라 9장은 에스라가 회개 기도한 내용이고, 느헤미야 9장은 백성들이 말씀에 반응하여 회개한 내용입니다. 회개한 후, 하나님 앞에 결단하고 서명한 사람들 이름들이 느헤미야서 10장에 나옵니다. 그리고 느헤미야서 11장에 참 감동적인 이야기가 나옵니다.
당시 예루살렘 성은 한 마디로, 황폐한 성읍이었습니다. BC 605년부터 세 차례에 걸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이 대부분 엘리트 그룹이었고, 예루살렘에 남은 사람들은 농사나 짓는 가난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은 완전히 무너졌고, 예루살렘 성전도 원수들의 손에 완전히 무너진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도시에 누가 살고 싶겠습니까?
총독 느헤미야가 포로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BC 444년, 예루살렘 성은 사람들이 거의 살지 않는 황폐한 성이었습니다. 이때, 백성의 지도자들이 솔선수범해서 황폐한 예루살렘 성으로 이사를 갑니다. 지도자들은 제비를 뽑아서 백성들의 10분의 1을 황폐한 성 예루살렘에 살게 합니다. 예루살렘 성이 얼마나 소중했으면 그런 결정을 했을까요?
더 놀라운 사실은 백성들 중에서 제비에 뽑힌 것도 아닌데, 스스로 예루살렘에서 살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황폐한 성읍에 사는 게 쉽지 않을 텐데 자원해서 예루살렘 성에서 살겠다는 것입니다. 모든 백성들은 예루살렘 성에서 살겠다고 스스로 결단한 사람들에게 복을 빌어주었습니다. 정말 귀한 사람들이고, 참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느헤미야서 12장에는 예루살렘 성과 성전을 위해 섬기는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의 명단이 나오고, 느헤미야가 성벽을 봉헌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12년 동안 예루살렘 총독으로 섬긴 느헤미야가 잠시 페르시아를 다녀온 사이에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느헤미야 13장에 나오는 이야기들입니다. 그 중에 가장 큰 사건을 하나 소개합니다.
성전에 있는 방들은 개인 용도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성전에 있는 방은 제사장들과 제사 물품들을 보관하는 방입니다. 그런데 정치권과 결탁한 대제사장이 성벽 건축을 방해했던 암몬 사람 도비야를 위해 성전에 개인 용도로 큰 방을 만들었습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느헤미야는 그 방에 있던 암몬 사람 도비야의 살림살이를 바깥으로 다 내던져버렸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당시 예루살렘과 유다에 살고 있던 하나님의 백성들의 상태는 최악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안식일에도 농사를 지었습니다. 장사꾼들을 안식일에 몰래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와 물건을 팔았습니다. 레위 사람들은 유다 백성들로부터 받을 몫을 받지 못했습니다. 할 수 없이 먹고 살기 위해 성전을 버리고 일자리를 찾아 떠났습니다.
느헤미야는 성전을 버리고 일자리를 찾아 떠난 레위 사람들을 다시 제 자리에 세웠습니다. 또한 백성들에게 십일조를 가져와 곳간에 들이도록 했습니다. 또 느헤미야는 종들을 성문마다 지키게 함으로 장사꾼들이 안식일에 예루살렘 성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장삿꾼들이 안식일을 보내고 바로 장사하려고 예루살렘 성밖에서 잤습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밖에서 자는 장사꾼들을 쫓아냈습니다. 장사꾼들 때문에 백성들이 안식일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는 이방 여인과 결혼해서 생긴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애썼습니다. 이방인과의 결혼은 하나님 보시기에 영적인 간음이었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서는 그저 단순하게 “처참하게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쌓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더 중요한 사실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느헤미야서의 결론은 총독 느헤미야의 탁월한 지도력으로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52일 만에 다시 쌓았다는 게 아닙니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느헤미야서를 통해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너의 삶에 무너진 성벽이 무엇이니?
너의 삶 가운데, 불에 타 없어진 성문은 무엇이니?”
