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금을 울리는군요....
제자신이 너무 부끄럽습니다...
이분 분명히 언젠가 좋은날이 올거라 믿습니다..
글잘 읽었습니다.
--------------------- [원본 메세지] ---------------------
저는 3번째 불합격소식을 듣고 무척이나 힘들었습니다
아래글을 읽고 힘들어하는 제 자신이 부끄럽다 생각됩니다... 한편의 소설같은 콧끝찐한 감동을 받았고 제 자신을 반성하고 돌이켜봅니다
불합격하신분들 끝까지 시간내서 꼭 읽어보시고..힘네세요..(김부장님 삭제하지 말아주세요!~)
이글은 "시험아카데미...시험정보..합격수기..241번글(1편~)"~에서 퍼옴
법원직 불합격 수기 1
합격자에겐 낙랑한 목소리 불합격자에겐 저주의 목소리 "불합격하셨습니다' ARS에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이번에도 불합격.... 전 해골이란 사람입니다 이곳에 합격수기를 쓰고 싶었는데 이렇게 불합격 수기를 남기게 돼네요 공무원 셤을 준비했던 저의 과거를 이글로 정리하고 이젠 그만 하려합니다. 그냥 가볍게 읽으세요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고.......
야 학원이 어디에 있어? / 글쎄... P란 친구와 난 스물여섯나이 삼월에 노량진역 육교위에 있었다 그때가 1996년... 이월말에 우리둘은 해군중사로 오년 근무를 마치고 제대를 했다 친구가 공무원 셤을 공부한다기에 말로만 듣던 노량진에 처음 왔다 둘다 서울사람이지만 어떤 목적으로 노량진에 온것은 처음이였다
그렇게 그 친구는 칠급 행정직을 준비했고 나는 외국나갈 준비를 했다 여름에 나는 학원을 수료하고 관광가이드로 태국에 갔고 그 친구는 열심히 공부했다... 태국에 간 이후로 왜 자꾸 눈물이 나던지... 현실 도피성 외국행.......십사층 사무실에 앉아 있노라면 자꾸 지나간 과거가 생각났다.....
어린시절 우리집은 흔한 말로 잘 사는 집이였다 70년대에 승용차가 두대 있었던 집.... 넓은 마당....아버지는 사업을 했었고 어머니는 현모양처셨다 난 일남 이녀중 장남... 내가 열살되던해에 어머니는 하늘의 부름을 받고 먼저 가셨다....그때부터던가 아버지가 인생을 아예 포기하신게......그날 이후로 아버지는 모든걸 접고 술과 살았다 술 한잔 제대로 못하시던 분이 이십년이 넘은 지금은 알콜중독자가 되셨다.....자신의 인생을 포기할만큼 자식을 포기할만큼 아버지는 어머니를 아주많이 사랑하신것 같다 하지만 우리 남매에게 남은 것은 거친 인생뿐....
중학교 시절 손가락 등수에 들던 나는 돈이 없다는 이유로 학비 전액무료인 학교에 진학했다 박정희가 설립한 학교로 꾀 이름은 있었지만 학비가 무료인 대가로 군사훈련을 받아야했다열일곱 나이에 군복을 입고 M16 소총으로 사격하고... 머리엔 하사관 후보생 계급장.....군대식 선후배 관계......지금의 사관학교 같은 생활을 고등학교 삼년동안 했다 하지만 아버지와 함께 있던 동생들은 나보다 더 어려웠다 바로 밑에 여동생은 중학교때부터 식당에서 일했고 막내는 낮엔 방직공장에서 일하고 밤엔 야간 고등학교를 다녔다 먹는날보다 굶는날이 더 많았던 시절이였다......고교졸업하고 며칠후 해군하사관으로 간뒤 오년 복무하고 제대해서 아버지에대한 반감하나로 그렇게 한국을 떠난것이다 하지만 외국에서 나를 눈물짓게한건 동생들이였다 너무 어려웠던 시절에 두번이나 자살기도를 했던 동생들이 눈에 밟혀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공무원셤 준비했던 친구는 그해 실패하고 나도 마땅히 할께 없던터라 같이 대학에 진학하고 일도 같이 했다 하지만 월급한푼 제대로 못받고 회사를 나온 우리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그때가 1997년.... 친구는 칠급으로 나는 구급으로.... 구급이 시간이 적게 걸리지 않을까하는 생각에.....동생들에게 하루빨리 공무원인 오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그렇게 시작했다.......공무원 시험에 뭐가 있는지도 모른체 난 행정직 9급을 그렇게 시작했다 학원에 돈내기 싫어서 혼자 도서관다니면서 공부했다 공부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안기부(당시 명칭이 안기부에서 국정원으로 변경되기 직전이였음)시험에 응시했다 기술하사관 출신이였던 나는 필기와 면접에서 무난히 합격했다 하지만 막연하게 여기 분위기가 군대 같지는 않을까하는 생각에 난 임용포기서를 제출했다 고등학교 삼년 군대 오년 도합 팔년을 단체생활했던 터라 이제 더이상 그런 분위기는 싫었다 임용포기서를 안기부청사에서 작성해서 제출하던날 가까운 미래도 모른체 내 발걸음은 가볍기만 했다 혼자 이삼개월 행정직 공부하다가 국회사무직이 있어서 응시했지만 낙방....한달뒤 총무처 시험 낙방.....가을에 서울시 시험 낙방...........뭐가 문제지? 학원을 안다녀서 그런가? 수험기간이 짧아서 그런가? 