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호퍼
(Edward Hopper, 1882 ~ 1967)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류시화 시인의 시 구절을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 맞춰 바꾼다면,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외롭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여전히 혼자이다"
라고 바꾸겠어요.
"Room in New York", by Edward Hopper, 1932, Oil on cavas, 73.5*91.5 cm. © Shaldon Museum of Art, University of Nebraska – Lincoln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 정호승 시 '수선화에게' 중에서 일부 발췌
"Automat", by Edward Hopper, 1927, Oil on canvas, 28 * 36 in. Collection of the Des Moines Art Center, IA.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를 딱 1명만
꼽으라고 하면, 단언컨대, 에드워드 호퍼가
첫손가락에 꼽힐 텐데요.
사람들에게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세계를
한 단어로 설명하라고 하면, 'loneliness'라고
답하는 사람들이 절대다수를 차지할 겁니다.
도시화와 거대도시(메트로시티)의 출현 이후
콘크리트 벽들에 둘러싸인 도시의 풍경과
그 도시의 개인들을 그린 호퍼의 작품들은
현대 도시인의 고독과 외로움, 소통의 부재를
보여주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오늘날까지도
큰 공감을 얻고 있는데요.
"도시의 지붕들 City Roofs", by Edward Hopper, 1932
"I don't paint loneliness,
I describe the absence of sociability between individuals."
(나는 고독을 그리지 않는다,
나는 개인 간의 친교/친밀함의 부재를 그릴 뿐이다"
- 에드워드 호퍼
(Edward Hopper, 1882 ~ 1967년)
"Approaching the City", by Edward Hopper, 1946
"Master of urban isolation (도시의 고독/
소외를 그린 거장)"이라는 평을 듣는 에드워드
호퍼가 그의 작품들을 통해 정확히 의도했던 건
'도시인/현대인의 '고독' 그 자체보다는 사람들
간의 소통과 친교의 부재였다고 할 수 있어요.
얼핏 그 말이 그 말인 것 같아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 활발한 sociability가 존재한다면
도시에서의 삶도 결코 삭막하거나 외롭지 않을
거라는 점에서, 결과적으로 드러난 '고독'이
아닌 그 고독의 원인인 'sociability의 부재'를
짚은 호퍼의 진단은 오늘날에도 매우 유효하며
적확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제 개인적으로, 맨위에 업로드한
"Room in New-York (1932년 작)"이야말로
에드워드 호퍼의 생각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생각을 하곤 해요.
"Room in New York", by Edward Hopper, 1932, Oil on cavas, 73.5*91.5 cm. © Shaldon Museum of Art, University of Nebraska – Lincoln
"Room in New York"은 호퍼의 그림들 중에서도
유독 각 인물의 얼굴 이목구비가 선명하지 않고
흐릿하게 표현됐다는 점이 눈에 띄는 작품입니다.
이런 표현방식은 고도로 산업화되고 도시화된
대중사회에서 각 개인 고유의 개성과 정체성을
잃은 -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기성복과 소비재에
길들여지고 매스미디어에 의해 생각과 취향까지
천편일률적으로 맞춰진 - 도시인들의 초상을
상징하기 위한 장치로 보시면 될 텐데요.
아마도 부부 사이일 것으로 여겨지는 두 사람은
한 공간에 있지만 서로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 않은 모습입니다. 비단 이 커플만 그럴까.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사무치게 외롭다.
"Early Sunday Morning", by Edward Hopper, 1930, Oil on canvas, 89.4*153 cm. ©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사실, 에드워드 호퍼의 대부분의 작품들이 인물이
그려져 있지 않아요. 그래서 에드워드 호퍼를
풍경화가로 분류하는 이들도 있지요.
도시와 그 변두리의 풍경 또는 실내를 주로 그림.
인물이 포함된 그림들이라도 많아야 한두 명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아주 드물게 군중/떼샷을
그린 작품들을 접하게 되더라도 그림 속 인물들
거의 모두가 얼굴에 표정이 없습니다. 심지어
서로를 쳐다보고 있지조차 않은 경우가 허다해요.
"Dawn before Gettysburg", by Edward Hopper, 1934. © Tuscaloosa Museum of Art.
"People in the Sun", by Edward Hopper, 1960. ©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Washington D.C.
무표정, 무료, 권태, 공허,
(같은 공간에 있지만 사실상) 격리, 고립,
정적, 적막감 그리고 고독.
에드워드 호퍼의 말처럼, 인물들 사이에
'sociability (친교/친밀한 교류)'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겠죠.
대화가 필요해
"복도의 두 사람 Two on the Aisle", by Edward Hopper, 1927, Mediumoil on canvas, 102*122.5 cm. © Toledo Museum of Art, Toledo, Ohio, US.
