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오지의 목수 출신... 건축계 노벨상 ‘프리츠커상’
43년 만에 첫 흑인 수상자, 프랑시스 케레
토착 재료로 마을 주민과 함께
학교 등 만들며 사회적 건축 실현
”건축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의 삶 개선”
김미리 기자
입력 2022.03.16 20:06
2014년 케레가 고국 부르키나파소에 지은 ‘외과 클리닉 및 보건 센터’. 커다란 패널 지붕을 겹쳐 얹어 햇빛을 차단하고 빗물을 모으기 쉽게 했다. /@프랑시스 케레
변변한 건물 하나 없는 오지(奧地)에서 자란 건축가가 세계 건축계 정상에 올랐다. 미국 하얏트재단은 15일(현지 시각)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 출신 건축가 디에베도 프랑시스 케레(57)를 2022년 프리츠커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프리츠커상은 1979년 프리츠커 가문이 하얏트재단을 통해 제정한 건축상으로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린다. 43년 만에 첫 흑인 수상자가 탄생했다. 백인, 남성 중심 문화가 여전히 공고한 건축계에선 파격적 수상이다.
프리츠커상을 받은 지난 15일(현지시각) 자신의 베를린 사무실에 있는 프랑시스 케레./AFP 연합뉴스
케레는 건축의 개념조차 생소한 아프리카에서 지역 주민과 함께 토착 재료로 학교 등 공공시설을 만들어 ‘사회적 건축’을 실천해온 건축가다. 이름 들으면 누구나 알만한 거창한 작품은 없지만, 건축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의미 있는 건물을 만들어 왔다. 프리츠커상 심사위원단은 “케레는 건축가이자 봉사자로서 세상의 관심이 미치지 못하는 지역에 사는 수많은 이의 삶과 경험을 개선해 왔다”며 “건축이 대상이 아니라 목적이며, 생산이 아니라 과정이라는 사실을 일깨웠다”고 평했다.
미국 몬태나주 티펫 라이즈 아트 센터에 설치한 쉼터(2019). /@Iwan Baan
미국 몬태나주 티펫 라이즈 아트 센터에 설치한 쉼터(2019). /@Iwan Baan
그의 인생은 한 편의 영화다. 아프리카에서도 최빈국 오지 출신. 전기, 수도는커녕 학교도 없었다. 일곱 살 때 촌장이던 아버지가 그를 학교에 보내려 옆 마을 친척 집으로 보냈다. 까막눈 아버지는 아들이 글을 깨쳐 편지를 읽고 쓸 수 있길 바랐다. 그렇게 마을 역사상 첫 ‘학생’이 탄생했다. 하지만 옆 동네 학교도 열악하긴 마찬가지. 시멘트로 대충 지은 교실에 100여 명이 몰려 콩나물시루 같았다. 어린 소년은 언젠가 제대로 된 학교를 짓겠다고 다짐했다.
첫 작품인 '간도초등학교'(2001). 학교 하나 없던 고향 마을에 지은 학교였다. 땅바닥에 도면을 그려 주민들에게 설명하고 함께 학교를 지었다. /@Erik-Jan Owerkerk
고향에 지은 첫 작품 '간도초등학교'(2001). /@Erik-Jan Owerkerk
스무 살에 전환점을 맞는다. 학업을 마치고 목수로 일하다가 장학생으로 선발돼 독일 베를린의 목공 기술 견습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이후 독일에 머물며 서른 살에 베를린 공대 건축학과에 입학한다. 졸업 후 독일에 정착했지만 그의 가슴은 늘 가난한 고국을 향했다.
