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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려타곤(懶驢 坤) 30-2 얼굴에 쓰고 있던 인피면구를 벗어서 탁자 위에 올려놓은 신기서생은 침상 위에 누워서 골아 떨어진 아내를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보았다. "하여튼 이곳까지 무사히 왔으니 다행이로군. 그자의 무공이 그 정도일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아내에게서 시선을 돌려 탁자 위에 타고 있는 촛불을 바라보며 신기서생은 이곳까지 오는 동안의 일을 떠올렸다. 자신과 아내를 대신할 인간을 만들어내는 것은 청방과 백초당의 힘으로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신기서생과 똑 같은 얼굴을 하고 위험한 순간에 그를 대신할 분신들도 많았고 방수련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대리 인간들에게 최면을 걸어 정말 자신이 신기서생이고 방수련이라고 믿게 만드는 일도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오대세가의 가주들이 떠나던 그날 칠호가 직접 쳐들어 올 가능성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신기서생이었다. 그래서 칠호를 죽일 함정을 파놓고 그가 찾아올 순간만을 신기서생은 지하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방수련은 지상에서 기다리고 되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들 둘 뿐이었다. 백초당에 머물고 있던 대부분의 인간들이 모두 떠난 뒤였기에--. 그리고 그들의 바램대로 칠호라는 자가 찾아왔지만, 일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자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독강을 일으켜 건물과 함께 곳곳에 마련해 놓은 함정과 기관을 파괴하는 일이었기에, 수백만금을 들여 만들어 놓은 기관장치들이 모두 쓸모없게 돼버린 것이다. 다행히 지상에 있는 기관만 파괴되고 지하에 마련되어 있던 기관이 파괴되지 않아 아내가 부상당한 채 지하로 들어오자마자, 그는 기관을 이용해 의식을 잃고 있는 아내를 자신이 있는 곳으로 이동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지하에 잠들어 있던 또 하나의 방수련을 깨웠다. 그녀는 단 한번만 무공을 사용할 수 있는 상태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칠호라는 자는 죽으리라 생각한 신기서생이었다. 신기서생이 계획한대로 칠호라는 자는 마화린에 휩싸여서 지하로 내려와 방수련의 얼굴을 한 다른 여자에게 공격받았지만 그 지경이 되어서도 그는 살아서 도망쳐버렸다. 그 때의 일을 떠올리는 신기서생의 마른 얼굴 위로 잠깐 동안 아쉽다는 빛이 어렸다. 그때 그자가 죽었다면 이제 자신의 싸움이 되어버린 이 지긋지긋한 백초당과 운룡회의 전쟁은 끝이 났을 것이다. 단 한번만 무공을 사용할 수 있는 그 여자, 아내의 얼굴을 하고 아내를 대신해 죽게 된 한 여자를 떠올리며 신기서생은 씁쓸한 미소를 흘리며 중얼거렸다. "오대세가를 멸문시키지 않는 대가로 아내의 생명을 건질 수 있다면 남는 장사지. 처남의 부인 감으로 거론되던 그 여자가 음공의 고수라서 다행이었어. 칠호라는 자를 감쪽같이 속여넘겼으니---." 칠호라는 자가 도망치는 모습을 기관을 통해서 보던 일을 떠올리면서 신기서생은 아내를 대신할 여자를 찾던 일을 떠올렸다. 자신은 원래 무공이 없으니 얼굴만 바꾸면 그만이었지만 아내는 아니었다. 천하에 짝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음공의 고수로 알려진 아내의 살인 음을 흉내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여자 중에서 아내의 무공을 흉내라도 낼 수 있는 사람을 찾는 일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었다. 다행히도 오대세가의 인물 중에서 그런 여자가 있었고, 그 여자는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가문의 보존을 신기서생에게서 약속 받았다. 그래서 오대세가 중 다른 세가는 어떨지 몰라도 사천당문만은 남게 될 것이다. 