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문화의 거리 본정통
조 설 우
문화의 거리 본정통, 이는 광한루 북문에서 현재 새마을 금고(구 제일은행) 네거리까지 내가 어릴 적에 나고 자란 추억의 거리이다. 그때에는 광한루의 경계도 없었고 지금의 광한루 북문이 정문이었다. 현재 광한루 정문은 남원시장이었고 순창 곡성 임실 장수 함양등 남원군 주변에서 이곳 장을 보았으니, 장날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드는 교통의 중심지였다. 남원 인구도 지금보다 많은 꽤 큰 도시였으나 남원읍이라고 불리었다.
남원 사람이라면 제일은행 사거리는 누구나 다 아는 번화가의 중심이었으나 얼마 전, 제일은행이 없어지고 그 자리에 새마을 금고가 들어섰다. 이제 이곳을 무어라 불러야 할는지, 남문 사거리라 이름 지어야 할지 아직은 혼란스럽다.
어릴 때의 제일은행 사거리 복판에는 교통순경이 서 있어, 차들은 그의 호루라기 소리에 맞추어 오고 갔다. 은행의 서쪽 맞은편에는 전북 여객 버스 터미널이 있어 번잡했고, 동쪽 옆으로는 남원극장이 있었다. 은행의 북쪽으로는 경찰서 소방서가, 그 맞은편에 지금의 남원 문화원인 남원 군청이 있었다. 소방서 모퉁이를 돌아 현재의 하늘 중학교 자리에는 남원여자중학교와 남원여자고등학교가 한 울타리에 같이 있어 내 소녀 적의 꿈의 서린 곳이다. 그전에는 호남사령부가 있던 자리라 한다.
문화공간이라 할까, 남원극장과 정화극장 두 곳은 활동사진이라 불렸던 영화가 상영되었고, 가끔 유랑극단과 여성 국극단 그리고 명창들의 판소리가 열렸다. 임방울 명창의 판소리가 들어와 아버지 따라 극장에 갔다가 어린 나는 무료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요즈음 남녀 성악가들로 구성된 오페라나 뮤지컬 그리고 국악의 창극처럼, 그 시절에는 여성들로만 이루어진 창과 춤의 여성 국극단이 인기를 끌었다. 삼성 국극단과 진경 국극단이 쌍벽을 이루며 전국 순회공연을 하였고, 특히 진경 국극단의 김진진과 김경수 자매는 지금의 아이돌처럼 소녀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공연 작품들은 <낙랑공주와 호동왕자> <고구려의 혼>같은 역사물이 주를 이루었다.
남원극장 맞은 편, 지금의 롯데리아 건물 주차장 자리는 <봉래각>이라는 큰 요정이었다. 진주와 남원기생들이 권번 출신으로 기예가 뛰어났던 그 시절, 봉래각에는 한량들이 드나들었다. 우리 안집과 담 하나 사이였던 그곳에서는 기생들의 구성진 창들이 들려왔고 축음기에서 “파랑새 노래하는 청포도 넝쿨 아래로” 또는 “별들이 소곤대는 홍콩의 밤거리” 같은 유행가가 흘러나왔다. 봉래각 주인의 딸이 나와는 연배가 비슷했던 P라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의 이야기로는 삼성 국극단의 삼성, 즉 세 별은 조금앵 조양금 조금예를 이름하는데 그들 중에 이모가 있어 봉래각에서 극을 꾸리기도 하고 연습도 한다고 자랑하였다. 그래서인지 합창 된 국극의 창소리가 한동안 들려오곤 했다.
얼마 후, 아버지께서 봉래각을 사들여 문간채로 사용한 추억은 내 유년의 뜨락에 풍성한 한 마당이다.
유랑극단이 남원에 들어오면, 그들이 벌이는 가두 행렬에는 트럼펫과 아코디언 그리고 공연을 알리는 변사의 목소리가 읍내를 떠들썩거렸고, 아이들은 그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제일은행 네거리에서 금동 쪽으로 중앙여관이 있었다. 그곳은 유랑극단의 숙소가 되곤 하여 그들 배우를 보려고 여관문 앞을 기웃거리던 꼬맹이들….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할까.
본정통 문화의 거리, 지금은 광한북로가 된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함께했던 친구들이 새삼 그리워진다. 그들 가운데 이름이 회자되는 인물들, 전주여고를 일등으로 입학해서 일등으로 졸업한 친구 J, 그녀의 오빠 역시 전주고를 일등으로 입학해서 일등으로 졸업한 수재로서 청와대 정무수석까지 지냈다. 맞은편에 살던 Y의 오빠도 전주고와 서울대를 거쳐 미국에 유학한 물리학자로 나사(NASA)에 근무하여 아시아인으로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까지 올랐다. 풍문에는 어머니가 돌아가셨어도 미국에서 보내주지 않아 오지 못하고 말았다고 한다. 그리고 읍내의 유일한 고급 빵집 딸 D의 아들은 기술고시에 수석 합격하여 신문에 보도되기도 하였으니, 이곳에서 나고 자랐던 인물들이 어찌 이들 뿐이랴….
먼 어릴 적 추억의 실꾸리를 풀었다. 빠르게 변하는 세태에서 이곳이 또 어떻게 변화될지 가늠하기 어렵지만, 옛 모습을 그리는 마음은 일렁이는 물결로 아스라이 젖어 든다.
흥성하던 시정
남원 고향집 거리에
출렁이던 파도
그때의 영롱한 빛 방울들이
문밖에 나서면 깜빡일 듯하네
충만했던 시간이 스러지고
뒤에 남은 구시가지의 그늘
꽃 문살에 서럽게 물들어 있네
뒤돌아 귀향한
아름답던 사람아
아직 서녁에 타는 저녁놀
그대 뺨을 붉게 물들이는구나.
첫댓글 본정통거리 충만했던 시간이 스러지고 ........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