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작품의 줄거리를 이야기해 나가는 주체가 서술자라고 한다면, 이 서술자가 인물과 사건을 바라보는 태도와 위치를 소설의 시점이라고 한다.
시점의 분류 기준
(1) 서술자의 위치에 따라
서술자가 소설 속에 있는가, 또는 소설 밖에 있는가에 따른 분류->서술자가 소설 속에서 등장하여 사건에 직접, 간접 적으로 관련을 맺는가의 여부. 서술자가 등장 인물인 '나'이면 일인칭 시점이고, 소설 밖의 제 3자(작가)이면 삼인칭 시점.
(2) 서술자의 태도에 따라
서술자가 등장 인물의 감정 속에 들어가 있느냐, 아니면 바깥에서 관찰만 하고 있느냐에 따른 분류->서술자가 독심술을 하듯 등장인물의 심리를 훤히 들여다보는지의 여부. 서술자가 등장 인물의 감정 속에 들어가 내적->심리적, 분석을 하고 있으면 서술자 시점(->일인칭 시점일 경우는 주인공 시점, 삼인칭 시점일 경우는 작가 시점이라고도 한다)이라 하고, 외적인 관찰만 하고 있으면 관찰자 시점이라고 한다.
시점의 유형
(1) 일인칭 주인공 시점 : 주인공인 '나'가 자신의 이야기를 서술하는 시점.
(예) 봄봄(김유정),나비(헤세),이해의 선물(빌라드), 별(도데)
(2) 일인칭 관찰자 시점 : 부수적인 인물인 '나'가 주인공의 이야기를 서술하는 시점.
(예) 김동인의 '붉은산'에서 삭을 서술, 사랑방..(주요섭)
(3) 작가 관찰자 시점 : 서술자인 작가가 객관적인 관찰자의 입장에서 서술하는 시점.
(예) 황순원의 '소나기'
(4) 전지적 작가 시점 : 작가가 전지적인 입장에서 인물의 심리까지도 서술하는 시점.
(예) 허균의 '홍길동전'->모든 고대소설, 큰 바위 얼굴(호손)
소설의 갈래
(1) 길이에 따라 : 장편(掌篇)소설, 단편소설, 중편소설, 장편소설
(2) 내용에 따라 : 역사, 농촌, 사회, 과학 소설 등.
(3) 의도에 따라 : 본격 소설, 통속 소설->작가의 의도 즉, 문학성
(4) 시대에 따라 : 고대소설, 신소설, 현대소설 등.
소설의 표현 방법
(1) 서사 : 사건을 시간적 순서에 따라 이야기
(2) 묘사 : 심리, 동작, 모습 등을 실감나도록 표현
(3) 대화 : 등장 인물들의 말
(4) 설명 : 사실, 지식 등을 풀이해서 전달
4. 소설의 시점
단원의 길잡이
소설에서 인물의 성격이나 행위, 사건 등을 누구의 눈으로,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이야기하는가를 소설의 시점이라 한다. 소설의 시점은 서술자가 소설 속에 있는가, 소설 밖에 있는가에 따라 1인칭 시점과 3인칭 시점으로 나뉜다.
1인칭 시점은 소설 속의 '나'가 말하는 방식이다.1인칭시점에는 '나'가 주인공으로서 '나'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는 1인칭 주인공 시점과,'나'가 관찰자의 위치에서 소설 속 다른 인물의 행위나 사건 등을 관찰하여 말하여 주는 1인칭 관찰자 시점이 있다.
3인칭 시점은 소설 밖의 서술자가 소설 속 인물들의 이름, 또는 '그', '그녀', '그들'이라는 적절한 명칭을 사용하여 인물의 성격이나 행위, 사건 등을 말해주는 방식이다. 3인칭 시점에는 서술자가 객관적 위치에서 대상을 보이는 대로 관찰하여 서술하는 3인칭 관찰자 시점과, 작가가 전지 전능한 신과 같은 위치에서 인물의 심리, 또는 과거와 미래 등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것까지도 서술하는 전지적 작가 시점이 있다.