신기서생은 자신과 아내를 그리고 지하에 잠들어 있는 방종구를 위험에 빠트린 오대세가를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약속은 약속, 사천 당문만은 복수의 대상에서 제외해야 했다. 하여튼 신기서생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고, 그자가 속아서 떠나지 않았다면 얼어서 잠들어 있는 방종구와 숨어 있던 신기서생과 의식을 잃고 있던 방수련 모두가 백초당에서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모두가 떠난 뒤였고, 백초당의 지하에는 신기서생과 내상을 입고 의식을 잃은 방수련만이 남게 된 상태, 신기서생은 백초당을 버리고 안전한 장소로 몸을 피해야 했다. 칠호라는 자가 다시 찾아온다면 이제 막을 수단이 개봉의 백초당에는 남아 있지 않은 것이다. 전서응을 날렸으니 취하와 취앵이 돌아온다면 안전해지겠지만, 또 누군가 쳐들어온다면 막을 힘이 신기서생에게는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다. 많은 수의 무사들이 백초당을 떠난 뒤라 남아 있는 무사들로는 백초당에 소속되어 있는 상인들을 보호하기에도 빠듯한 숫자였다. 더군다나 청방이 외세의 앞잡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더 이상 중원의 무인들을 믿고 도움을 받을 수 없게 된 상태였다. 오직 머리 하나만으로 의식을 잃고 있는 아내를 데리고 제 이의 백초당이 있는 정주에 와야 했던 신기서생이었다. "어찌 되었건 나도 무사하고 아내도 무사하다. 종구 형님도 무사하기를 비는 수밖에---, 칠호라는 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온 몸이 숯덩이로 변해 도망치는 광경을 보긴 봤는데--, 그 지경이 되어서도 살아서 움직이는 자라니--. 시신을 눈으로 확인하기 전에는 절대로 그자가 죽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게 되었어." 중얼거리면서 신기서생은 아내가 누워 있는 침상으로 다가가 그 역시 피곤한 몸을 뉘였다. 거지로 변장해서 정주까지 쉬지 않고 걸어와야 했던 신기서생 역시 몹시 피곤한 상태였기에 침상에 눕자마자 코를 골며 깊이 잠들었다. 거의 보름 동안 잠시도 긴장을 풀지 못하고 강행군을 해야만 했던 신기서생이었다. 그것도 운신이 불편한 아내의 몸을 업고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면서 움직여야 했기에, 허약한 서생의 체력으로는 분명히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다. 본래는 산세가 수려하고 경관이 아름다운 산이었지만 한 지관이 천하의 명당이라는 말을 하게 되면서 대낮에도 귀기가 넘실거리는 산이 되어버린 북망산, 그곳의 생겨난 수 많은 무덤 중의 하나에 몸을 숨기고 깊은 무의식의 바다에 헤엄치고 있는 한 사람은 이제 깨어날 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옛날에 무슨 왕의 무덤이라고 알려진 그 무덤의 지하에는 거대한 석실이 있었고, 그 한 가운데 관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관 대신에 온 몸이 새까맣게 탄 벌거숭이 사내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검은 연기 같은 것이 그의 몸을 칭칭 감아 돌고 서서히 회전하면서, 그의 머리 위에도 각기 다른 색깔의 빛을 뿜어내는 동그란 환 같은 것이 생겨나서 천천히 맴을 돌고---. 사내의 몸은 조금씩 허공으로 떠오르고 그러면서 사내의 몸에서 뱀이 허물을 벗듯 새카맣게 탄 피부가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바로 다음 순간에는 사내의 몸에는 티 하나 없이 깨끗한 살이, 머리카락 하나 없어 대머리였던 머리에도 검고 윤기 나는 머리카락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가장 완벽한 상태로 몸을 변화하게 만든다는 탈태환골의 순간이 지나면서 사내의 몸을 휘감던 광채를 뿜어내는 색색의 안개는 사내의 몸으로 빨려 들어가고, 허공에 떠 있던 사내의 몸은 다시 바닥에 내려앉았다. "후--우." 길게 숨을 내쉬면서 길고 긴 무의식의 바다를 헤치고 나온 사내의 맑고 차가운 눈이 뜨여졌다. "무공이 한 단계 더 올라갔다. 지금이라면 그자를 상대할 수 있을까?" 전설의 경지라 일컬어지는 탈태환골을 경험하고 삼화취정 오기조원의 경지에 들어선 칠호였지만,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고개를 흔들었다. "어렵군. 