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 대형 SUV의 기준을 끌어올리다, 현대자동차 팰리세이드송지산 기자 입력 2022.06.15. 10:22
자동차의 대형화는 근래에 갑작스레 일어난 일은 아니다. 시계를 멀리 과거로 돌려봐도 같은 이름의 모델이 세대를 거듭하며 조금씩 크기가 커져 온 사례는 흔하게 찾을 수 있다. 그 때문에 과거의 분류 기준은 지금과 상당히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더 넓은 공간을 선호하는 분위기 때문이 아닐까. 집뿐만 아니라 자동차 역시도 이러한 이유로 조금씩 대형화가 진행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 SUV 열풍이 더해져 대형 SUV의 전성시대를 맞았다. 브랜드들마다 각자의 색깔을 담은 모델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어필하려 노력하고 있다. 이는 국산 브랜드뿐만 아니라 수입 브랜드 역시 마찬가지여서, 과거에는 시장성이 떨어져 병행으로나 수입되던 모델이 정식으로 선보이고 있을 정도로 시장이 달라졌다.
이런 변화를 이끈 대표적인 모델이 현대자동차의 팰리세이드일 것이다. 출시 전부터 뜨거운 반응으로 돌풍을 예고한 팰리세이드는 2020년과 2021년 현대자동차 SUV 라인업 중에서 가장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으며, 올해 역시 반도체와 부품 수급 등의 이슈에도 불구하고 지난 5월까지 SUV 모델 중 판매 1위를 달리고 있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세단 라인업에서도 플래그십 모델인 그랜저가 판매 1, 2위를 다투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겠다. 이런 팰리세이드가 드디어 첫 번째 부분변경이 이뤄져 시승을 통해 좀 더 꼼꼼하게 살펴봤다.
시승차는 팰리세이드 캘리그라피 트림으로, 전면부의 크롬 그릴이 인상적인 모델이다. 초기형 모델은 그릴이 사다리꼴 형태였으나, 이번 변경과 함께 그릴 상단부 첫 줄을 좌우로 넓힌 T자형으로 바뀌어 더 넓어진 형태가 무게감을 더한다. 이 디자인은 최근 공개된 베뉴 페이스리프트 모델에도 적용된 것을 볼 때 앞으로 현대차 SUV의 패밀리룩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길에서 팰리세이드를 흔하게 볼 수 있지만 실제 시승해보는 건 이번이 처음인데, 가장 크게 놀란 건 실내 공간이었다. 물론 현대차의 공간 활용력에 대해서는 익히 잘 알고 있지만 SUV라는 한계 때문에 여타 7, 8인승 모델과 비슷한 수준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넓은 공간에 깜짝 놀랐다. 특히 3열 시트는 여타 SUV에선 초등학생 정도나 겨우 탈 수 있는 수준이었던 것과 달리, 팰리세이드는 2열 탑승자가 조금만 양보해주면 성인도 탈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 나온다. 여기에 카시트 고정을 위한 ISOFIX가 3열에도 마련되어 있어 상황에 따라 아이를 태울 수도 있어 3열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
이렇게 3열까지 여유 있는 공간을 확보한 만큼 트렁크 공간이 작아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여기서 소비자들의 선택이 갈리는 것이다. 3열까지 사람을 자주 태워야 한다면 스타리아나 기아 카니발 같은 MPV 쪽으로 시선을 돌리겠지만, 3열을 가끔 이용하는 정도라면 팰리세이드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각자의 상황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텐데, 초등학생 정도의 자녀가 있는 3~4인 가족에, 가끔씩 부모님도 함께 모시고 다니는 경우라면 7~8인승 정도의 팰리세이드가 적격인 셈이다.
실내 공간이 워낙 넓으니 차박 용도로도 괜찮은 선택인데, 이 경우 7인승은 2열이 분리되어 있어 별도의 평탄화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에 8인승 쪽을 선택하면 된다. 실제 2열까지 접은 후 트렁크에 누워보니 196cm인 기자가 눕고도 발밑 공간에 여유가 있어 어른 2명에 자녀 1명 정도까지는 문제없을 정도다. 2, 3열 시트를 접을 땐 트렁크에서 버튼으로 편리하게 접을 수 있는 점도 좋다.
운전석은 이전 모델과 비교하면 확 달라진 점들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역시 공조장치 조작부가 아닐까. 기존에는 물리 버튼과 다이얼, LCD 표시창으로 구성되어 잇었으나, 이번 페이스리프트와 함께 터치스크린이 적용됐다. 물리 조작계는 온도조절 다이얼과 성에 제거, 공조장치 전체 차단, 열선 작동 버튼 등이 남아있지만 주행 중 사용하려면 시선을 내려야 해 불편할 수밖에 없는데, 그래도 음성명령 기능이 잘 작동하기 때문에 시선을 옮기지 않고도 관련 기능들을 사용할 수 있어 문제없다.
또다른 변경점 중 하나는 인포테인먼트 단축 버튼이 금속 재질에서 플라스틱 재질로, 스티어링 휠의 버튼이 플라스틱에서 금속 재질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시승차는 인테리어가 흰색 위주로 되어 있어 적절한 대비가 잘 어울리지만 진한색의 인테리어인 경우 대비가 명확하지 않아 묻히는 느낌도 든다. 대시보드의 송풍구도 개별적으로 배치해놨던 것과 달리, 길게 이어지는 트림을 이용해 하나로 이어놓은 점도 달라진 부분이다. 시승차는 사륜구동(HTRAC)이 적용되지 않아 주행모드 다이얼이 밋밋한 상태지만, 추가될 경우 오프로드 주행 모드가 더해져 험로도 문제없이 달릴 수 있다.