그러므로 내용이 같은 이야기라도 그것을 말하는 시점에 따라 대상에 대한 이해나 판단의 내용이 달라진다. 소설을 바르게 이해하고 감상하기 위해서는 시점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예컨대,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소설은 주인공 자신의 미묘한 심리 변화를 직접 드러내 주나, 1인칭 관찰자 시점의 소설은 주변 인물인 관찰자의 눈을 통해 주인공의 심리 변화를 간접적으로 드러내 준다는 점에 유의해서 작품을 읽어야 한다.
대부분의 소설은 하나의 시점을 지니지만, 주제를 더욱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서 두 가지 이상의 시점을 택할 수도 있다.
이 단원에서는, '사랑 손님과 어머니', '상록수'를 읽으며 소설의 시점에 대하여 공부해 보도록 하자.
시점이란? -시점의 정의와 구분
시점의 갈래 -1인칭 시점과 3인칭 시점
시점의 선택 - 이해나 판단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
공부할 내용 -작품 읽고 시점 파악하기
교과서 내용 핵심 정리
시점이란?
인물의 성격이나 행위, 사건 등을 누구의 눈으로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는가, 즉 서술자가 어떤 위치에서 사건을 서술하고 있는가를 말한다.
시점의 종류
1인칭 시점 -소설 속의 '나'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시점
1인칭 주인공 시점 - 주인공이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작품 속의 '나'가 주인공이자 서술자. 독자는 친근감을 느낀다.
주인공의 내면 세계를 그리는데 효과적 예) 김유정의 '동백꽃'
1인칭 관찰자 시점 - 작품 속에 등장하는 부수적 인물인 '나'가 주인공의 이야기를 한다.
'나'는 부차적 인물로서 주인공의 행동이나 사건을 서술한다. 예) 주요섭 '사랑손님과 어머니'
김동인 '붉은 산'
3인칭 시점: 서술자가 소설 밖에서 소설 속의 등장 인물의 성격, 행위 및 사건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시점
3인칭 관찰자 시점 - 서술자가 관찰자의 입장에서 사건과 인물의 외면 서술
서술자의 주관을 배제, 객관적인 태도로 외부적 사실만 관찰. 서술자와 작중 인물 간의 객관성을 유지
전지적 작가 시점 - 서술자가 신처럼 전지 전능한 입장에서 사건과 인물의 내면 심리에 적극 개입
인물의 총체적인 삶의 모습을 다각도로 보여 줄 수 있다.
단원 내용 핵심 정리
사랑 손님과 어머니
갈 래 : 단편 소설, 현대 소설, 심리 소설, 순수 소설
문 체 : 우유체, 경어체, 구어체
성 격 : 서정적, 심리적, 낭만적
제 재 : 사랑 손님과 어머니
주 제 : 인간과 인간 사이에 오가는 미묘한 감정과 관심
시 점 : 1인칭 관찰자 시점
작 가 : 주요섭
글의 특징
전통적인 윤리관 속에서 갈등을 느끼며 전개되는 남녀간의 애정심리를 어린아이의 눈을 텅해 보여주고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개되는 순형적 단순 구성
어른들의 내면 심리를 어린 소녀의 눈을 통해 전달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추리와 상상력을 발휘하도록 표현
상록수
갈 래 : 장편 소설, 현대 소설, 농촌 소설, 계몽 소설
문 체 : 우유체, 만연체
성 격 : 사실적, 계몽적, 의지적, 향토적
구 성 : 전체 소설에서 전개부분으로, 편의상 '발단 - 전개- 위기 - 절정 - 결말'의 5단 구성으로 나눈다.
제 재 : 일제 강점하의 농촌 계몽 운동
주 제 : 농촌 계몽을 위한 헌신적인 봉사 정신과 헌신적인 노력
배 경
시 간 : 1930년대 (일제 강점하)
공 간 : 청석골 (가난한 농촌)
시 점 : 전지적 작가 시점
글의 특징
교과서 수록 부분은 전체에서 '전개' 부분이며, 시간의 흐름에 따른 구성
주인공의 헌신적인 태도와 의지, 민족의 자각과 저항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브나로드 운동(러시아 농촌 계몽 운동)의 영향으로 쓰여진 작품이다.