대화도 존재하지 않고, 아이컨택이나
신체접촉은 더더욱 찾아보기 힘들어요,
마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공간을 분리하는,
투명하지만 아주 두꺼운 유리벽이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것처럼.
에드워프 호퍼의 작품들 중에서 그나마
시선이란 게 느껴지고 인물 간에 뭐가 됐든
대화가 오가는 것 같다고 느껴지는 게
아래의 두 작품인데요.
"푸른 저녁 Soir Bleu", by Edward Hopper, 1914, il on canvas, 36 1/8 * 71 15/16 in.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Josephine N. Hopper Bequest © Heirs of Josephine N. Hopper, licensed by the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파리의 한 식당의 저녁 풍경을 그린 이 그림에서
하얀 광대 분장을 한 사내를 중심으로 각각 그를
쳐다보는 듯한 뒤쪽의 진한 화장을 한 여성과
오른쪽의 부내 나는 남자의 시선이 그것이에요.
그러나 이들의 시선에 그 어떤 인간적인
애정이나 친밀함의 흔적은 1도 없어요.
진한 화장을 하고 식당에 들어선 여성은
아마도 매춘여성일 것이고, 광대 분장을 한
남자를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오른쪽의
중년 남자는 잘 갖춰 입은 차림새로 보아
광대 분장의 사내에게 좋은 의미의 시선을
보낼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죠.
에드워드 호퍼의 "푸른 저녁 Soir Bleu" 작품 일부 확대
군중 속의 고독
각양각색의 '이질적인' 사람들이 식당을 채우고
있는 것만큼이나 이 중 누구한테서도 '교감'이란
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거기에 푸른색
특유의 서늘함까지 더해지면서 더없이 쓸쓸하고
서글픈 정서가 캔버스를 가득 메우고 있는
작품이 바로 이 "푸른 저녁 Soir Bleu"입니다.
이는 호퍼의 또 다른 대표작인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Nighthawks"에서도 마찬가지인데요.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Nighthawks", by Edward Hopper, 1942, Oil on canvas, 84*152 cm. © Art Institute of Chicago, Chicago.
심야에도 영업을 하는 싸구려 바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그린 이 작품에서는
바텐더(술집 종업원?)가 남녀 두 손님으로부터
주문을 받는지 손님을 쳐다보고 있는 게 보여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들 중에서 아주 드물게
'맞은 편의 상대방을 똑바로 바라보는 시선'이
그려져 있는 그림.
에드워드 호퍼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Nighthawks" 작품 일부 확대
그러나 이 시선을 진정한 의미에서의 '교감',
'소통', '상호작용', '친밀감'을 나누기 위한
시선이라고 볼 순 없겠죠.
일행으로 보이는 두 남녀를 보면
역시나 대화도 없고 아이컨택도 없습니다.
에드워드 호퍼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Nighthawks" 작품 일부 확대
더 눈길을 끄는 것은, 뒷모습만 보이는,
혼자 온 사내.
에드워드 호퍼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Nighthawks" 작품 일부 확대
"밤을 지새우는 사람 (Nighthawks)" 그림 속의
혼자 바에 앉아 있는 사내를 볼 때마다 호퍼의
1927년 작 "Automat"에서 혼자 테이블에
앉아 있는 여인이 저는 항상 겹쳐져 보이더라고요.
(이 남자는 호퍼 본인을 그린 것처럼 보임)
왼쪽: 에드워드 호퍼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Nighthawks (1942)" 작품 일부 확대 /
오른쪽: 에드워드 호퍼의 "Automat (1927)" 작품 일부 확대
'Automat (오토매트)'는 자동판매기 등을
이용한 셀프서비스로 운영되는 저렴한
대중식당을 의미해요.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Nighthawks"에 등장하는 24시간 운영되는
바(bar)와 비슷한 맥락의 상징성을 갖는
장소인 것이지요. 심야의 대도시에서 갈 곳도
마땅치 않고 주머니도 가벼운 사람들이
쉽게 찾아갈 만한 장소ㅇㅇ
에드워드 호퍼가 만약 21세기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면 그림의 배경은 24시간 포차나 PC방,
찜질방, 편의점으로 바뀔...
어떤 사연이 있길래 이들은 이 시간에 혼자
저곳에 있게 된 것일까요.
"Automat", by Edward Hopper, 1927, Oil on canvas, 28 * 36 in. Collection of the Des Moines Art Center, IA.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Nighthawks"으로
다시 돌아가서,
이 그림은 호퍼의 대다수 그림들과 비교해
굉장히 예외적으로, 콘크리트 벽이 아닌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통유리로 되어 있습니다.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Nighthawks", by Edward Hopper, 1942, Oil on canvas, 84*152 cm. © Art Institute of Chicago, Chicago.
