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차자아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자아는 나의 저차자아에서 실처럼 자아져 나온다는 것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아'를 지니고 산다. 가시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부인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자아가 저차자아이고, 고차자아가 있다는 사실과 자신의 현재 (저차)자아에서 고차자아를 스스로의 힘으로 발견하고 연결(?)해야 한다는 사실은 알지 못할 듯하다. 더불어 자신의 현재 자아가 저차자아인지도 파악하지 못할 듯 생각이 된다.
먼저 저차자아와 고차자아에 대해서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3년간은 고차 존재(?)의 힘으로 성장을 한다. 이 시기에 서서 걸으며 언어를 익히고, 두뇌의 90%가 형성된다. 이것이 고차존재의 도움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 시기는 자아가 드러나지 않아서 고차존재의 힘을 전혀 알지 못한다. 따라서 훗날 기억도 하지 못한다. 기억은 자아를 인지한 이후, 4세 무렵부터 가능하다.
인간이 자신의 자아를 인지한 경우, 이 시기의 자아(4세 무렵)는 상 속에 들어간 자아이다. 물질 육체에 생명체가 들어가면 우주의 에너지, 고차자아가 여기에 연결되어 있다. 이 힘이 생명작업을 하고, 태어나면 생명의 힘인 에테르체가 물질육체에 생명작업을 한다. 생명작업 중에서 두 뇌 작업인 신경체계가 완성됨과 동시에 자아는 상속에 들어가게 된다. 이 시기가 4세 무렵이다. 따라서 자신이 우주에 연결되어있다는 것과 같은 정신세계의 존재를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이다. 결과는 물질육체가 분리되어 있듯이 삼라만상 모든 존재와 자신이 분리되어있다고 생각한다. 즉 상속의 저차자아는 자신이 정신세계에 연결된 존재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자아가 자신이 정신세계에 연결된 존재라는 사실을 파악하고, 정신세계에 연결시키는 것이 고차자아로 나아가는 길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사실은, 정신은 말로 해서는 이해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므로 여러가지 방법을 통해서 스스로 체험해서 익혀야 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도 없다. 살아가면서 수많은 방법에 부딪히지만, 만약 정신을 깨닫지못하면 그 상태에서 계속 머물거나, 또 그 상황을 수없이 반복해야 한다. 마치 '시지프스'가 산꼭대기까지 바위를 밀어 올리면,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지므로 영원히 이 일을 되풀이 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누구도 알려주지 않고 또 보이지도 않으므로 스스로 찾을 수밖에 없다. 아니면 영원히 시지프스처럼 반복해야 하는 것이다.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깨어있는 순간, 순간 자신이 하는 사고, 감정, 행동에 대해서 물어야 한다. '왜 그런가', 이유가 뭘까라고. 그래야 이면에 내재한 정신이 그나마 파악된다. 예를 들어 '하루에 한 가지씩 착한 일을 하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당시에는 착한 일을 하게 하기 위해서 하는 말이라는 생각을 했다. 당연히 의도적으로 착한 일을 하지 않았지만, 그러나 항상 마음 속에는 불가의 오계와 같은 마지선을 정해 놓고 넘지는 않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 마지노선이 -필자를- 이 정도나마 정신세계로 이끈 결정적인 '끈'이었다고 생각된다.
근래 둘레길 쓰레기를 주우면서 비로소 이 의미, '하루에 한 가지씩 착한 일을 하라'는 의미를 알게 된 것이다. 하루에 한 가지씩 하는 착한 일이 필자를 정신세계로 연결시키거나, 유지시켜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활동은 나를 위해서 하는 활동이다. 그리하여 알게 된 사실인데, 가끔 유튜브에 나오는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을 보면 정신세계에 연결이 되려고 하기 때문이고, 또 지금이 딱 그 시기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관문을 통과할려면 반드시 착한 일을 해야 한다. 물론 이성적으로 자신의 신념에 따라서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정신세계에 연결이 된다는 사실만큼은 변함이 없다. 정신세계에 연결이되어야 하는 이유는 창조적인 아이디어, 지혜가 정신세계에서 오기 때문이다. 누구도 정신세계의 이 법칙앞에서는 절대 예외가 없을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열심히 노력하지만, 정신세계에 연결된 만큼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나온다는 것이다. 정신의 속성에 맞는 딱 그 만큼 지혜가 나온다는 사실을 스스로 체험해 보면 알 것이다. 이것이 또한 자신의 저차자아에서 고차자아로 가는 과정이다.