지금의 나라면 암천혈혼대나 암흑전사단을 상대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일수에 그들 전부를 죽일 실력은 아니야. 천인천검을 얻기 전에 그자와 싸운다면 백전백패다." 중얼거리면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의 칠호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온 몸에 불이 붙으면서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이 타 사라졌지만, 몸이 타들어 가는 그 순간에도 환혼경의 조각만은 끝까지 손에 쥐고 이곳까지 온 그였다. 일어선 그는 자신의 발 옆에 바닥에 희미하게 빛을 발하고 있는 붉은 유리조각을 묵묵히 바라보다, 석실의 돌로 된 벽으로 다가가 커다란 벽돌 하나를 벽에서 뽑아내었다. 그 안에서 하나의 상자를 밖으로 끄집어낸 칠호는 그 속에서 옷과 자신이 살수 생활을 할 때 사용하던 암기 같은 것들을 꺼내어 바닥에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곳은 운룡회를 결성하기 전에 그가 살수로 있을 때 최후의 피신처로 삼은 장소였기에 그 만이 알고 있는 장소였다. 수십 가지의 크고 작은 암기들과 독탄과 연막탄 각기 다른 크기의 비수들과 독침----. 바닥에 길게 늘어놓은 살수로 있을 때 사용하던 물건을 바라보며 칠호는 씁쓸한 미소를 흘렸다. "내가 생각해도 참 많이도 가지고 다녔군. 이것들이 있으면 편하기는 하겠지만 내 무공이 높아지려면 이것들을 사용해서는 안돼. 암기와 암습의 수법으로 진정한 고수를 상대해서는 이길 수 없다." 중얼거리는 사이 칠호의 손에는 금광이 어리고, 금빛의 광채는 바닥에 널려 있는 살수의 무기를 스치고 지나갔다. 바닥에 깔려 있던 모든 무기들이 한순간 재로 변해 사라지고 남은 것은 옷 한벌과 은자가 들어있는 주머니 하나뿐이었다. 칠호는 옷을 입고 돈이 들어 있는 주머니만을 간직한 채 밖으로 나왔다. 여기 들어올 때는 그렇게 무섭게 쏟아지던 비가 그쳤는지 밤하늘 위로 은하수가 길게 늘어서 있고, 환한 달빛이 세상을 비추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군." 그렇게 말하면서 칠호는 손바닥 위에 붉은 유리조각을 올려놓았다. 그것은 깜빡이는 빛을 뿜어내면서 숭산 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누군가 숭산 쪽으로 가는 모양이군. 백초당에 대한 일은 신경을 꺼야지. 다시 생각해보니 백초당은 날 유혹해서 죽이려는 함정이었어. 그 때 죽은 신기서생이 진짜 신기서생이라고 생각 할 수도 없고---, 하마터면 정말 죽을 뻔했잖아? 지금은 일단 내가 강해지고 볼일이다." 스스로에게 묻고 대답하면서 앞으로의 일을 떠올리는 칠호가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 자신보다 강한 자가 적으로 있기에 이렇게 숨어 다니고 있는 것이다. 다른 일에는 신경을 끄고 오직 자신이 강해지는 일에만 매달려야 할 때였다. 달빛 아래 무덤만이 가득한 북망산의 하늘 위로 솟구쳐 오른 칠호는 그대로 숭산 쪽을 향해 몸을 날렸다. 자신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환혼경을 찾아서 보다 더 강한 힘을 얻는 일이었고, 조각이 가리키는 방향은 숭산 쪽이었다. 그는 강해지기를 원하고 강해지려면 조각이 인도하는 장소로 가야만했다. 암흑천사라 불리는 마교인들 열 넷이 숭산의 한 동굴에 모두 모이기는 백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능력이 일파와 맞먹는 전력이라는 그들이 한 자리에 모인 이유는 단 한가지 때문이었다. 보이지 않게 교주의 일을 가끔 도와주기도 했지만 그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바로 마교 성녀라 불리는 한 여자를 지키는 것이 그들의 사명이었다. 신분 상 모두가 동등한 입장이었지만 그들 안에도 서열이라는 것이 있었다. 동굴의 가장 상석에 앉아 있던 노인은 서역 쪽으로 갔다가 묘강의 마교 총단을 거쳐 이곳에 온 한 사람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물었다. "이미 알고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직 소식을 듣지 못한 형제들을 위해 다시 한번 자세히 말해보게." "주학은 이제 더 이상 마교의 교주가 아니고, 그자는 칠호라 불리는 자에게 환혼경의 조각을 넘겼습니다." "그자의 능력은 어느 정도인가?" 