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펑펑 내리는 추운 겨울날이었다.
너의 나의 소복한 발자국이 산책로를 빼곡히 채울 무렵,
네가 그만하자는 말을 건네왔다.
너의 눈에서 방울방울 빚어진 눈물이
뺨을 타고 턱까지 흘러내렸다.
난 차마 그 눈물을 닦아줄 용기가 없었다.
1년 전 그 날,네가 나에게 평생을 기약하자며
속삭일 때와는 사뭇 다른 어투였다.
암만 도의적인 수준의 약속이라지만,
이다지도 쉽게 번복을 입에 담을 수 있다니.
모래알 한 움큼 정도의 신뢰를
하루하루 쌓아올라가며 구축한 관계가,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 한 결에 맥없이 무너졌다.
마치 파도가 일면 흔적조차 남지 않는 모래성처럼.
그렇게 무너져내렸다.
그 날 깨달았다. 영원한 약속은 없다는 것을.
언제 어디선가 어떠한 변인이든지 간에
크고 작은 영향을 받아가며 의미가 퇴색되고,
무너지며, 여기저기 긁혀 언젠가는
원형조차 찾아볼 수 없게 변모하리라는 사실을.
붙잡아볼까. 추잡하게 굴어볼까. 잠시 생각을 품었으나
말라 비틀어진 그녀의 눈을 보며
알겠다고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머리가 복잡했다. 구태여 이유를 묻진 않았다.
이미 변질된 관계에서 원인규명을 하든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한시라도 빨리 관계를 벗어나는 것이
피차 좋은 일이었겠지.
정말 좋은 일이었을까?
너는, 나는, 아니 우리는,
이러한 합의에 대해 쉽게 수긍할 수 있는 것일까?
한낱한시라도 서로를 그리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을까?
쉽사리 잊을 수 없는 너와 나의 추억 내지는 악몽이,
그 기억의 편린이 당분간은
나를 괴롭힐 거라는 건 분명했다.
우스웠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날의 겨울을 잊기 위해,
독한 술에 기대 쓰러지듯 잠을 청하는 것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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