"Study for Nighthawks", by Edward Hopper, 1941. Courtesy of the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마치 어항 속의 물고기들을 보듯
우리는 통유리 안에 갇혀 있는 그들을 봅니다.
또 하나의 고립
저 위에서 호퍼의 그림 속 인물들 사이에
투명하지만 두꺼운 유리벽이 존재하는 것 같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이 그림에선 아예 대놓고
그 유리벽을 그려 넣은 셈이죠. 소통을 할 수
없는 건 그림 속의 인물들만이 아니에요. 관객은
투명한 유리벽을 통해 그들을 볼 순 있어도
유리벽에 가로막혀 그림 속 인물들과 전혀 교감을
나눌 수 없어요. 따라서 'Sociability의 부재'는
그림 속 인물들 사이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관객과 그림 속 인물 사이에서도 일어납니다.
"Apartment Houses, East River", by Edward Hopper, 1930, Oil on canvas, 89.1*152.7 cm. ©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에드워드 호퍼는 생전에 대도시의 천편일률적인
콘크리트 건물들을 극혐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20세기 이후 세계의 주요 대도시의 풍경은
비슷비슷하잖아요. 각 도시를 구분할 수 있게
해주는 특징들은 현대적인 건물들이 아니라
그 도시에 오래 전부터 존재해온 고궁이나 성곽
같은 유적들이지, 콘크리트 건물들이 아니에요.
아파트 건물은 더더욱 아니고요.
* apart ⓐ: 떨어진, 분리된
* apartment ⓝ = apart(분리된)+ment(상태)
에드워드 호퍼가 한국의 한강을 따라
줄지어 늘어선 아파트 건물들을 봤다면
그의 반응은 필시 이러했을 거라능:
'아파트'라는 이름의 유래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거주자들의 Sociability를 원천 차단하는
아파트는 현대의 도시인들의 고독과 고립을
더욱 부채질하니까요.
"Drug Store", by Edward Hopper, 1927
지금까지는 에드워드 호퍼하면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곤 하는 '도시인의 고독'과
관련한 그의 작품 세계와 주요 특징들을
먼저 다뤄봤구여.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들을 마저 감상하시기
앞서, 제 개인적인 생각들과 경험을 이웃님들께
말씀드릴까 해요 :)
"빈 방에 든 햇살 Sun in an Empty Room", by Edward Hopper, 1963
간혹 주변 지인들 중에 보기에 아주 활달하고
그늘도 전혀 없어 보이는데,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 끌린다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어요. 외로움을 느낄 새가 없을 것
같은데 그렇지만도 않나 봅니다.
또, 온가족의 생활공간인 거실에 호퍼의
그림을 걸어 놓은 가정을 접할 때도 가끔 있어요.
저는 솔직히 이해가 되질 않았습니다.
이 그림의 의미를 알고 걸어 놓으신 건가요?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참아야
했던 적도 있었죠.
"바다와 면한 방 Room by the Sea", by Edward Hopper, 1951
예를 들어, 에드워드 호퍼의 1951년 작
"바다와 면한 방 Room by th Sea"는
매사추세츠 케이프 코드/트루로에 지은
그의 스튜디오 내부를 그린 그림인데요.
매사추세츠 케이프 코드/트루로의 자신의 스튜디오 건물을 배경으로 앉아 있는 에드워드 호퍼, 1960년 (사진 출처: alanclaude.xom)
↑ 위 사진 속, 저 멀리 스튜디오 옆에 서 있는
여성은 에드워드 호퍼의 아내 Jo.
호퍼의 "바다와 면한 방 Room by th Sea"을
처음 봤을 때 저는 왠지 모를 위화감을 그림에서
느꼈더랬어요.
호퍼의 케이프 코드 작업실을 그린 것이라는 걸
알고 그의 작업실에 관한 정보들을 인터넷에서
검색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제가 느꼈던
위화감의 정체를 곧바로 알게 되었죠.
"Rooms by the Sea (Inspired by Edward Hopper on Cape Cod)", by Philip Koch, 2013, Oil on panel, 14 * 21".
"Edward Hopper's Rooms by the Sea", by Philip Koch
Philip Koch가 그린, 에드워드 호퍼의 스튜디오
내부 그림 2점과 위의 사진을 보시면,
현관문을 열어도 바로 바다로 이어져 있지는
않다는 걸 알아보실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호퍼의 "Room by th Sea"에선
활짝 열려 있는 문밖으로 한 발만 내디뎌도
천길 낭떠러지 바다로 떨어지기 쉽상입니다.
"바다와 면한 방 Room by the Sea", by Edward Hopper, 1951
참고로, "Room by the Sea" 이 작품의 별칭이
"The Jumping Off Place."
