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에서 있었던 방화련과의 첫 만남을 떠올리면서 오자성은 바로 어제 저녁 에 방씨 자매가 앉아 있던 취선루의 이층 창가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생각에 잠겼다. 그날 너무도 화가 난 나머지 그녀 방화련을 죽이기 위해 살수들을 고용했지 만, 오자성은 그 일을 실행할 수 없었다. 바로 다음날 운남에 머물면서 그 지역을 다스리고 있던 아버지가 청의 황제를 만나기 위해 북경에 올라왔고, 살수들에게 미처 명령을 내리기 전에 아버지와 함께 자금성에 들어가게 된 오자성이었다. 만주족의 첫 황제인 순치제를 만나기 위해 건천궁으로 이동하던 오자성은 다 음 대의 황제가 될 것이 유력시되고 있는 현엽(玄燁) 삼 왕자를 안고 걸음을 옮 기고 있는 방수련의 모습을 보았던 것이다.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놀란 눈으로 그녀가 들어간 어화원 쪽을 바라보는 오자 성에게 안내를 맡고 있던 한 환관이 그녀의 신분에 대해 말해주고, 그래서 오자 성은 복수를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평서왕부의 힘으로도 어찌 할 수 없을 정도 로 대단한 배경을 지닌 여자를 잘못 건드렸다가는 볼모와 비슷한 신세로 북경에 머물고 있는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워 질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태후와 친구이고 태자로부터 이모 소리를 듣는 여자라니---, 여진족의 남자 와 결혼한 유부녀인줄은 내가 어찌 알았겠느냐고----? 젠장." 쌍소리를 내 뱉으며 오자성은 술잔 대신에 아예 술병을 집어들고 벌컥벌컥 술 을 마시면서 북경에 있던 방씨 일가의 집을 찾아가던 날의 일을 다시 떠올리기 시작했다.
자금성을 나와 북경에 있는 저택으로 돌아오자마자 아버지는 자신에게 방수련 을 욕보이려 했느냐고 물어보고, 오자성은 혼날 것이 겁이나 부인을 했지만 아 버지는 자신과 어울리던 파락호 여섯을 모두 불러다 그날 목을 배어 버렸다. 그 날 아버지의 노기는 하늘을 찌르는 것이었다. "이런 한심한 놈!" 아버지의 추궁에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만 오자성의 귀에 들려온 아버지의 말 이었다. "네 녀석이 무엇이 부족해서 한낮 거리의 불량배와 어울려! 장차 대업을 도모 해야 할 녀석이 잠시의 욕정을 참지 못한다는 말이냐?!" 그렇게 아버지에게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고 두들겨 맞으면서 혼난 다음에는, 막대한 선물을 싸들고 용서를 빌기 위해 방씨 자매가 머물고 있다는 저택을 향 해 걸음을 옮겨야 했다. 북경의 동쪽에 위치한 그 백초당이란 현판이 걸려 있는 저택의 앞에는 길다란 줄이 늘어서 있었다. 이미 한번 혼이 난 경험이 있는 오자성 역시 이번에는 신중하게 행동했다. 전 같으면 권력을 믿고 길을 막고 있는 줄을 지어 서 있는 무리들을 모두 쫓아내겠 지만 ,이번에는 얌전히 줄을 서고 늘어선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래서 백초당의 앞을 늘어선 길다란 행렬 속에는 여진족의 귀공자들이 잔뜩 늘 어서 있다는 것과 그 속에는 심지어 황족마저 끼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 다. "당신도 수련 낭자에게 청혼하기 위해 온 사람이오?" 잔뜩 짐을 짊어진 하인을 대동한 한 사람이 오자성에게 다가와 물었다. "네? 저는 이곳에 있는 방화련이라는 부인을 만나야 할 일이 있어서 온 것인 데요?" "그렇다면 줄을 잘못 섰군요. 이 줄은 수련 낭자를 만나기 위한 줄이니 이 백 초당의 서쪽 문으로 가시지요." 