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멘토이신 당신에게
지난 주, 내 생일 즈음에 당신은 <하하>의 ‘아기편지’(제479신, 2015.9.6.)를 통해, ‘영화 “굿 윌 헌팅(Good Will Hunting)”에서 윌 헌팅의 삶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준 훌륭한 멘토 숀 교수처럼 내게, 나에게도 늘 충분한 이해와 배려를 해 주는 사람, 지긋이 기다리며 공감 내지 간곡한 권유로 건강한 의식을 갖게 해 주는 사람, 내 사유의 지평을 넓혀 가게 해 주는, 생명력을 갖게 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서 못난 남편인 저를 ‘멘토’라고 말씀하셨지요,
한편으로 너무 감격스럽게 감사하고, 다른 한편으로 부끄러운 마음에 하하네 식구들 앞에서 고갤 들 수 없습니다.
당신이 알다시피 얼마나 옹졸하고 편협하며 교만하고 불친절할 때가 많은가요. 또 당신 마음에 안 들어 당신이 화나고 짜증날 때가 그동안 수없이 많았잖아요.
그런데 공개적으로 멘토라니요.
원래 멘토란 낱말은 그리이스 신화에서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을 위해 떠나면서 자신이 없는 동안 아들 테리마커스를 보호해 주도록 부탁했던 지혜로운 노인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고 해요. 그것이 오늘날 조직에서 도움을 주는 사람을 멘토(mentor)라 하게 되었다지요. 즉 멘토란 조직에서 후진들에게 조언과 상담을 주고 도움을 주는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도움을 받는 사람을 멘티(mentee) 또는 프로티제(protégé)라고 한답니다. 우리말로 멘토와 관련 있는 단어로 선생님, 선배님, 후원자, 호칭으로서 형님이나 언니 등이 해당하겠지요.
그리이스 신화에 나오는 멘토 노인처럼 넉넉히 지혜롭지도 못하고 당신을 충분히 보호하지도 못한 사람임을 당신도 알지만 누구보다도 나 자신이 더 잘 알기에 분에 넘치는 용어를 사용하신 것이라 생각해요. 아니 부족하고 모자란 것이 많기에 좀 더 잘 해 보라고, 노력하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려고 해요.
그런데 당신의 글을 읽고 곰곰 생각해 보니 당신이 말한 바대로 내가 당신의 멘토이고 당신이 나의 멘티라면 역으로 당신이 나의 멘토이고 내가 당신의 멘티라는 말도 성립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냐하면 나의 많은 부분이 당신의 보호 아래 있고, 상당 부분 당신의 지혜 속에서 내 생활과 삶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무엇보다도 생활의 기본바탕이 되는 먹고 입고 자는 문제의 거의 대부분이 당신의 보호 아래 있지요. 또 병원에서, 은행에서, 많은 사회적 관계에서 당신은 나의 법적 보호자이지요. 모자라고 부족함이 많은 ‘나’이지만 항시 근본적으로 나의 편이 되어서 나를 최대한 이해하고 협력하고 배려하려 하고 있으니 또한 보호자라는 점에서 나의 멘토이시지요. 나아가 나의 강연활동이나 강의 모니터링, 사업이나 하하를 운영하고, 이웃이나 단체에 봉사를 할 때에도 간곡히 잘 할 것을 권유하며 진심을 다해 힘을 보태고 보이는 곳에서 또는 안 보이는 곳에서 지원하고 응원해 주는 당신의 지혜에 힙 입고 있으니 역시 당신은 나의 멘토이신 셈입니다.
그래요, 당신의 생일을 축하하는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 보니 우린 서로가 서로에게 멘토요 멘티인 사이라는 것을 알게 되네요. 부부라는 것이 일방적으로 멘토가 되고 멘티가 되는 것은 아님을 확인하게 되었네요.
언젠가 멀리 사는 친구가 진심으로 놀라운 표정과 부러운 마음으로 말했지요.
‘너처럼 부부간에 인생을 얘기하고 시를 말하며, 소설을 화젯거리로 삼아 대화할 수 있는 일은 정말 드문 일이다. 영화를 말하고, 음악이나, 그림을 논하는 네 부부가 참 부럽게 보이고 참 좋아 보인다’고요.
그래요, 나도 때론 당신과 생활 속에서 부대낄 때도 있지만, 문학과 예술, 자연, 종교와 인생들을 두루 담론 삼아 이야기 나누며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복된 일인지. 그냥 감사할 따름이에요. 당신이 살아서 멘토로 멘티로 곁에 숨쉬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 여기기에 그냥 근본적으로 감사할 뿐이지요.
2015년 또 한 번의 생일을 맞는 당신에게 축하의 마음을 전해 드리면서 나를 멘토로 여겨주신 것을 감사해요. 아울러 당신은 나의 멘토이심도 밝혀드립니다.
당신의 편지 덕에 우린 서로가 서로에게 멘토요, 멘티임을 새로 알게 된 것은 순전히 당신의 덕이라 여기며 감사할 뿐이라오.
옷깃을 여미게 하는 이 가을에 옷깃을 여미도록 서로 살피고, 살펴주면서 손에 손을 포개는 가운데 동행하는 생활을 꾸리도록 마음을 모아 봅니다.
한 해의 삶을 마무리 하고 또 한 해의 삶의 출발점에 서신 당신의 발걸음에 힘과 기대를 실어드립니다. 사랑해요. 감사드려요.
2015.9.10.
당신의 멘티 이계양 씁니다.
첫댓글 이 글을 올리면서 많이 망설였습니다. 실제로 강두희 씨의 생일을 맞아 쓴 글이기도 하고, 아기편지 제470신'멘토인 ‘나’를 위하여'(취원)의 답장이기도 합니다. 사적인 글이기도 하고, 부끄러운 고백이기도 하여 망설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앞서 생일을 맞으신 여러 회원들께 축하 편지를 아기편지에 올린 바가 있기에 부끄럼을 무릅쓰고 게제하였습니다. 혹시 무례함이 있다면 정중하게 이해를 요청드립니다. 한 가지 더, 부부란 서로가 서로에게 멘토요 멘티가 되어야 바람직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하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와! 너무 부럽습니다.두 분의 마음,생각 등 실천의 본보기는 우리 모두의 귀감이 됩니다.서로의 멘티 멘토..그것은 서로를 믿고 존중하며 의지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확신합니다.더구나 문학과 예술 자연 종교가 인생 생활 가운데 흡수 접목 되어 삶이 더욱 풍요롭고 일치됨에 더욱 부러움을 갖습니다. 살면서 화 안내는 부부가 있을까요.오히려 서로를 이해하고 협력하는데 밑걸음이 되리라 느껴요.서로의 옷깃을 여며주고 손에 손을 포개고 기대며 함께 걸어가는 모습,정말 사랑합니다.멋지십니다.
다시 한 번 읽으며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나는 그간 남편과의 관계에서,나늘 늘 보호받고 남편은 나를 보호하는 인식으로 살아왔기에 받기만을 바라며 살아온 듯합니다.나보다 어른스럽고 사회적으로도 지혜롭기에 그저 든든한 울타리로 기대고만 살았습니다.서로의 보호자..열심히 사느라 힘겨운 아이들의 아버지.좀 더 가까이 다가가 나도 보호자가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