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의 세월이 흘러
기억에도 감물 거리지만
그래도 보고픈 얼굴이 있습니다.
아버지 근무지를 따라
함안가야에
한 동안 함께한
3A반 박홍제 친구입니다.
마산중에서
경남고로 진학하였습니다.
박홍제 친구를 알고
계시는 분이 계시면
3D반 김진규로
연락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가고파 인사
나의 고향은 경남 의령군 지정면이다. 지도를 보면 낙동강이 부산 사하에서 북상하다가 밀양 삼랑진에서 서쪽으로 굽어지고 다시 창녕 남지 부근에서 북쪽으로 굽어져 올라간다. 삼랑진에서는 북쪽에서 내려오는 밀양강과 합류하고, 남지 부군에서는 서쪽에서 흘러오는 남강과 합류하는데, 낙동강이 남강과 합류하는 곳, 낙동강의 서쪽이고 남강의 북쪽 코너가 바로 내 고향인 의령 지정면이다. 낙동강 건너 동편이 창녕 남지면이고, 남강 건너 남쪽이 함안 대산면이다.
1948년에 고향에서 태어나 사변이 끝나기 전인 1952년 무렵 아버지가 근무하고 계시던 함안군청이 있는 함안군 가야면으로 이사를 하였고, 1954년 가야국민학교에 입학하였다. 군청에 근무하시던 아버지의 전근에 따라 1학년 중간에 거제도 장승포국민학교로 전학하였고, 그곳에서 2년간 다니다가 1956년 3학년 중간에 다시 함안 가야국민학교로 돌아왔으며, 2년쯤 다니다가 5학년 때인 1958년도에 의령군의 의령국민학교로 전학을 갔다. 그곳에서는 불과 몇 달을 학교 다니다 그해 여름 방학 때 다시 창녕의 창녕국민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는데, 그 창녕국민학교를 졸업하고 형과 누나가 공부하고 있는 마산의 마산중학교로 진학하였다. 초등학교를 다섯 곳이나 떠돌아 다니며 공부를 하였는데,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게 어려운 일이다. 당시는 자유당 말기로서 군청 공무원의 인사이동이 잦았다.
그 후로도 아버지는 창녕에서 창원으로(창원 군청은 당시 마산에 있었다) 전근되셨기에 중 2학년 때에 잠시 집에서 학교 다닌 적이 있었지만, 곧 아버지가 밀양군청으로 전근 가시는 바람에 마산서 하숙생활을 하며 공부하였다. 밀양에 계시던 아버지가 중3학년 때 부산의 경상남도청으로 전근 가시었고(당시는 부산시도 포함된 경남도였다), 그때부터 부산에 살게 되었다. 한때 부산의 경남중학교로 전학을 생각하기도 했으나, 보결생의 조건으로 많은 기부금을 요구하여 그냥 마산중학교를 다녔으며, 결국 고등학교는 부산의 경남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된 것이다.
어릴 적이지만 가야국민학교를 몇 년 동안 다녔기 때문에 아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중학교로 와서 가야의 여러 친구들을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기억나는 대로는, 김진규, 조제구, 윤진섭, 박홍제, 조?래 등이었다. 당시 함안 가야에서 마산으로 기차로 통학이 가능하였으므로 많은 학생들이 마산중학교로 진학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잘 몰랐는데 단톡에서 보니, 나형준 학형이 함안 군북에서 마산으로 통학하였다 하니 더 먼 곳의 친구도 있었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마산중학교는 명문학교이고 그 학교를 다닌 것은 내 인생의 자랑이다. 대학에 들어와 보니 부산고등학교로 갔던 김정태 사장이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함께 입학을 하였고, 우리 한해 선배이던 윤증현, 곽동효, 정기반 형들도 상급반에 다니고 있었고, 한해를 건너뛴 후배로 14회 박용수 군도 법대 수석으로 입학한 바 있으며(박용수 군은 나와 사법시험 동기생으로서 나중에 부산고등법원장까지 역임), 다음 해의 후배인 이주흥 군도 법대에 들어왔었다. 이주흥 군은 나중에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을 지냈고 나와는 함께 대법원에서 재판연구관으로 근무한 적도 있어 그의 친형이 우리 12회 동기라고 한 적이 있는데 누군지 정확히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마산중학교를 졸업한 많은 학생들이 서울, 부산 등 외지의 고등학교로 진학을 해 갔는데, 그들이 마산고등학교로 모두 진학하였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내가 경남고등학교로 진학할 때 아마 10명쯤 되는 동기가 같은 학교로 함께 갔던 것 같은데, 조한제, 조홍제 등이었고 부산고등학교에는 더 많은 학생들이 진학해 갔고 그 중에는 하홍근, 이승관, 김정태 등이 있었다. 손정웅 군은 서울고등학교로 갔다.
