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문 두산 베어스 감독(49)이 올림픽에 참가 하는 명단에 ‘백차승(27, 시애틀 매리너스) 같은 선수가 아쉽다.’ 라는 인터뷰를 지면을 통해 밝힌 바 있다. 부산고 출신의 백차승. 부산고와 청소년 국가대표 시절 에이스이자 클린업에 위치했었고, 박찬호 이후 최고의 투수라고 평가받던 투수가 바로 백차승. 당시 경남 권에서는 백차승의 선전은 그야말로 두드러짐 그 이상이었다. ‘또 하나의 괴물투수가 나왔다.’ 라는 언론들의 보도에 백차승의 시대가 오는구나 라고 다들 짐작을 했었다. 그러나 현재 메이저리그에 있는 백차승 만이 당시 경남권 야구에서 두드러지는 활약을 보였던 것만은 아니다. 그리고 범위를 좁혀 1980년생 전후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투수들은 백차승에 필적할 정도로 눈에 띄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김사율(27, 롯데 자이언츠), 송승준(27, 롯데 자이언츠), 강민영(26, 롯데 자이언츠)은 바로 대표적인 선수들. 안타깝게도 백차승, 김사율, 송승준, 강민영으로 대표되는 네 명의 선수들은 지금도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는 점. 아니, 시즌 초반 그나마 좋은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 예상이 되던 백차승도 현재의 모습으로는 좋다고 평하기에 많이 부족해 보인다는 평이다. ![]() 김사율, 돌아오다. 드래프트 지명 장에서 지금은 고인이 된 김명성 감독이 이끌던 롯데 자이언츠는 김사율을 1999년 2차 1지명으로 망설임 없이 지명하게 된다.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빠른 공을 뿌리는 맛은 없지만, 제구와 두뇌피칭 능력에서는 정상권이라는 당시 평가 속에 김사율은 주목을 받았다. 그런 평가속에 롯데 입장에서도 김사율에게 당시 적지 않은 계약금을 챙겨주었던 것은 당연한 일. 김사율은 경남상고 시절 도루하는 포수로 알려졌던 현대의 이택근(27, 현대유니콘스, 당시 경남상고 포수)과 호흡을 맞추며, 팀을 정상권으로 올려놓았다. 김사율은 롯데에 입단, 이택근은 고려대에 진학하게 되었다. 많은 전문가들이 김사율의 시대가 열린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부족한 것은 기회라고들 여겼다. 김사율은 1999년에서 2004년까지 롯데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며, 팬들에게 주목을 받았다. 최고 구속이 140을 자주 넘기지는 않았지만, 두뇌피칭에서 합격점을 받던 김사율. 입단 당시에는 제구력에서도 어느 정도 합격점을 받았고, 신인치고는 몸 쪽 승부도 나쁘지 않은 모습이라는 평이었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었다. 시간이 흐르고, 실전 등판이 잦아지면서, 한때 마일영(26, 현대 유니콘스)과 청소년 국가대표 시절 게임당 많은 탈삼진을 뽑아내는 그의 모습은 찾기 힘들었다. 롯데 팬들의 비판의 대상에 수시로 거론 되었음은 당연한 일. 심지어 ‘구속이 나오지 않은데 불과하고, 지명한 롯데 구단의 잘못이다.’ 라는 말도 안 되는 일부 팬들의 원성도 섞여 나왔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사라져가는 듯 했다. 당연히 상무에서 군 생활을 할 것이라고 여기던, 아니, 국가대표로 뽑힐 것이라 예상하던 김사율은 일반 현역으로 입대를 했다. 선수 생활이 자칫 끝날 수도 있는 육군 포병으로의 입대는 그에게 선수생활의 가장 큰 위기이던 시기였다. 