* jump off : 뛰어내리다
* jumpingoff place:
문명세계로부터 멀리 떨어진 외딴곳; 절벽;
뛰어내리는 곳
따라서 "The Jumping Off Place"에는
외딴곳, 절벽이라는 물리적인 위치를 가리키는
뜻도 있지만, 이 그림을 그릴 당시 그가 느끼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내면의 절망과 고독이
'죽음 (절벽 아래 바다로 뛰어내림)'의 충동으로
투사된, 중의적인 의미가 내포돼 있는 것이지요.
"부두에서: 자살 On the Quai: The Suicide", by Edward Hopper, 1906-1909, Fabricated chalk, and brush and ink wash and graphite pencil on paper, 44.1*37.1 cm.
작년이었나 재작년이었나, 이웃님의 블로그에서
호퍼의 "Room by the Sea"를 인테리어
액자/포스터로 추천하는 글을 본 적이 있어요.
이번에도 저는 이 그림을 거실에 거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 의문이 다시 고개를 들었고,
오지랖을 참지 못하고 기어이 질문을 했습니다.
이웃님께서는 우문현답을 해주셨어요.
호퍼의 그림을 보면서,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쓸쓸하고 외로울 때가 있구나' 위안과 힐링을
얻기도 한다고요.
"Studies for Solitude #56", by Edward Hopper, 1944
호퍼의 그림을 제 거실에 걸 가능성은 앞으로도
없겠지만, 저 혼자 쓰는 저만의 서재가 생긴다면
혹시 모르겠다는 생각이 그때 처음 들었어요.
남들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구나.
남들도 때때로 외롭고 쓸쓸하고,
특별한 이유 없이 울고 싶을 때가 있구나.
호퍼의 그림이 저에게도 분명
적지 않은 위안이 되어줄 거예요.
"Solitude #56", by Edward Hopper, 1944
왼쪽: 젊은 시절의 에드워드 호퍼, 1907년 (사진 출처: 뉴욕타임스) /
오른쪽: 에드워드 호퍼와 아내 조세핀 호퍼, 1933년. (Photo by Louise Dahl-Wolfe)
에드워드 호퍼
(Edward Hopper, 1882 ~ 1967)
에드워드 호퍼의 스타일을 굳이 장르적으로
규정하자면, "New Realism" 또는
"American Realism (미국식 리얼리즘)"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리얼리즘이라고 해서 무조건 눈에 보이는
있는 그대로를 그리는 건 아니에요.
리얼리즘은 '삶의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이라고
보는 게 더 맞을 텐데요. 특히, 20세기 초에
발전한 'New Realism'은 실제 대상과 감각의
실행 사이의 차이를 강조하는 것을 통해 화가의
내면과 감정을 작품에 투영시켜 보여줍니다.
인식의 대상이 되는 객관적인 실제 세계가
인간이 그것을 인지하고 지각하는 것과
관계없이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보는
'비판전 실재론'에서처럼, 실재하는 대상과
인식 속의 대상 간의 독립성을 호퍼의
작품들에서도 우리가 볼 수 있는데요.
쉽게 말해, 호퍼의 그림들에 등장하는 건물과
창과 빛(햇빛과 조명)과 등대 모든 것들이
그냥 건물일 뿐이고 창문일 뿐인 게 결코 아니라
호퍼의 감정과 내면의 표출이란 의미가 되겠죠.
빈센트 반 고흐가 그랬던 것처럼 호퍼 또한
그림 그리기를 통해 자신의 내면과 소통했다는
점에서, 그가 그린 건물도 풍경도 결국은 '화가의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왼쪽: 에드워드 호퍼의 자화상 "Self-Portrait", 1903-1906 /
오른쪽: 에드워드 호퍼의 자화상 "Self-Portrait", 1906
에드워드 호퍼가 미국인들의 가슴 속에
그들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 중 한 명으로
자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1930년대 미국을 덮친 경제대공황이었어요.
물론 호퍼는 이미 그 전부터 도시와 그 주변의
쓸쓸한 풍경을 그려왔지만, 1929년을 기점으로
영원히 잘나가고 끝없이 번영의 길로만
나아갈 것만 같았던 미국에 대공황이 엄습하면서
커다란 상실감과 절망, 고독에 휩싸이게 된
미국(의 도시)인들은 호퍼의 그림들을 보면서
공감을 느꼈고 위안도 얻었던 것 같습니다.