고국 부르키나파소에 지은 학교 '리세 쇼르게(Lycée Schorge)'. 모듈형 건물 9개를 방사형으로 배치한 디자인으로 지역의 랜드마크가 됐다./@프랑시스 케레
1998년 고향 마을 간도(Gando)에 학교를 지으려 재단을 만들었다. 이를 통해 2001년 첫 작품 ‘간도초등학교’를 설계했다. 마을 주민을 모아 땅에다 도면을 그려 과정을 설명하고, 지역 재료인 진흙을 썼다. 여인들은 항아리로 물을 길어 나르고 아이들까지 돌을 날랐다. 이 작품으로 ‘아가 칸 건축상’(2004)을 타면서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말리 국립공원(2010). /@프랑시스 케레
이후 말리국립공원, 케냐의 스타트업 라이언스 캠퍼스 등을 설계했다. 2017년엔 스타 건축가들의 필수 코스로 여겨지는 런던 서펜타인 파빌리온 프로젝트 건축가로 선정됐다.
런던 서펜타인 파빌리온(2017)./ @Iwan Baan
케레는 수상 소감에서 “부자라는 이유로 물질을 낭비해선 안 되고 가난하다는 이유로 좋은 품질을 만들려고 노력하지 않아선 안 된다”며 “누구나 좋은 품질, 고급스러움, 편안함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2022 프리츠커 건축상, 프란시스 케레 선정
On 2022-03-21
에디터. 김지아 자료. 하얏트재단The Hyatt Foundation
올해의 프리츠커 건축상 수상자가 지난 3월 15일 발표됐다. 서아프리카 출신의 건축가 디에베도 프란시스 케레Diébédo Francis Kéré가 그 주인공이다. 부르키나파소의 간도에서 촌장의 아들로 태어난 케레는 마을에 학교가 없어 어린 나이에 학업을 위해 고향을 떠났다. 장학금을 받아 독일의 목공 직업 학교에서 유학했고, 베를린 공대에 입학해 건축을 공부했다. 졸업 후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 학교, 공원, 병원 등의 공공건축을 선보인 케레는 지속 가능한 지구와 주거, 그리고 공동체를 위한 건축을 개척하고 있다는 평을 받는다.
심사위원단은 “케레는 건축가로서, 봉사자로서 이 세계에서 점점 잊혀져 가는 곳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체험을 향상시키고 있다”면서 “건축이 대상이 아니라 목적이라는 것,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사실을 비로소 일깨운다”고 덧붙였다.
프리츠커 건축상은 매년 건축 예술을 통해 재능과 비전, 책임의 결합을 보여주어 인류와 건축 환경에 일관적이고 중요한 기여를 한 생존 건축가에게 수여하는 상으로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린다. 특정 건축물이 아닌 건축가의 건축 세계 전반을 평가해 수상자를 선정하며, 하얏트 호텔 창업주인 제이 A. 프리츠커와 신디 프리츠커 부부가 1979년 제정했다.
프란시스 케레 <사진 제공 = 하얏트재단>
기후 환경을 고려한 재료와 기술
케레의 작업은 아프리카 국가의 교육 시설부터 사회·공공 공간, 문화 시설까지 다양하게 아우른다. 첫 프로젝트인 ‘간도 초등학교Gando Primary School’(2001)를 시작으로 근작인 ‘스타트업 라이온스 캠퍼스The Startup Lions Campus in Kenya’(2021)에 이르기까지 그는 여러 작업에서 기후와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으로 기술과 지역의 재료를 영리하게 활용한 건축을 선보여왔다.
지역 주민들과 함께 고향에 지은 ‘간도 초등학교’(2001) Photo courtesy of Erik-Jan Ouwerkerk
대표적 예로, 부르키나파소의 ‘간도 초등학교’는 극한의 더위와 열악한 조명에 대응할 수 있는 설계를 필요로 했다. 그의 해답은 토착 점토를 활용한 시멘트 강화 벽돌과 높이 들어 올린 지붕이었다. 두 요소를 통해 건물은 공조시설 없이도 내외부 환기와 온도 유지가 가능했다.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서 학교의 학생 수는 120명에서 700명으로 늘었고, 이후 교사 주택(2004), 본관 증축(2008), 도서관(2019) 등으로 학교는 점차 확장됐다.
