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서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구약 성경(구약 시대)의 마지막 역사 - 바벨론에서 돌아온 공동체와 성전 건축 - 를 다루는 아주 중요한 책입니다. 열왕기하와 역대하의 마지막 부분은 남 유다가 바벨론의 침략으로 망하고(BC 586), 가난하고 힘 없는 백성들만 조금 남겨두고 왕과 왕족들, 귀족들, 유능한 사람들 모두 바벨론으로 끌려간 이야기였습니다.
참고로 남 유다 백성들은 BC 605년, 597년, 586년, 582년 네 차례에 걸쳐서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열왕기하 25장에는, 바벨론이 세 번 남 유다를 공격했고, 유다 백성들이 세 차례에 걸쳐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다고 나옵니다. 하지만 예레미야 52장에는 바벨론 제국이 한 차례 더 남 유다를 공격하고 남은 백성들을 포로로 끌고 갔다고 나옵니다.
바벨론에서 70년 동안 포로 생활하던 유다 백성들은 세 번에 걸쳐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BC 538년에 1차 포로 귀환이 이루어졌고, 책임자는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였습니다. BC 458년에 2차 포로귀환이 이루어졌고, 책임자는 학사겸 제사장 에스라였습니다. 3차 포로귀환은 BC 444년에 이루어졌고, 책임자는 총독 느헤미야였습니다.
바벨론 포로 | 포로귀환 | |
BC 605 (다니엘과 세 친구들) | 1차 | BC 538(총독 스룹바벨/ 대제사장 여호수아) |
BC 597 (에스겔과 기술자들) | 2차 | BC 458 (학사 겸 제사장 에스라) |
BC 586(쓸모없는 자들 빼고 백성들 대부분) | 3차 | BC 444 (총독 느헤미야) |
@ 에스라서-느헤미야서(한 권)
70년 간의 바벨론 포로 생활을 끝내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남 유다 백성들이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중심으로 1)무너진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고, 느헤미야 총독을 중심으로 2)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건축(rebuilding)한 이야기 + 학사 겸 제사장 에스라가 3)포로 귀환 공동체를 하나님 백성으로 일으켜 세우는 (영적 부흥) 이야기
에스라서 | 느헤미야서 |
무너진 성전 재건(1-6장) (총독 스룹바벨) | 무너진 성벽 재건(1-7장) (총독 느헤미야) |
유다 백성 영적 부흥(7-10장) (학사 겸 제사장 에스라) | 유다 백성 영적 부흥(8-13장) (학사 겸 제사장 에스라) |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한글 성경에는 두 권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히브리어 성경은 한 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원래 한 권이었는데, 라틴어로 번역하면서 분량이 두 배로 늘어나서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두 권)로 나누게 되었다고 합니다.
에스라서 1:1-3절은 역대하의 마지막 두 구절(36:22,23)과 같은 내용입니다.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지 70년이 되던 해, 바벨론을 정복한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조서를 내렸습니다. 포로로 잡혀온 남 유다 백성들을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을 건축하라고 했습니다.
고레스의 조서를 보면, 남 유다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배경(포로 귀환)이 잘 나와 있습니다.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정복한 나라가 너무 넓어서 제대로 통치할 수가 없어서 유다 백성들을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낸 게 아닙니다. 포로 귀환과 무너진 예루살렘 성과 성전을 다시 건축한 것은 고레스 왕의 선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놀라운 뜻이었습니다.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왕위에 오른 첫 해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를 시켜서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의 마음을 움직이셨다. 고레스는 온 나라에 명령을 내리고, 그것을 다음과 같이 조서로 써서 돌렸다.”(에스라 1:1)
하나님은 약속을 꼭 지키는 신실한 분이십니다. '포로 귀환'은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결심이 아니었습니다.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남 유다 백성들을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에게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페르시아 왕 고레스를 사용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하신 말씀은 무엇이었을까요?
예레미야는 다른 예언자들과 달리 남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망하고, 많은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끌려 갈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다른 선지자들은 남 유다가 절대 망하지 않을 거라고 했지만, 선지자 예레미야 혼자 남 유다가 바벨론 제국에 의해 멸망한다고 예언했습니다. 이것 때문에 거짓 예언자들에게 예레미야가 얼마나 많은 핍박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남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망했고, 많은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참혹한 일들이 예루살렘에서 벌어졌습니다. 예레미야가 예루살렘 성이 무너지고 성전이 붙타는 광경을 보고 가슴을 찢으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기록한 책이 '예레미야 애가'입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신 대로 이루셨습니다.
예레미야는 남 유다가 멸망한 이유는 왕과 선지자들이 저지른 죄악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나라가 망했고, 하나님의 성전이 무너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여호와께서 하신 약속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백성들이 70년 후에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예레미야 29:10절입니다.