김진규 형이 만나기를 열망하는 “조홍제” 군은 나와 함께 경남고등하교에 입학하였는데, 그의 부친이 공무원으로서 내 선친과 친분이 있어서 홍제가 부산 유학을 와서는 우리 집에서 한 일 년 정도 함께 지내며 학교를 다녔다. 그 후에 서로 헤어졌고, 학교에서 같은 반도 되지 않았으며, 대학 진학도 서로 달라(아마도 부산 소재 대학교로 가지 않았나 생각한다) 서로 연락을 취하지 못하게 되었는데, 졸업 후 오랜 세월이 지나서 그의 동생이란 분이 내게 연락을 취한 적이 있었다. 아마 홍제가 생전에 동생에게 내 이야기를 많이 했던 모양인지, 어렵게 수소문을 하여 연락을 취한 것이다. 그 동생에게 형의 안부를 물으니 얼마 전에 형이 돌아갔다는 이야기를 하였고, 형이 돌아간 후에 형 생각에 나를 찾아서 연락을 취한 듯했다. 한때 한집에서 형제처럼 같이 지냈던 동기가 먼저 갔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마음이 매우 아팠고, 당시 나이가 40대 중반 쯤 되지 않았나 생각되는데, 무슨 지병으로 간 듯하였다. 그 당시 사인을 들었던 것 같은데 잘 기억이 나지 않네. 진규 형이 올린 사진을 보니 옛날이 생각나네요.
하홍근 방장이 최근, 함께 마산중학교를 다니다가 마산상고를 간 친구들 이야기를 한 것 같은데, 내가 전에도 한번 이야기를 한 적이 있지만, 졸업 당시 성적이 아주 우수한 친구였는데 집안 사정 때문인지 마산상업고등학교로 진학한 김수항(?)인지 하는 학생이 있지 않았나. 다 흘러간 이야기이고 우리가 이 나이에 이런 이야기를 해도 서로 마음 상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고 이야기하지만, 중학 3학년에 올라와서 유재우 군과 나와 그 김 군 셋이 서로 성적 다툼을 하여 시험 칠 때마다 엎치락뒤치락 선두 다툼을 한 것으로 아는데, 졸업 성적도 아마 3인이 1~3등으로 졸업하지 않았나 생각이 드네. 유재우 군은 나와 한 반을 한 적은 없지만 그래도 서로 알고 지내며 마산역 근처의 그의 집을 방문하기도 하여 친분이 있었지만, 그 김 군은 나와는 서로 잘 모르는 학생이었고, 3학년 올라와서 비로소 성적에 두각을 나타낸 친구인 듯하며, 어딘지는 모르지만 타지방에서 마산으로 유학을 온 것이 아닐까 생각하여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도 내심 관심이 많았었는데, 그 후 마산상고로 진학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당시 어린 마음에도 계속 정진하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유능한 인재가 될 수도 있을텐데, ‘참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마산상고로 진학한 친구들이 이 단체톡방에 들어와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의 소식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김진규 형이 조홍제 소식을 묻고 또 최월림 형이 문의하여 조홍제 군의 소식을 아는 대로 들려드리려 하다 보니 이렇게 긴 인생 이야기가 되고 말았네. 서로 인생의 이력을 알면 조금 더 잘 이해하고 서로 가까워질 수도 있을 터이니, 친구들이 그냥 부질없는 이야기라 여기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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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나네,
눈가세가 더워지면서
눈물이 나네
이게 인생인가 싶어
눈물이 나네
나도 언젠가 떠나가지만
이 나이가 되니
더욱 슬픔과 아픔이
내 가슴 속에서
내 눈물 속에서
쩌러 나오네
항상 내 가슴 속에
그리움으로 남아 있는
홍제 친구야!
다음 언젠가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
그때까지 편히 영면하소서
함안역에서
집으로 가는 논두렁에서
서로 웃고 이야기한
옛 친구를 기억하는
김진규 올림
종찬 친구야!
가슴은 아파 오지만
고향 품 같은 긴글과
홍제 소식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