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년 롯데자이언츠는 우승하기는 했지만 실제적인 전력은 6개 구단 중 4위 정도의 실력이었고 실제 전/후기 통산성적은 4위였다. 최동원이라는 역대 최고의 투수를 가지고도 4위라...비록 한국시리즈는 최동원 한명으로 우승을 결정지었지만 85년의 롯데는 투수력 보강이 가장 시급한 과제였다.
하지만 부산/경남지역 출신들의 아마 스타들이 이해부터 줄줄이 롯데 입단을 기다리고 있었고 롯데는 85년부터 87년까지 3년간 이른바 “투수왕국”의 건설을 이룰 수 있게 된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 했던가? 예나 지금이나 문제점이 많이 노출된 롯데의 프런트는 이들 자원을 제대로 활용하지도 못한 채 88년부터는 또 다시 투수력 부재의 고통을 겪게 되니 말이다.
85년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c2image.channel2.co.kr%2FC2_IMAGE%2FARTICLE%2FATL_1746%2F174638_PG1_101.jpg)
천재 투수 양상문의 고교시절 포스
김문희 천창호 배경환 임호균 이진우 최동원 이충우 안창완 이문한 양상문 박동수 조용철 김정행...
85년은 롯데는 이른바 “투수왕국 롯데”의 출발점이였다. 방기만, 이윤섭, 이진우, 천창호등 원년의 국가대표급 스타투수들이 모조리 기대에 못 미치는 활약으로 몰락하는 바람에 몇 년 간 롯데는 양적으로만 투수 왕국이었지 실제로는 최동원 한명에게만 의지하는 전형적인 투수력 부재 팀이었다. 그러나. 부산/경남지역은 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언제나 초고교급 투수들이 샘솟듯 하는 지역으로 유명하다. 그랬기에 85년경부터는 이들의 대학 졸업, 군 문제 해결과 함께 아마야구를 휩쓸던 최강의 투수들를 몇 년간에 걸쳐 수혈 받게 되는데 그 원년이 바로 1985년이다.
84년까지 롯데의 선발진은 최동원,임호균,김문희,천창호,배경환,안창완 정도로 최동원, 임호균을 제외하고는 10승을 올릴 수 있는 선수가 전혀 없어, 5선발이나 중간, 마무리 같은 기본적인 오더를 짤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나...
85년에 아마최고의 기교파 양상문, 역시 국가대표 출신의 사이드암 박동수, 그리고 재일교포 강속구 투수 김정행,을 영입한다. 아마와 프로의 기량차가 심하지 않던 85년 이들은 가뭄의 단비처럼 선발투수진에 합류할 수 있었다. 기대했던 양상문은 6승에 머물렀지만 박동수가 9승, 김정행은 7승을 각각 올린다. 기대에 부응한 성적은 물론 아니지만 이들의 나름대로의 활약은 큰 힘이 되어 롯데는 이해 59승 51패로 종합성적 2위를 차지하게 된다.
86년
김문희 이진우 노상수 최동원 배경환 임호균 양상문 박동수 이충우 김정행 오명록 윤학길 안창완.
86년의 투수진이다. 전년에 비해 새롭게 수혈된 선수로는
먼저 원년에 14승을 올린 에이스 노상수가 군복무를 마치고 복귀했고, 실업 야구 최강의 투수 윤학길과 강속구를 가진 국가대표 투수 오명록이 추가로 영입된다(오명록은 크게 성장하지 못했지만 아마의 명성으로 볼 때 오명록이 결코 윤학길에게 뒤지는 선수는 아니었다). 기존의 선수들과 함께 만일 이들이 정상적인 기량을 보여준다면 롯데 자이언츠의 투수력은 역대 최강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 롯데는 이런 강력한 전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고 투,타의부 조화 속에 최악의 선택을 감행하게 된다. 그 최악의 선택이란 바로 투수를 팔아 타격을 보강한다는 이른바 “타력 강화 프로젝트”
86년의 롯데는 최동원(19승), 임호균(3승), 노상수(3승), 양상문(1승), 윤학길(1승), 오명록(4승), 김정행(7승)으로 최동원, 김정행을 제외하고는 쟁쟁한 선수들의 이름값에 비해 제 기량을 전혀 발휘하지 못했고 결국 원년(82년)의 악순환을 반복하게 된다.
게다가 이들 중 임호균, 양상문을 청보와 트레이드해서 타격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롯데가 가장 탐내는 선수는 3할에 두자리수 홈런이 가능한 2루수 정구선 이었다. 트레이드 대상은 임호균과 양상문. 물론 이들 이외에 여러명이 트레이드로 보강되기는 했지만 실질적으로 트레이드는 임호균, 양상문 ↔ 정구선, 정성만의 2대2 트레이드였다
물론 이 트레이드는 최악의 선택이었다, 롯데가 데려온 우경하, 정성만의 기량은 안습 그 자체였고, 정구선도 삼미에서 해냈던 기량을 단 한번도 보여주지 못한 채 은퇴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임호균과 양상문은 이듬해 각각 9승,12승을 올리며 활약하게 된다.
