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는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으로 왔습니다. 미디안 족속은 대개 유목민 생활을 하였습니다. 모세는 미디안 땅에 머물면서 생활을 했습니다. 그곳은 바로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일 것입니다. 모세가 하루는 우물곁에 앉아 있다가 중개자 역할을 하게 됩니다.
돕는 자
16절에 ‘미디안 제사장’이 나옵니다. 이 사람은 18절을 보면 ‘르우엘’(‘하나님의 친구’ 또는 ‘하나님의 목자’라는 뜻. 이드로임)입니다. 이 사람은 미디안 족속의 지도자 역할을 합니다. 출애굽기 18장 12-23절을 보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기에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었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부족 종교를 이끌었던 사람도 제사장이라고 불렀기 때문입니다. 미디안 족속이 섬겼던 신의 제사장 역할을 한 사람입니다.
이 제사장에게는 7명의 딸이 있었습니다. 그 딸들이 우물에서 물을 길어 구유에 채우고 그들의 아버지의 양 무리에게 먹이려 하자 목자들이 와서 이 여인들을 쫓아내려고 합니다. 이것은 난폭한 행동입니다. 고대에 광야에서는 물이 귀했습니다. 그래서 우물을 공동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우물이 있는 곳에는 마을이 있었습니다. 여럿이 힘을 합해야 들 수 있는 큰 돌로 우물을 덮었습니다. 여러 목자들이 있어야 돌을 들어내고 우물을 길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 강자가 약자에게 횡포를 부리기도 합니다. 물이 귀하기 때문입니다. 이때에도 목자들이 이런 횡포를 부린 것 같습니다.
모세는 그 횡포를 부리는 사람들로부터 여인들을 도와서 구해주고 그 여인들이 양 무리에게 물을 먹을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모세는 도와주는데 어떤 기질이 있는 것 같습니다. 불의를 참지 못하는 모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약자를 도와주는 삶의 모습입니다. 이런 기질은 좋은 기질입니다. 이런 모습이 훗날 이스라엘의 구원자로서 일할 수 있는 기본 자격이 될 수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약자 앞에서는 강해지고 강자 앞에서는 약해집니다. 그러나 모세는 달랐습니다. 그는 강자 앞에서는 강해졌고 약자는 도와주었습니다.
미디안 삶
그는 여기서 미디안 제사장의 딸 십보라(21절. 이방 여인임)와 결혼을 하고, 아들을 낳습니다. 그리고 22절을 보면 아들을 ‘게르솜’이라고 짓습니다. ‘내가 타국에서 객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모세 자신의 삶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는 결혼하고 아들도 낳고 미디안이라는 땅에서 살았지만 나그네 의식을 가지고 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동족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나그네’는 하나님의 백성의 이 땅에서의 삶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어디에 살든지 이 땅에서는 나그네입니다.(22절에 ‘타국에서 나그네 되었다’고 했는데 타국을 애굽으로 보기도 한다. 그래서 애굽 생활을 나그네로 표현했다고 보기도 한다. 그러면 미디안에서 안정을 찾았다는 의미다.)
애굽의 왕자였던 사람이 한 평범한 가정으로 돌아간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이 하나님의 학교에서 낮아지는 훈련을 받습니다. 23절에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다.”고 합니다. 원래는 ‘많은 날들 후에’입니다. 모세가 이 미디안 광야에서 보낸 기간이 40년입니다. 사도행전 7장 29-30절에 “미디안 땅에서 나그네 되어 …40년이 차매”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40년 동안 평범한 양치기로 보냅니다. 그는 이 40년 동안 ‘젊은 혈기’를 버리는 훈련을 받습니다. 혈기가 죽어야 하나님을 의지하고 삽니다. 혈기가 있고는 하나님 나라의 일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0절에 “혈과 육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혈기가 있고는, 인간적인 강한 힘을 가지고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살 수가 없습니다. 자아가 부인되지 않고는 주님께서 주신 자기 십자가를 질 수가 없습니다. 자아가 부인되어야 십자가를 질 수 있습니다.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는 모세의 기질은 참 좋은 기질입니다. 그러나 그 기질 속에 있는 혈기는 죽어야 했습니다. 40년 동안 이 훈련을 받은 것입니다. 그는 훗날 혈기를 이기지 못하여 분을 내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못해 결국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합니다.9민 20장 10-13절) 하나님께 들어갈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까지 했지만 거절을 당합니다.(신 3장 23-29절) 혈기는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돌보시는 하나님
23절을 보면 그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고 부르짖습니다. 그 부르짖음에는 노예의 삶, 속박의 삶에서의 해방을 구하는 것이 함의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신음을 합니다. 그 소리를 하나님께 상달됩니다.
24절에 하나님께서 그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을 돌보시고 기억하십니다. ‘기억하심’과 ‘돌보심’은 하나님께서 개입하시겠다는 의지입니다. 하나님께서 고통 받는 백성들에게 개입하셔서 일하시겠다는 뜻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는 방법입니다. 모세는 고통을 들으시는 하나님을 나타내는 일을 해야 합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고통 소리를 같이 들어야 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돌보시는 손길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모세의 사명입니다.
자기 백성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그리고 자신의 약속을 잊지 않고 지키시는 하나님이심을 계시하십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들으시고, 기억하시고, 돌보시고, 아셨습니다.(‘기억하셨다’로 번역).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고통을 이해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긍휼을 풍성하게 베푸시고,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시대에 우리들에게도 역시 그 큰사랑으로 긍휼을 풍성하게 베풀어주시고 신실하게 대해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긍휼이시고 신실하심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