사실 나는 당시에 국어 영어 점수가 기복이 심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할 여유도없이 IMF가 찾아왔다 그 해 가을은 정말 노량진은 북새통이였다 생각을 정리할겸 보라매 도서관을 갔는데 거기서 고시월보라는 잡지를 처음봤다 잡지를 뒤적이다가 경쟁률이 십대일도 않돼는 이상한 직렬이 눈에 들어왔다 커트라인도 80점 전후....그래 이거다! 그것은 법원직이였다 과목은 여섯과목....?? 난 정말 여섯과목인줄 알았다 민사가 한과목 형사가 한과목 그리고 국어 영어 국사 헌법...헌법은 친구가 칠급을 준비해서 대강 법의 일종이라는 느낌 정도는 알고 있었다 시험이 대강 따져보니 삼개월 남짓 남았다 나는 당장 제일고시학원으로 달려갔다 책을 구입하기 위해서.........법원직 책 사러 왔는데요 / 무슨 과목이요? /전부다요 / 처음이세요? /네 /학원등록은요? /아 혼자 공부해 보고요...혼자는 힘들텐데 하는 여자의 말이 흐려 지면서 내 앞에는 많은 책들이 쌓였다이상하다 여섯과목인데 무슨책이 이렇게 많지? 행정직을 공부했던 나는 원래 한과목이 책 한권인줄 알았다 저 법원직 여섯과목 아닌가요? / 여덟과목이에요....여자에게서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그래도 책이 많아보였다 과목수에 비해서.....여자가 계속 설명했다 이거 두권합해서 형법이고 저거 세권 합해서 민법이라고... 잠시 생각한 후에 까짓거 하면되지라고 생각하며 집으로 왔다 민법 처음부터 진도가 않나갔다 책에 까만것은 온통 한문이였다 옥편을 뒤적거렸지만 하루종일 낑낑대도 서너장 이였다 아 이래서는 않돼는데..... 그래 학원가자 강의를 설마 중국말로 하겠어...이부분을 뭐라고 읽는지 적어오자... 이것이 내가 노량진 바닥 학원에 들어선 가장 큰 이유였다 한달만 다녀보자 그래서 한문을 읽어주면 모두 적어오자....97년이 저물어갈 무렵 나는 그렇게 법원직을 시작했다..........
죄송합니다...이어서 또 쓸께요......
법원직 불합격 수기 2
제일고시학원은 전쟁터였다 내가 등록한게 마무리반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별도리는 없었다 시험이 얼마남지 않아서 정규강의는 없었다 첫날 9시가 다되서 도착하니 자리가 없었다 의자를 하나 구해다가 출입문 앞 복도에 앉아서 소리를 들었다 내일은 일찍 와야지라고 혼자 생각하면서... 둘째날 여덟시에 오니 역시 자리가 없었다 하지만 복도가 아닌 출입문에 붙어서 앉을 수 있었다 내일은 더 일찍와야지...다음날 일곱시에 왔다 책상에는 앉았다 하지만 맨뒤였다...아 사람들 도대체 몇시에 오는거야? 그 다음날 나는 첫차를 타고 왔다 도착시간 여섯시가 조금 못된시간....긴 줄이보였다 이거 무슨 줄이지? 나는 무시하고 현관으로 들어가려다 문이 닫혀 있는걸 확인하고 혹시나하고 물었다 이거 무슨 줄이에요? / 법원직이요...이럴수가 그 줄은 노량진 대로변까지 이어져 있었다 이럴수가... 이 새벽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이 겨울에 이렇게 추운날에....사람들은 방석을 가슴에 품고 추위와 싸우고 있었던 것이였다 아 보이지 않는 또다른 전쟁...주위에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맨 앞에있는 여자애 세벽세시에 왔대! 아 그렇구나 학원다니는 사람들 이렇게 열심히 하는구나...그날 이후로 내 목표는 않자는 것이였다 계속 공부한 재들도 저리 열심인데 처음인 내가 잠을자?....말이 않돼지 혼자 그렇게 생각했다 나의 고통은 그렇게 시작됐다
하루밤을 새고 학원에서 강의 듣고 다시 도서관에서 죽어라보고 다시 집에서 밤새며 책보다가 다시 학원가고 그렇게 이틀밤을 꼬박새면 다음날은 밤에 두세시간 정도 잤다 떨어지지 않으려고 기대하는 동생들을 위해서......다시 밤새고 두시간 자고 밤새고 네시간 자고 밤새고 밤새고 두시간 자고...너무 고통스러웠다 일어나지 못할까봐 자명종을 세개를 뒀다 하나는 머리맡에 하나는 책상위에 하나는 장롱위에....장롱위에 있는걸 끄려면 결국은 일어나야 하기때문이다. 형광등은 항상 키고 잤고 추운겨울인데도 보일러를 틀지않았다 이불도 덮는것만 베개도 쓰지 않고....최대한 잠자리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그래야 일어날 수 있을것 같았다 일어나면 온 몸이 쑤시고 뼈 마디가 저렸다 정말 죽고 싶을 정도의 고통 새벽에 청소아저씨들이 청소하는 도로 가장자리를 걸어서 학원에 갔다 제발 버스야 나좀 죽여다오 하나님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저좀 죽여주세요 한달쯤 됬을까...보라매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갑자기 멀미 증세를 느꼈다 머리가 어지럽고 뭐라 표현할 수없는 고통 휴게실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잠시후 왼쪽부분 얼굴절반과 어깨에 마비 증상이 왔다 무조건 자야한다는생각 뿐이였다 어떻게 집에 왔는지도 모른다 결국 집에 와서 그대로 쓰러져 잤다 하지만 강박관념때문인지 4시간만에 일어났다 마비가 풀린것을 알고는 다시 또 학원에 갔다.....가끔 이런 얘기를 할때면 내 주위 몇명빼고는 아무도 믿지않는다 인간이 그게 가능하냐고...집중이 되냐고.......그렇게 말하는 사람에게는 그냥 웃음으로 때웠다...