왼쪽: 에드워드 호퍼의 자화상, 1903 /
오른쪽: "Boy in the Red Vest", by Paul Cezanne, 1889-1890
위에서 호퍼가 '리얼리즘' 또는 '뉴 리얼리즘'
화가라고 말씀드렸는데, 호퍼의 초기 화풍을
보면, 그가 후기 인상주의와 표현주의의
영향을 받았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에두아르 마네와 폴 세잔, 에드가 드가, 로트렉의
붓스트로크가 호퍼의 초기작들에서 느껴지는데,
발레리나 그림들을 제외한 에드가 드가의 다른
그림들이나 물랑루즈 그림들을 제외한 로트렉의
다른 그림들을 보면, 공허하고 쓸쓸한 정서가
많이 느껴지거든요. 폴 세잔도 굉장히 정적인
느낌의 작품 세계를 많이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정서/감성적인 측면에서도 호퍼의 그림들은
이들과 통하는 면이 많아 보입니다.
폴 세잔의 그림 속 인물들도 무표정
왼쪽: "어릿광대 Harlequin", by 폴 세잔 Paul Cezanne, 1888-1890. ©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
오른쪽: "피에로와 할리퀸 Mardi gras (Pierot et Harlequin)", by 폴 세잔 Paul Cezanne, 1895. © Pushkin Museum, Moscow, Russia.
"Two Comedians", by 에드워드 호퍼 Edward Hopper, 1966. Courtesy of Sotheby’s.
이 시기의 대다수의 미국 화가들이
유럽의 인상주의와 표현주의의 영향을 받은 건
비슷하지만, 보시는 것처럼 호퍼의 그림들에는
다른 화가들의 그림과 뚜렷하게 구별되는
차이점이 존재해요.
왼쪽: "늦은 오후의 티 Late Afternoon Tea", by 제인 피터슨 Jane Peterson, 1920년대 /
오른쪽: "The Accused and Her Dog (Woman with Umbrella)", by 제인 피터슨 Jane Peterson, 42.5*31.1cm
쓸쓸함.
호퍼의 이 쓸쓸함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요.
왼쪽: "Reading at a Cafe (Woman Reading)", by Jane Peterson, 1920 /
오른쪽: 에드워드 호퍼의 "Automat (1927)" 작품 일부 확대
1. 거리두기
그림 속 인물들 사이의 거리가 됐든
그림 속 인물과 그림을 보는 관객 사이의
거리가 됐든, 호퍼의 작품들은 인물 간의
거리감을 느끼게 합니다.
이는 도시화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할 때
흔히 언급되는 '도시의 익명성'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기도 하고, 또 그림 속 인물과 관객의
물리적 시선의 거리를 벌려 놓음으로써
함께 있지만 동시에 같이 있지 않은 고독감을
더 강화시킨다고 말할 수 있는데요.
영화 <화양연화> 중 한 장면
화려한 도시 이면의 쓸쓸함과 허무를 잘 표착해
영상에 담는 것으로 유명한 왕가위 감독의
영화들을 보면 실내를 보여주면서, 안에서 찍지
않고, - 저 위의 "Nighthawks"에서처럼 -
유리창을 통해 건물 내부를 들여다보는 것처럼
찍은 장면과 멀리서 찍은 롱샷이 곧잘
등장하잖아요. 같은 매커니즘ㅇㅇ
대만의 예술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지루하지만(?) 관조적인 특유의 스타일에
익숙하실 텐데요. 롱샷과 롱테이크가 유난히
많잖아요. 이것도 비슷한 심리적 장치ㅇㅇ
"New York Movie", by Edward Hopper, 1939, Oil on canvas, 32 1/4 x 40 1/8 in. © Collection of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2. 빛의 활용
왕가위 감독의 영화 속 인물들은 대개 표정이
없어요. 인물의 움직임도 세밀하지 않고
핸드-헬드(들고 찍기) 기법으로 찍은 것처럼
흔들리거나 흐릿할 때가 많죠. 반면, 그의
영화에서 '색'은 아주 중요합니다.
'왕가위 감독이 어쩌면 인물의 표정보다
빛과 색을 통해 인물의 내면과 감정을 전달코자
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은데,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들도 마찬가지거든요.
뚜렷한 보색과 명암의 대비는 그대로 도시의
화려함을 보여주며 세련된 느낌도 더해줘요.
선명한 색의 대비는 각자의 내면의 색을
더욱 부각해 보여주죠.
왕가위 감독의 영화 <화양연화> 중에서
그리고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들에는 '창'이
유난히 많이 등장하는데요. 그 창을 통해 햇빛이
어떤 식으로 실내를 비추는지 확인하시면서
작품들을 감상하신다면 더 깊이있게 각각의
작품을 즐기실 수 있을 거예요.
천장의 조명이나 가로등 같은 인공 조명도 그래요.
천장의 등이 직접적으로 그림 속에 등장하진 않아도 '저기에 천장 조명이 있구나' 알 수 있는 그림들이
많으니, 이 조명들이 그림 속의 인물과 실내를
어떻게 비추는지도 체크하면서 보신다면
더 많은 의미를 호퍼의 그림들에서 찾아내실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호텔 로비 Hotel Lobby", by Edward Hopper, 1943. © Indianapolis Museum of Art (IMA), Indianapolis, Indiana, US.
