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 명단을 구성할 때 김한수(36)는 가장 먼저 넣어야 하는 선수 중에 한명이야. 김한수가 언제부터 수비형 선수였다는 소리를 듣는 거야. 그럼 김한수는 방망이 대신 글러브를 들고 타석에 들어서나.” 한국스포츠 사에서 '3월의 광란'으로 영원히 기억될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신화의 사령탑이었던 김인식 감독(59,現 한화 이글스 감독)의 말이다. 당시 김한수는 허벅지 부상을 이유로 태극마크를 반납했었다. 하지만 김인식 감독을 비롯한 국내야구 지도자들에게 '국가대표팀의 3루수를 선발할 때 누구의 이름을 가정 먼저 적겠는가?'하는 질문을 던진다면 그들은 김한수 라는 이름 석자를 국가대표명단 맨 윗줄에 어렵지 않게 적을 것이다.
정글을 지배하던 수자사의 말년을 본적이 있는가? 한때 사자무리의 최고 우두머리에 있는 사자일지라도 늙고 병들어서 우두머리의 자리에서 내려오는 순간 그는 정말 비참함이라 말할수 밖에 없는 쓸쓸한 말년을 보낸다. 집단생활을 하는 사자에게 있어서 정상의 자리에서 내려온 후의 노후는 무리의 존경을 받는 안락함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비참한 말년이 검은 입을 벌리고 있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프로야구 8개 구단 중 역대승률 1위에 빛나는 (1662승 75무 1274패 승률 .566) 삼성에는 한국야구의 한 페이지를 화려하게 수놓은 스타들이 누구보다 많았지만 정글의 사자(라이온즈)사회에서 그렇듯 만인에게 존경을 받으며 행복한 마무리를 지으며 라이온즈의 유니폼을 입은 채로 명예롭게 선수생활을 끝마친 이는 거의 없었다.
사람들은 삼성출신 스타선수들을 말할 때 이선희(52)-김일융(54)-김시진(49)-장효조(50)-박충식(37)-이만수(47) 등 한때 한국프로야구라는 정글을 지배하다가 차디찬 버림을 받은 이름을 먼저 기억하게 되었다. 삼성의 대표적인 프랜차이저인 양준혁(38)도 한때 광주로 '유배'를 갔던 쓰라린 추억이 있고, 일본야구의 심장이라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4번 타자로 맹활약을 하고 있는 이승엽(31)도 삼성과 '아름다운 이별'을 했다고 말하는 이는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이 둘은 누구보다도 자신의 몸 안에는 붉은 피가 아닌 푸른 피가 흐른다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이들이었다. 아! 물론 예외도 있었다. 삼성의 내야를 진두지휘했던 류중일(44 ,현 삼성라이온즈 수비 코치)이 바로 벤다이어그램의 바깥부분이었다. 그는 많은 삼성출신 스타플레이어들이 밟았던 전철을 밟지 않고 명예롭게 라이온즈 맨이란 프라이드를 안고 유니폼을 벗을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코치로서 라이온스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는 유니폼을 입고 있다.
2005시즌 시작 전 삼성은 전년도까지 수석코치였던 선동렬(44)코치가 감독으로서 5년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선동렬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삼성 라이온즈는 정규리그 1위 팀 자격으로 2005년 한국시리즈에서 정규리그 3위 한화 이글스를 3승 무패로 예상보다 어렵지 않게 제압하고 파죽지세의 기세로 올라온 정규리그 2위 두산 베어스와 2001년 이후 4년만의 재대결을 하게 되었다. 삼성에게 있어 두산이라는 팀. 특히 2001년 한국시리즈는 자다가도 식은땀을 흘리며 단잠을 깨우는 '악몽' 그 자체였다. 모든 분위기는 마치 4년 전의 끔찍했던 시절의 그것과 너무나도 유사하게 돌아가는 듯했다.
그러나 삼성은 당당한 에이스로 자리 잡은 배영수의 호투와 권오준(27)-오승환(25)이라는 최강의 불펜라인을 앞세워 두산의 타자들을 KO 시켜버렸다. 또한 삼성타자들의 방망이는 적재적소에서 점수를 뽑아내며 리오스(34)-랜들(30)-박명환(30)-이혜천(28)등이 버틴 두산의 마운드를 무력화시켰다. 사람들은 양준혁의 활약에 주목했지만 언제나 그렇든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다해준 1등공신이 있었다.
2004시즌 종료이후 김한수에겐 FA 자격이 주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맞이한 2004년 현대 유니콘스와의 한국시리즈. 이 시즌 최종전에서 타율 .378(27타수 14안타) 1홈런 6타점의 불망이를 휘두르며 타선을 이끌어 나갔다. 그러나 2004년 우승컵은 유니콘스의 품으로 돌아갔고, 김한수의 맹활약은 팀이 시리즈에서 패하며 묻히고 말았다. 그의 가치가 재조명 될 기회는 그렇게 지나간 것이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맞이한 2005, 2006년은 오히려 한국시리즈에선 부진했지만, 양준혁과 선수단을 이끌며 팀을 2연패 시킨다. 그는 좋은 활약과 함께 재조명 될 수 있었던 기회를 놓쳤지만, 팀은 우승을 거머쥐었던 것이었다. 스포트라이트는 배영수(26), 박진만, 권오준, 오승환이 받았지만 그는 행복했다.