어 이게 누구야? 너 C 잖아 / 야 오랜만이야 고등학교 동창이였다 우리는 제일고시학원식당에서 만났다 우리 고등학교 학생들은 모두 기숙사 생활을 하기때문에 같은 반이 아니라도 모두 친구였다 공군을 제대하고(우리 학교는 졸업과 동시에 육해공군을 지원해서 간다)대구에서 일하다가 검찰공무원으로있는 형의 권유로 법원직 공부하려고 서울왔다고...지금 고시원에서 생활한다고...구월에 상경했고 공무원은 처음 준비한다고....알고보니 같은 마무리를 듣고 있었다 하지만 친구는 이론강의 한번 들었다고 했다 우리 둘은 서로 격려하며 열심히 했다 그친구도 잠을 무척이나 않잤고 밥먹는 시간이 아깝다며 가끔은 빵을 먹었다 그 친구는 보통 고시원에서 새벽 네시까지 공부하고 아침에 강의들으러 왔다 시험때까지 하루도 않빠지고......그렇게 격려하며 공부했고 우리는 시험을 봤다 98년 첫시험....나는 삼개월을 죽어라고 공부했고 친구는 오개월을 공부했다....둘다 한문조차 읽지못하는 상태에서.....(우리학교는 공업고등학교인데 한문시간이 없었다)
친구는 고민하다가 춘천지원했다 결국 춘천 10명중 오등으로 합격...나는 서울 삼점차 불합격....98년 시험에서 나는 헌법에서 실패했다...누군가 열심히 준비했으면 후회가 없다고 했던가....아니다....후회는 없을 지언정 너무 억울했다 어떻게 공부한건데....친구들은 위로한다고(처음에 말한 친구 P....P는 7급시험 한달전에 도시철도공사를 응시했다 공사시험을 위해서 이주정도 공부했는데 비록 꼴지지만 합격했고 첫 승진도 했다 사내커플로 결혼해서 지금은 제수씨 뱃속에 예쁜 아기가 자라고 있다)....야 잘했어 삼개월 공부해서 삼점차이면 정말 잘한거야....내년엔 수석이겠다 하하하하지만 친구의 위로가 귀에 들리지 않았다 억울할뿐....기간이 삼개월이였지 정말 일년이상의 분량을 한듯했다...하지만 난 약자였다 결과에 승복해야하는 약자....나의 첫 시험은 이렇게 패배했다
그래다시 시작하자...한번 더 해보자 지금부터 하면 99년 시험은 수석이다 목표는 수석이였다 수험기간이 짧아서 풀어보지 못한 문제집을 구했고 혹시나 해서 법과목 마다 사시 문제집과 법원 승진시험 문제를 서점에서 샀다 책을 쌓아보니 내 키였다...바라만 봐도 흐믓했다.....그래 저거만 다보면 나는 합격이다.......자신감도 넘쳤다.....그리고 학원도 제대로 한번 다녀보자.....어디로 갈까? 그래 이왕하는거 제일고시 속리산으로 가자...거기서 합격자가 많이 나온다는데.....P가 속리산까지 배웅해 줬다 그렇게 나는 수도승의 기분으로 속리산에 갔다 98년 봄에서 여름으로 계절이바뀌던 시절에.......
죄송합니다. 글을 계속 잘라서......글쓰면서 차분히 마음 정리하려고요......곧 이어서 쓸께요...
법원직 불합격 수기 3
처음엔 속리산 학원이 산 중턱 어디쯤 있는줄 알았다. 하지만 속리산 학원은 속리산 에서 수킬로미터 떨어진 자락에 한적한 시골마을에 있었다 속리산은 유명세 그대로 였다 노량진 만큼은 아니지만 강의실 자리다툼도 치열했고 24시간 꺼지지 않는 불빛 그리고 많은 학생 놀란것은 노장들이 많다는것이었다 난 처음에 4인실로 사용했다 규정상 처음 오면 독실을 줄 수가 없다고 했다 같은 방을 사용했던 사람들은 조선대 법대생들이였다 방학을 맞아서 들어왔다고.....그들과 잠시 지내면서 분위기에 적응했고 한달이 채 못돼서 사감실에 찾아갔다...독방 달라고...같이 지내는게 불편해서가 아니라 자습실 자리 맡는게 너무 싫어서 독방에서 공부하고픈 욕심에서 였다...규정상 온지 얼마 않돼서 않된다고 했다 빡빡우기고 떼를 썼다 전 제일고시 처음 아니에요...노량진에서 마무리 반도 들었고요 그리고 방학지나면 학생들도 조금은 빠지 잖아요 전 독방써야해요 아니면 공부 못해요 그렇게 한동안 실갱이를 하다가 이틀뒤에 방이 하나 나온다면서 정 그러면 거기 들어가시라고.....그렇게 나의 속리산 생활은 시작됬다 처음 할때만큼은 아니지만 열심히했다 더운 여름 런닝하나 입고 합격을 위한 땀을 흘렸다 동생이 고생해서 벌은 돈으로 난 지금 호강하는거다 그렇게 다짐하고 또 다짐하면서 기본서부터 그리고 승진시험 문제집...이름만 대도 알만한 사시용 민법 형법 문제집...학원자료 그리고 강의.....쉴틈이 없었다 가끔 답답할때 산책하는게 전부였다 산책하는것 조차 가족에게 미안했다.....프랑스 월드컵기간이였는데 가게에서 TV한번 않봤다.......그렇게 책만 보며지내던 어느날.....드디어 사건이.........쾅쾅쾅!!! 대피하세요 쾅쾅쾅!!!! 대피하세요
새벽 6시 경이였다...책을 보고 4시경에 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주위가 소란 스러웠다 잠을 깨우는 총무들이 안내하는데로 산기슭을 따라서 본관쪽으로 이동했다 잠이 덜 깬 상태에서 주위를 보니 어제내린 비로 하천이 범람한 것이였다 범람한 물결이 이미 내가 생활했던 생활관 일층을 덮치고 있었다 엄청난 폭우였다 보은 상주지역이 물에 잠겼다고 뉴스에서 속보라며 연신 떠들어댓다 학원에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시설피해는 막대했다 비가 그친뒤의 관경은 처참했다 아스팔트가 지진이 난듯 갈라지고 아스팔트위에 아스팔트가 올려지고 벼락을 맞았는지 전봇대 중간이 부러진것도 있었고 하천의 콘크리트 다리 다섯개는 모두 끊어 졌다 마을 주민들은 저수지 둑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며 전전긍긍했다 수도도 끊기고 전기도 모든것이 더 이상 뉴스도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원장님은 강의를 계속했다 학생들에게 초 한자루씩 지급해 주시고 강의실 칠판 주위에 초를 많이 켜두고 강의를 했다 이건 천재지변일뿐이다 법원직 공부하는 학생들은 이런일로 마음 흔들리면 않된다며 강의를 하셨다 우리는 그렇게 강의를 들었고 그 초를 가지고 자습실에서 자기방에서 또 공부를 했다...하지만 나에게 사건은 그것만은 아니였다.....죽음의 공포.....