정중한 말을 사용하면서 건물의 모퉁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그 사내의 하 얀 얼굴을 바라보며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오자성이었다. 차림을 살펴보면 아무래도 황족으로 보이는 남자의 그 말을 들으면서 오자성 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물었다. "그럼 이 줄이 그 수련이라는 낭자에게 청혼하려는 사람들의 줄이란 말씀이오 ?" "모르셨소? 수련 낭자의 그 아름다운 모습을 한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절대 로 다른 여자에게 시선을 돌리지 못할 것이오." 오자성이 그런 말을 듣고 있을 때 방수련은 화장대 앞에 앉아 화장을 하면서, 등뒤에서 수다를 떠는 언니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 오자성이라는 남자를 그냥 놔주고 왔어?" "그럼 어쩌니? 생각 같아서는 그냥 죽이고 싶었지만 살인을 할 수는 없지 않 니?" "그래도--, 다시는 못된 생각을 못하도록 그런 놈은-----." 자매가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그녀들이 머물고 있는 방 밖에서 하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첫째 아가씨, 평서왕부의 오자성이라는 공자가 사죄를 청하러 왔다며 대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어찌할깝쇼?" 밖에서 들려온 늙은 하인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자매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할꺼야, 언니?" "음---, 태후 마마의 부탁도 있고 사죄를 받아야겠지. 황궁에 들렸을 때 너무 화가 나서 오자성이란 놈을 잡아다가 목을 베라고 청했지만, 황제 폐하까지 나 서서 말리시더라고. 운남에 있는 평서왕부의 병력을 무시 할 수 없다는 말도 하 고---, 그날 참 여러 가지 소리를 들었지." "그래? 그래도 이대로 용서를 해 주기에는 너무 억울한데-----." "어쩔 수 없지 않니?" "아니야, 내게 방법이 있어. 그 오자성이란 못된 놈을 골탕 먹일 좋을 방법이 있다고. 언니는 여기 가만있어. 내가 그 못된 놈을 만날 테니까---."
그래서 그날 사죄를 청하러 백초당이란 약초 도매 상인의 집에 들렸던 오자성 은 언니인 방화련 대신 동생인 방수련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계단을 타고 사뿐사뿐 걸음을 옮겨 내려오는 그녀의 모습을 보는 순간 오자성 은 심장이 멎는 듯한 충격을 맛보아야만 했다. 그날 다른 많은 남자들처럼 오자 성 역시 상사의 병이라는 것을 얻었던 것이다. "언니는 당신을 만나지 않겠답니다." "그럼 제발 이 사죄의 뜻으로 가져온 물건이라도 받아 주시지요." 뚜껑이 열려서 비단과 보석들이 드러나 있는 상자들을 바라보면서 그녀 방수 련의 고개는 저어졌다. "사죄는 받아들인 것으로 하겠으니, 이 물건들을 가지고 그만 저희 집에서 나 가 주세요." 방수련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오자성은 갑자기 온 몸이 둥둥 하늘로 뜬 것 같 고, 귓가에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는 온 몸을 녹이는 것 같은 그런 느낌에 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미 많은 미녀들을 보고 또 밤을 함께 할 수도 있었던 오자성이었지만, 지금 눈앞에 보이는 여자처럼 그의 마음을 사로잡는 여자는 만난 적이 없었던 것이 다. 그녀의 말을 한마디라도 더 듣고 싶었지만 그녀는 할 말이 끝났는지 매몰차게 뒤돌아 서서 다시 집안으로 걸음을 옮기고, 얼떨결에 오자성은 궁장을 입고 있 던 그녀의 소매를 붙잡았다. 