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5월의 어느 날, 롯데 자이언츠의 팬 카페 중에 하나인 ‘거인사랑’(http://cafe.daum.net/LotteFanClub) 회원들이 선수단, 그리고 특히 어린 선수들의 무기력한 플레이에 분노하였다. 대책을 세우자는 팬들의 의견이 모아지기 시작했고, 결국 그런 바램은 박정태 코치(38, 롯데 자이언츠 2군 코치)의 얼굴이 새겨진 대형 현수막을 구장에 설치하기에 이른다. 이 현수막 하나로, 어린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는 롯데 선수단 자체에 자극이 되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최근 어린 신인급 선수들이 입단하면서, 팬들이 가장 걱정하는 부분은 근성과 패기라는 부분. 물론 과거 최동원(49, 한화 이글스 2군 감독)이나 선동렬(45, 삼성 라이온즈 감독), 이종범(37, 기아 타이거즈), 양준혁(38, 삼성 라이온즈) 같이 슈퍼스타급 선수들만큼 왜 될 수 없을까라는 사고에 착안해서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야구장을 지켜온 많은 팬들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고들 입을 모은다.
신인, 그리고 펼쳐지다.
다른 예가 여기 또 하나 있다. 2006년 역시 엘지와 잠실의 3연전. 신구조화가 가장 잘 되어있는 팀으로 평가 받는 두산 베어스. 그리고 당시 어찌 보면 팀 내 구심점 없이 힘든 시즌을 보내고 있다는 평을 받은 엘지 트윈스의 벤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엘지의 경우에는 2006년 가장 많은 신인급 선수들을 기용하고, 로스터를 가장 유동 있게 꾸려간 팀으로 뽑힐 정도로 아쉬움이 짙었던 시즌을 보냈다. 물론 그런 변화가 선수들에 대한 경쟁체제만으로 팬들에게 비춰지지 않은 것이 사실이었다. 코칭 스탭진 교체는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
베테랑급 선수들은 물론, 당시 알을 깨지 못하는 신인급 선수들이 비난의 도마 위에 종종 올랐다. 그리고 팬들의 눈물은 보석이 되지 못했다. 신인급 선수들이 좋은 활약을 보였으면 하는 팬들이 많았지만 좋지 않은 결과만이 팬들에게 통보되었다. 신인급 선수들에게 부담에 가까운 책임이 전가된 것도 사실이었지만, 기다림이 무색할 정도로 발전이 없다는 것도 문제였다.
프로야구 지명 장에서 신인 선수로 이름 유니폼을 입었을 때, 느끼는 쾌감은 일반 팬들은 말 그대로 ‘가늠만’ 할뿐이다. 그러나 그런 쾌감도 잠시. 지명된 선수들 중에서 일부는 신고 선수로 입단하고, 그나마 일 년이 흐르면 무수한 선수들이 거리로 나온다. 그 와중에서 살아남은 어린 친구들은 내년을 기약할 수 있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는 이들은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최근 발전한 프로야구의 흐름을 반영하듯, 예전처럼 신인급 선수가 바로 입단해서 대박을 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게다가 과거에는 경쟁 있는 대학리그에서 다듬어지고, 프로에 입단하여, 조금의 수정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FA라는 제도의 정착되어 가는 과정이 생겨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대학을 가지 않고, 프로의 체계화된 훈련을 받겠다는 고교생 선수들이 늘어나면서 이승엽(31. 요미우리 자이언츠), 신윤호(32, 엘지 트윈스)의 선례는 낯설게 느껴지기 까지 하다.
2007년 신인왕 경쟁은 이제 반환점을 돌고 있다. 실질적으로 압축되는 선수들은 생애 한번 받을 수 있다는 신인왕 타이틀 경쟁에 이제 걷는 것으로 모자라다. 결국 신발을 벗고 맨발로 그라운드를 뛰어야 하는 시기는 올스타 브레이크 전후가 될 전망. 많은 선수들이 존재하지만, 두산 베어스의 김현수(19), 임태훈(19), 현대 유니콘스의 조용훈(20), SK 와이번스의 김광현(19), 롯데 자이언츠의 손용석(20)은 바로 2007년 프로야구의 대들보가 되기 위해서 뛰어가는 미래의 주인공들이다.
두산 베어스 신인왕 후보 두 명의 대 분전
#신일고의 김현수가 아닌 두산의 김현수.
2007년 6월 16일 인천의 문학구장. 다니엘 리오스(35)와 당시까지 문학 불패 케니 레이번(34)의 팽팽한 투수전이 전개되고 있었다. 한 번의 찬스면 게임은 끝나는 분위기였고 SK 와이번스 팬들은 한 게임에 세 번의 찬스가 온다는 야구계의 격언을 떠올렸다. 리오스의 완봉 분위기로 게임이 흘렀지만, 한 번의 찬스가 오기를 바랬다.
