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저녁 파산 직전 외판원처럼 숨 넘어가도록 두드리지 말아요 앞치마 옆으로 튀어 흰 옷에 묻은 빨간 양념같이 우연을 가장하지 말아요 버스 놓치고 맞는 봄비처럼 사근사근 다가오지 말아요 우물에 갇힌 별과 달처럼 상서롭지 말아요 입김으로 피어낸 아궁불 같이 위태롭지 말아요 연락 끊긴 빚쟁이마냥 시커멓지 말아요 바람 빠진 축구공처럼 괜히 툭 차보지 말아요 보도블럭 색깔 맞춰 건널 때 발 헛디디도록 장난치지 말아요 볼일 급해 화장실 찾고 있는데 초시계 딸깍거리는 것처럼 약오르게 하지 말아요 쓰레받기 앞에서 턱에 걸린 쓰레기처럼 곤경에 처하지 말아요 짝짝이 나무젓가락처럼 괜히 탄식 내뱉게 하지 말아요 첫 숟갈로 뜬 밥에 생선가시 걸려 찌푸리게 하지 말아요 잔잔한 일요일 저녁처럼 볼썽사납게 불길하지 말아요 삼겹살집 냄새처럼 대놓고 배어들지 말아요 아무도 없는 개업점 앞 풍선처럼 흔들림에 충만하지 말아요 전학 온 첫날 점심시간처럼 눈알 굴리게 만들지 말아요 급하게 찍은 여권사진처럼 고개 왔다갔다 돌리지 말아요 묘기 보여준답시고 소주뚜껑 만지작거리다 부셔먹은 것처럼 공백의 시간 주지 말아요 엊그제 입원한 환자네 가족이 응얼대는 콧노래처럼 자꾸 떨려오지 말아요 장례식장에서 확인하니 구멍뚫린 양말처럼 울지도 웃지도 못하게 만들지 말아요 죽도 한 모금 삼키기 힘든 몸살같이 번져오지 말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