“나 주가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바빌로니아에서 칠십 년을 다 채우고 나면, 내가 너희를 돌아보아, 너희를 이 곳으로 다시 데리고 오기로 한 나의 은혜로운 약속을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 주겠다.”(예레미야 29:10)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분입니다. '포로 귀환'은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작품이 아니었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백성들을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예레미야에게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에게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페르시아 왕 고레스를 사용하셨습니다.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내린 조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은 다음과 같이 선포한다. 주 하늘의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 땅위의 모든 나라를 주셔서 다스리게 하시고, 유다의 예루살렘에 그의 성전을 지으라고 명하셨다. 이 나라 사람 가운데,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기를 빈다. 그들을 모두 올라가게 하여라”(역대하 36:23; 에스라 1:2,3)
에스라서에 에스라 이야기만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에스라서 1-6장까지 눈을 씻고 찾아봐도 학사(제사장) '에스라'는 나오지 않습니다. 1차 포로귀환의 책임자였던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중심으로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건축(BC 536년에 시작)하는데, 사마리아인들이 방해해서 520년까지 16년 동안 성전을 건축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를 보내셔서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백성들을 격려해서 16년 동안 중단되었던 성전 건축을 다시 시작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4년 뒤인 BC 516년에 성전을 완성했습니다. 여기까지가 에스라 1-6장 내용입니다.
에스라서 1-6장 한눈에 보기 | |
1차 포로 귀환과 성전 재건(1-6장)/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 | |
1차 포로 귀환과 귀환자들 명단(1,2장) | 1차 포로 귀환(1장) |
포로 귀환자들 명단(2장) | |
성전 재건(3-6장) | 성전 재건 시작(3장) |
성전 건축 방해/ 중단(4장) | |
성전 건축 완공/ 봉헌식(5,6장) |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백성들을 격려해서 16년 동안(BC 536-520) 중단되었던 성전 건축 공사를 다시 시작했고, 4년 후 BC 516년에 성전이 완공되었습니다. 무너진 성전을 다시 짓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였습니다.
학개와 스가랴는 같은 시대(스룹바벨 총독이 무너진 성전을 다시 건축하던 때)에 활동한 예언자이지만, 학개가 스가랴보다 나이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학개는 이전 성전의 영광(예루살렘 성전)을 직접 본 사람이었습니다. 성전 공사가 재개되고 한 달 정도 되었을 때, 학개는 백성들에게 두 성전을 비교하는 듯한 말을 했습니다. 학개 1:14-2:9절입니다.
“14)여호와께서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의 마음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마음과 남은 바 모든 백성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들이 와서 만군의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의 전 공사를 하였으니 15)그 때는 다리오 왕 제이년 여섯째 달 이십사 일이었더라 1)일곱째 달 곧 그 달 이십일 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너는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라 3)너희 가운데에 남아 있는 자 중에서 이 성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 것 없지 아니하냐 4)그러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5)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영이 계속하여 너희 가운데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6)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7)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8)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9)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학개 1:14-2:9)
2차 포로귀환 책임자 에스라는 에스라서 7장부터 등장합니다. 에스라는 아론의 후손이요, 제사장 겸 학사(율법 학자)였습니다. 2차 포로 귀환 때, 학사 겸 제사장 에스라가 포로 생활하던 백성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가 BC 458년이었습니다. 1차 포로귀환(BC 538) 후,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짓고(BC 516) 꽤 많은 기간이 흘렀습니다.
에스라 1-6장 |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 다시 건축(Temple Rebuilding) |
에스라 6장과 7장 사이 58년의 시차(이 기간에 에스더가 페르시아의 왕후가 됨) | |
에스라 7-10장 | 남 유다 백성들의 영적 재건(Spiritual Rebuilding) |
BC 458년, 에스라는 백성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2차 포로 귀환). 2차 포로 귀환은 1차 포로 귀환 후, 80년이 지나서 이루어졌습니다. 2차 포로 귀환은 성전을 다시 짓고(BC 516), 58년 후에 이루어졌습니다. 에스라 6장과 7장 사이에는 58년의 시차가 납니다. 그 기간에 에스더가 페르시아 왕 아하수에로의 아내(왕후)가 되었습니다.
에스라서 펼쳐 보기(두 눈에 보기) | |
1차 포로귀환과 성전 재건(1-6장)/ 스룹바벨과 여호수아 | |
1차 포로 귀환과 귀환자들 명단(1,2장) | 1차 포로 귀환(1장) |
포로 귀환자들 명단(2장) | |
성전 재건(3-6장) | 성전 재건 시작(3장) |
성전 건축 방해/중단(4장) | |
성전 건축 완공/봉헌식(5,6장) | |
2차 포로귀환과 개혁 운동(7-10장)/ 에스라 | |
2차 포로 귀환과 귀환자들 명단(7,8장) | 에스라 소개 &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7장) |
2차 포로 귀환과 귀환자들 명단과 간증(8장) | |
개혁 운동 (9,10장) | 이방 여인과의 결혼/ 에스라의 회개기도(9장) |
백성들의 결단/ 이방 여인을 맞이한 자들 명단(10장) |
무너진 성전을 다시 건축하고 58년 후, 에스라가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보니까 백성들의 삶은 영적으로 엉망진창이었습니다.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중심으로 무너진 예루실렘 성전을 다시 지었습니다.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다시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형식적이었고, 그들의 삶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로마서 12:1,2)
누가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자녀)일까요?