그러나 그런 과정을 거친 김사율이 지난 5월 29일 1군 무대에 첫 등판을 갖게 되었다. #.참고 당시 롯데 자이언츠는 2차 2라운드 지명은 엘지 트윈스에서 잠깐 주목을 받기도 했던 중앙대학교 출신의 국가대표 출신의 내야수 한규식(31, KIA 타이거즈), 2차 3라운드 지명은 근성으로 롯데와 두산에서 팬들의 사랑을 받는 경성대학교 외야수 임재철(31, 두산 베어스)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2차 8라운드 지명에서는 원광대 출신의 조성환(31, 롯데 자이언츠)을 지명하게 된다. 근성의 대명사 중에 한 명인 조성환은 2007년 11월 제대를 한다. 1차지명자이자 주목받던 경성대 출신의 정원욱(31, 前 롯데 자이언츠)은 현재 은퇴하고, 개인 사업을 하는 중이다. ![]() 수준급이었지만 아쉬움으로 남는 1999년 지명 멤버 1999년 지명된 수비에서만큼은 엄지손가락을 세워도 좋을 만큼 눈에 띄던 황우구(31, 前한화 이글스)나 중앙대학교 에이스인 김상태(31, 前 엘지 트윈스)같은 대졸 선수들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있었지만 고졸 선수들 중에서도 재능 있는 선수들로 한해를 이루었다는 평이었다. (김상태의 경우에는 엘지 입단 당시에도, 계약금 문제로 난항을 겪었고, 프로에 입단했지만,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지 못한 채 사라지고 만다.) 인하대 출신이자 1998년 방콕 아시안 게임 대표 경력을 지닌 황우구(31, 前 한화 이글스) 역시, 당시 지명된 선수. 김인식 감독이 한화 이글스 부임 후 주전 유격수로 기대했지만, 잦은 부상과 개인 사정으로 야구를 그만 두게 된 선수가 바로 황우구. 타력은 조금 약하지만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수비에서만큼은 최고다.’라고 인정받은 그였다. 고졸 신인 급 선수 중에서는 현대 유니콘스의 정성훈(27, 당시 광주일고)과 건국대학교에 투수로 입학 제의까지 받던 호타준족 이진영(27, SK 와이번스, 당시 군산상고), 선린정보고 출신의 청소년 국가대표 투수 권오준(27, 삼성라이온즈)은 현재의 기량과 실적으로 비추어볼 때 가장 눈에 띈다. 어찌 보면 재능있던 1999년 지명 멤버 중에서 가장 화려한 활약을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서울고의 에이스이자 4번 타자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입단 제의까지 받았다고 기사화 되던 구자운(27, 두산 베어스), 권오준과 호흡을 맞추면서 청소년 국가대표 포수, 두산의 포수 모으기라는 비판의 결정판이라는 평을 받았던 정종수(27)도 당시 1999년 지명 멤버에 속한다. 현재 엘지 트윈스 2군에 있지만, 투타에서 모든 재능을 인정받던 엘지 트윈스의 김광삼도 당시 지명 멤버이다. 정삼흠 당시 투수코치(46)의 조언을 받아, 투수로 진로를 틀은 김광삼은 1999년 가장 아쉬운 선수 중 한명이라는 평가. 초고교급 내야수 조재영(27), 한상훈(27, 한화 이글스), 현재윤(28, 삼성 라이온즈)과 함께 봉중근(27, 엘지 트윈스), 안치용(28, 엘지 트윈스)과 함께 당시 김광삼은 신일의 타선을 이루었었다. <사진-야구를 사랑하는 이들의 휴식처 inning.co.kr> -이데일리에 송고한 글입니다. |
첫댓글 정원욱 힘없는 공에 컨트롤이 좀괜찮았던 것으로 기억되는...기억저편에 잊혀졌던 이름 다시 듣게 되네요..
한때 정원욱 투구 무브먼트에 반해있었는데;; 많이 아쉬움이 남네요.
저도 정원욱 선수가 가장 기억에 남던데.... 어느 순간 사라졌더라구요..
원욱이..시키..지금 개성고에서 코치생활하고 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