↑ 저 위의 "Nighthawks" 그림 속 남자처럼
위의 "호텔 로비" 작품 속 남자도 호퍼 자신인 걸로
"찹 수이 Chop Suey", by Edward Hopper, 1929. Courtesy of Christie's.
↑ '찹 수이'는 실제로 맨하탄에 있던
중식당으로, 우리나라의 '잡채'와 비슷한
아메리칸 스타일의 중국요리.
호퍼가 항상 고독이 짙게 배인 그림만 그렸던 건
아니에요. 동료화가이자 그의 뮤즈이기도 했던
아내 조세핀 호퍼(줄여서 '조'라고 부름)를
모델로 그린 아래의 "케이프 코드의 아침"을 보세요.
이 그림을 그린 때가 1950년이고
조가 1883년 생인 걸 생각하면, 저 당시
조의 나이가 60이 훌쩍 넘었음에도 그림 속
그녀의 모습은 20-30대처럼 젊어 보입니다.
대상의 실재와 인식의 차이란 바로 이런 것ㅎ.ㅎ
그거슨 사랑 ♥
"Cape Cod Morning", by Edward Hopper, 1950, Oil on canvas, 101.98*87 cm. © American Art Museum Washington D.C.
외딴집, 고립 또는 격리의 상태를 묘사한 건
비슷하지만, 창문을 통해 아침 햇살을 바라보는
여성을 그린 호퍼의 다른 작품들과 비교해서
보시면 작품의 주된 정서가 얼마나 다른지 바로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Morning Sun", by Edward Hopper, 1952
"A Woman in the Sun", by Edward Hopper, 1961, Oil on linen, 101.9*152.9 cm. ©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후기 인상주의와 표현주의의 영향을 받은 초기를
거쳐 '미국식 리얼리즘'의 확립으로 이어지는
에드워드 호퍼의 일련의 작품들을 감상하시면서,
'고독'과 마주하는 시간 가져보시는 건
어떨까요. 고독은 타인과의 소통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자신과의 소통'이 비로소 가능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고 전에 누가 말해주더라구요.
"Model Sitting", by Edward Hopper, 1904
"Painter and Model", by Edward Hopper, 1904
"Solitary Figure in a Theatre", by Edward Hopper, 1904. ©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여름 실내 Summer Interior", by Edward Hopper, 1909, Oil on canvas, 24 1/4 × 29 3/16 in. ©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Josephine N. Hopper Bequest © Heirs of Josephine N. Hopper, licensed by the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에드가 드가와 같은 인상주의 화풍과 컬러감,
그리고 아까 말씀드린 인물을 멀리서 관조하듯
바라보는 거리두기가 호퍼의 초기 작품에서
관찰됨요.
"Le Bistro or The Wine Shop", by Edward Hopper, 1909, Oil on canvas, 61*73.3 cm. ©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New York Corner (Corner Saloon)", by Edward Hopper, 1913, Oil on canvas. Courtesy Fraenkel Gallery, San Francisco
"Gloucester Harbor", by Edward Hopper, 1912
"Rocks and Swirling Water", by Edward Hopper, 1916-1919
에드워드 호퍼는 도시와 도시 주변의 다양한
건물과 거리, 동네 & 건물 내부 풍경을 그린
작품들을 많이 남겼지만, 대도시 이면의 쓸쓸함과
고독을 주로 그렸다는 말이 무색하게도,
대도시의 가장 큰 그늘이라 할 수 있는
도시의 뒷골목이나 슬럼을 그리진 않았어요.
물질적 빈곤이나 빈부 격차, 불평등 같은
도시화/산업화의 부작용들이 호퍼의
주된 관심사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여요.
"Night Shadows", by Edward Hopper, 1921, Etching
대신, 20세기 초 미국의 급속한 번영과
경제대공황의 충격을 몸소 겪고 지켜보면서
그가 관찰하고 느낀 것들을 화폭에 담았죠.
20세기 산업화와 도시화, 두 차례의 세계대전,
경제대공황을 거치면서, '미국적이란 것은
무엇인가', '미국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가'에
의문을 갖기 시작한 미국인들은 호퍼의 그림들을
보면서 가장 미국적인 것은 이런 것이며,
미국의 뿌리는 바로 이것이다 답을 얻었던 것
같습니다.