본문 학습
(1) 사랑 손님과 어머니
발 단
나는 금년 여섯 살 난 처녀애입니다. 내 이름은 박옥희이고요. 우리 집 식구라고는 세상에서 제일 예쁜 우리 어머니와 단 두 식구뿐이랍니다. 아차, 큰일났군. 외삼촌을 빼놓을 뻔했으니…….
지금 중학교에 다니는 외삼촌은 어디를 그렇게 싸돌아다니는지, 집에는 끼니 때 외에는 별로 붙어 있지 않아, 어떤 때는 한 주일씩 가도 외삼촌 코빼기도 못 보는 때가 많으니까요. 깜박 잊어버리기도 예사지요, 무얼.
우리 어머니는, 그야말로 세상에서 둘도 없이 곱게 생긴 우리 어머니는, 금년 나이 스물네 살인데 과부랍니다. 과부가 무엇인지 나는 잘 몰라도, 하여튼 동리 사람들이 날더러 '과부 딸'이라고들 부르니까, 우리 어머니가 과부인 줄을 알지요. 남들은 다 아버지가 있는데, 나만은 아버지가 없지요. 아버지가 없다고 아마 '과부 딸'이라나 봐요.
외할머니 말씀을 들으면, 우리 아버지는 내가 이 세상에 나오기 한 달 전에 돌아가셨대요. 우리 어머니하고 결혼한 지는 일 년 만이고요. 우리 아버지의 본집은 어디 멀리 있는데, 마침 이 동리 학교에 교사로 오게 되었기 때문에, 결혼 후에도 우리 어머니는 시집으로 가지 않고 여기 이 집을 사고(바로 이 집은 우리 외할머니 댁 옆집이지요.) 여기서 살다가 일 년이 못 되어 갑자기 돌아가셨대요. 내가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아버지는 돌아가셨다니까, 나는 아버지 얼굴도 못 뵈었지요. 그러니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아버지 생각은 안 나요. 아버지 사진이라는 사진은 나도 한두 번 보았지요.
참으로 훌륭한 얼굴이에요. 아버지가 살아 계신다면 참말로 이 세상에서 제일가는 잘난 아버지일 거예요. 그런 아버지를 보지도 못한 것은 참으로 분한 일이에요. 그 사진도 본 지가 퍽 오래 되었는데, 이전에는 그 사진을 늘 어머니 책상 위에 놓아 두시더니, 외할머니가 오시면 오실 때마다 그 사진을 치우라고 늘 말씀하셨는데, 지금은 그 사진이 어디 있는지 없어졌어요. 언젠가 한번 어머니가 나 없는 동안에 몰래 장롱 속에서 무엇을 꺼내 보시다가 내가 들어오니까 얼른 장롱 속에 감추는 것을 내가 보았는데, 그게 아마 아버지 사진인 것 같았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우리가 먹고 살 것을 남겨 놓고 가셨대요. 작년 여름에, 아니로군, 가을이 다 되어서군요. 하루는 어머니를 따라서 여기서 한 십 리나 가서 조그만 산이 있는 데를 가서 거기서 밤도 따 먹고, 또 그 산 밑에 초가집에 가서 닭고깃국을 먹고 왔는데, 거기 있는 땅이 우리 땅이래요. 거기서 나는 추수로 밥이나 굶지 않게 된다고요. 그래도 반찬 사고 과자 사고 할 돈은 없대요. 그래서 어머니가 다른 사람의 바느질을 맡아서 해주지요. 바느질을 해서 돈을 벌어서, 그걸로 청어도 사고 달걀도 사고 내가 먹을 사탕도 사고 한다고요.
