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육 공간 속의 어정쩡한 사교육자’인 방과후학교 강사로 지내온 지 몇 년 째다. 독서와 글쓰기 지도를 시작하던 초창기에는 시를 가르치는 건 엄두가 안 나 건너뛰거나 형식위주의 겉핥기식으로 대충 때우고 넘어갔던 게 사실이다. 창작공부와 함께 시에 대해서도 조금 눈을 뜨고 맛을 알게 되면서 아이들에게도 어떻게 자연스럽고 재미있게 접근할까 고민하게 되었다.
많은 시행착오 끝에 나름 터득한 방식은 ‘어린이시 선집’을 읽으면서 ‘자유롭게 평점 매겨보기’로 시작하는 거다. 또래 아이들의 시를 읽으면서 자유롭게 평점을 매겨보고 소감을 말하다보면 시 읽기의 재미와 시 쓰기의 만만함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아주 좋음’이면 별 세 개, ‘그냥 좋음’ 이면 별 두 개, ‘보통’이면 별 한 개를 주라고 한다. ‘글은 정답이 없는 것이 아니라, 모든 글은 정답이고 백점’이라는 원칙으로 기초 수업을 먼저 한 상태이기 때문에 ‘나쁨’은 없는 걸로 하자는 말에 아이들은 기꺼이 동의한다. 수업 시간에 내가 많이 활용하는 책은 인근 지역의 또래 아이들이 쓴 어린이시집이다. 아는 지역명이나 학교명이 나오면 아이들은 더욱 친근감과 만만함을 갖기 때문이다.
별 표를 주고 왜 그렇게 줬는지 이유를 써 보고 발표하게 한다. 평가가 주관적이어도, 이유가 얼토당토 않아도, 전혀 이의를 달지 않고 수긍하고 인정해준다. 나름의 소감과 평가를 인하고 맞장구 쳐주면서도 슬쩍슬쩍 소재나 주제, 압축미, 솔직한 글의 재미와 힘에 관해 짚어준다. 중간중간 “비슷한 일 겪어본 사람? 이런 마음 들었던 적이 있는 사람?” 하면서 경험을 이야기하도록 부추기면 아이들을 왁자지껄 쏟아놓는다.
“그러면, 나도 그런 순간의 이야기를 시로 썼으면 되겠네?”
슬쩍슬쩍 미끼 멘트를 날려준다.
“아, 아깝다! 우리가 먼저 썼으면 우리들 시가 책에 실렸을 텐데.”
심사자가 된 것처럼 평점을 매겨보고, 비슷한 경험과 마음을 나누고 웃다보면, 여기저기서 기다리던 반응들이 툭툭 튀어나온다.
“선생님, 우리도 써 봐요. 시 써 보고 싶어요.”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시의 꼴을 갖추며 완성을 하려면 한참 지나야하겠지만, 우선은 ‘뭐를 써야겠구나. 나도 쓸 수 있겠구나.’ 하는 감을 잡은 것 같아 뿌듯하고 설렌다.
시 수업 하면서 특히 애용하는 시는〈코감기> 라는 시이다.
“이건 선생님이 엄청 좋아하는 시인데 딱 두 줄 밖에 안 돼요. 두 줄 뿐이라서 뭔가 부족하고 어색한 마음이 드는지, 더 보태거나 뺄 필요 없이 할 말을 완전히 다 했다는 느낌이 드는지, ‘아, 맞다!’ 하고 공감이 되는지 한 번 들어보세요.”
분위기를 잡으면서 여유를 부리고 있으면 아이들은 빨리 읽어달라고 야단이다. 나는 일부러 좀 더 뜸을 들이면서 문답을 이어간다.
“제목이 코감기인데, 다들 코감기 걸려본 적 있나요?”
“네!”
“첫 한 줄은 ‘코감기에 걸렸다.’예요. 두 번째 문장이 무엇일까요? 코감기 걸렸을 때의 경험을 떠올려보면서 한 번 표현해보세요.”
왁자지껄하며 여기저기서 손을 든다.
내가 운을 띄우듯이 첫 행을 읊어주면 아이들이 두 번째 문장을 덧붙인다. 그런데 대부분의 대답은 거기서 거기다. 답답하다, 코가 맹맹하다, 숨쉬기가 어렵다, 미칠 것 같다. 엄마가 고맙다, 등등. 비슷한 경험을 갖고 솔직한 느낌을 드러낸 것이지만 읽는 사람을 확 사로잡는 데는 뭔가 부족하다. 코감기 걸렸을 때의 절실함과 절박함에 가닿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솔직함과 절실함에서 나오는 직관의 힘이 어린이시의 완성도를 결정하는 요인이다.
아이들이 던진 말들을 덧붙여 낭송해주고 느낌을 물어보면 대부분 재미없고 밋밋하다고 한다. 이유를 명확하게 말하지는 못해도 좋은 시냐 아니냐를 가려내는 눈이 있다는 것도 참 놀랍다. 이쯤에서 시를 갖고 놀다보면 아이들은 “뭐라고 썼어요. 빨리 읽어주세요.”라고 성화를 부린다.
코감기
최예진(거제 외간초 2년)
코감기에 걸렸다.
코를 확 떼버리고 싶다.
(2008.12.2.)
*최종득 엮음, 『붕어빵과 엄마』, 상상의 힘, 2015
천천히 읽어주고 나면, 아이들은 ‘하아!’하고 짧은 감탄의 소리를 낸다.
“어때요? ‘정말 그렇지!’ 하고 공감이 돼요?”
“네! 진짜, 그래요.”
“얼마나 답답하면 자기 코를 확! 떼버리고 싶을까? 답답하다, 숨쉬기가 힘들다. 미치겠다. 이런 단어가 없는데도 열배, 백배 더 강렬하게 그 마음이 느껴지지요?”
아이들은 ‘아하, 그렇지.’하는 표정을 고개를 끄덕인다.
“여기서 한 글자라도 빼면 좋겠다 싶은 게 있어요? 아니면 너무 짧아서 덧붙여줘야 되겠다 싶은 건?”
“없어요.”
“딱 두 줄로 썼는데도 코감기 걸렸을 때 느낌을 이보다 깔끔하고 화끈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싶어서 선생님은 이 시가 참 좋아요.”
물론 걔 중에는 ‘뭐, 그 정도 갖고.’ 하면서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아이도 있다. 다르게 느낄 수 있다는 것에 인정해주고, 솔직한 느낌을 말한 것에 대해 칭찬을 해 준다. 또래 아이들이의 시를 갖고 한참 조물딱거리며 놀다보면 시가 재미있고, 시를 쓸 수 있겠다고 말한다. 그러면 90% 성공이다.
이 시는 읽어도, 읽어도 좋다. 시의식이나 독자에 대한 의식이 없어도 절실하고 절박한 마음을 솔직하게 질러버리는 것으로도 이토록 좋은 시가 나오는구나 싶어 아이들이 놀랍고도 또한 부럽다. 시에 있어서만큼은 어린이가 어른의 스승이자 선배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어른들은 이렇게 단 번에 핵심을 붙잡고 터뜨리기가 쉽지 않다. 시시껄렁하고 잡다한 알음알이나 관습, 체면, 자의식 등등, 마음을 어지럽히고 흐려놓는 장애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아이들과 함께 ‘어린이시’를 읽고 써 보는 시간은 아이들만의 눈맑음과 귀밝음에 찬탄하는 시간이다. 짜릿하고, 뭉클하고,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