그 다음 언어이다. 유튜브 강의를 들어보면 어떤 사람 강의는 들으면 편안하고, 어떤 사람은 듣기가 힘들다. 왜 그럴까가 질문이다. 말, 언어는 자아가 후두를 통해서 나오는 소리에 문자가 입혀서 나온다. 즉 자아가 내는 소리이다. 자세히 들어보면 자아가 상속에서 내는 소리인가, 아니면 고차자아에 어느 정도 연결되어서 나오는 소리인가 그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요약하면 자신의 저차자아가 고차자아에 연결된 만큼 편안한 소리가 난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정신의 관점에서 보는 소리이므로 만약 과학적으로 증명할려면 소리의 진동수를 측정해 봐야 하겠지만 미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사실, 자아의 진화 정도에 따라서 나오는 소리가 다르다는 사실은 두 스님의 법문을 들으면서 알게 되었다. 두 스님은 법상스님(상주 대원정사 주지 스님)과 법륜스님(즉문 즉설의 스님)이다. 필자는 두 스님의 법문을 자주 듣는데 가만히 들어보면 법상스님은 법상스님의 자아가 우주와 하나가 되어서 나오는 소리다. 왜 그런가하면은 법문은 진리, 법에 관한 말씀인데, 진리는 '삼라만상이 하나다'라는 것이 근본 대 전제이다. 이런 전제를 말씀하시는 분의 자아가 만약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그 분이 하시는 말씀은 상대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하지만 가만히 들어보면 듣는 사람의 자아가 법상스님의 말씀에 공감한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이다. 그래서 어째서 그럴수가 있을까가 궁금했다. 눈을 뜨면 모든 대상이 분명 나와 다른 존재인데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법상스님의 법문 중에 '자신은 산을 좋아해서 산에 많이 올라갔다'는 말씀을 하셨다. 아마 스님이 산과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모든 존재와 하나가 된 것은 다른 사람과 같을 것이나, 그 사실을 그대로 법상스님의 자아가 받아들인 것이다. 이를 자아가 받아들이면 그대로 정신세계로 연결되지만, 아니면 될 때까지 반복해야 한다. 이것이 법상스님의 법문을 자주 듣는 이유이다.
법륜스님은 물론 당연히 법륜스님의 자아가 우주에, 정신세계에 연결된 분이다. 감히 우럴어 볼수 없을 정도로 진화된 자아를 지닌 분으로, 그 분의 자아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죄송하지만, 이는 필자의 개인 생각으로 정신세계로 가기 위해서 본받을 점을 말하기 위함이다. 법륜스님과 법상스님의 차이점은 법륜스님은 자신을 제어한다는 점이다. 어떤 경우에도 자신을 놓치지않고 흔들리지 않는다. 이는 생각을 제어해야 가능하다. 하지만 생각은 내가 하지만 보는 대상에 따라서 저절로 굴러가기 때문에 쉽지 않다. 하지만 법륜스님의 자아가 언제나 우주에 연결된 상태로 유지하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어려운 이유는 영혼의 속성에 있다. 영혼의 속성에 따르면 인간의 영혼은 공감과 반감을 호흡처럼 반복한다. 예를들어 어떤 사람을 본다고 하면, 먼저 영혼이 공감을 하면서 그 사람과 하나가 된다. 대상에 푹 빠지는 것이다. 그 다음 영혼이 반감을 하면서 대상과 나를 분리해서 인지한다. 인간의 영혼은 이런 과정을 계속 반복한다. 하지만 공감의 상태에서 반감을 유지해야 즉문 즉설을 하실 수가 있을 것이다. 즉 공감으로 대상의 본질을 파악하면서, 동시에 반감으로 대상의 상황에 매몰되지 않는 것이다. 순간 놓치면 대상에 매몰되어서 대상에 끌려갈 것이고, 또 반감만 유지하면 대상의 본질을 꿰뚫을 수가 없기 떄문이다.
두 스님의 법문, 법상스님의 법문을 들으면 필자의 자아가 우주와 하나가 되는 것이고, 법륜스님의 법문을 들으면 필자의 자아가 흔들리지 않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정신이 전달되는 방법이다. 그리고 저차자아가 고차자아가 되는 방법, 과정이다. 옛날에는 스승 밑에서 밥하고 빨래하고 10년을 봉양해야 했지만, 이제는 유튜브로 어렵지 않게 갈 수가 있는 것이다.
결론은 누구던지 자신의 영혼이 사고하고 느끼고 행동하므로 이 영혼의 수준에 자아가 맞춰져 있다. 자신의 자아가 어떤 수준인지는 자신의 영혼이 하는 일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된다. 만약 자신이 원하는 이상을 실현하고자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스스로 판단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자아의 수준을 높일려면, 자신의 영혼이 하는 일을 살펴서 수준을 높여야 한다.
예컨대 법상스님처럼 우주와 하나가 되던지, 법륜스님처럼 자신의 영혼이 하는 일마저도 제어하는, 이것이 무의식에서 일어나므로, 무의식까지 제어해야 하는 수준이다. 아마 모르지만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다가가기 어려운 수준일 것이다. 어떤 경우던지 자신의 수준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영혼이 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내가 너무 집착하지 않는가',. '왜 그럴까' 등등 여기에서 자신의 자아 수준을 높일 수있는 실마리가 나온다. 결론은 어떻게 해서라도 자아의 수준을 높여야 하고, 그 실마리, 고차자아의 연결고리를 자신의 현 저차자아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