그리고 우리 집 정말 식구는 어머니와 나와 단 둘뿐인데, 아버님이 계시던 사랑방이 비어 있으니까 그 방도 쓸 겸, 또 어머니의 잔심부름도 좀 해줄 겸 해서 우리 외삼촌이 사랑방에 와 있게 되었대요.
전 개 1
금년 봄에는 나를 유치원에 보내 준다고 해서, 나는 너무나 좋아서 동무아이들한테 실컷 자랑을 하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노라니까, 사랑에서 큰외삼촌이(우리 집 사랑에 와 있는 외삼촌의 형님 말이야요.) 웬 한 낯선 사람 하나와 앉아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큰외삼촌이 나를 보더니,
"옥희야."
하고 부르겠지요.
"옥희야, 이리 온. 와서 아저씨께 인사드려라."
나는 어째 부끄러워서 비슬비슬하니까 그 낯선 손님이,
"아, 그 애기 참 곱다. 자네 조카딸인가?"
하고 큰외삼촌더러 묻겠지요. 그러니까 큰외삼촌은,
"응, 내 누이의 딸……. 경선 군의 유복녀 외딸일세."
하고 대답합니다.
"옥희야, 이리 온, 응! 그 눈은 꼭 아버지를 닮았네그려."
하고 낯선 사람이 말합니다.
"자, 옥희야, 커단 처녀가 왜 저 모양이야. 어서 와서 이 아저씨께 인사드려라. 너의 아버지의 옛날 친구신데, 오늘부터 이 사랑에 계실 텐데 인사 여쭙고 친해 두어야지."
나는 이 낯선 손님이 사랑방에 계시게 된다는 말을 듣고 갑자기 즐거워졌습니다. 그래서 그 아저씨 앞에 가서 사붓이 절을 하고는 그만 안마당으로 뛰어들어왔지요. 그 낯선 아저씨와 큰외삼촌은 소리를 내서 크게 웃더군요.
나는 안방으로 들어오는 나름으로 어머니를 붙들고,
"엄마, 사랑에 큰외삼촌이 아저씨를 하나 데리고 왔는데에, 그 아저씨가아, 이제 사랑에 있는대."
하고 법석을 하니까,
"응, 그래."
하고, 어머니는 벌써 안다는 듯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을 하더군요. 그래서 나는,
"언제부터 와 있나?"
하고 물으니까,
"오늘부텀."
"애구 좋아."
하고 내가 손뼉을 치니까, 어머니는 내 손을 꼭 붙잡으면서,
"왜 이리 수선이야."
"그럼 작은외삼촌은 어데루 가나?"
"외삼촌도 사랑에 계시지."
"그럼 둘이 있나?"
"응."
"한 방에 둘이 있어?"
"왜 장지문 닫고 외삼촌은 아랫방에 계시고, 그 아저씨는 윗방에 계시고, 그러지."
나는 그 아저씨가 어떠한 사람인지는 몰랐으나, 첫날부터 내게는 퍽 고맙게 굴고, 나도 그 아저씨가 꼭 마음에 들었어요.
어른들이 저희끼리 말하는 것을 들으니까, 그 아저씨는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와 어렸을 적 친구라고요. 어디 먼 데 가서 공부를 하다가 요새 돌아왔는데, 우리 동리 학교 교사로 오게 되었대요. 또,
우리 큰외삼촌과도 동무인데, 이 동리에는 하숙도 별로 깨끗한 곳이 없고 해서 윗사랑으로 와 계시게 되었다고요. 또 우리도 그 아저씨한테 밥값을 받으면 살림에 보탬도 좀 되고 한다고요.
그 아저씨는 그림책들을 얼마든지 가지고 있어요. 내가 사랑방으로 나가면 그 아저씨는 나를 무릎에 앉히고 그림책을 보여 줍니다. 또, 가끔 과자도 주고요.
전 개 2
어느 날은 점심을 먹고 이내 살그머니 사랑에 나가 보니까, 아저씨는 그때야 점심을 잡수셔요. 그래 가만히 앉아서 점심 잡숫는 걸 구경하고 있노라니까 아저씨가,
"옥희는 어떤 반찬을 제일 좋아하노?"