성전을 건축했다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게 아닙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도 성전에서 매일 제사드리는 것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백성이 아닙니다. 포로 귀환 공동체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Identity)을 완전히 상실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포로 귀환) 백성 중에 이방 여인들과 결혼한 지도자들이 많았습니다. 그 모습을 본 에스라는 옷을 찢고, 머리카락과 수염을 뜯으며 주저 앉아 울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때, 에스라가 기도한 내용이 에스라서 9장에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유다 백성들을 위한 회개 기도였습니다. 그 기도에 많은 백성들이 동참했습니다.
에스라 9장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방 여인과 결혼(통혼)한 사건과 그 죄로 인해 에스라가 애통하며 하나님께 드린 회개 기도입니다.
에스라 9:1-2 | 거룩한 자손과 이방 여인과의 통혼 |
에스라 9:3-5 | 거룩한 자손과 이방 여인의 통혼에 대한 에스라의 반응 |
에스라 9:6-15 | 에스라가 하나님께 드린 회개 기도 |
이미 신명기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할 때, 일곱 족속들과 결혼하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3)그들(가나안 족속들)과 혼인관계를 맺어서도 안 됩니다. 당신들 딸을 그들의 아들과 결혼시키지 말고, 당신들 아들을 그들의 딸과 결혼시키지도 마십시오. 4)그렇게 했다가는 그들의 꾐에 빠져서, 당신들의 아들이 주님을 떠나 그들의 신들을 섬기게 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주님께서 진노하셔서, 곧바로 당신들을 멸하실 것입니다.”(신명기 7:3,4)
에스라 9장 내용을 상황 설명과 에스라의 격한 감정과 행동, 기도로 나누어 정리했습니다.
2차 포로 귀환 명단, 안전하게 돌아온 여정, 하나님께 드린 예물과 번제, 강 건너편 총독에게 아닥사스다 왕의 명령을 전달하자, 총독이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는 것을 도왔다는 내용을 백성들에게 간략하게 설명을 마치자 관리들이 내게(에스라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백성들,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이 땅 민족들과 스스로 구별하지 않고 그들의 가증스러운 관습들, 곧 가나안 사람들, 헷 사람들, 브리스 사람들, 여부스 사람들, 암몬 사람들, 모압 사람들, 이집트 사람들, 아모리 사람들의 관습들을 따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땅 사람들의 딸을 데려와 아내와 며느리로 삼고 거룩한 씨를 이방 민족과 섞고 있습니다. 사실 지도자들과 관리들이 앞장서서 이런 죄악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나서 내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잡아 뜯고는 기가 막혀 앉아 있었습니다. 포로로 잡혀갔다 돌아온 사람들의 이런 죄 때문에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는 모든 사람이 내게 모였습니다. 나는 저녁 제사 때까지 망연자실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저녁 제사 때가 되자 나는 무거운 마음을 털고 일어나 내 속옷과 겉옷을 찢은 채로 무릎을 꿇고 내 하나님 여호와께 손을 들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제가 주께, 하나님께 얼굴을 들기가 너무 부끄럽고 망신스럽습니다. 우리의 죄가 우리 머리보다 높고 우리의 죄악이 하늘까지 닿았기 때문입니다. 조상들 때부터 지금까지 우리 죄악이 너무 컸습니다. 우리 죄 때문에 우리 자신은 물론 우리 왕들과 우리 제사장들이 이 땅의 왕의 손에 넘겨져 칼에 맞고 포로로 잡혀가고 약탈당하고 수모를 겪으면서 오늘까지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잠시 동안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우리에게 남겨 두시고 그분의 성소에 굳건한 자리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을 밝히고 속박에서 조금씩이나마 회복시켜 주십니다. 우리는 매인 사람들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속박당했을 때에도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오히려 페르시아 왕 앞에서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 회복을 허락하셨고 우리 하나님의 집을 다시 짓고 그 허물어진 것을 복구하게 하셨고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성벽을 주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이여, 이런 일이 있었는데 우리가 주의 계명을 저버렸으니 우리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주께서 주의 종 예언자에게 계명을 주시며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너희가 들어가 차지하게 될 이 땅은 이 땅 민족의 부정한 것들로 가득 찬 땅이다. 이 끝부터 저 끝까지 가증한 것으로 가득 차 있고 더러운 것이 들끓는 곳이니 너희 딸을 그들의 아들에게 시집보내지 말고 그들의 딸을 너희 아들을 위해 데려오지 말고 어떤 경우에도 그들과 동맹을 맺지 말라. 그래야 너희가 강해져서 그 땅의 좋은 것을 먹고 너희 자식들에게 영원한 기업으로 남기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 일어난 일은 우리의 악행과 우리의 큰 죄악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이신 주께서는 우리 죄가 받아야 할 벌보다 가벼운 것을 주시고 우리에게 이렇게 구원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다시 주의 계명을 어기고 그런 가증스러운 짓을 하는 민족들과 섞여 혈연을 맺어야 되겠습니까? 주께서 우리를 노여워해 한 사람도 남거나 도망친 사람 없이 모조리 멸망시키는 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의로우십니다! 우리가 오늘같이 살아남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보십시오. 우리가 여기 주 앞에, 우리의 죄악 가운데 있습니다. 그것 때문이라면 우리 가운데 하나라도 주 앞에 설 수 없습니다.”(여기까지 에스라 9장 내용입니다)
남 유다 백성들의 지도자들이 이방 여인과 통혼한 사실을 알고 에스라는 너무나 기가 막혀서, 겉옷과 속옷을 찢고, 머리카락과 수염을 뜯으면서 주저앉았습니다. 분명 에스라가 잘못한 일도 아닙니다. 에스라가 잘못한 일도 아닌데, 왜 이렇게까지 회개해야 합니까?