이삼일 지났을 무렵 수해로 내가 어떻게 됬는지 궁금하다며 친구가 청주에서 보자고 했다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잠시 벗어날 생각으로 청주로 갔다 친구를 만나고 늦은 저녁무렵 보은 터미널에 도착했다 그리고 속리산 방향 버스 막차에 올랐다 마을 어귀에서 내려 대략 30분 정도는 걸어올라가야했다 마을에 불빛이 보였다 아 전기가 들어오는구나....아랫마을을 벗어나 잠시 외길을 접어들무렵 천둥소리가 들렸고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괜찮았다 우산을 펴고 천둥치면서 빛이 반짝거리는걸로 내 위치를 수정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주위는 칠흙같이 어두웠고 갑자기 비가 엄청나게 쏟아지면서 여기저기서 벼락이 치기시작했다...그리고는......
탕!!
우산을 든 손에 팔꿈치까지 짜릿함을 느꼈고 우산이 튕겨져나갔다 순간적으로 바닥에 엎드렸다 어딘가에 벼락이 떨어진 것이였다 차가운 바닥 하늘에서 떨어지는 굵은 빗방울 내 머리카락을 적시고 목줄기를 타고 내리는 서늘함 떨어진 빗물이 아스팔트에 맞고 다시 내 얼굴로 튀겨오르는 따가움 여기저기 들려오는 천둥소리와 번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여기서 조금만 발을 잘못 옮기면 하천인데......여기서 이렇게 죽는건가.....학원까지 여기서 약 십분거리지만 길이 곡선인데다 아무것도 보이질 않아서 막막했다 아니 일어날 생각조차 않했다 일어나다가는 벼락이 직접 떨어질것 같은 공포감에 난 그렇게 엎드려서 혼자 떨었다...멀리서 움직이는 불빛이 보였다 소형승용차였다 승용차가 조심스럽게 올라오고 있었다 아 살았다는 느낌 승용차가 가까이오자 난 벌떡 일어나 양팔을 좌우로 흔들었다 비 때문에 나를 발견하기 어려웠는지 거의 앞에 다와서야 섰다 고맙게도 학원앞까지 나를 태워줬다 알고 봤더니 같은 학원생이였다 도저히 독실에 들어갈 용기가 나지않아서 예전에 쓰던 사인실에 들어갔다 조선대 학생들이 나를 보더니 놀라는 눈치다 아니 어디서 이렇게 비를....얼굴이 하얗게 질렸네....멍하니 내가 가만히 있으니 갑자기 팔다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그리곤 따뜻한 차를 한잔 끓여줬다.... 그렇게 그날의 악몽을 마감하고 난 다음날 뒤도 않돌아 보고 속리산을 떠났다........
이어서 또 쓸께요
법원직 불합격 수기 4
속리산을 떠나서 다시 집으로 왔다 하지만 속리산에서 충격이 컷던지 바로 책이 잡히지 않았다 약 이주정도 방황했다 그렇게 가을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이러면 않돼지 이제 시험이 얼마 남았다고..수석해야해 수석...사실 정말로 수석하고 싶은 욕심은 없었다 다만 모든 시험이 자꾸 컷 밑에서 떨어져서 목표치를 올리면 컷을 넘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였다 당시는 자격증 생각을 하지 않았다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냥 실력만 있으면 가능하다는 생각뿐이였다 어쨌든 나는 마음을 추스리고 이월에 있을 시험을 위해서 전력질주를 했다 다시 노량진 제일고시학원에 등록했다 속리산에서 책을 많이 봐서 그런지 공부하는데 그리 어려움은 없었다 시월 십일월 십이월 나는 몇달을 하루처럼 보냈다 커피와 줄담배로 잠을쫒으며 이월에 있을 시험을 위해서.... 온정렬을 있는힘을 다해서 말없이 오빠 공부한다고 경제적 물질적으로 도와준 동생들 얼굴에 미소를 띄우기 위해서 시험보는날 죽는다는 각오로 그렇게 했다 기본 이론부터 사시문제들까지 정말 중무장을 했다 진짜 수석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대한민국에서 어떤 문제를 갖다줘도 다 풀자신이 있었다......그런데.....
원장님이 수업시간에 잠시 뜸을 들이더니 음 올해 시험이 올해 그러니까 시험이.....머리를 긁적이면서 하시는 말씀이 사월에 있을것 같다.......아니 이게 무슨소리야?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공부가 조금 덜된 사람한테는 좋은 기회니까 열심히 해 시험이 연기돼면 누가 합격할지 아무도 몰라지금부터 열심히 하면 합격할수 있어...하지만 내 귀에는 다르게 들렸다 넌 불합격이야 너가 무슨.....합격하려고 아무리 용을 써봐라 니가 합격하나.....이월에 시험이 있을 줄 알았지...하하하 사실 사월이야 이번 시험은........사실 이월에 있다는것은 나의 판단이였다 요즘은 삼월에 보통보지만 예전엔 이월에 시험이 가장 많았다.....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시는것 같았다 넌 일주일 뒤에 죽어 그러니까 남은 기간 열심히 살어 알겠지? / 예 일주일 남았으면 죽어라고 열심히 살겠습니다. 어차피 죽을 거면....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는데 난 죽지 않았다 하나님 저 아직 살아있는데요? / 하하하 농담이야 사실은 너 두달 뒤에 죽어....그러니까 두달동안 다시 죽어라고 열심히 살어......
