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바보다 2024년 7월 3일 출근길에
간밤에 나는 바보가 되었다. 내가 던진 '나는 바보인가?'라는 질문에 밤잠이 없는 독자님들은 거의 다 '바보가 맞다'라고 했다.
어젯밤에 쓴 그 열탕 이야기는 아마 10년도 넘은 옛이야기이다. 내가 한 번은 길게 써 보고 싶었던 소재였다. 예전에 아내 명의를 빌려서 여성시대에 보내고 싶었던 얘기이기도 했었다. 좀 더 재미있게 쓰려고 했는데, 미루다 보니 이제 출퇴근길에 쓰는 짧은 글이 되어 버렸다.
그렇다고 내가 매일 이렇게 바보같이 살지는 않는다. 정말 그랬다면 많은 분이 걱정하듯이 큰일이 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우물가에 놓아둔 어린아이처럼 마음 편하게 하루라도 살 수 있었을까? 누울 자리 보고 발을 뻗는다. 절대 무모하지도 않다.
하지만 자신과의 약속을 나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나의 원칙이기도 하다.
그런 원칙을 지키는 내 고집이 없었다면 지금 정도의 나도 없었을 것 같다. 내가 스스로 당연히 잘할 수 없다고 체념하는 것은 골프 외에는 없다. 골프는 혼자 나하고 약속하고 지키려 해도 늘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골프 루저라 했었다.
어느 분은 '날을 넘으려다 죽는다'라고 했다. 물론 나는 날(knife)을 넘는 무모한 짓도 하지 않는다. 나와 날을 이기려는 게 아니고, 스스로 자신과 한 약속을 지키려는 노력일 뿐이다. 내 능력이 가능한 범위의 다짐이고 약속이다.
비가 내린 아침 출근길은 너무 깨끗했다. 먼지까지 깨끗이 씻어 내려간 길은 흘린 밥풀을 주워 먹어도 될 만큼 깨끗했다. 서둘러 나오는 아파트 길도 경의선숲길공원도 모든 식구가 힘차 보였다. 온종일 내린 비로 터질 만큼 물배로 가득 채웠어도 좋은가 보다.
어젯밤 글을 아직 읽지 않은 몇 분이 있는데, 몇 명이나 더 바보라고 할지 모르겠다. 생각이 비슷한 평범한 우리의 기준에서는 또 바보라고 보내올 것만 같다. 바보, 바보, 바보다.
글을 쓰는 속도가 조금은 빨라졌다. 생각하지 않는데 손가락이 저절로 움직이며 두드리고 있다. 무아지경에 빠졌었다.
이제 신당역에서 내린다. 장맛비 조심하시고 오늘 하루도 모두 행복하셔라.
추신: 가장 내 글을 아껴주는 독자님이 자기는 바보라고 안 한다고 했다. 자기도 찜질방에 들어가면 내가 했던 것처럼 한 사람을 지명해서 그 사람보다 늦게 나가겠다고 다짐을 하고 그것을 지킨다고 한다. 그리고 개구리가 삶아지듯이 고통을 받지도 않았다고 한다. 왜냐면 가장 먼저 나갈 것 같은 아가씨를 늘 골랐기 때문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