케냐 투르카나 지역에 위치한 정보 통신 교육 시설 ‘스타트업 라이온스 캠퍼스’(2021)는 높이 설치된 세 개의 환기구를 통해 공기를 유입하고 건물 내 온도를 조절하도록 설계되었다. Photo courtesy of Francis Kéré
현지 채석장에서 조달한 석고를 사용해 마감했다. 재료 사용과 기술에 있어 지속 가능성을 고려하고, 지역 사회와 협력해 탄생한 결과물이다. Photo courtesy of Francis Kéré
2021년 완공된 케냐 소재의 정보 통신 분야 교육 시설 ‘스타트업 라이온스 캠퍼스’ 역시 지역의 기후를 고려한 설계가 돋보이는 작업이다. 현지 채석장에서 조달한 석고로 건물을 마감했을 뿐 아니라, 따뜻한 공기를 배출할 수 있는 환기구를 높이 만들고 아래로는 인체 높이의 개구부를 두어 자연적인 공기의 순환이 가능하도록 했다. 고온과 주변의 흩날리는 흙먼지로부터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된 건물은 내부 기술 장비의 손상을 막는 등 기능적인 부분과 더불어 심미성, 건축 과정에서의 효율성 등이 두루 고려됐다.
지역 사회를 위한, 지역 사회에 의한
소외된 지역 사회를 위한 건축을 설계해 온 케레의 작업에서 ‘공동체’는 중요한 요소다. 그의 작업은 공동체를 위한 건축에서 나아가 과정이자 요소로서의 공동체를 포함한다. 공정, 재료,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각기 고유한 특성을 지닌 건물들은 지역 사회와 전통,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다.
부르키나파소 라옹고 사회복지센터(2014) Photo courtesy of Francis Kéré
다양한 높이의 프레임 창을 내어 서 있는 의사부터 앉아 있는 방문객, 누워 있는 환자까지 동등하게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설계한 ‘부르키나파소 라옹고 사회복지센터Centre for Health and Social Welfare’(2014)는 그의 작업에 일관되게 나타나는 ‘모든 사람’을 향한 건축적 지향점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 코첼라벨리 음악 페스티벌을 위해 만든 축제 텐트 ‘Sarbalé Ke’(2019) Photo courtesy of Iwan Baan
서아프리카 지역의 바오밥 나무 모양을 모티프로 했다. Photo courtesy of Iwan Baan
미국 캘리포니아 코첼라벨리 음악 페스티벌을 위해 만든 축제 텐트 ‘Sarbalé Ke’(2019)는 케레가 나고 자란 서아프리카 지역의 바오밥 나무를 모티프로 삼았다. 그의 작업에는 나무 아래 마을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미래를 토론하고, 때로 축하를 나누기도 하며 교제하는 서아프리카 공동체의 전통이 디자인 요소로 녹아 있다.
부르키나파소에 지은 학교 ‘리세 쇼르게’(2016). 모듈형 건물 9개를 방사형으로 배치했다. Photo courtesy of Francis Kéré
부르키나파소의 ‘외과 진료소 및 건강센터’(2014) Photo courtesy of Francis Kéré
케레는 “모든 사람은 품질, 사치, 안락함을 누릴 자격이 있다”며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고, 기후와 민주주의, 희소성에 대한 우려는 모두의 몫”이라는 뜻을 전했다.
프리츠커 측은 “케레는 자신이 태어난 지역 사회를 살리기 위해 헌신했을 뿐 아니라, 위기에 처한 세상에서 실천으로서의 건축과 지속 가능성에 대한 방법을 모색했다”면서 “건축이 지속적인 행복과 기쁨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웠다”고 평가했다.
런던 ‘2017 서펜타인 파빌리온’ Photo courtesy of Iwan Ba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