에스라가 하나님의 백성들의 지도자이기 때문입니다. 에스라는 율법에만 능통한 박사가 아니라 성전에서 여호와를 섬기던 제사장이었습니다. 제사장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거룩하신 여호와 앞에 서기 위해 몸도 마음도 정결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룩해야 합니다. 특별히 제사장들이 백성들 앞에 정결함, 거룩함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학사 겸 제사장 에스라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해 민감한 지도자였습니다. 에스라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 공동체의 죄에 대해 민감했습니다.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라고 여겼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방 여인과 통혼했다는 이야기, 지도자들이 앞장서서 통혼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 에스라가 민감하게 반응한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백성 중에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에스라가 저녁 제사 때까지 넋을 잃고 앉아 있는 동안에,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던 백성들이 에스라에게로 모여들었습니다. 에스라는 슬픔을 가누지 못한 채로 앉아 있다가, 저녁 제사 때가 되었을 때에 일어났습니다. 에스라는 찢어진 겉옷과 속옷을 그대로 걸치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두 팔을 들고서, 여호와 하나님께 회개기도를 드렸습니다.
에스라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 후에, 남자, 여자, 어린 아이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에스라 주변에 모여서 큰 소리로 슬피 울면서 회개했습니다. 그때, 이방 여인들과 결혼한 지도자들은 자신의 잘못된 삶을 돌이키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겠다고 서약했습니다. 에스라서 10장은 이방 여인들과 결혼한 것을 회개하고 서약한 지도자들의 명단입니다.
에스라 10장은 에스라가 여호와의 성전 앞에 엎드려 울며 회개 기도를 드릴 때, 많은 백성들이 크게 통곡하며 결단한 것과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자들의 명단입니다.
에스라는 3개월 동안 이방 여인과 결혼한 자들을 조사하게 했습니다. 이방 여자 가운데는 자녀들을 낳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방 여인과 결혼한 가정들은 강제로 이혼을 해야 했습니다. 유대인 남자와 이방 여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도 이방인 취급을 받았습니다.
사실, 이방 여인과 결혼한 것은 하나님의 뜻(거룩)에 어긋난 일입니다. 에스라의 회개 기도와 강경한 뜻에 따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뿐만 아니라, 유다와 베냐민 사람들까지 결단하고 맹세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결혼한 이방 여인들과 헤어지겠다고요.
하지만 이방 여인들과 헤어지는 일은 당시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하루 아침에 이방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을 버리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을까요?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남 유다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기 전에, 사마리아 성에 살던 사람들은 에스라의 개혁에 상당한 불만을 가졌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딸이 강제 이혼을 당하고 쫓겨났을 뿐만 아니라, 부정한 이방인으로 취급 받아 열 받았기 때문입니다.
포로귀환 당시 사마리아인들은 순수 혈통을 가진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었습니다. BC 722년에 북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망한 후, 앗수르의 잡혼정책으로 북 이스라엘 사람들이 앗수르 사람들과 피를 섞었습니다. 북 이스라엘 사람들은 앗수르의 여러 도시로 끌려갔고, 앗수르 여러 도시 사람들을 사마리아로 보내서 살게 했습니다. 열왕기하 17:6-8절입니다.
“6)드디어 호세아 제9년에 앗시리아 왕은 사마리아를 점령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을 앗시리아로 끌고 가서, 할라와 고산 강 가에 있는 하볼과 메대의 여러 성읍에 이주시켰다. 7)이렇게 된 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들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어 이집트 왕바로의 손아귀로부터 구원하여 주신 주 하나님을 거역하여, 죄를 짓고 다른 신들을 섬겼기 때문이며, 8)또 주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의 면전에서 내쫓으신 이방 나라들의 관습과, 이스라엘의 역대 왕들이 잘못한 것을, 그들이 그대로 따랐기 때문이다.”(열왕기하 17:6-8)
열왕기하 17:29-34절에 보면, 사마리아로 강제로 이사온 앗수르 사람들이 거기서 하나님도 섬기고, 자기들이 앗수르에서 섬기던 우상도 섬긴 내용이 나옵니다. 사마리아로 이주한 각 민족은 제각기 자기들의 신들을 만들어 섬겼습니다. 그래서 각 민족은 그들이 살고 있는 성읍 안에서 만든 신들을 사마리아 사람들이 만든 산당 안에 가져다 놓았습니다.
