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는 네로 황제 시대에 박해를 받고 있던 성도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서 베드로가 쓴 편지입니다. 원래 로마는 종교에 대해 관대한 정책을 취했으나 네로 황제 때부터 직접적으로 기독교를 박해하기 시작했고, 로마 제국의 대박해는 밀라노 칙령(AD 313년 –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됨)에 의해 박해가 중지될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베드로전서는 네로 황제가 통치하던 AD 55-68년에 기록되었습니다. 베드로전서의 기록 연대는 네로의 핍박이 진행되던 AD 62,63년 경으로 추정합니다. 베드로가 십자가에 거꾸로 못박혀 순교한 때를 AD 64년으로 보기 때문에, 그 전에 기록되었다고 추정합니다.
베드로전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이자 수제자인 베드로가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기독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베드로가 흩어진 나그네들에게 편지를 보낸 지역이 어디인지 아래 지도를 참고하시면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흩어진 나그네들’입니다. ‘흩어진 나그네들’은 지금까지 예수님을 믿는 모든 성도를 뜻하지만, 베드로 당시 ‘흩어진 나그네들’을 뜻합니다. 흩어진 나그네들이 누구인지 알면 베드로의 편지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어서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흩어진 사람들을 정리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언제, 어떤 일로 흩어졌는지 확인해 볼까요?
이스라엘 역사에 나오는 ‘흩어진 사람들’(디아스포라) | |
언제 | 누가 |
BC 722 | 북 이스라엘 멸망 /앗시리아로 포로로 잡혀감(유대인) |
BC 586 | 남 유대 멸망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감(유대인) |
BC 63 | 유다 멸망 /폼페이 장군에 의해 로마로 끌려감(유대인) |
AD 30 | 스데반의 순교 /예루살렘에서 유대와 사마리아로 흩어짐(유대 기독교인) |
AD 49 | 글라우디오 황제의 칙령(로마에 있는 모든 유대인 추방) /로마에서 다른 로마 제국의 영토로 흩어짐(유대인) |
AD 64 | 네로 황제의 박해 /로마에서 로마 제국으로 흩어짐(유대/이방 기독교인) |
AD 70 | 예루살렘 멸망 /티투스 장군에 의해 로마 제국 전역으로 흩어짐(유대인) |
베드로전서 1:1,2절을 묵상하는데 ‘흩어진 나그네’가 제 눈을 사로잡습니다.
“1)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2)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베드로전서 1:1,2)
베드로전서는 초대 교회 담임 목사였던 베드로가 '흩어진 나그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그 믿음 하나로 목숨을 걸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로마 제국의 핍박으로 인해 여기저기 흩어진 믿음의 형제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흩어진 나그네들은 “내가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 하며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습니다. 흩어진 나그네들은 다른 믿음의 형제들처럼 용감하게 순교하지 못하고 도망친 것 같아 창피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모습에 무력감과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흩어진 나그네들’은 자신을 실패자요, 도망자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릅니다.
베드로는 흩어진 나그네들에게 편지하면서 ‘흩어진 나그네’가 누구인지 분명히 말합니다.
@ 흩어진 나그네
흩어진 나그네는 인생의 실패자가 아닙니다.
흩어진 나그네는 사람들을 피해 도망친 사람도 아닙니다.
흩어진 나그네는 오갈데가 없는 사람도 아닙니다.
흩어진 나그네는 결코 불쌍한 사람이 아닙니다.
흩어진 나그네는 하나님께서 이미 알고 있던 사람들입니다.
흩어진 나그네는 하나님을 이미 잘 아는 사람들입니다.
흩어진 나그네는 성령께서 거룩하게 한 사람들입니다.
흩어진 나그네는 하나님께 순종한 사람들입니다.
흩어진 나그네는 예수님의 피 뿌림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흩어진 나그네는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해진 사람들입니다.
흩어진 나그네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흩어진 나그네는 위로의 편지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흩어진 나그네는 사랑의 편지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흩어진 나그네는 은혜와 평강을 더욱 많이 받습니다.
흩어진 나그네는 누구를 말할까요? 누가 흩어진 나그네일까요?
우리가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흩어진 나그네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욕심을 채우려고 떠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사역에서 실패해서 도망친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관계가 깨진 것을 감추려고 떠난 것도 아닙니다.
자신의 욕심을 위하여 떠난 게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떠난 당신,
당신은 하나님의 소중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떠날 준비를 하는 귀한 분들과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땅끝까지 걸어간 귀한 분들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여러 가지 고난을 받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게 특별한 일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고난받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착각)입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인의 고난에 대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비교하면서 고난 받는 것이 복이라고 말합니다. 베드로는 고난받는 것이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베드로전서는 고난을 주제로 한 편지입니다!