힘이 없었다 더 이상 두달을 버틸 힘이 없었다 내가 어떤 각오로 이월에 맞춰서 전력 질주를 했는데 하루 커피 열잔씩 아니 그것도 모자라 커피믹스가루를 그냥 입에 털어넣으면서 그렇게 잠 않자고 공부했는데 시험장에서 죽더라도 합격하려고 했는데 죽는날이 두달 연기됐다고??........... 나는 그뒤로 무기력에 빠졌다 결국 시험도 응시하지 않았다 아니 원서 접수도 하지 않았다............집에 골방에서 망연자실 시간만 지나기를 기다렸다 거의 폐인이였다...친구P는 넌 더이상 공부안해도 되니까 시험장가서 그냥 문제만 풀고 오라고 애원을 했다 하지만 접수를 하지않았으니 이미 버스는 떠난뒤였다 지금 돌이커보면 수험 생활중 두가지가 후회돼는데 그 중하나가 안기부합격하고 임용포기서 제출한일이고 다른 하나는 99년 시험에 응시하지 않은것이였다..... 그렇게....99년의 봄이 지나가고 있었다.....모든 희망이 꺽인체....아니 스스로 포기한체....
따르릉~~
여보세요?
오빠 / 응
언니 교통사고 났어 여기 잠실 사거리......
뭐? !!!
또 짤라서 죄송합니다 격었던 일을 기준으로 마음 정리를 하다보니...... 또 쓸게요 자꾸 아니 간간히 눈물이 나네요 과거를 회상하니까...하지만 속은 좀 후련합니다 님들 격려 정말감사합니다.......해골......
법원직 불합격 수기 5
급하게 잠실 사거리로 택시를 타고 갔다 어디다친데는없어? / 응 괜찮은거 같아 경찰이 간단한 접촉사고라고 했다 사실 놀란 이유는 교통사고 일년전에 허리디스크 수술은 받은적이 있었기때문이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는 다음날 이였다 동생은 허리가 아프다며 걸음걸이가 어색했다 아 설마....병원에 함 가보자....그래야 될것 같아....예전에 허리수술받은 교수님을 찾아갔다 결과는 수술한 부위 바로위 디스크가 돌출됐다고.....다시 수술해야 된다고.....앞이 캄캄했다 허리를 두번씩이나 칼을 댄다고....하지만 어쩔수 없었다 수술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제발 잘못되지않기만을 바라며 재수술을 했다 다행이 수술은 잘 됬고 보험회사로 부터 병원비 일체와 보상금을 받았다..
오빠 - /응 / 나 오빠한테 할말 있는데- / 응 말해 /오빠 공부다시해 오빠 실력이 없는게 아니라 운이 없는거 같애 그러니까 다시해 / 운은 무슨운 실력이 없는거지 그리고 돈도 없잖아 막내 대학보낸다고 대출까지 받았는데....(사실 대학을 않나오면 무시당할까봐 내가 억지로 학교를 보냈다 둘째도 국문학과 합격하고 입학금이 없어서 대학을 못갔다 나 역시 아직 졸업은 못했고...막내만큼은 대학을 꼭 보내고 싶었다 야간 상고를 나왔기에 산업체 특별전형으로 안경광학과를 보냈다 막내스스로도 백화점 판매원부터 여러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그걸로는 학비가 많이 부족했다) 오빠 우리 돈 있잖아-/ 무슨돈?/ 사고나서 보상금 받은거- ....갑자기 눈물이 핑돌았다 야 나보고지금 오빠보고 너 사고나서 받은 보상금으로 공부하란 소리냐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난 그짓은 못한다 / 오빠두 나 살렸잖아......
전자장님 전화왔습니다.(군대에서 내 직책은 전자장이였다 전자 장비를 정비하는...) 어 막내구나 오빠 언니 약먹었어 / 어 약 잘 챙겨먹으라그래 /동생은 말이 없었다 그래 오빠 건강하구....이틀뒤 전화가 또 왔다 오빠 언니 이번에도 약 먹었어 ?? 무슨약?? / 자살하려고 / 자살? / 난 크게 놀라지 않았다 얼마나 힘들었으면..../저번에 먹고 이번이 두번째야.../그럼 엊그제 전화해서 먹었다는 약이.... 어머니 돌아가신후 온갖 궂은일을 초등학교 시절 부터 해왔고 중학교때 부터는 밤에 식당에서 설거지등을 하면서 몸이 성한곳이 없었다 허리도 그 시절에 다친것이 였다 /그래 알았다오빠가 서울가마.. 전화를 끊자마자 기지장이 날 불렀다 전자장-/ 예/ 전보가 왔는데 집에 좀 가봐/ 무슨일로.../여기 전보 가면서 보고 일 해결되면 오고.../예
전보를 펴봤다 --동생사망--
병원이름만 기억한체 병원 영안실로 달려갔다 없었다 나중에 헤메다 보니 중환자실에 있었다 의사의 가망 없다는 말을 전해들은 아버지가 내가 올때쯤 죽을거라 생각하고 전보를 그렇게 보내신거였다....하루세번 삼십분씩 면회...가운을 입고 중환자실에 들어갔다 얼굴은 퉁퉁부었고 눈에는 거즈를 붙였고 몸에는 입은옷이 없이 시트한장으로 몸을 덮어놨다 사지는 천으로 침대기둥에 묶여있었다 오빠 언니 몸이 차거워- 만져보니 정말 차거웠다 심장 부근만 온기가 약간 있었다 사람몸이 이렇게 얼음장처럼 차가워지는구나.....의사를 만났다 의사가 먼저 말을 꺼냈다 아버님께 말씀드리니까 아드님이 오셔서 결정해야한다구 / 뭐를요? 예 제가 가장입니다 / 죄송하지만 가망없습니다. 약을 400알 정도를 먹은것 같은데 그중 치명적인 성분하나가 분석이 않됩니다. 도핑검사를 해봐야 알거같고....여러가지 약을 섞어 먹은것 같습니다. 병원에 늦게 오셔서 벌써 상당부분 몸에 흡수가 됬고요 약을 해독하느라 간이 상당한 손상을 입었구요 저렇게 오래두면 폐도 상합니다. 깨어날 가능성도 희박합니다. 