87년
VS
청보의 1,2선발이 된 양상문,임호균
최동원 박동수 이충우 김정행 노상수 오명록 윤학길 안창완 이문한 조용철 정성만 김종석.
최동원이 여전히 살아있어 14승을 올리던 이해. 롯데의 전력 상승요인은 바로 김종석이었다. 롯데는 고교시절 좌완으로
148KM 를 던지던 국가대표 투수 김종석을 입단을 염두해두고 전년도에 좌완 양상문을 정구선과 트레이드한 것이기 때문이
다.
![](http://photo-media.hanmail.net/200708/14/joins/20070814104816.928.0.jpg)
고교시절 부산고 에이스 김종석. 지독하게 혹사 당했다.
그러나 김종석은 데뷔전 완봉승(OB전) 이후 단 1승도 추가하지 못하며 롯데 팬들에게 길고 긴 실망감만을 남겨주게 된다. 롯데는 임호균(9승), 양상문(12승)이라는 두명의 10승 투수를 내주고 영입한 정구선이 0.254/ 9홈런으로 부진한 모습을 지켜봐야하는 것은 물론 이후 번번히 좌완 투수 부재의 고통을 감수해야만 하는 상황에 몰리게 되고 만다.
이해 윤학길은 13승으로 제 기량을 찾게 되고 박동수도 9승을 올린 상황으로 볼 때 만일 임호균, 양상문이 롯데에 있었다면 최동원(14승), 윤학길(13승), 양상문(12승), 임호균(9승), 박동수(9승), 김정행(7승), 오명록(5승), 노상수(4승)의 성적으로 볼 때 수치상 우승도 가능했을 것이다.
결과론이지만 전년도에 투수들을 트레이드하지 않고 87년 최동원이 마무리 투수로 변신했었다면 성적이 어땠을까?
이후로는 박동희 입단 전까지 롯데는 리그를 뒤흔들만한 아마선수의 영입은 일단 중지된 다. 그렇다면 85년에 영입한 양상문, 박동수 86년에 영입한 오명록, 윤학길, 87년의 김종석의 가치는 어떤 것이었을까?
당시 이들은 각각 아마에서는 리그를 평정할 만한 에이스 투수를이었고 롯데는 이러한 아마 최고투수들을 말 그대로 싹쓸이해온 상황이었다. 아마와 프로의 기량차가 백지 한 장차이었던 80년대 상황이었음을 감안할 때 당시 영입된 선수들의 수준은 요즘 상황으로 비교해보면 대략 마이너리그/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한 유망 투수들의 영입과 같은 효과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롯데는 투수왕국을 이루지 못한 채 80년대를 보낸다. 염종석, 주형광 고졸 유망주로 구성된 92년 우승을 맛보기 전까지 말이다.
첫댓글 지금이나 80년대나 아마 시절 화려한 투수들을 긁어 모았었지만 선수들이 프로에서 거의다 크지 못하고 사라졌네요...
김정행은 강속구 투수가 아닌 기교파 사이드암 투수였던걸로 기억하는데요..그리고 김종석도 그리 공은 빠르지 않았구요..^^;
이렇게 읽어보니 감회가 새롭네요. 당시 김종석은 부산고 시절 대통령배 우승부터 봐왔었고 기대에 걸맞게 프로 데뷔전 3:0 완봉승도 기억에 선명합니다. 오명록은 경남상고 에이스로 청소년대표,국가대표를 모두 거친 엘리트로 롯데에 대어급으로 입단했었죠(아버님이 경남상고 출신이라 자주 언급하셨던 기억이..).고교시절만 놓고보면 양상문은 최동원에 뒤질게 없었습니다. 박동수는 동아대 시절 전국대회 우승을 여러차례 하면서 국대를 지낸(82년 세계선수권우승당시) 경력으로 기대를 많이 모았고.조용철은 경남고 에이스겸 4번타자로 신장 190이 넘는 장신의 파워로 물론 초고교급 평가를 받고 고졸에이스로 입단한후 그걸로 끝이었고..
트레이드한 임호균은 인천출신이었지만 10승이상 충분한 기교파로 삼미 에이스로 활약후 롯데에 잠시,,다시 역트레이드됐고. 데려온 정구선은 2루수로 홈런20개이상가능한 파워히터였으나 지극히 내성적인 성격으로 다혈질의 구도분위기에 적응못하고..결과적으로 당시의 롯데구단 운영능력이 27년째 수많은 유망선수들을 평범한 선수로 전락시켰던것 같네요. 글중 최동원의 마무리전환이 눈에 들어오네요.최고의 마무리 특성을 갖춘 투수인데...참..위 댓글님의 김정행은 정통파투수였구요.노히트노런 기록도 있지요. 김종석 공은 프로에서는 빠르지않았지만 고교시절 혹사 후유증으로 기교파로 바뀌었었고요
김정행 최동원과 비교될 정도로 볼 빨랐습니다. 김종석도 고교때 최고의 좌완이었죠 82년가 대통령배결승때 역전쓰리런홈런 치던 기억이 나네요...
일단 오명록은 최동원과함께 좀잇다 삼성을 가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