가장 미국적인 화가
"콥의 헛간 Cobb's Barns, South Truro", by Edward Hopper, 1930-1933, Oil on canvas, 87.2*127.2 cm. ©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 버락 오바마 대통령 재임 시절에 백악관의
대통령 집무실에 걸렸던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Burly Cobb's House, South Truro", by Edward Hopper, 1930-1933, Oil on canvas, 91.44*62.87cm. ©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백악관 집무실에 걸어 놓은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들을 바라보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 2014년 (사진 출처: capecodtimes.com)
경제대공황 시기에 호퍼가 그린 그림들은
오늘날에도 '미국적인' 또는 '미국인들의 정신적
뿌리'를 이야기할 때 자주 소환되곤 한답니다.
"Untitled", by Edward Hopper, Oil on board, 17.5*22.5in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들에는 '창'이
자주 등장한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창은 햇빛과 같은 빛이 실내로 들어오는
통로인 동시에, 외부 세계와 내부 세계의
연결 통로이자 인물의 내면을 관찰하듯
건물의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통로이기도
합니다. 때론 맞은 편 아파트를 훔쳐보는
은밀한 시선(관음 또는 욕망)의 통로이기도.
창문의 그런 역할을 염두에 두시면서
각각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창'의 의미를
해석하면서 감상해보세요 :)
"Girl at Sewing Machine", by Edward Hopper, 1921, Oil on canvas, 48*46 cm. © Thyssen-Bornemisza Museum
"뉴욕의 실내 New York Interior", by Edward Hopper, 1921
"실내 Interior (책 읽는 모델 Model Reading)", by Edward Hopper, 1925
"Tables for Ladies", by Edward Hopper, 1930.
"이발소 The Barber Shop", by Edward Hopper, 1931
"오전 11시 Eleven A.M.", by Edward Hopper, 1926
창문과 함께 커튼과 블라인드(가림막)도
자주 등장하는데요.
블라인드나 커튼이 쳐져 있다면
소통은 더 어려워지겠죠ㅇㅇ
"오전 5시 Five A.M.", by Edward Hopper, 1937, Oil on canvas, 51.12*91.76 cm. © Wichita Art Museum, USA.
"오전 7시 Seven A.M.", by Edward Hopper, 1948. ©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브루클린의 방 Room in Brooklyn", by Edward Hopper, 1932
잘 보시면, 그림마다 커튼과 블라인드의 묘사에
미묘한 차이가 보이거든요.
커튼이 정지해 있지 않고 바람에 날리고 있다면?
인물의 내면에도 바람이 휘몰아치고 있다는
뜻이겠죠?!
"Evening Wind", by Edward Hopper, 1921
따라서 커튼이 가만히 멈춰 있지 않고
바람에 휘날리는 장면을 그린 그림들은
성적인 코드와 자주 연결지어 해석되곤 해요.
"Summertime", by Edward Hopper, 1943
"Night Windows", by Edward Hopper, 1928
열려 있는 창문과 바람에 휘날리는 커튼은
그림 속 인물의 내면일 수도 있고,
그림 속 인물을 훔쳐보는 공범(?)이 된
관객의 속마음일 수도 있을 거예요.
"Apartment Houses", by Edward Hopper, 1923
***
"Sunday", by Edward Hopper, 1926, Oil on Canvas. © The Phillips Collection, Washington, D.C.
"호텔방 Hotel Room", by Edward Hopper, 1931
호퍼는 호텔과 이동차량(탈것) 안에 있는
인물을 그린 그림들도 많이 남겼어요.
낯선 곳으로의 '여행' 또는 '이동'은 '이방인'
즉 고독과 소외의 정서를 더욱 강화시켜주니까요.
20세기 초 미국은 전국적으로 도로가 건설되고
철로가 연결되면서 대중교통도 본격적으로 발달.
"Compartment C, Car 293", by Edward Hopper, 1938, Fabricated chalk on paper, 11.4*18.1 cm. ©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기찻길 옆 호텔 Hotel by a Railroad", by Edward Hopper, 1952, Oil on canvas, 101.9*79.3 cm.
여기에서도 축 늘어져 있는 커튼은
이 커플의 관계 또는
이들이 감정적으로 처져(침체되어) 있다는
힌트가 될 수 있겠죠?!
"Hotel Window", by Edward Hopper, 1955
"Chair Car", by Edward Hopper, 1965
같은 공간에 있지만 소통이 전혀 없고
각자 다른 곳을 보고 있는 '고립'과 '격리'의
정서가 이 그림에서도 느껴지죠.
어차피 인생은 혼자야, 개썅마웨
"주유소 Gas", by Edward Hopper, 1940. © MoMA, New York.
"Four Lane Road", by Edward Hopper, 1956, Oil on canvas, 68.6*104.1 cm.
'에드워드 호퍼'하면 '도시인의 고독'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실제로는 도시 풍경
못지 않게 도시의 변두리 주택가나 시골 풍경도
엄청 많이 그렸습니다. 자연 풍경도 많이 그렸고요.