바빌론 사람들은 숙곳브놋을 만들고, 구다 사람들은 네르갈을 만들고, 하맛 사람들은 아시마를 만들었습니다. 아와 사람들은 닙하스와 다르닥을 만들었으며, 스발와임 사람들은 자기들의 신인 아드람멜렉과 아남멜렉에게 그들의 자녀를 불살라 바치기도 하였습니다.
사마리아로 이주한 민족들과 그들이 섬긴 우상들 | |||
바벨론 사람들 | 숙곳브놋 | 구다 사람들 | 네르갈 |
하맛 사람들 | 아시마 | 아와 사람들 | 닙하스 |
스발와임 사람들 | 아드람멜렉, 아남멜렉 |
숙곳브놋(Succoth-Benoth)
숙곳브놋은 마르둑의 아내인 ‘사르파니두’(Sarpanitu)로 여겨지는 신이다. 이 신 역시 앗수르 왕에 의해 사마리아로 이주해 온 바벨론인들에 의해 섬겨졌다.(왕하17:30)
Nergal(네르갈)
네르갈은 전쟁과 홍수, 재앙 등을 관장하는 바벨론인들의 신이다. 로마인들이 ‘마르스’가 바로 이 신에 해당한다. 앗수르 왕의 이주 정책에 의해 사마리아로 이주해 온 바벨론 북동쪽 구다(굿) 사람들은 사마리아에 정착한 후에도 계속 이 신을 숭배하였다.(왕하17:30)
아시마(Ashima)
아시마는 수리아의 하맛 사람들이 섬기던 신이다.(왕하17:30) 일명 ‘시미(Simi)’로도 불리웠는데 가나안 족속의 아세라와 같은 신이다. 아람인들이 신화에 의하면 아시마는 리몬의 딸이라고 한다.
다르닥(Tartak)
다르낙 이름의 뜻은 ‘어두움의 영웅’이다. 당나귀 형상의 신으로서 앗수르 왕에 의해 사마리아로 이주한 아와(Avva?) 사람들이 섬기던 신이다.(왕하17:30)
닙하스(Nibhaz)
닙하스는 아와 사람들이 다르닥과 함께 섬겼던 메소포타미아의 신이다.(왕하17:31)
개의 형상을 지녔던 것으로 추측되는데 아와 사람들에 의해 사마리아에 전래 되었다.
아드람멜렉(Adrammelech)
아드람멜렉은 스발와임 사람들이 아남멜렉과 함께 섬기던 신이다.(왕하17:31) 추측컨대 이 중 아드람멜렉은 남신이며 아남멜렉은 여신이었던 것 같다.
아남멜렉(Anammelech)
아남멜렉은 메소포타미아의 스발와임(Sepharvaim) 사람들이 섬기던 신으로서 제의(祭儀) 중에 자녀를 불살라 바치는 의식이 행해졌다.(왕하17:31)
사마리아로 이주한 민족들과 그들이 섬긴 우상들 | |||
바벨론 사람들 | 숙곳브놋 | 구다 사람들 | 네르갈 |
하맛 사람들 | 아시마 | 아와 사람들 | 닙하스 |
스발와임 사람들 | 아드람멜렉, 아남멜렉 |
이렇게 사마리아 사람들은 여러 민족이 섬기던 우상들과 여호와를 함께 섬겼습니다. 한 마디로 양다리를 걸쳤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제사장을 뽑아서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게 했습니다. 이렇게 그들은 여호와도 경외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이 잡혀오기 전에 살던 그 지역의 관습을 따라, 그들 자신들이 섬기던 신도 섬겼습니다(종교 혼합주의).
그들은 오늘날(남 유다가 망하고, 열왕기서를 기록한 때)까지도 그들의 옛 관습을 따르고 있어서, 여호와를 바르게 경외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이라고 이름을 지어주신 야곱의 자손에게 명하신, 그 율례와 법도와 율법과 계명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의 관계가 완전히 깨지고 서로 원수가 되었습니다.
에스라서는 Rebuilding(재건, 다시 지음, 다시 쌓음)에 관해 말하는 책입니다. 에스라서는 스룹바벨 총독과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지도와 학개, 스가랴 선지자의 격려를 받은 포로 귀환 백성들이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지었다는 사실만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성전을 다시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성전(영적인 신앙 공동체)을 다시 짓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눈에 보이는 성전을 다시 건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의 영적 부흥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에스라서에 나오는 두 지도자 총독 스룹바벨과 제사장이자 학사인 에스라 중에서 누가 더 중요할까요?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건축한 총독 스룹바벨도 중요지만, 더 중요한 사람은 바로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입니다. 에스라는 영적으로 바닥을 치던 유다 백성을 다시 살리기 위해(백성들의 영적 부흥) 헌신한 제사장이요, 학사(성경 교사)입니다.