'나의 삶'을 보호하는 성벽들과 성문들 중에서 지금 무너진 것은 무엇입니까? 여기서 '무너진 성벽과 성문들'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개인적인 생각에는 '무너진 성벽과 성문'은 '쉽게 무너져 버리는 나의 연약한 성품(나의 약점)'입니다.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자신의 연약함과 약점, 무너진 성품들을 다시 쌓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느헤미야서를 읽으면서 무너진 성벽을 다시 쌓을 때, 한 손에는 무기를 잡고, 남은 손으로 성벽을 쌓았던 백성들의 모습을 통해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무너진 성벽을 다시 쌓고, 불에 타버린 성문들을 다시 세우는데, 목숨을 걸었던 사람들의 모습에서 많은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왜 한 손에 무기를 들고 한 손으로 무너진 성벽을 다시 쌓았을까요?
질문을 두 가지 관점으로 생각합니다. 먼저, 원수와 싸우기 위해서 한 손에 무기를 들고 한 손으로 무너진 성벽을 쌓았다는 것입니다. 두 손으로 벽돌을 쌓기도 힘든데, 어떻게 한 손으로 성벽을 쌓을 생각을 했을까요? 원수들이 성벽을 다시 쌓는 것을 방해했기 때문에, 원수들과 싸우기 위해서 한 손에 무기를 들고 한 손으로 무너진 성벽을 쌓았습니다.
두 번째로, 원수와 싸우기 위해 한 손에 무기를 들고 한 손으로 무너진 성벽을 쌓은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원수와 싸우는 게 목적이라면 당연히 무기를 들고 두 손으로 싸워야 합니다. 원수와 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너진 성벽을 쌓는 일이 더 중요했습니다.
무너진 성벽을 쌓는 게 더 중요했기 때문에 한 손에 무기를 들고 한 손으로 무너진 성벽을 쌓았습니다. 무너진 성벽과 성문으로는 그들의 생명을 보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생명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족들의 생명이 달린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성벽과 성문이 무너지면 나만 죽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성벽과 성문이 무너지면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죽습니다. 성벽과 성문은 나의 가족의 생명과 깊은 관련이 깊습니다.
무너진 성벽과 성문을 다시 쌓는 일은 나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나의 가족을 위해서도 아주 중요합니다. 무너진 나의 성품의 벽들(연약한 부분들/ 사탄에게 내준 영역들)과 불에 타버린 인격의 문들(힘들면 쉽게 드러나는 약점들)을 다시 쌓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무너지면 나의 아내/남편도, 나의 자녀/부모도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무너진 성벽 | 불에 타버린 성문 |
무너진 나의 성품들, 나의 연약한 부분들, 사탄에게 내준 영역들 | 힘들면 쉽게 드러나는 나의 약점들, 화가 나면 드러나는 추한 모습들 |
나의 삶의 무너진 성벽들과 불타버린 성문이 무엇입니까? 그 동안 사단에게 힘없이 내어준 영역들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사단이 끊임없이 공격하는 나의 연약한 부분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정직하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실체를 보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정직하게 자신을 볼 수 있어야 그 문제를 하나님께 가지고 갈 수 있습니다.
나의 무너진 성벽, 불에 타버린 성문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까? 나의 무너진 성벽이 무엇인지, 불에 타버린 성문이 무엇인지 안다면, 이제 무너진 성벽과 붙에 탄 성문을 다시 쌓기 위해 한 손에 무기(하나님의 말씀)를 들어야 합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머물러야 합니다. 이건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내가 살기 위해 꼭 필요한 입니다.
그리고 남아 있는 한 손으로 최선을 다해 무너진 성벽과 성문을 다시 쌓아야 합니다. 한 손에 무기(하나님 말씀)를 들고 있기 때문에 남아 있는 한 손 가지고 나 혼자 무너진 성벽을 다시 쌓을 수 없습니다. 나의 손 하나로는 불타버린 성문을 다시 세울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한 손으로 무너진 성벽과 성문을 다시 쌓으라는 말입니까?