어둠 속에서 또 다른 누군가가 질문했다. "주학과 사흘의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싸웠지만 승부를 내지 못했다고 들었습니다." 동굴 안에 모여 있는 몇 몇 사람의 입에서 신음성과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렇다면----?" "우리 전부가 협공한다면 승산은 반반이니, 그자의 손에서 환혼경의 조각을 뺏는 일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조각이 모두 모여 있지 않다, 사람도 모자라고---. 조각이 둘이나 빠져 있는데 반혼의 의식이 성공할까?" "조각 중의 하나를 가지고 있는 검혼은 반혼의 의식이 있다는 것을 알면 반드시 와서 방해할 것이고 칠호라는 자는 성녀의 생명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자는 환혼경에 숨어 있다는 독고삼검의 구결과 천인천검을 얻을 생각만을 하고 있는 자입니다." 동굴 속의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있는 암흑천사들 중 누군가가 그렇게 말하면서 그들 전부는 선택의 순간이 다가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각이 둘이나 빠져 있다. 일이 잘못되면 방화련의 의식이 그대로 남아 있을 수도 있다." "어쩔 수 없습니다. 그자들이 오기 전에 반혼의 의식을 치르지 않는다면 우리에게는 기회가 오지 않을 것입니다. 무려 백년만에 찾은 성녀입니다.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게다가 그자들의 손에서 조각을 뺏는다는 것 또한 불가능한 일일 테고---" 노인은 품속으로 손을 가져갔다. 잠시 뒤 노인의 손바닥에는 손가락 만한 크기의 붉은 빛을 뿜어내고 있는 유리조각이 놓여지고, 노인은 그것을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이것이 언제 다시 빛을 뿜어낼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의 영혼이 진정한 안식을 찾고 반복되는 환생과 운명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날 힘을 가질 수 있는 존재를 다음 생에서 다시 만난다는 보장은 없었다. 끝없는 윤회의 고리를 끊고 천인(天人)으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기회를 허무하게 날릴 수는 없었다. 이번의 생에서 이 일을 이루지 못한다면 앞으로 또 얼마만큼의 세월이, 몇 번의 환생이 필요한 일이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지금 방화련은 어디에 있나?" "소림사에서 벗어나 동쪽으로 가는 중입니다. 산을 넘어서 바로 개봉으로 갈 생각인 것 같았습니다." "주위에 우리를 방해할 인간은?" "소림사 사대금강 중 방장이 된 방진을 제외한 세 명의 중과 백초당의 총관인 염철이 그녀의 옆에 붙어 있고, 약 백여장 정도의 거리를 두고 천궁 옥형진 이라는 자가 그녀의 뒤를 따르고 있습니다." "그럼 일단 방해꾼들부터 모두 없애도록 하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동굴 안에 모여 있던 모두의 몸이 사라지고, 동굴 안에는 태고 적의 정적 속에 규칙적으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만이 남겨졌다. 노인은 후회가 가득한 얼굴로 저 멀리 앞서 가는, 점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다섯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 때 무엇이라 맹세했던가? 이 목숨이 끝나는 날까지 방화련을 보호하겠다고 맹세하지 않았던가? 사악한 자들이 꾸며낸 말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면서 왜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일꼬? 한인이면 어떻고 여진인이면 어떻다는 말인가? 그녀가 옳다는 것을 알면서도 단지 여진인이라는 말 한 마디에----, 형진아 형진아 네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옳고 그름을 구별하지 못한다는 말이냐?' 