@ 원독자들의 상황 – 고난 받는 그리스도인들
1)부당하게 받는 고난(2:19)
2)선을 행함으로 받는 고난(2:20, 3:17)
3)의를 위해 받는 고난(3:14)
4)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함(4:14)
5)그리스도인으로서 받는 고난(4:16)
6)하나님의 뜻대로 당하는 고난(4:19)
7)모든 형제 성도들도 동일하게 당하는 고난(5:9)
8)그리스도인들이 받는 고난은 잠깐임(5:10)
“12)사랑하는 사람들이여, 여러분을 시험하려고 오는 불 같은 시험이 있더라도 무슨 이상한 일이 여러분에게 일어난 것처럼 여기지 말고 13)오히려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게 된 것을 기뻐하십시오. 이는 그분의 영광이 나타날 때 여러분이 크게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14)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해 모욕을 당하면 여러분은 복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는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 위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15)여러분 가운데 누구라도 살인하는 사람이나 도둑이나 범죄하는 사람이나 다른 사람의 일에 참견하는 사람들 때문에 고난을 받지 않도록 하십시오. 16)그러나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고난을 받는다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십시오. 17)이는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됐기 때문입니다. 만일 심판이 우리에게서 시작된다면 하나님의 복음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의 결국이 어떠하겠습니까? 18)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는다면 경건하지 못한 사람과 죄인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19)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고난을 받는 사람들은 계속 선한 일을 행하는 가운데 자기의 영혼을 신실하신 창조주께 맡기십시오.”(베드로전서 4:12-19)
베드로전서를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큰 도전을 받은 것은 가장 먼저 베드로전서를 받아 읽었던 원독자들의 고난을 대하는 태도(모습)였습니다. 베드로전서의 원독자들은 네로 황제의 박해를 피해 소아시아(터키) 여러 지역으로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고난 때문에 모든 것을 잃고 빈손으로 먼 나라로 흩어져서 살아가는 게 솔직히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흩어진 원독자들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난을 겪으면서도 그 곳에서도 선을 행했습니다. 선을 행함으로 믿지 않는 이방인들에게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런 원독자들을 향해 베드로는 선을 행하다가 고난받을 때, 그들에게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선을 행함으로 고난받을 때, 그 고난을 참으면 하나님 앞에 아름답다고 칭찬과 함께 격려까지 합니다.
도대체 무엇이 고난 받고 있는 원독자들을 계속 선한 일을 할 수 있게 했을까요? 도대체 무엇이 원독자들의 태도를 이렇게 아름답게 변화시켰을까요? 도대체 누가 선을 행함으로 또 고난을 받는 것을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즐거워하게 했을까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들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신 예수님 때문에 고난 받는 것을 즐거워했습니다. 베드로는 흩어진 나그네들에게 그들이 지금 여러 가지 모양으로 고난 받는 것이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고난 받으면서도 선을 행하는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35년 넘게 신앙생활을 하면서 고난에 대해 이런 태도(관점)를 보이지 못했습니다. 이건 비단 저만의 고백은 아닐 것입니다. 고난은 가까이하기에 먼 당신이 아닙니다. 쉽지 않겠지만 고난은 가까이할 좋은 친구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함으로 즐거워합시다. 고난 중에서도 선을 행하고, 선을 행하다가 고난 받을 때, 그 고난을 기쁨으로 받아들입시다.
* 로마 대화재(AD 64. 7. 18)
베드로전서의 시대적 배경은 마가복음과 동일합니다. 마가복음을 기록한 그 시기에 로마에선 큰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이 때, 베드로는 로마에서 사역하고 있었는데, 그 때 로마에 큰 불(대화재)이 났습니다. 베드로전서를 이해하기 위해 꼭 알아야 할 내용입니다.
AD 64년 7월 18일에서 19일로 넘어가는 자정. 로마 경기장 북서쪽에서 시작된 작은 불은 바람을 타고 순식간에 로마시 전체로 퍼졌습니다. 팔라티노 언덕으로 옮겨 붙은 불은 원로원의 저택들과 거리를 가득 채운 과거 영웅들의 동상들을 다 태우기 시작했습니다.
팔라티노 언덕(유적지)
불길은 팔라티노 언덕에서 로마 전역으로 옮겨붙었습니다. 6일이 지나 겨우 불길을 잡았다고 안심했는데, 다시 살아난 불은 두 주간 더 로마를 태웠습니다. 로마의 14구역 중 단 네 구역만 간신히 살아남은 대형 화재였고, 세 구역은 완전히 불길로 인해 사라졌습니다.