이번 부분변경부터 2열 창문까지 이중접합 차음유리가 적용됐다
시승을 시작하며 첫 번째로 놀란 건 조용한 실내였다. 시승차가 3.8 가솔린 엔진을 탑재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엔진 소리가 아득할 정도로 저 멀리에서 들려오는 것으로 착각할 만큼 소음 억제력이 뛰어나다. 기본적인 NVH 대책이 잘 갖춰져 있는데다 이번 페이스리프트부터 전 모델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2열 도어 글라스 이중접합 차음유리, 캘리그라피 트림의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조합된 결과다. 여기에 12개 스피커와 외장앰프로 구성된 크렐의 오디오 시스템이 깨끗한 음질을 제공하니, 크게 소리를 높이지 않고 귀가 편안한 상태로 음악을 즐길 수 있어 좋다.
3.8 가솔린 엔진치고는 예상보다 높은 연비를 보여준다
두 번째로 놀란 건 연비다. 이 정도 덩치를 생각해도 9.3km/L의 공인연비면 꽤 나쁘지 않은수준으로 생각했는데, 실제 주행에서는 10km/L 이상도 큰 어려움 없이 가능하다. 공회전을 줄여주는 스타트&스톱 기능에 엔진의 효율성을 극대화한 앳킨슨 사이클 방식을 채택한 것이 주효한 덕분이다. 이 방식은 주로 사용하는 오토 사이클 방식과 비교할 때 소폭의 성능 감소가 있지만, 실제 주행에서 부족함이 느껴지진 않는다. 여기에 최근의 유가 폭등까지 겹친 상황에서 이렇다 할 장점이 사라져버린 디젤 모델을 선택할 이유가 있을까 생각된다.
물론 여기에 하이브리드가 더해지면 훨씬 더 나은 연비를 기대할 수 있겠지만, 최근의 반도체 이슈 등으로 다른 하이브리드 모델 생산이 적체되고 있는 상황에서 팰리세이드까지 하이브리드로 합류하는 건 생산난을 가중시킬 우려가 높다. 여기에 얼마 남지 않은 내연기관 모델 생산 중단을 고려할 때 하이브리드를 도입하는 것보다는 순수전기차로 넘어가는 쪽이 더 낫다고 판단한 것일 수도 있는데, 이미 아이오닉 브랜드의 출시 예정 모델 중 대형 SUV가 팰리세이드의 배턴을 이어받을 것으로 보인다.
주행보조 기능이나 안전 기능에 대해선 말이 필요할까. 여타 브랜드가 따라오지 못할 만큼 막강한 수준인 현대차그룹의 ADAS 기능은 자율주행 도입 전 완성형에 가까워지는 모습이다.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이 전 사양 기본 적용되고, 시승차에는 이보다 업그레이드된 내비게이션 기반 크루즈 컨트롤이 적용됐다. 고속도로나 자동차 전용도로에서 기능을 사용하면 앞차와의 거리에 맞춰 주행하는 건 물론이고 알아서 규정속도에 맞춰 조절해주기 때문에 신경 쓸 부분이 크게 줄어든다. 이 기능을 차선 유지 보조 기능과 함께 사용하면 몇 시간이고 쉬지 않고 달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편하다. 운전에 익숙해졌다고 해도 매 순간 차량과 주변의 다양한 정보들을 파악하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닌데, 이런 부담을 반 이하로 확 줄여줄 뿐 아니라 자칫 놓칠 수 있는 위험한 상황도 방지해주는 각종 안전기능들까지 있으니 걱정이 줄어든다.
서스펜션은 부드럽게 세팅됐는데, 본격 오프로더가 아닌 패밀리카 성격의 모델이니 당연한 선택이다. 노면의 요철이나 이물질을 밟아도 존재감만 전달할 뿐 충격이 전해지진 않고, 코너에서 좌우로의 쏠림이 있지만 과하게 출렁거리진 않기 때문에 운전에 더욱 집중할 수 있다.
인포테인먼트는 익숙한 구성의 내비게이션에 안드로이드 오토나 애플 카플레이와 같은 스마트폰 연결 방식을 지원하기 때문에 원하는대로 선택할 수 있지만, USB 케이블로 연결해야 하는 점은 아쉬운 부분. 변속기가 전자식으로 변경되며 센터 콘솔 아래에 수납공간을 마련한 것도 좋다. 에르고 모션 시트는 허벅지와 옆구리 등 세밀한 조절 기능과 함께 바닥면과 허리쪽 시트를 움직여 긴장을 풀어주는 기능으로 장시간 운전의 부담을 상당히 덜어준다.
스포츠카라면 성능, 핸들링, 민첩성 등 따져야할 요소들이 많지만, 도심형 모델, 특히 패밀리카라면 편안함이 최우선 고려사항이다.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넓은 실내공간에 다양한 편의기능과 안전기능으로 무장한 팰리세이드가 출시 이후 지금까지 왕좌를 지키고 있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첫 등장으로 시장의 변화를 이끌었다면, 이번 부분변경 모델은 시장의 기준을 높였다. 경쟁자들이 뼈를 깎는 수준으로 상당히 노력하지 않으면 선두를 위협할 수준까지 접근하는 것도 어림없는 일이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