곁에 있는 나의 가족에게 무엇보다 먼저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내 곁에 있는 나의 믿음의 형제자매의 손을 잡으라는 말입니다. 나처럼 무너진 성벽과 성문을 다시 쌓으려고 한 손에 무기(하나님의 말씀)를 들고 있는 형제와 자매에게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라는 말입니다. 그들도 나처럼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꼭 기억할 게 있습니다. 무너진 성벽을 쌓고 불에 타버린 성문을 다시 세우는 일은 결코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한 손밖에 없는 내가 무슨 수로 무너진 성벽을 다시 쌓는단 말입니까? 연약한 내가 무슨 재주로 불에 타버린 성문을 다시 세운단 말입니까?
나의 연약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가족에게, 나의 무너진 성벽을 다시 쌓고 싶다고 도와달라고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나의 불 같은 성질을 누구보다 잘 아는 믿음의 형제자매에게 불에 타버린 성문을 다시 세울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해야 합니다.
누가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인지 어떻게 알 수 있냐고요? 나의 무너진 성벽을 다시 쌓는데 도움의 손길을 줄 사람이 누구인지 어떻게 알 수 있냐고요? 그들은 모두 나처럼 한 손에 무기(하나님 말씀)를 들고 남은 한손으로 무너진 성벽과 성문을 쌓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내가 그들의 손이 필요한 것처럼 그들 또한 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신앙생활은 결코 나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신앙생활을 하는데 믿음의 형제와 자매가 꼭 필요합니다. 교회만 왔다 갔다 한다고 믿음이 자라는 게 아닙니다. 서로의 삶을 나누고 함께 기도해줄 믿음의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그게 진정한 의미의 형제자매입니다.
교회에서 부를 적당한 호칭이 없어서 우리가 서로 '형제자매'라고 부르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우리가 믿음의 형제요 자매이기 때문에 서로 '형제'요 '자매'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한 손에 무기(하나님 말씀)를 들고 무너진 성벽과 성문을 쌓고 있는 당신과 함께 해줄 도움의 손길이 있습니까? 그들이 바로 당신의 진정한 형제요 자매입니다.
느헤미야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 느헤미야의 기도 한 눈에 보기
장/절 | 기도 내용 |
1:4-11 | 예루살렘 성의 황폐함을 듣고 울며 금식하며 기도 |
2:4 | 아닥사스다 왕의 질문에 답하기 전에 잠시 침묵 기도 |
4:4,5 | 성벽 건축을 방해하는 자들을 물리치소서 |
5:19 | 가난한 자들을 구제한 것을 기억해 주소서 |
6:9 | 원수들의 위협 속에도 성벽 재건 끝내게 하소서 |
6:14 | 나를 두렵게 한 자들의 소행을 기억하사 원수를 갚아 주소서 |
13:14,22 | 하나님의 성전에 있던 도비야의 방을 정리하고 레위 사람들이 받을 몫을 받게 하여 그들을 제자리에 세운 것을 기억하소서 |
13:29-31 | 산발랏의 사위가 된 대제사장의 손자를 내쫓고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자신을 깨끗하게 하여 자기 일을 맡게 한 나를 기억하사 복 주소서 |
@ 기록 목적
1)성벽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공동체를 세워가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려고
2)역사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려고
3)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신앙 공동체의 영적 회복(rebuilding)을 위해서
4)절기, 제사장, 레위인들의 중요성을 알려주기 위해서
@ 하나님의 성품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
공동체를 회복하시는 하나님
선한 손으로 도우시는 하나님
고레스를 감동시키시는 하나님
원수의 꾀, 음모를 폐하시는 하나님
은혜로우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
@ 느헤미야서 한눈에 보기
예루살렘 성벽 재건 (1-7장) | 3차 포로 귀환과 성벽 재건(1-6장) |
1차 귀환자들 명단(7장) | |
유다의 영적 부흥 (8-13장) | 에스라의 율법 낭독과 언약갱신(8-10장) |
