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 몸을 푼다
산에서 사람을 부른다
예매표 없이 삼삼오오 들고 가는 바구니에
엄나무순, 찔레순, 두릅순, 쑥순 다래순 따 담으며
먼지 가득한 폐에 피톤치드를 넣고
핏기없는 얼굴을 햇살로 마사지하며
낭창낭창 부는 바람에 노랫가락 얹어 놓으면
바구니 가득 봄을 담아와
연한 육질의 순을 씻어내
연초록빛을 구기고 굴리고 볶다 보면
파릇한 사월의 잎이 서로 엉기어
사막의 마른 잎이 될 때
명지바람도 못 드나들도록 밀봉을 한다
바짝 마른 순을 찻잔에 넣어
뜨거운 물로 시간 채우면
죽어있던 연한 육질이 살아나지
현기증 날 정도로 상큼한 봄이
텁텁한 입안에 남실남실 넘나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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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
새벽 3시
핸드폰 노랫소리가 귓구멍을 들락거린다
알람을 끄며 검은 밤 밀실을 밟는다
질끈 묶은 머리 꼬랑지로 달라붙은 잠을 털며
하우스 전등 켠다
아슴아슴 불빛 밟으며 꽃을 가슴으로 품은
붉게 익은 무화과를 딴다
땀 냄새가 숨 가쁜 가슴 속으로 파고들고
흙으로 얼룩진 꽃 장화가 무채색이다
이렇게 살아가야 한다고
이렇게 살다 보면 산다고
헐떡대는 붉은 심장에 파란 꿈 넣으며
진물이 흘러내리는 마음을 다독거린다
질질 끌리는 신발 뒤꿈치에 힘 가두고
무화과 한 알이 중심의 탄력 가질 때
희망 한 상자가 붉게 피워 오른다
뜨거운 햇살이 시간의 중심을 재면
쏟아져 들어오는 주문자의 주소에
경영자 명패가 달린 유기농 스티커 붙이고
환하게 웃는 마음을
덤으로 올려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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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게
동트면 가장 먼저 내게 와 손 내밀었네
늙은 사내의 등은 투박했지만 늘 뜨거웠어
그의 천근 같은 눈물이 나를 업을 때는
내 앞섶에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지.
내 무게가 그의 등에서는 늘 삶의 짐이었으니
언제부터인가 그의 투박한 등 냄새를 맡을 수 없었네
푸른빛 도는 봄날, 꽃바람 따라갔는지
새로 덮은 뗏장을 이불 삼아 덮고 자는지
늙은 등의 그 사내는 다시 오지 않았네
그의 딸이 와서 나를 한번 쓰다듬고
꾹꾹 참는 입술 보니 알았네
이젠 다시 그의 등에 업히지 못한다는 걸
달포 전 늘 함께 살던 작대기가
두 동강 나더니 찬 바람에 귀퉁이로 쓸러 갔네
바르게 살라고 충고하며 옆에서 버티며
나를 바로 세워주었던 작대기
아마도 그리움 참지 못하고 그를 따라갔을 것이네
그의 등에 다시 업힐 수 없다는 걸 알아차린 요즘에는
뜨거운 햇살에 내 살도 푸석푸석하고
두 다리도 바람에 닳고 닳아 못 일어나지 싶네
어제는 헐거워진 바랭이가 빗물에 맥을 그만 놔 버렸네
별빛을 지고 오던 내 몸에도
나비 한 마리가 날아들고 있네
빈집을 지키는 나도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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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기를 돌리며
어제의 발걸음도 지구를 도는 일일 것이다
그 발걸음이 내팽개쳐진 채
먼지가 덤으로 앉고 널브러진 영혼들
눅눅해진 어제를 한 아름 안고
뚜껑 열고 막 엉킨 하루를 풀어 놓으면
맴도는 하늘에 구름 몇 오라기 떠 있지
사는 것이 그냥 이렇게
미처 헹궈지지 않은 불안까지 밀어 넣고
한 세상 탈탈거리며 돌려본다
울컥대는 간에 소주를 부어 주고
발걸음에 채인 낱말을 되돌리면
그 속에서 너와 내가 웃던 꽃향기
상큼하게 번지는 향기를 한 아름 안고서
오늘 하루의 고단함을
위로하듯 품에 안고서
어제의 얼룩진 역사와 허무한 이야기를
세탁기에 넣고
오늘의 내 허물까지 덤으로 돌려보면
뽀송뽀송한 내일은 찬란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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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경내가 환하다
드센 바람 드나드는 부처님 앞마당에
은행잎 모여들어 바람이 불경을 읽으면
부처님께 합장하고 발아래 엎드린다
스님이 심었다는 국화 향이 문지방을 넘나들고
독경 소리 들으며 자란 국화꽃이
풍경 따라 흔들리며 경내를 밝힌다
벌, 나비에게 하염없이 봉양하며 웃는 꽃
문설주에 햇살을 비비고 앉았는데
눈웃음 가득 채운 스님
국화차를 내어온다
비워내는 인생의 마디마디가 노송나무 뿌리 같다며
국화 꽃잎이 찻잔에 퍼질 때
스님의 말씀을 꽃잎에 얹어 마신다
먼 산등성이 바라보니
갈참나무 가지가 허공 떠안고 바람을 연주한다
문설주 옆 마당 한켠
푸른 잎 남실대는 꽃무릇이 낭창낭창 웃으며
얼굴을 햇살에 비빈다
꽃의 무자진경(無字眞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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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신안군 비금면 출생
등단 : 시사문단 ,
한국문인협회 신안지부이사
첫 시집 : 목련 그 여자
주소 : 전남 함평군 신광면 호덕길 4- 51
hp : 010-8831-5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