묵묵히 걸음을 옮기는 노인이 마음속으로 하고 있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그 자신 외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생각을 하면 할수록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소림사에서 방화련은 백초당의 총관인 염철과 함께 바로 개봉을 향해 길을 떠났고, 천궁은 그녀와 같이 길을 떠나지 못하고 뒤에 남겨졌다. '지금까지 도와주신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천궁의 귀에는 아무런 감정이 실려있지 않았던 방화련이 그에게 마지막으로 해준 그 말이 아직도 그의 귓가를 울리며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었다. 단지 그 한마디 말만을 남긴 채 떠나는 방화련의 모습을 멍하니 지켜만 보고 있어야 했던 천궁이었다. 그 뒤를 이어 소림사의 세 장로들, 청이 들어서기 전에 사대금강이라 불리웠던 세 명의 고승이 방화련의 뒤를 쫓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천궁은 자신이 또 다시 후회할 일을 저질렀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녀에게 다시 같이 움직이자는 말을 꺼낼 수는 없었다. 방화련이 개봉으로 떠나기 위해 소림사를 떠나고 있을 때 소구는 깊은 동정호의 수면 속에서 긴 잠에서 깨어나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동정호의 푸른 수면은 먹물처럼 검게 변해 가고 있었고, 그 한 가운데 물결 따라 이리저리 떠내려가고 있는 소구는 멍하니 푸른 하늘을 바라보았다. "크크--- 큭, 알고 있어. 누나가 죽은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북해에서 늦게 돌아온 내 탓이라는 것을---." 스스로를 조롱하는 웃음을 흘리며 소구는 중얼거렸다. 그 누구에 대한 것도 아닌 자기자신의 게으름으로 누나가 죽었다는 생각에 한순간 이성 대신에 분노와 광기가 그의 몸을 지배하고--, 그 다음에 떠오르는 기억은 몇 되지 않았다. 자신이 많은 수의 인간들을 죽였다는 것만이 기억날 뿐이었다. 다시 제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이 독으로 가득 찬 호수 위였다. 무슨 일을 당했는지 팔과 다리는 꽈배기처럼 비틀리고 내장과 혈맥이 꼬이고 비틀린 상태였다. 발목도 너덜거리는 것이 금방이라도 몸에서 떨어질 것 같은 상태, 보통 사람이라면 죽어도 벌써 죽었어야 할 몸이었다. 그러나 그 상태에서도 소구는 살아 있었고 전신에서 전해지는 고통이 그의 정신을 맑게 해 주고 있었다. "취하와 취앵이에게도 손을 댄 것 같은데 그녀들은 살아 있을까? 구정문 사부님이 살아 계셨다면 날 때려잡으려고 들겠군. 몸과 정신 그리고 영혼을 단련하는 수련을 모두 헛되이 해서 한순간 자신을 잃어버리고 적과 친구를 구별하지 못하고 미쳐 날뛰었으니---." 중얼거리는 사이 소구의 화상자국으로 얼룩진 피부와 비틀린 팔과 다리가 조금씩 정상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꼬이고 비틀린 내장과 혈맥도 서서히 정상으로 돌아가고 있었고, 동정호 전체를 죽음의 호수로 만들고 있는 독의 기운도 소구의 몸 안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소구의 몸을 중심으로 호수는 조금씩 소용돌이를 일으키면서 호수를 검게 물들여가던 독도 한 곳으로 몰리면서 점점 푸른색의 제 빛깔을 찾기 시작했다. "아직은 살아야지. 내가 지켜야 할 사람은 수련 누나만 있는 것이 아니니까---. 몸이 정상으로 돌아오면 화련 누나가 있다는 소림사로---." 축 늘어진 상태에서 소구의 몸은 조금씩 수면 위로 떠오르고,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점점 작아지더니 완전히 멈추어 졌다. 대신에 소용돌이가 거세어지면서 허공으로 물기둥이 치솟아 오르고, 수면 위로 떠 있는 소구의 몸은 물기둥 속에 가려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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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말 오리무중이네요
소구와방수련의 앞날고 신귀서생의
활약도 기대가되네요
수고하셨습니다
신기서생과 수련이 살아있고 화련이 개봉으로 가는중에 암흑전사단이 화련과 동행하는 이들을 해치려고 하는와중에 칠호는 죽음의문턱에서 오히려 한단계 무공이 진보되는데. 소구와 신기서생은 어떻게 이난국을 대처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