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내가 교회를 처음 간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이다. 그때는 그저 행사나 선물에 혹해서 다녔던 것으로 기억 한다. 매주 주는 간식과 관심이 나에게는 정말이지 애잔했기에 매료가 되었다.
나에게 교회를 가보지 않겠냐는 제기를 한 것은 새엄마였다. 친가쪽은 대대로 불교를 믿어온 집안이었지만, 새엄마 쪽은 대대로 기독교를 믿어온 뿌리 깊은 기독교 집안이었다. 처음에는 그 제의를 거절했다. 나는 내 스스로의 성장이 가능하다고 생각했고, 또 그것은 믿어야 본전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랬던 내가 다시 자의적으로 교회를 찾아간 것은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4학년 때까지 서울에서의 통원 치료를 하던 내가 병원을 자의적으로 끊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당시 나는 의지적으로도 자유롭지 못한 생각들을 잠재우기에 너무나 지쳐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눈물을 흘리는 일이 대반수 였고, 눈물을 훔치지 위해 세수를 하며 눈물을 삼키는 일을 터득한 시기이기도 하다.
<처음의 시작>
첫 스타트를 끊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했다. 또 다른 공동체를 향해 나아가는 길은 얼마나 많은 생각들이 나를 지배했다. 그래서 주변의 어떤 친구들에게 그 시작을 도와달라는 말을 하게 되었다. 교회의 첫 시작도 그러했듯, 5학년 때의 교회를 향한 문도 그렇게 열리기 시작했다.
내가 다니던 교회는 동네의 작은 시골 교회였다. 그랬기에 청년들보다 어르신들이 많았다. 난 그 속에서 참 많은 관심을 받았다. 처음에는 그 관심이 진심인지를 몰라 교회를 다니면서도 그 속에서 방황을 했다.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던 나는 성가대를 들어갔다. 성가대가 뭐 하는 곳인지는 알았지만, 나는 말할 때 내 목소리도 듣지 못했고, 악보도 보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교회에서 성가대를 꾸준히 하며 성장을 했다.
새벽기도회의 참석도 해보았다. 그 당시에 믿음도 적었는데, 뭐가 그리 갈급했나 싶다. 그래도 기도 하는 그 자리를 지키려 나는 새벽에 걸어서 교회를 가곤 했다.
<대학에서의 시작>
경주에서 청소년기를 그렇게 보내고는 대구로 대학을 가게 되었다. 대구로 가게 되면 또 다른 시작이 나를 기다릴 것이다. 막막하기도 하였으나, 일단은 붙딛혀 보기로 했다.
나는
DFC라는 기독교 단체를 찾아갔다. 신앙도 성장하고 싶었고, 대학 생활을 하는 동안 방황하지 않고 싶은 생각에서였다. 그곳은 맨토, 맨티의 관계처럼 생활을 같이 나누고 영위하면서 신앙을 함께 성장시키는 시스템으로 되어있었다. 나는 어떤 언니와 성장을 함께 하게 되었다. 그 언니는 항상 나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었고, 어떤 낮선 곳에서의 성장도 함께 해주었다. 참으로 고마운 언니였고, 내가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지속적으로 가져보는 그 관심의 눈초리가 참으로 좋았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런 기회가 오지는 않았다. 내 자신의 성장을 다 하지도 못한 채로 어떤 한 영혼을 성장시킨다는 것이 지금에 와서야 무리였다는 것을 나는 깨닫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는 그런 기회가 나에게 오지 못했다는 나만의 좌절과 시스템적인 영위를 이끌지 못했다는 말을 들을 때의 그 눈초리가 나는 정말이지 싫었다.
<신앙의 성장>
처음에는 하나님이 나에게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주셨다는 것을 처음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나님을 믿기 시작한 이래로 처음만이 아니라, 공동체 속 방황에 휩싸여 몇 번이나 그것을 믿었다가 안 믿었다가는 반복했다.
그러다가 알게 된 것은 우리가 어떤 감정으로든 하나님을 위한 자리를 끊지 않고 지켜나가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어떤 감정으로든 하나님을 위한 자리를 지켜나가면 하나님은 언제나 한결같은 감정으로 우리를 감싸 안아 주신다는 것이다.
지금에서야 나는 믿게 되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끌어주신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든, 어떤 감정에 휩싸여 있든, 삶에서 중요한 것은 무슨 일을 하든 모든 일을 하나님을 위한 하나의 도구로 이용해야 한다.
인생의 훈련으로 단단해지는 삶의 한가운데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언제나 인식하는 것이 중요한지를 우리는 알아야한다. 모든 일을 이끌어주시고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우리는 언제나 감사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하루의 바쁜 일상 때문에 잠시라도 하나님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될 때가 있다. 자신이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를 인지하는 이상, 부족한 것을 딛고 더 좋게 변화하게 하려고 누구나 노력할 것이다. 그렇듯 우리가 하나님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말씀이나 기도를 매개로 하여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의식할 수 있도록 깨우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대학 생활을 하는 동안 큐티, 기도, 전도의 삶을 배웠다. 신앙의 공동체에 속해 있으니 내가 하고 싶지 않아도 매일 이끌어주고 받는 것이 그것이었으니 말이다.
<대구에서의 첫 교회>
대구에서의 신앙생활은 동아리뿐 아니라, 교회에서도 하였다. 처음 시작을 두려워하던 나였기에, 동아리의 언니가 다니고 있는 서문교회를 소개받아 전도 되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다니게 되었다. 그러나 사람이 많았고, 들려오는 신앙이 아닌 다른 이야기 속에서 나는 여전히 방황을 하는 나날들이 많았다.
<대구에서의 두 번째 교회>
내가 대구에서의 두 번째 교회로 옮기게 된 것은 신앙으로 성장이 필요해보였기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의 일이다. 학교는 졸업하였고, 신앙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건강한 공동체에서 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렇게 해서 옮기게 된 교회가 남광교회였다.
대구에서 기존 다니던 서문교회보다 규모는 작으나, 성장 시스템이나 공동체의 질적인 수준 모두 내가 원하던 곳이었다. 나는 1년 정도의 틈을 두고서 많은 기도와 준비로 남광교회로 거처를 옮기기로 하였다.
학교를 모두 마친 뒤여서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한계가 있었다. 처음 시작을 두려워 했던 나는 장소가 적응 되기 전까지 나에게 일어날 후유증을 염두에 두어야 했다. 교회를 옮기니 예상대로 힘들었다. 후유증과 두통, 현기증과 빈혈이 나를 괴롭혀왔다. 그것들이 어디한번 나를 딛고서 새롭게 시작해보란 듯이 나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상황과 장소가 바껴 혼자서는 무엇도 할 수 없던 내가 직접적으로 실행으로 옮긴 이 남광 교회에서도 어떠한 성장을 할 수 있을까 기대반, 걱정반이었다. 그러나 이제 나는 믿는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