하고 묻겠지요. 그래 삶은 달걀을 좋아한다고 했더니, 마침, 상에 놓인 삶은 달걀을 한 알 집어 주면서 나더러 먹으라고 합니다.
나는 그 달걀을 벗겨 먹으면서,
"아저씨는 무슨 반찬이 제일 맛나요?"
하고 물으니까, 그는 한참이나 빙그레 웃고 있더니,
"나도 삶은 달걀."
하겠지요. 나는 좋아서 손뼉을 짤깍짤깍 치고,
"아, 나와 같네. 그럼, 가서 어머니한테 알려야지."
하면서 일어서니까, 아저씨가 꼭 붙들면서,
"그러지 마라."
그러시겠지요. 그래도, 나는 한번 맘을 먹은 다음엔 꼭 그대로 하고야 마는 성미지요. 그래서 안마당으로 뛰어들어가면서,
"엄마, 엄마, 사랑 아저씨도 나처럼 삶은 달걀을 제일 좋아한대."
하고, 소리를 질렀지요.
"떠들지 마라."
하고, 어머니는 눈을 흘기십니다. 그러나 사랑 아저씨가 달걀을 좋아하는 것이 내게는 썩 좋게 되었어요. 그것은 그 다음부터는 어머니가 달걀을 많이씩 사게 되었으니까요. 달걀 장수 노파가 오면, 한꺼번에 열 알도 사고 스무 알도 사고, 그래선 두고두고 삶아서 아저씨 상에도 놓고, 또 으레 나도 한 알씩 주고 그래요. 그뿐만 아니라 아저씨한테 놀러 나가면, 가끔 아저씨가 책상 서랍 속에서 달걀을 한두 알 꺼내서 먹으라고 주지요. 그래, 그 담부터는 나는 아주 실컷 달걀을 많이 먹었어요.
나는 아저씨가 매우 좋았어요 그렇지마는, 외삼촌은 가끔 툴툴하는 때가 있었어요. 아마 아저씨가 마음에 안 드나 봐요. 아니, 그것보다도 아저씨 잔심부름을 꼭 외삼촌이 하게 되니까, 그것이 싫어서 그러나 봐요. 한번은 어머니와 외삼촌이 말다툼하는 것까지 내가 들었어요. 어머니가,
"야, 또 어데 나가지 말고 사랑에 있다가, 선생님 들어오시거든 상 내가야지."
하고 말씀하시니까, 외삼촌은 얼굴을 찡그리면서,
"제길, 남 어디 좀 볼일이 있는 날은 으레 끼니 때에 안 들어오고 늦어지니……."
하고 툴툴하겠지요. 그러니까 어머니는,
"그러니 어쩌겠니? 너밖에 사랑 출입할 사람이 어디 있니?"
"누님이 좀 상 들고 나가구려. 요새 세상에 내외합니까!"
어머니는 갑자기 얼굴이 발개지시고, 아무 대답도 없이 그냥 외삼촌에게 향하여 눈을 흘기셨습니다. 그러니까, 외삼촌은 흥흥 웃으면서 사랑으로 나갔지요.
위 기 1
나는 유치원에 가서 창가도 배우고, 춤도 배우고 하였습니다. 유치원 여자 선생님이 풍금을 아주 썩 잘 쳐요. 그런데, 우리 유치원에 있는 풍금은 예배당에 있는 풍금과는 아주 다른데, 퍽 조그마한 것이지마는 소리는 썩 좋아요. 그런데 우리 집 윗간에도 유치원 풍금과 똑같이 생긴 것이 놓여 있는 것이 갑자기 생각이 났어요. 그래 그 날, 나는 집으로 오는 길로 어머니를 끌고 윗간으로 가서,
"엄마, 이거 풍금 아니야?"
하고 물으니까, 어머니는 빙그레 웃으시면서,
"그렇단다, 그건 어찌 알았니?"