호퍼를 풍경화가로 분류하기도 하는 이유ㅇㅇ
저 위에 오바마 대통령 재임 시절 백악관에
걸려 있었던 "콥의 헛간" 그림들도 그렇고,
어떤 면에서 호퍼는 도시와 시골을 아우르는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의 20세기 초의 풍경을
기록한 기록가였다고 봐도 무방할 듯합니다.
"East Wind over Weehawken", by Edward Hopper, 1934
"Carolina Morning", by Edward Hopper, 1955
"Sunlight on Brownstones", by Edward Hopper 1956
미국의 1950~60년대는 그야말로
'풍요의 시대'였습니다.
"2층의 햇살 Second Story Sunlight", by Edward Hopper, 1960, Oil on canvas, 102.1*127.3 cm. ©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위의 "2층의 햇살"은 발코니에서 일광욕을
즐기며 각자 자기 볼일 보는 호퍼의 이웃집
모녀를 그린 것인데요. 실제 그림을 그릴 땐
호퍼의 아내 '조'가 두 여성의 역할을 다 함ㅋ.ㅋ
이때 이미 70대였던 조가 10대 소녀 역할도
했다고 상상해 보세요ㅎ.ㅎ
호퍼 본인의 최애 작품 중 하나라고 함 :)
"The Sheridan Theatre", by Edward Hopper, 1937, Oil on canvas. © The Newark Museum of Art.
"휴식시간 Intermission", by Edward Hopper, 1963
지금까지 보신 것처럼 에드워드 호퍼는
드라마틱한 사건이나 특별한 이벤트가 아닌
평범한 도시의 소시민들의 '일상'을 주로
그렸습니다. 고독은 특별한 상황에서만
느끼게 되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마주칠 수 있는 '일상'적인 것이라능
그 일상 중에는 오피스 라이프도 포함되어
있는데요.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여성들의 오피스/사무직 진출이 활발해졌잖아요.
"Office at Night", by Edward Hopper, 1940
그러나 이 당시 오피스에서 여성의 역할은
타자와 서류정리 같은 보조적인 업무로
제한될 수밖에 없었죠.
간혹 위의 "Office at Night"를
성적인(섹슈얼) 코드로 해석하는 분들도
접하게 되는데, 커튼 보면 그없
오히려 이 그림의 가장 큰 특징은
이걸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고
아무것도 할 이야기가 없다는 것일 거예요.
딱 그 시절의 오피스 풍경이라 하겠습니다.
뚝뚝 떨어져 있는 사무실 가구들의 배치를 봐도,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소통'과 '접촉'이
존재하지 않아요.
"야간 회의 Conference at Night", by Edward Hopper, 1949
"야간 회의 Conference at Night"에서는
옷차림과 여성의 가슴만 아니면
등장인물들이 다 똑같게 생겼다는 게
눈에 띌 거예요.
"Office at Night"에서도
"Conference at Night"에서도
등장인물들 사이에 그 어떤 성적인 암시도
존재하지 않는 반면, 두 그림 모두 여성의 가슴과
몸매를 호퍼가 의도적으로 부각시켜 그렸다는
점에서, 이 오피스 풍경들을 통해 호퍼가
어떤 말을 하고자 한 건지 알 것 같습니다.
"작은 도시의 오피스 Office in a Small City", by Edward Hopper, 1953, Oil on canvas, 71*102 cm. ©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에드워드 호퍼의 오피스 그림들 중 가장
대표적인 "작은 도시의 오피스"는
"콘크리트 벽에 둘러싸인 남자"라고도
불리는 작품인데요.
이 작품은 현대의 도시인의 고독과 고립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기도 해요.
왼쪽: 에드워드 호퍼의 "Room by the Sea", 1951 /
가운데: 에드워드 호퍼의 "Morning Sun", 1952 /
오른쪽: 에드워드 호퍼의 "Office in a Small City", 1953
각각 1년의 시차를 두고 그린, 위의 세 작품들을
보시면, 공통점들이 보일 거예요:
창 또는 문을 통해 들어온 햇빛과 그늘,
명암의 대비 & 그림의 구도(미장센) 등에서
세 작품이 서로 많이 닮았죠?!
이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들 상당수에서
반복적으로 발견되는 구도로, 호퍼가 추구하는
미적 감각을 구체적인 이미지로 보여주는
주요 예시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구도를 이용해
호퍼는 '밝은 채광'과 '고독'이라는 이질적인
성격의 두 요소를 아주 효과적으로 결합시킴요.
영화, 뮤비 등 많은 분야에서 이 구도 자주 패러디
"뉴욕 오피스 New York Office", by Edward Hopper, 1962, Oil on canvas, 101.6*139.7 cm. © Museum of Fine Arts, Montgomery, Alabama.
-작성자 피나 PI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