참고로 김한수는 FA 선언당시 시장 최대어로 꼽히기에 손색이 없었다. 3할과 골든글러브란 어려운 미션을 늘 소리 소문없이 수행하는 그에게 3루 자리의 마땅한 주인이 없었던 롯데 자이언츠와 LG 트윈스 등의 팀들은 정규시즌 도중에도 끊임없이 러브콜을 보냈다. 특별한 큰 부상없이, 시즌 출전을 강행하고, 불평이 없다는 점도 그를 바라보는 시선을 더욱 따뜻하게 해주었다. 특히 당시 롯데 감독이던 양상문 現 엘지 투수코치(46)의 요청으로 김한수가 롯데 유니폼을 입기 직전까지 이른다.
그러나 선동렬 감독의 긴급 요청과 최종 조건을 단서로 삼성 김재하 단장(44)이 4년간 28억원을 제시한다. 그리고 김한수는 두 번 고민할 것 없이 '푸른피의 사나이'로 영원히 남겠다는 결심을 굳히게 된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팀 선배 류중일이 그랬던 것처럼 팬과 구단 모두에게 좋은 기억만을 남기며 레전드의 명단에 오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때론 불행은 가장 행복한 순간에 찾아오기도 한다. FA로 삼성에 잔류한 2006년부터 그의 몸은 급격하게 노쇠해버렸다. 구단은 그가 10년 가까이 지켜오던 땅인 3루는 팀의 '젊은 사자' 조동찬(24)에게 내주길 원했다. 그리고 순둥이였던 김한수 답게 그는 순순히 바로 맞은편 베이스인 1루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그에게 1루는 한국의 반대편인 우루과이에 떨궈 놓은 것처럼 낯설기 짝이 없는 자리였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허벅지 부상을 이유로 불참케 한 것도 낯선 포지션에 발령받은 그에게 적응할 시간을 주기위한 선동렬 감독의 속 깊은 배려였다. 그러나 김한수는 본인이 원치 않은 고난을 겪게 되었다. 수비율 99.9퍼센트를 자랑하는 1루수이지만, 그의 고민은 수비의 부족한 0.1퍼센트가 아니었다.
당신의 그림자를 이제야 돌아보다.
1994년 입단 당시에 김한수는 김용국이 태평양으로 이적한 해라서 큰어려움없이 3루에 안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방위복무를 마치고 온 1997년이 문제였다. 군복무중이던 1995년 덩치 큰 선수가 3루에 떡하니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선수가 바로 양준혁과 더불어 미래의 주포로 평을 받던 이동수(34)였다. 그리고 양준혁, 이동수라는 상징을 점차 부각시켜 지속해오던 공격적인 삼성 라이언즈의 팀 칼라를 감안했을 때, 김한수가 바라보던 써드 베이스는 대수비로 나설 때만 밟을 수 있는 코스로 생각이 되었다.
팀 내에서 분명 이동수는 삼성의 드라마틱한 시나리오에 충분히 부응해줄만한 선수였고 그럴 것이라 여겨졌다. 그러나 이동수는 1996년 부진을 겪으면서, 1997년 롯데로 트레이드 된다. 여려보이는 김한수는 이동수가 갖고 있던 3루 대본을 받아들인 뒤 찬찬히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동수가 갖고 있던 삼성 라이온즈의 향후 10년간 베스트 진용 대본을 조금씩 수정하기 시작했다. 박충식. 양준혁이 주목받을 때, 그는 신발 끈부터 고쳐 매고 있었다. 그것이 지금의 백넘버 5번을 달던 선수가 가장 먼저 하던 일이었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서 숱하게 언급되던 그의 고교시절. 어찌보면 김한수는 전국대회에서 주목받기 시작하던 고교시절부터 본인의 의지와는 달리 카메라는 그를 외면하였다. 서울 광영고등학교 운동장을 모든 이들이 자리를 비웠을 때, 또 뛰고 자신을 채찍질하면서 동기 최동수(36)와 자신의 능력 그 이상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그곳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중앙대학교에 진학하면서 자신을 다시 한번 강하게 채찍찔 하였고, 그 결과 임수혁(38), 인현배(36), 서용빈(35), 김태균(36), 이숭용(36)등과 더불어서 2차 지명 대상자 명단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그러나 김한수를 지명 당시 삼성 라이온즈의 레전드 급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예상한 전문가들은 아무도 없었다.
첫댓글 좋은글,글에 걸맞는 좋은 음악 감사합니다. 롯데팬을 떠나 야구팬의 입장으로 올해 김한수 선수의 성적이 좋지 않아 안타깝습니다. 시즌이 많이 남았으니 언젠가 빚을 발하겠죠? 김한수 선수를 보니 공필성선수도 생각나고 현대의 전준호 선수도 떠오르네요.^^
한때 최고선수였는데..지금은 부진으로인해 ...안타깝네요 ..
항상 잘 보고 있어요~~방금 네이버에 나왔네요..그런데 다른 기자 이름으로 나오나봐요??
엇? 근데 님 성함이 아닌거 같던데~ 네이버에서 이글 봤거든요!! 잘 읽엇습니다 ^^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와....이거 방금 네이버에서보고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거사회원님이실줄이야.. 대단합니다!!!! 좋은걸 앞으로도 부탁드려요~~^^
저도 낮에 다음에서 봤었는데.. 정말 멋집니다. 김한수 선수 꼭 부활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