"우리 유치원에 있는 풍금이 이것과 똑같은데 무얼. 그럼 엄마도 풍금 탈 줄 아우?"
하고, 나는 다시 물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이때껏 한 번도, 어머니가 풍금 앞에 앉은 것을 본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아무 대답도 아니하십니다.
"엄마, 이 풍금 좀 쳐 봐!"
하고 재촉하니까, 어머니 얼굴은 약간 흐려지면서,
"그 풍금은 네 아버지가 날 사다 주신 거란다. 네 아버지 돌아가신 후에는, 그 풍금은 이 때까지 뚜껑도 한 번 안 열어 보았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어머니 얼굴을 보니까 금방 또 울음보가 터질 것만 같이 보여서 나는 그만,
"엄마, 나 사탕 주어."
하면서 아랫방으로 끌고 내려왔습니다.
위 기 2
아저씨가 사랑에 와 계신 지 벌써 여러 밤을 잔 뒤입니다. 아마 한 달이나 되었지요. 나는 거의 매일 아저씨 방에 놀러 갔습니다. 어머니는 나더러 그렇게 가서 귀찮게 굴면 못 쓴다고 가끔 꾸지람을 하시지만, 정말인즉 나는 조금도 아저씨를 귀찮게 굴지는 않았습니다. 도리어 아저씨가 나를 귀찮게 굴었지요.
"옥희 눈이 아버지를 닮았다. 고 고운 코는 아마 어머니를 닮았지, 고 입하고! 응, 그러냐, 안 그러냐? 어머니도 옥희처럼 곱지, 응?"
이렇게 여러 가지로 물을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아저씨, 입때 우리 엄마 못 봤어요?"
하고 물었더니, 아저씨는 잠잠합니다. 그래 나는,
"우리 엄마 보러 들어갈까?"
하면서 아저씨 소매를 잡아당겼더니, 아저씨는 펄쩍 뛰면서,
"아니, 아니, 안 돼. 난 지금 분주해서."
하면서 나를 잡아끌었습니다. 그러나 정말로는 무슨 그리 분주하지도 않은 모양이었어요. 그러기에 나더러 가란 말도 않고 그냥 나를 붙들고 앉아서, 머리도 쓰다듬어 주고 뺨에 입도 맞추고 하면서,
"요 저고리 누가 해 주지? ……밤에 엄마하고 한 자리에서 자니?"
하는 등 쓸데없는 말을 자꾸만 물었지요.
그러나 웬일인지 나를 그렇게도 귀애(貴愛)해 주던 아저씨도, 아랫방에 외삼촌이 들어오면 갑자기 태도가 달라지지요. 이것 저것 묻지도 않고, 나를 껴안지도 않고, 점잖게 앉아서 그림책이나 보여 주고 그러지요.
아마 아저씨가 우리 외삼촌을 무서워하나 봐요.
하여튼, 어머니는 나더러 너무 아저씨를 귀찮게 한다고, 어떤 때는 저녁 먹고 나서 나를 방 안에 가두어 두고 못 나가게 하는 때도 더러 있었습니다. 그러나 조금 있다가 어머니가 바느질에 정신이 팔리어서 골몰하고 있을 때, 몰래 가만히 일어나서 나오지요. 그런 때에는 어머니는, 내가 문 여는 소리를 듣고서야 퍼뜩 정신을 차려서 쫓아와 나를 붙들지요. 그러나 그런 때는 어머니는 골은 아니 내시고,
"이리 온, 이리 와서 머리 빗고……."
하고, 끌어다가 머리를 다시 곱게 땋아 주시면서,
"머리를 곱게 땋고 가야지. 그렇게 되는 대로 하고 가면 아저씨가 흉보시지 않니?"
하시지요. 또, 어떤 때에는 머리를 다 땋아 주시고는,
"응, 저고리가 이게 무어니?"
하시면서, 새 저고리를 내어 주시는 때도 있었습니다.