기적적으로 깨어난다해도 식물인간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기적이 일어나도 식물인간이라구요? / 예 /앞이 캄캄했다/ 그런데 제가 결정할 사항은요? 여기서 약해지면 않된다는 생각에 정색을 하고 내가 물었다 / 집에 데려가실지 여기에 있게 하실건지를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 여기서도 사망할 확률이 높지만 식물인간으로 깨어날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계속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 집으로 가면 저희들이 구급차로 집까지 모셔다 드리고 입에 끼운 기계를 빼고 오는 거지요 그러면 곧 사망합니다. 식물인간 상태에서는 인위적으로 돌아가시게 할 수 없거든요 그걸 결정하세요 결정 !! 그거였군 내 결정으로 동생을 살리든지 죽이든지 하라는것
법원직 불합격 수기 6
잠시 시간을 주십시요 아니 좀 더 기다려 보겠습니다. 열흘이 지났다 동생은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열흘이 지나도 저렇게 계시면 깨어나시기 정말 어렵습니다. 결정하세요 의사가 독촉을 했다 예 저녁에 말씀드리겠습니다. 막내가 나한테 매달렸다 오빠 그냥두자 내가 벌어서 언니 병원비 댈께 오빠 집에 데려가지마 막내는 울면서 나한테 매달렸다 사실 우리는 모두 두살터울이지만 막내에게 둘째는 엄마였다 도시락 싸주고 빨래해주고 때로는 친구처럼 학교도 같이 다니고......이런다고 될일이 아니야 울지말고 저기가서 앉아있어 동생을 보호자 대기실로 보내고 난 화장실로 갔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자살을...난 화장실벽을 치며 통곡을 했다 어머니 돌아가실때도 흘리지 않던 눈물인데.... 난 지금껏 살면서 그때가 가장 많이 울어본듯하다
냉정하게 생각했다 병원엔 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였다 동생역시 식물인간으로 살고 싶어서 두번씩 약을 먹었을까....생각을 정리해서 의사를 찿아갔다 결정하셨습니까? /예 집에 데려가겠습니다. 정확히 이틀후에요....예 알겠습니다.... 저녁 면회시간이 되어서 동생을 면회했다 이봐 총각....예 할머니 동생옆에 누워계신 할머니였다 암으로 오늘 내일 하시는 분이라고 했다 움직였어...예 뭘요??.....낮에 손가락 까닥하는거 내가 봤어 할머니는 숨이 찼는지 목소리가 거칠었다 나는 믿지 않았다 내가 처음 볼때나 지금이나 동생의 모습은 똑같았다 그냥 대답대신 할머니를 보고 미소를 전했다 다음 날 아침 면회를 갔을땐 중환자 실이 어수선 했다 울음소리....할머니가 돌아가셨다,,,아 결국 가셨구나 이제 동생도 사랑하는 내 동생도 하루남았구나 제발 일어나라... 아무일 없었다는듯이 일어나라...오빠왔어? 하고 말해봐.... ....... 오후면회에 갔다 기적이 일어났다동생이 깨어나고 있는것이였다 비명을 지르며 몸을 비틀면서......아 그래서 팔을 묶어뒀구나.....그렇게 동생은 깨어났다 이삼일을 그런행동을 반복하더니 결국 정상으로 돌아왔다 기적이 있어야 식물인간이 된다던 동생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당시 병원비로 군대에서 삼년간 모은 월급을 전부썼다........
난 그렇게 않해 그 돈은 니꺼야 나중에 후유증 생기면 어떻하냐...그냥 놔두고 너쓸데 있으면 써..나는 방에 숨어지내는 일을 그만두고 잠시 신문배달을 했다 그리고 동생소개로 방송국에서 FD 생활을 했다 동생은 방송관련 일을 한다 예전에도 방송국 촬영장에서 허드렛일을 알바로 한적은 있지만 FD로 일한건 이게 처음이였다 사실 알바할때 일 잘한다고 FD해보지 않겠냐고 하길래 그때는 공부한다고 거절했었다 하지만 일자리가 급해서 FD일을 했다 FD는 원래 무대 감독이라는 의미지만 실제일은 PD를 보조해서 촬영준비부터 편집까지 않하는게 없었다 처음들어가서 보름간 퇴근을 않할 정도로 열심히 일했다 FD는 계약직이다 2000년이 오기 직전에 난 전자회사로 옮겼고 거기서 잠시 기술영업일을 하다가 다시 다른 전자업체로 옮겼다 방산 업체였는데 내 군경력을 인정해줬다 그리고 물론 날 불러준 친구가 있었다(그 친구는 지금 부산대학교 대학원에 재학중이다 예쁜 딸아이도 이번에 출산했다) 그곳에서 그런대로 적응해 갔다 월급도 받고 동생들한테 한턱 내기도 하고 그렇게 법원직은 잊은채 2000년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사실 나는 2000년에 법원직이 500명이나 뽑는 줄은 몰랐다 99년이후로 공무원 아니 법원직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다시 나를 충돌질한것은 회사에 아줌마 였다 당시 아줌마 아들이 군대에 있었는데 거의 제대말년이였다 하지만 하급자 구타 사건에 연류되는 안타가운일이 발생했다 내가 법공부한걸 어찌 알았는지 나한테 법에 대해서 자꾸 물어오는것이 였다 아는 한도에서만 답해 드렸는데 사실 문제는 내가 다시 시험을 보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는 것이였다 여름에 회사를 정리하고 2001년 시험을 준비할 계획을 세웠다..