이때 네로 황제는 출타 중이었는데, 위급하다는 보고를 듣고 즉시 로마로 돌아왔습니다. 네로는 즉시 국고를 열어 이재민들에게 양식을 공급했습니다. 화재로 집을 잃은 시민들을 위해 집을 지어주기로 했습니다. 로마 전역에 새로운 건물을 짓고, 시민들을 위한 공원도 만들려고 했습니다. 네로 황제는 수 개월간 새로운 로마 건설을 위해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런데 시민들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시민들은 이재민들을 위한 황제의 수고와 헌신에 전혀 호응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네로를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네로는 새로운 로마 건설에 광적으로 집착하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궁전을 지을 욕심으로 혹시 불을 지른 게 아닌가하고 의심했습니다. 의심과 함께 시민들의 원성이 높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소문은 확대되어 심지어는 네로가 로마에 불을 지르고 마치 옛 트로이 성의 화려한 멸망을 연상하듯 무대 위에서 바라보며 악기를 타며 시를 읊었다는 소문이 났다. 그런 안 좋은 소문 때문에 맹렬한 민중의 원망이 네로 개인에게 집중되었다.
당시 네로가 원로원에서 신 로마 건설을 위해 도시를 새롭게 건축하자고 말했던 곳이 북서쪽이었다. 사람들이 네로에게 폭동을 일으키려고 하자 주위의 모사들이 유대인들에게 돌리려고 했다. 왜냐하면, 불에 타지 않은 4곳이 유대인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네로의 부인 포비아가 유대인이어서 일단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민중의 원성은 더 커져만 갔다. 이러한 민중의 적개심을 다른 상대로 돌리기 위하여 네로는 친위대를 명하여 기독교인들을 무차별적으로 잡아들이고 박해하기 시작하였다.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Tacitus)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네로는 희생양을 날조하였다. 그리고는 소위 이 타락한 기독교도들을 (저들은 그렇게 불렀다) 가능한 모든 수단에 의해 처형하였다.”
기독교 신자로 알려진 모든 시민은 체포되어 고문을 당했다. 그리고 저들의 절망적인 정보에 의하여 더 많은 수가 체포되어 로마의 법관 앞에 섰고,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 어느 신도도 정치적 반역 때문이 아니라 대중의 편견이 저들을 박해한 것이다.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그들은 기독교인에 대한 사형집행을 오락 삼아 행하였다. 짐승의 가죽을 입혀 맹수에게 찢기게 하였으며, 십자가로 처형하였고, 밤중에 거리를 비추는 가로등 대신에 저들을 달아매어 놓고 콜타르를 칠한 후에 불을 질렀다. 어떤 때는 공연장에서 기독교도들을 살해하는 무대를 꾸며 네로 자신이 관객과 섞여 구경하거나 전차를 몰고 등장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타키투스는 부연하여 “그러나 아무리 기독교 신자들을 무거운 죄목으로 처형을 해도 사람들은 동정하였다. 그들은 나라의 이익과 상관없이 한 개인의 잔혹한 속성 때문에 희생되었기 때문이었다.”라고 언급하고 있다(Tacitus, Annals of Rome, 15, 44).
로마 시민들은 네로가 로마에 불을 낸 방화범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자신들의 분노를 풀 대상이 필요했기 때문에 네로가 지목한 방화범들을 핍박하는 일에 동조했다. 로마 시민들도 대화재의 범인(사실은 희생양)으로 지목된 기독교를 박해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은 기독교인들이 어쩔 수 없이 박해를 피해 지하로 숨어 들어가게 하였고 복잡한 미로로 꾸민 통로와 무덤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때부터 그리스도인들은 카타콤(지하교회/ 무덤)에서 생활하기 시작했다.
@ 핵심 구절(Key Verse)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4:13)
@ 중심 내용(Main Idea)
1)고난 중에 산 소망을 가진 그리스도인(나그네)은 거룩한 삶을 산다.
2)모든 고난은 하나님의 택하심 안에 있기 때문에
산 소망과 영원한 유업을 바라보는 삶을 살아야 한다.
3)고난에 대해 본을 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라 고난 가운데서도
선을 행하고 의를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 편지 기록 목적(이유)
고난 가운데 그리스도인으로서 제사장적인(구별된) 삶을 살도록 권면하기 위하여
고난 가운데 산 소망을 갖고, 고난에 기쁘게 참여하도록 격려하기 위하여
다가올 고난 가운데 서로 순종하며 믿음으로 굳게 서도록 하기 위하여
고난받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그 믿음에 합당한 삶을 살게 하려고
@ 베드로전서 한 눈에 보기
1:1-12 | 1:13-2:10 | 2:11-3:12 | 3:13-4:19 | 5:1-14 |
산 소망과 영원한 유업을 얻은 그리스도인 |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삶 (개인) |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삶 (공동체) |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그리스도인 선행으로 고난 참여 | 장로들과 젊은이들을 위한 권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