에스라는 혜성같이 등장한 사람이 아닙니다. 에스라는 오랜 시간 준비하고 역사에 등장한 사람입니다. '에스라'는 느헤미야서 8장에서 백성들 앞에 서서 반 나절 동안 하나님의 율법을 읽어주었습니다. 에스라가 초막절에 수문 앞 광장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읽어 주었던 때는 총독 느헤미야를 중심으로 3차 포로 귀환(BC 444년)이 이루어진 이후의 일입니다.
에스라는 느헤미야 8장에서 백성들 앞에서 반 나절 동안 하나님의 율법을 읽어주기 14년 전, 에스라서 7장에 먼저 나옵니다. BC 458년, 에스라는 2차 바벨론 포로 귀환자들의 책임자로 예루살렘에 돌아왔습니다. 그때 이미, 에스라가 결심한 게 있었습니다. 에스라서 7:10절에 보면 예루살렘에 돌아온 에스라가 할 일(사명)이 무엇인지 잘 나와 있습니다.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에스라 7:10)
언제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했을까요?
언제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했을까요?
언제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했을까요?
BC 458년 에스라가 예루살렘에 도착해서 영적으로 무너진 백성들을 보고 여호와의 율법을 가르쳐야겠다고 결심했을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고 준행한 것은 예루살렘으로 떠나기 이전, 바벨론에 있을 때부터 늘 하던 일이었습니다.
제사장 에스라는 대제사장 아론의 16대 자손입니다.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많은 사람들이 네 차례에 걸쳐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에스라의 조상이 바벨론으로 끌려간 것은 언제였을까요? 에스겔을 비롯한 제사장들이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던 BC 597년이 아니었을까 추측합니다. 왜냐하면 에스라의 조상들은 대제사장 아론의 후손들이었으니까요.
에스라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때(BC 458)는 조상이 바벨론으로 끌려간지 약 140년이 지난 때였습니다. 당연히 에스라는 바벨론에서 태어났고, 그의 부모도 바벨론에서 태어났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의 조상이 포로로 끌려간 바벨론에서 에스라는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고 준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결과 에스라가 율법에 능통한 학자가 된 것입니다.
평소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지 않은 에스라가 예루살렘에 도착하자마자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할 수 있었을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쉽지 않은 일입니다. 평소 여호와의 율법을 준행하지 않던 에스라가 예루살렘에 도착하자마자 여호와의 율법을 준행했을까요? 가능하다고 볼 수 있겠지만, 평소에 하지 않은 일을 갑자기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에스라는 '준비된 사람'이었습니다. 에스라는 이미 바벨론에서부터 하나님의 율법을 연구하며 준행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에스라는 '하나님께서 준비한 사람'입니다. 에스라는 하나님께서 남 유다 백성들의 영적 부흥을 위해 오랜 시간 준비하신 말씀의 사람입니다. 에스라는 포로생활하던 바벨론에서부터 이미 여호와의 율법을 가르칠 준비가 된 사람입니다.
학사 겸 제사장 에스라는 수문 앞 광장에서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율법을 읽어주고 가르치기 위해 무려 14년 동안 준비했습니다. BC 458년 학사 겸 제사장 에스라는 예루살렘에 도착했습니다(2차 포로귀환). BC 444년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도착(3차 포로귀환)할 때까지 14년 동안 에스라는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가르칠 준비를 했습니다.
에스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준행하고, 가르치는 일에 자신을 온전히 드렸습니다. 에스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준행하고 가르치겠다고 분명히 결심했기 때문에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올 수 있었습니다. 바벨론에서 예루살렘까지 넉달 걸리는 먼 길을 에스라가 포로를 이끌고 돌아올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순종 때문입니다.
“7)아닥사스다 왕 칠년에, 일부 이스라엘 자손들과 몇몇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사람들과 성전 문지기들과 성전 막일꾼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올 때에, 8)에스라도 그들과 함께 올라왔다. 그가 예루살렘에 닿은 것은, 왕이 다스린 지 칠년이 된 해의 다섯째 달이다. 9)그가 바빌로니아를 떠난 것은 첫째 달 초하루이다. 하나님이 그를 잘 보살펴 주셔서, 다섯째 달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닿을 수 있었다. 10)에스라는 주님의 율법을 깊이 연구하고 지켰으며, 또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율례와 규례를 가르치는 일에 헌신하였다.”(에스라 7:7-10 새번역)
@ 반복 어구 - '우리 하나님의 (선한) 손'
에스라가 하나님의 백성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포로귀환은 하나님의 은혜 없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도우심)로 에스라를 중심으로 한 2차 포로 귀환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에스라는 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여호와의 선한 손'이 우리를 도왔다고 반복해서 고백합니다.
에스라서 7,8장에 반복해서 나오는 표현이 '하나님의 손, 하나님의 선한 손'(7:9,28; 8:18,22,31)입니다. 하나님의 손이 나오는 구절들을 한 눈에 보기 쉽게 정리합니다.