법원직 불합격 수기 7
2000년 여름에서 가을로 접어들 무렵 집이 구의동이라서 뚝섬에 방통대 도서관을 이용했다 사실자주가는 도서관 중에 하나다 거기서 지난날 공부했던걸 되세기며 초반엔 적당히 공부했다 과거처럼 막판에 힘이빠지는것을 방지하기위해서 10시간 정도만 공부했다 그러다가 가을에 법원행시가 있다는것을 알았다 예전에 원장님이 하시던 말씀이 생각났다 법원행시문제가 법원직에도 도니까 법원직 공부하는 과정에 모의고사 치는 기분으로 응시하라고......접수를 했고 시험을 봤다 법과목은 의외로 쉬웠다 국사는 조금 까다로웠고 영어는 경향이 수능식인데 모르는 단어가 너무 많았다 수준이 토익 토플보다 높은 듯 했다 나중에 점수를 확인해보니 법은 고득점이였고 영어는 저조했고 국사는 평균적인 점수였다 법과목이 고득점이라서 내심 기분은 좋았고 희망적이였다 그래 법원직에서 이렇게만 나와라.....겨울이 올 무렵까지 뚝섬 방통대 학습관 도서관에서 그렇게 준비했다 친구P가 공사 퇴근후 와서 같이 공부했는데 정신적으로 많은 힘이 됐다 친구 P는 당시 감정평가사를 준비했다 일하면서 신림동에서 주말반 강의들었고 평일에는 야간에 나와 함께 도서관에서 공부했다 현재 P는 일차에 합격하고 이차 준비를 하고 있다 12월이 다가올 무렵 노량진에서 마무리강의를 들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학원을 갈까 고민하다가 이번엔 한교를 선택했다 독서실도 개인 독서실로 옮겼다 새벽 전철을 타고 노량진 가면서 책을 봤고 강의듣고 돌아오면서 복습하고 독서실에서 새벽두시까지 혼자 기본서를 봤다 이주일이 지났을까.....통학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고시원을 알아봤다 노량진에서 제일싼 12만원짜리(지금은 없어졌다)........
일요일이면 교회가서 기도를 했다 하나님 !! 하나님 뜻대로 하옵소서 전 다만 준비할뿐 하나님 뜻대로 하옵소서......
고시원에서 나는 담배피는시간, 커피마시는 시간, 밥먹는 시간만 제외하고 책만 봤다 2001년으로넘어가는 세벽에 나는 잠을 이룰수없었다 이제 서른이 되는시간....지금까지 난 뭐하고 살았나..열심히는 살았는데 아무런 결과가 없는 지금에 내 모습.... 올해는 결코 다르리라 다짐하면서....그렇게 휴게실에 혼자 앉아서 밤을 세고 있었다.................
2001년 1월 1일 4시가 조금 넘은 시각....문을 삐걱 열고 한 여학생이 들어왔다 네모난 공간에 남자와 여자....우리는 서로 신문을 보다가 서로 몇마디 나누었다 지금 일어났다면서 항상 이시간에 일어나서 공부한다고.......아 저는 지금 잠이 않와서....몇 마디 나누다 보니 초등학교 후배였다 나는 초등학교를 아홉군데를 다녔다 입학한 학교와 졸업한 학교도 당연히 다르고 중간에 4년동안 일곱군대를 옮겨다녔다 어머니 돌아가신후 난 그렇게 거의 떠돌이 생활을 했다 아니 어쩌면 집이 떠돌이 였는지도.... 그후로 식사를 같이하러 다녔다 식사랑 식사후 10분정도 산책을 같이 했을뿐 그이상은 만나지 않았다 서로가 해야할 공부가 있으므로..... 시험이 약 두달 남았는데 그때부터 머리가 멍해지는게 이상했다 의자에는 앉아 있지만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고.....하지만 오기로 앉아서 책을 봤다 당시 학원에 회의를 느껴서 학원은 잘 안가던때였다....그리고 시험을 봤다.....
합격을 철썩같이 믿고 있었는데 의외로 국사에서 발목을 잡았다 아.....행정직 때부터 국사는 거의 만점 나오는 과목이라서 이번 시험에 좀 소홀이 했던게 합격 불합격을 좌우할 줄이야........그녀는 자꾸 자기 때문에 떨어졌다고 자기 탓을 했다 아니다 그건 정말 아니였다 내가 쉬운과목이라고 국사를 소홀히 한 내 탓이였다 그렇게 이천일년 시험은 저물어 갔다.......
이제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하다가 서울 교행이 있는것을 알았다 그래 그거라도 보자 별 뽀족한 수도없었다 교육학만 테입을 대여해서 공부했다 나머지는 혼자 책으로 공부했다 그리고 시험날...
시험종료시간에 맞춰서 답안 작성을 다 하고 난 합격할지도 모른다는 예상을 했다 가벼운 마음에 기지개를 켜고 답지를 내려다보는 순간........둔기로 머리를 한대 맞은 느낌.....교육학 중간쯤에 마킹이 없는것을 발견했다 헉 이게 뭐지 급하게 확인해보니 거기서 부터 답을 밀려쓴 것이였다 하지만 이미 내 귓가에는 종료종이 울렸다 빈곳만 마킹을 빨리하고 답지를 제출했다....
법원직 불합격 수기 8
시험보고 학생들이 모두 떠난 교정밴치에 혼자 앉아서 난 담배 한갑을 폈다 바보세끼..병신세끼 죽어라 죽어....한번도 해보지않은 실수...죽어라 죽어 동생들을 무슨 낮짝으로 볼래.....결국은 담배가 다 떨어져 터덜터덜 돌아왔다....합격자 발표후가 더 충격적이였다....아 답만 안밀려 썼어도.....아니 자격증 하나만 있었어도....하지만 이미 지나간일....