그리고 맞은 찬스. 타석에는 SK 와이번스 선수들 중에서 정교함이 돋보이는 선수 중에 한 명인 정근우(25)가 들어섰다. 그리고 기대에 부응하듯 딱 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정근우의 공은 좌측펜스로 넘어가는 듯 했다. 조용하던 스카이박스의 팬들까지 일제히 일어났다. 그러나 90번의 선수가 머리 위로 넘어가는 공을 묘기처럼 걷어냈다. 바로 김현수(20)였다.
“기왕 밀어주기로 작심했다면, 강하게 키우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재질은 확실히 있는 선수니 계속 주전으로 기용할 방침입니다. 야구에 대한 열정만으로도 충분히 1군에서 통할 재목입니다.”김경문 감독(49)의 시즌초반 인터뷰가 송고되기 무섭게 부상당한 유재웅(28) 대신 3번 슬롯에 기용한 김현수는 전광판에 자신의 이름을 올린다.
신일고를 졸업하고, 드래프트 지명장에서 의외라는 평을 받으며 지명을 받지 못했던 선수가 바로 김현수. 대학입학과 프로입단을 두고 고민하던 재능 있는 선수에게는 굉장한 아픔이었지만 오히려 약이 되었다. 그리고 그의 프로무대에서 자리는 없다고 생각했던 전문가들과 팬들은 지켜보고만 있는 처지가 되었다.
1루수나 지명으로밖에 활용이 안 되고, 기본적인 센스가 떨어진다는 평을 비웃기라도 하듯, 김현수의 활약은 굉장히 반갑다. 라인 드라이브성 타구를 두산에서 발이 가장 빠른 선수 중에 한명인 민병헌(20)에게 콜 플레이를 하여 잡아낸다. 휘어져 나가는 타구에 대한 약점이 있지만, 플라이 볼을 잡은 뒤 거의 제자리에서 노 바운드에 가깝게 홈으로 뿌려대는 장면도 목격되었다.
게임 시작 전 두산 선수들이 연습하는 과정에서 티 베팅을 끝내고, 가장 먼저 내야에서 외야로 가장 빨리 뛰어나가는 성실성도 갖추었다. 청소년 국가대표 시절, 주목받는 좌타자였고, 신일고 시절 이영민 타격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은 팬들이라면 인지하고 있는 부분. 고교 재학시절에는 레벨스윙형 타자였지만, 현재 두산에 유니폼을 입단 후, 두산 특유의 라인업에 걸맞게 밀어치는 타격은 더욱 좋아졌다는 평을 받는다.
타격에서는 어린 선수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침착함과 볼을 골라낼 수 있는 안정감까지 갖춰나가는 중이라고 밝히는 이 어린 선수. ‘외야는 불가능한 똑딱이 1루수’라는 평이 달갑지 않은 듯 김경문 감독은 생각의 전환으로 하나의 스타급 선수로 키워내는 중이다. 똑딱이 1루수라면, 정교함을 갖춘 외야수를 시키면 된다는 사고는 김현수의 부담을 줄여주었다. 신고 선수가 말 그대로 팬들에게 ‘신고하는 선수’가 되었다. 그리고 팬들에게 알리는 ‘신고’는 그가 그라운드에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제 1의 임태훈.
항상 웃는 표정으로 잠실을 향하는 선수가 있다. 한 팀에 신인 한명만 두각을 나타내기도 쉽지 않은데, 50번 배번을 달은 선수 옆에 임태훈(20)이라는 선수가 공을 만지작거리며 출격을 준비 중이다. 그리고 공을 유심히 바라보던 이 어린 선수는 차세대 마무리 감으로도 손색이 없는 평가가 나온다. 전문가들도 임태훈의 구위와 베짱이라면 충분히 마무리로 통할 것이라고 평을 할 정도로, 그는 전반기 마운드에서 충분히 자신의 PR을 하였다.
장충고 이용찬(19, 두산 베어스)과 서울고 임태훈 두 명의 투수가 입단 당시, 이용찬의 기대가 더 컸던 것이 전문가들의 예상이었다. 그러나 이용찬은 현재 부상 중. 그리고 임태훈은 이용찬을 기다리는 팬들에게 충분히 좋은 모습 그 이상을 선사했다. 어린 선수이지만, 언제든지 등판할 자세를 갖춘 마인드. 그리고 팀 내 베테랑급 투수들이 가르쳐주지 않더라도, 옆에서 보면 금방 따라할 수 있을 정도의 재능은 그의 앞날에 큰 도움이 되었고, 될 전망이다.
<사진-거인사랑, inning.co.kr, 두산 베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