치맛자락에 발이 걸렸는지 그녀 방수련은 쓰러지고, 오자성은 다시 얼떨결에 쓰러지는 그녀의 몸을 안게 되었다. "이런 못 된 사람 같으니! 언니마저도 모자라서 나까지!" 갑자기 방수련은 잔뜩 화가 난 얼굴로 오자성을 쳐다보며 그렇게 소리치고, 오자성의 뺨에는 방수련의 손이 날라 왔다. '짜 아 악!' 언니한테는 목을 졸리고, 동생한테는 뺨을 얻어맞았지만 그래도 기분만은 하 늘을 날아오를 것 같은 오자성이었다. 아직도 야들야들한 방수련이라는 낭자의 살결의 감촉이 그녀를 안은 손과 가슴에 남아 있는 오장성이었다. 총총 걸음으로 그대로 집안으로 뛰어들어가는 그녀를 보며 입을 헤벌리며 웃 으며 뒤를 돌아선 오자성의 얼굴은 다음 순간 심각하게 굳어졌다. 어느새 뒤에 는 백초당의 길목을 막아선 채 길게 줄을 지어 늘어선 사람들이 성난 얼굴로 몰 려와 있었던 것이다. "감히 네가 우리의 수련 낭자를----." "우리는 손도 못 잡아본-----." "죽어!" 그것이 시작이었다. 어디서 났는지 손에 손에 몽둥이까지 집어들고 오자성을 두들겨 패려는 사람들을 관군들조차 막을 수는 없었다. 그 속에는 왕부의 왕자 들과 고관대작의 자제들까지 끼어 있어 관군은 폭도로 변한 사람들을 막아주지 도 않았다. "사람 살려!" 별수 없이 머리를 싸매고 비명을 내지르며 오자성은 정말 정신없이 자신의 사 병들이 대기하고 있는 저택을 향해 도망쳐야 했다.
백초당에서 가장 높은 건물의 다락방에 올라가서 머리를 감싸고 몰매를 피해 서 도망치는 오자성의 모습을 구경하면서 자매는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호호호, 네게 좋은 생각이 있다더니 바로 이 방법이었구나!" "깔깔깔, 저런 놈은 맞아 죽어도 싸! 깔깔깔!" 자매는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 다락방에서 배꼽을 부여잡고 폭소를 터트렸 다.
간신히 저택 안에 들어서고 나서야 몽둥이와 돌팔매를 피할 수 있게 된 오자 성이었다. 그날 처음으로 성난 군중들에게 몰매라는 것을 맞아서 죽다 살아난 경험을 하 게 되었지만, 오자성은 그래도 좋았다. 자신의 손으로 천하제일미인을 안아 볼 수 있었으니--. 그날 몰매를 얻어 맞아가며 간신히 자신의 집안으로 도망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가 붙여준 충실한 하인들 덕택이었다. 그날부터 한달 동안이나 몸져누워 있어야 했지만 사람들에게 얻어맞은 몸보다는 마음이 더 아프게 된 오자성이었 다. 자신의 마음을 송두리째 앗아가 버린 방수련의 모습이 눈만 감으면 머리 속에 떠올라 미칠 것 같은 오자성이었다. 그러나 이미 그 방씨 자매에게 미운 털이 단단히 박혀 있는 자신의 입장에서 그녀 방수련에게 청혼을 한다해도 받아주지 않을 것은 분명했다. 미녀를 한번 안아 본 대가는 너무나 큰 것이었다. 방수련을 사모하는 남자들 중에는 권력과 재력이 넘쳐 나는 사람도 무척이나 많다는 것을 오자성은 확실하 게 알 수 있었다. 몸져누워 있는 한달 내내 북경의 평서왕부로 매일 밤마다 자 객이 쳐들어오고, 낮에는 황족과 귀족들이 찾아와 그 자신을 못살게 굴었던 것 이다. 그래도 방수련의 모습을 잊지 못한 오자성이었다. 원래는 북경을 벗어나면 안 돼는 처지였지만 먼발치에서나마 방수련의 모습을 다시 보려고 개봉까지 찾아와 이렇게 심란한 마음을 달래고 있는 것이다. |
첫댓글 ◎감사합니다..♧
날마다, 좋을 순 없지만. 날마다, 웃을 순 있어요..^)^
행복한 하루, 좋은 하루 되시길요.~ ^(^
날이 가고, 달이 가고, 세월이 가도,
우리 함께 가는 길이
늘 건강하고, 행복하길 기원합니다....()()
방소구의 집안이 어마무시하군요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방수련이 어떠한 경로로 쫒기는 와중에서도 고위관직의 자제들까지 줄을서게하는 귀한신분으로 되었는지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