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할머니와 고물선풍기 / 최삼용
(포켓속 미니 소설 1)
폭염은 연일 기승을 부리는 데
그래서 이런 날 한줄기 소나기라도 쏟아지면
기차 불통 같은 열기 한번 식힐 것 같은데
벽걸이 에어컨조차 없이 여름을 나는 신림동 골목
반 지하 최 씨 할머니 집은
땡볕에서도 갖가끔 소나기가 내린다
십 수년이나 된 고물 선풍기의
회전 단 수를 높이면
날개소리는 영판 비 울음을 토하기 일쑤라
어두운 귀 쫑긋 세워 갓유리창을 열어 보기도 하는 데
그 할머니가 헛 빗소리나마 반가워하는 이유를
나는 진즉 알고 있다
대나무 소쿠리를 엮다가 *쇼날 플라스틱에
한지 바른 막 부채의 살랑바람은 *일 선풍기에
대오리로 살대 받힌 비닐우산은 *립우산에
그리고 비수기 겨울에 짬짬 소일거리로 손 놀리던
신년 복받이 복조리는 중국산에
세월 변해 물질문명에 밀리고 산업혁명에 차여
죽 제품 세공을 천직으로 알다가
대나무 같던 곧은 성품 기력까지 잃었지만
근방에서는 손재주 좋고 바지런하단 소문 팔려
가솔들 앞가림만은 잘 해내던
바깥양반 다부짐에 꽂힌 30년 전 기억 한 줌
이제 그 사양산업 따라 최할머니 기억도
일회용으로 쇠퇴해 버렸지만
비닐우산 도드리장단 같은 빗방울 소리만은
건망 속에서도 늘 반갑기만 해
뭘 할지 모르는 글자판 커서의 깜박임 닮은 먹통 시간 사이에서
일갈의 기다림일랑은
8월 뙤약볕 속에서도 비닐우산 색처럼 파랗기만 하다
카페 게시글
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주인장서정시
[최삼용] 치매할머니와 고물선풍기
바브시인
추천 0
조회 10
23.08.23 13:29
댓글 0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