그래 더이상 이러고 있을수는 없다 뭐라도 하자..... 고민을 했다 그래 평소 관심이 있었던 컴퓨터일...전자경력도 있고...결국은 IT분야를 생각했다 지금 상태로는 받아주는데가 없을듯 했다 나이를 먹었으면 컴퓨터 업에 경력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없었다...그래 대기업에서 교육을 받자...무리를 해서 다시 대출을 받았다...이거면 나도 취업할 수 있다...비록 나이는 있지만 난 내 근성을 믿었다 뭐든지 하면 열심히 하는...대기업에 면접을 보고 교육을 받았다 노동부 지원과정으로 정부에서 수강료를 보조해주는 지원을 받았다...한여름에 나는 그렇게 또 다른 장소에서 IT를 공부했다 정말 열심히 했다 학원에서 10시까지 자습하고 집에서 새벽 두시까지...가끔 밤을 새기도 했지만 이젠 체력이 예전 같지 않았다 심신이 지친 상태였다...결국 두달이 채 않돼는기간동안 우리반에서 내가 제일먼저 자격증을 취득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시스템 엔지니어(MCSE)와 데이터베이스관리자(MCDBA)...시험이란 시험은 계속 떨어진 경험만 있던터라 너무 기뻣다... 그래 이젠 일하자 정말 열심히 해보자...시월말경부터 일자리를 알아봤다 이력서를 제출했다 한군데 두군데..아 이제 연락이 올거야 면접보러 오라고...열군데 스무군데.....오십군데...육십.....칠..십.......팔....십.....구.....십,,,,,,,,,,,,,,,,,,,,,,,,,백 한군데도 없었다 면접 보러 오라는데가.....이게 아닌데...나 정말 취업해야하는데.......난 서류전형에서 모두 탈락했다....경력없이 자격증만 있다는것......나이가 많다는것.....등등.....
삶의 의미를 잃은 나는 12월초 어느날 친구P와 감자탕 집에서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제 어떻할꺼야......?
.....................................
어떻 할건데..................?
.....................................
난 할 말이 없었다 교육 끝나면 취업할거라고 좋아했던 동생들 얼굴이 왔다갔다 했다
우리는 말없이 서로 소주잔만 기울였다 침묵을 깬건 친구였다 너 머리 좋은놈이야.....아니야 나 머리나쁜거 같아 미친놈 그런 놈이 중학교때 장학금 받고 학교다녔냐? 우등상 표창장 등등 너 상장으로 도배했잖아....친구는 고교 시절은 얘기하지 않았다...고등학교때 나는 공부를 하지 않았다아니 책을 받으면 그냥 버렸다 고교 친구들은 소위 중학교때 날리던 얘들이였고 더군다나 아버지에대한 반항심으로 난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았다....뒤에서 손가락 발가락 합친등수가 내 전교 등수다
다시 법원직 공부해.......
지금 벌써 12월이야.......
아휴 지금 까지 얼마나 많이한 공분데...너라면 금방 할 수 있어.....
돈없어.......................................
친구가 주섬주섬 카드를 꺼냈다 이걸로 시험때까지 써 학원 등록하구 책도사구 필요한거있음 써비스도 받고.....난 웃으면서 말했다 난 카드취급 않해.......야 지금 너하고 나하고 상황이 뒤바꼈다면 넌 나한테 안 이랬을것 같아? 넌 더한 놈이야.....그러니까 받아....우리 처음 공부할때 약속했잖아.....한놈 먼저 붙으면 월급으로 지원해 주기로...../ 그래 너가 결혼만 않했어도 그거 받겠다 /야 이거 내 돈이야 그리고 우린 둘이 벌잖아....../그래도 못받아 나 중에 정말로 나 빌어먹게 되면 나 박대하지는 마라 하하하 .......눈물이 나올것 같았다...
그래 다시 할께 어떤 방법이든 내가 알아서 할께...카드는 못 받어...
사실 이 친구한테 예전에 삼백만원을 빌린적이 있다 동생이 처음 디스크 수술할때 병원비가 없어서.... 그 친구도 결코 잘사는 놈이 아니였다 ..안갚아도 된다고 했지만 일년에 걸쳐서 매달 20만원 30만원씩 줬다 그때 정말 미안했다 그래서 더욱 받을 수 없었다
그렇게 우린 술잔을 기울이는 동안 밤은 깊어 갔다.......
법원직 불합격 수기 9 (마지막)
나의 서른살 한해는 그렇게 갔다 공부를 다시해야 했다 어차피 취직이 않되니 방법이 없었다 어느학원을 다닐까 한참을 고민했다 하지만 결국 혼자하기로하고 교재만 제일고시학원에서 구입했다 다시 뚝섬 방통대 도서관과 집앞에 독서실을 왕복했다 메니리즘에 빠질까 두려워 일부러 두군데를 왕복하며 공부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보내고 응시원서 접수하는 날 나는 고민했다 예전에는 별생각없이 서울을 넣다. 하지만 이번엔 꼭 붙어야 한다.....강원도.......친구C에게 전화를 했다 친구는 강원도를 권했다 시험컷이 대체로 낮은곳이고 삼년이 지나면 원하는 곳으로 갈수 있다고 했다 법원은 승진 시험도 지역별로 인원제한해서 공채와 같은 방법으로 본다면서......춘천에 우편접수를 했다.. 그리고 시험이 한달 남았을때 난 다시 노량진 고시원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한달만 죽자.....열심히 했다 식당에 밤먹으러 가는것 외에는 고시원 현관을 나오지 않았다
시험보기전날 공군 군무원으로 근무하는 친구가 법원직 시험을 보기위해서 서울로 상경했다 난 친구와 함께 청량리 부근에서 여관을 잡아서 자고 같이 시험보러 외대에 갔다.....컨디션이 너무 않좋았다 아픈것도 같고 하여간 몸이 너무 많이 떨렸다 사시나무 떨듯이.....시험시간 내내......
문제를 어떻게 풀었는지도 모르겠다 실수도 너무 많이 한거 같고.......그렇게 올해 시험도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