“첫째 달 초하루에 바벨론으로 길을 떠났고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다섯째 달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이르니라”(7:9)
“또 나로 왕과 그의 보좌관들 앞과 왕의 권세 있는 모든 방백의 앞에서 은혜를 얻게 하셨도다 내 하나님 여호와의 손이 내 위에 있으므로 내가 힘을 얻어 이스라엘 중에 우두머리들을 모아 나와 함께 올라오게 하였노라”(7:28)
“우리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고 그들이 이스라엘의 손자 레위의 아들 말리의 자손 중에서 한 명철한 사람을 데려오고 또 세레뱌와 그의 아들들과 형제 십팔명과”(8:18)
“이는 우리가 전에 왕에게 아뢰기를 우리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시고 자기를 배반하는 모든 자에게는 권능과 진노를 내리신다 하였으므로 길에서 적군을 막고 우리를 도울 보병과 마병을 왕에게 구하기를 부끄러워 하였음이라”(8:22)
“첫째 달 십이 일에 우리가 아하와 강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갈새 우리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도우사 대적과 길에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지신지라”(8:31)
@ 기록 목적
1)성전 재건과 포로 귀환의 역사 증거를 남기기 위해
2)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며 살게 하려고
3)성전 재건과 함께 영적 재건(거룩한 백성으로 회복)을 위하여
4)역사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선한 손을 신뢰하게 하려고
@ 하나님의 성품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
선한 손으로 도우시는 하나님
고레스를 감동시키시는 하나님
대적의 꾀, 음모를 폐하시는 하나님
@ 에스라서 & 느헤미야서 한 눈에 보기
에스라서 | 느헤미야서 |
예루살렘 성전 재건(1-6장) (총독 스룹바벨) | 예루살렘 성벽 재건(1-7장) (총독 느헤미야) |
유다 백성 영적 부흥(7-10장) (학사 겸 제사장 에스라) | 유다 백성 영적 부흥(8-13장) (학사 겸 제사장 에스라) |
@ 에스라서 두 눈에 보기
하나님께서 성전을 세우게 하시고 울타리(성벽)를 주셨다! (9:9) | |
1차 포로 귀환과 성전 재건(1-6장)/ 스룹바벨과 여호수아 | |
1차 포로 귀환과 귀환자들 명단(1,2장) | 1차 포로 귀환(1장) |
포로 귀환자들 명단(2장) | |
성전 재건(3-6장) | 성전 재건 시작(3장) |
성전 건축 방해/ 중단(4장) | |
성전 건축 완공/ 봉헌식(5,6장) | |
2차 포로 귀환과 개혁 운동(7-10장)/ 에스라 | |
2차 포로 귀환과 귀환자들 명단(7,8장) | 에스라 소개 &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7장) |
2차 포로 귀환과 귀환자들 명단(8장) | |
개혁 운동(9,10장) | 이방 여인과의 결혼/ 에스라의 회개기도(9장) |
백성들의 결단/ 이방 여인을 맞이한 자들 명단(10장) |
@ 에스라서에 나오는 페르시아 왕들
1)고레스(Cyrus the Great, BC 559-530)
외할아버지의 나라 메대를 이기고 페르시아의 왕이 되었습니다. 동쪽 국경을 인도까지 넓혔습니다. 구바루 장군이 바벨론을 점령한 몇 주 후에 바벨론 백성들의 환영을 받으며 바벨론에 입성하였습니다.
고레스 왕은 포로로 끌려온 자들이 고향으로 돌아가 자신들의 신들에게 예배할 성전을 건축할 수 있도록 조서를 내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이 조서에 따라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을 재건했습니다(스 1:1-3). 이사야가 고레스에 대하여 예언했습니다(사 44:24-45:7). BC 530년 전쟁에서 죽었다고 전해집니다.
2)캄비세스 2세(Cambyses, BC 530-522)
아버지 고레스로부터 왕권을 물려 받았지만 경쟁자로 여긴 나머지 동생 바르디야(헬라인은 ‘스멜디스’라고 부름)를 몰래 죽였습니다. 다리오 왕이 세운 베히스툰 비문에 적힌 내용에 의하면 캄비세스 2세가 동생 바르디야를 암살했지만 백성들이 그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나옵니다.
아버지 고레스도 이루지 못했던 이집트를 정복을 꿈꾸며 이집트를 공격하는 동안 페르시아에서 왕위 찬탈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가우마타’라는 자가 캄비세스가 죽인 동생(스멜디스)인척 하고 왕권을 장악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페르시아로 돌아오던 중에 죽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캄비세스가 자살했다고 생각합니다. 켐비세스 2세가 페르시아를 통치하던 기간 내내 예루살렘 성전 건축은 중단되었습니다.
3)다리오 1세(Darius, BC 522-486)
다리오는 캄비세스 2세의 신하입니다. 이집트 정복을 끝내고 페르시아로 돌아오던 중에 죽은 캄비세스 2세를 이어 페르시아의 왕이 됩니다. 왕위 찬탈 사건의 장본인 ‘가우마타’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 사람입니다. 다리오는 파르티아 총독 히스타스페스의 아들입니다.
페르시아의 왕으로서 정통성을 얻기 위해 다리오는 고레스의 딸 아토사를 왕비로 맞이했습니다. 또한 다리오는 페르시아 왕의 정통성을 얻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을 짓도록 허락한 고레스 왕이 내린 조서 내용을 그대로 시행했습니다. 그의 통치 기간 중에 오히려 다리오를 왕위 찬탈자로 여긴 자들의 반역이 여러 차례 일어났지만 모두 진압했습니다.