느헤미야의 종교개혁(11-13장) |
@ 느헤미야서 두 눈에(펼쳐) 보기
성벽 재건, 하나님의 역사(6:15,16) | |
예루살렘 성벽 재건(1-7장) | |
3차 포로 귀환과 성벽 재건 (1-6장) | 예루살렘을 향한 느헤미야의 기도와 귀환(1,2장) |
예루살렘 성벽 재건/ 참여한 사람들 명단(3장) | |
성벽 재건 방해 세력을 물리친 느헤미야(4장) | |
하나님을 경외한 느헤미야(5장) (어려운 백성 돕기/ 자신의 권리 포기) | |
느헤미야 살해 음모와 52일만에 성벽 완성(6장) | |
1차 귀환자들 명단(7장) | 1차 포로 귀환자들의 명단(7장) |
유다의 영적 부흥(8-13장) | |
에스라의 율법 낭독과 언약 갱신(8-10장) | 에스라의 율법 낭독과 초막절(8장) |
이스라엘 백성의 회개와 언약 갱신(9장) | |
언약 갱신한 사람들 명단과 그들의 삶(10장) | |
느헤미야의 종교 개혁 (11-13장) |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자들 명단(11장) |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제사장들/레위인들 명단 & 예루살렘 성벽 봉헌식(12장) | |
느헤미야의 개혁 운동(13장) |
@ 느헤미야서에 나오는 페르시아 왕
아닥사스다 1세(Artaxerxes, BC 465-425)
아하수에로 왕(에스더의 남편)의 아들입니다. 오른손이 왼손보다 길어서 그를 ‘롱기마누스’라고 부릅니다. 아닥사스다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또한 그는 모든 경쟁자들을 없애고, 이집트와 페르시아의 반란을 진압한 왕입니다.
BC 460년에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던 이집트에서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페르시아가 반란을 지압하려고 했는데, 페르시아와 세 번에 걸친 전쟁에서 승리한 그리스(헬라)가 이집트를 지원했습니다. 이집트에서 발생한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페르시아 왕 아닥사스다가 강 서편(시리아/ 당시 예루살렘은 시리아에 속해 있었음) 총독 메가비주스를 보냈습니다.
시리아 총독 메가비주스가 반란을 진압했지만 이집트는 항상 위협적인 나라였습니다. 페르시아 입장에서 이집트와 페르시아 사이에 완충지대가 필요했습니다. 이를 위해 페르시아 왕 아닥사스다가 유다 지역에 총독을 파견했습니다. 총독만 보내기 뭐하니까 포로로 끌려온 유다 백성들도 함께 보냈습니다. 이것이 BC 458년 이루어진 2차 포로 귀환입니다.
하지만 얼마 후, 시리아 총독 메가비주스가 페르시아에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아닥사스다 왕이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혔습니다. BC 445년 메가비주스가 반란을 철회하고 항복했지만 아닥사스다는 메가비주스를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총독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이 황폐해졌다는 소식을 듣고 고민 고민하다가 고향에 보내달라고 왕에게 간청했습니다.
총독 느헤미야도 예루살렘에 가고 싶었고, 아닥사스다 왕도 이집트를 견제하기 위해 유다 지역을 완충지대로 만들 수 있는 믿을만한 사람을 보내야만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닥사스다 왕이 흔쾌히 느헤미야를 유다 총독으로 파견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BC 444년에 이루어진 3차 포로 귀환입니다. 느헤미야가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했습니다.
에스라-느헤미야를 공부하는데, 고레스 왕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왕이 아닥사스다 1세입니다. 아닥사스다 1세가 통치하던 시대에 두 차례에 걸쳐 포로 귀환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2차 포로귀환은 BC 458년 학사 겸 제사장 에스라의 주도로 이루어졌고(스 7:10-25), 3차 포로귀환은 BC 444년 총독 느헤미야의 주도로 이루어졌습니다(느 1장).
BC 444년,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유다 백성이 느헤미야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이것이 3차 포로 귀환입니다. 느헤미야는 12년 동안 총독으로 일하면서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과 불에 탄 성문들을 재건하는데, 월급도 받지 않고 정말 최선을 다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