다리오는 아주 능력 있는 왕이었습니다. 새로운 행정구역으로 나라를 조직했고, 발전된 우편시스템 도입한 왕입니다. 다리오 왕은 그리스를 점령하기 위해 BC 492, 490년 두 차례 공격했지만 마라톤 전쟁(BC 490)에서 패함으로 그 목적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에스라 6:6-12에 나오는 다리오의 조서를 통해 유대인들이 성전 건축을 끝냈습니다.
4)아하수에로(Xerxes, Ahasuerus, BC 486-465)
아버지 다리오로부터 왕위를 물려 받았습니다. 아버지 다리오 왕 때, 두 번에 걸쳐 그리스와 싸웠지만 전쟁에서 패한 것 – 특별히 마라톤 전투(BC 490) - 을 만회하려고 많은 군사를 훈련시켜 그리스를 공격하였으나 살라미스 전투(BC 480)에서 패했습니다. 이 전투에서 그리스 군대가 아하수에로를 속여 유인해서 크게 승리했습니다(영화 '300' 내용).
그리스와의 전쟁에서 패하고 고국으로 돌아온 아하수에로 왕은 낙담한 상태였고, 그때까지 공석이었던 왕비를 새롭게 간택하려고 했습니다. 그 동안 페르시아의 왕비를 간택할 때, 가장 유력한 일곱 가문의 딸들 중에서 간택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 때, 일곱 가문의 딸들 중에서 뽑지 않고, 모든 페르시아 여인 중에서 택했습니다. 페르시아 모든 지방에서 아름답고 젊은 처녀들 중에서 왕비를 택했습니다. BC 479년 에스더가 페르시아 왕 아하수에로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포로로 끌려온 유다 가문의 딸이 페르시아의 왕비가 된 것은 처음 있는 일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입니다.
“2)왕을 받드는 젊은이들이 이것을 알고 왕에게 말하였다. "임금님을 모실 아리땁고 젊은 처녀들을 찾아보게 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3)임금님께서 다스리시는 각 지방에 관리를 임명하시고, 아리땁고 젊은 처녀들을 뽑아서, 도성 수산으로 데려오게 하시고, 후궁에 불러다가, 궁녀를 돌보는 내시 헤개에게 맡기시고, 그들이 몸을 가꿀 화장품을 내리십시오. 4)그리 하신 뒤에, 임금님 마음에 드는 처녀를 와스디 대신에 왕후로 삼으심이 좋을 듯합니다." 왕은 그 제안이 마음에 들어서 그대로 하였다.”(에스더 2:2-4)
5)아닥사스다 1세(Artaxerxes, BC 465-425)
아하수에로 왕의 아들입니다. 오른손이 왼손보다 길어서 ‘롱기마누스’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닥사스다가 왕궁 경비대를 시켜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고 합니다. 그는 모든 경쟁자들을 없애 버렸습니다. 이집트와 페르시아의 반란을 진압한 왕입니다.
BC 460년에 이집트에서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이때 페르시아와 세 번에 걸친 전쟁에서 승리한 그리스가 이집트를 지원했습니다. 이집트에서 발생한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강 서편(시리아/ 당시 예루살렘은 시리아에 속해 있었음) 총독인 메가비주스를 보냈습니다.
메가비주스가 가서 반란을 진압했지만 이집트는 항상 위협적인 나라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페르시아 입장에서는 이집트와 페르시아 사이에 완충지대가 필요했습니다. 이것을 위해 페르시아에서 유다 지역에 총독을 파견했습니다. 총독만 보내기 뭐하니까 포로로 끌려온 유다 백성들도 함께 보냈습니다. 이것이 BC 458년 이루어진 2차 포로 귀환입니다.
그런데 믿었던 (강 서편) 시리아 총독 메가비주스가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아닥사스다 왕이 배신을 당한 겁니다. BC 445년 메가비주스가 반란을 철회하고 항복했지만 아닥사스다가 더 이상 메가비주스를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이 황폐해졌다는 소식을 듣고 고민 고민하다가 고향에 보내달라고 왕에게 간청했습니다.
느헤미야도 예루살렘으로 가고 싶었고, 아닥사스다 왕도 이집트를 견제하기 위하여 유다 지역을 완충지대로 만들려는 생각에 누군가를 보내야만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닥사스다 왕이 흔쾌히 느헤미야를 유다 총독으로 파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BC 444년에 이루어진 3차 포로 귀환입니다. 느헤미야가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했습니다.
에스라-느헤미야를 공부할 때, 고레스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왕이 아닥사스다 1세입니다. 아닥사스다 1세가 통치하던 시대에, 두 차례에 걸쳐 포로귀환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2차 포로귀환은 BC 458년 학사겸 제사장 에스라의 주도로 이루어졌고(스 7:10-25 참고), 3차 포로귀환은 BC 444년 총독 느헤미야의 주도로 이루어졌습니다(느 1장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