절 정
어느 토요일 오후였습니다. 아저씨는 나더러 뒷동산에 올라가자고 하셨습니다. 나는 너무나 좋아서 가자고 그러니까, 아저씨가
"들어가서 어머니께 허락받고 온."
하십니다. 참 그렇습니다. 나는 뛰어들어가서 어머니께 허락을 맡았습니다. 어머니는 내 얼굴을 다시 세수시켜 주고, 머리도 다시 땋고, 그리고 나서는 나를 아스러지도록 한 번 몹시 껴안았다가 놓아 주었습니다.
"너무 오래 있지 말고, 응."
하고 어머니는 크게 소리치셨습니다. 아마 사랑 아저씨도 그 소리를 들었을 거예요.
뒷동산에 올라가서는 정거장을 한참 내려다보았으나, 기차는 안 지나갔습니다. 나는 풀잎을 쭉쭉 뽑아 보기도 하고, 땅에 누운 아저씨의 다리를 꼬집어 보기도 하면서 놀았습니다. 한참 후에 아저씨와 손목을 잡고 내려오는데, 유치원 동무들을 만났습니다.
"옥희가 아빠하고 어디 갔다 온다, 응."
하고, 한 동무가 말하였습니다. 그 아이는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신 줄을 모르는 아이였습니다. 나는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그 때 나는 얼마나 이 아저씨가 정말 우리 아버지였더라면 하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나는 정말로 한 번만이라도,
"아빠!"
하고 불러 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 그렇게 아저씨하고 손목을 잡고 골목을 지나오는 것이 어찌도 재미가 좋았는지요.
나는 대문까지 와서,
"난 아저씨가 우리 아빠라면 좋겠다."
하고 불쑥 말해 버렸습니다. 그랬더니, 아저씨는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져서 나를 몹시 흔들면서,
"그런 소리하면 못 써."
하고 말하는데, 그 목소리가 몹시도 떨렸습니다. 나는 아저씨가 몹시 성이 난 것처럼 보여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안으로 뛰어들어갔습니다. 어머니가,
"어디까지 갔던?"
하고 나와 안으며 묻는데, 나는 대답도 못 하고 그만 훌쩍훌쩍 울었습니다. 어머니는 놀라서,
"옥희야, 왜 그러니, 응?"
하고 자꾸만 물었으나, 나는 아무 대답도 못 하고 울기만 했습니다.
(2) 상록수
발 단 1
<전략>
글을 배우러 오는 아이들은 거의 날마다 늘었다. 양철 지붕에 널빤지로 엉성하게 지은 조그만 예배당은 수리를 못 해서 벽이 떨어지고, 비만 오면 천장이 새는데, 선머슴 아이들이 뛰고 구르고 하여서 마루청까지 서너 군데나 빠졌다. 그것을 볼 때마다 늙은 장로는
"경비(經費)는 날 곳이 없는데 너희가 예배당을 아주 헐어내는구나!"
하고 머리를 내둘렀다.
더구나, 새로 글을 깨친 아이들이 어느 틈에 분필과 연필(鉛筆)로 예배당 안팎에다가 개발새발 글씨도 쓰고, 지저분하게 환도 친다. 그것을 볼 때마다 장로와 전도사는 상을 찌푸린다.
영신은 여간 미안하지 않아서 하루도 몇 번씩, 그런 짓을 하지 말라고 입이 닳도록 타일렀다. 그러나 속으로는, 제가 피땀을 흘리며 가르친 아이들이 하나둘씩 글눈을 떠 가는 것이 여간 대견치 않아서,
"장로님, 저희도 다로 집을 짓고 나갈 테니, 올 가을까지만 참아 주십시오."
하고, 몇 번이나 용서를 빌었다. 그러면 장로는 대머리를 어루만지며,
"원, 채 선생, 별말씀을 다 하는구려. 다 하나님의 뜻대로 되겠지요. 그게 좀 거룩한 사업이요!"
하고 얼더듬는다. 그럴수록 영신은 사글세집에 들어 있는 만큼이나 불안스러워서, 하루바삐 집을 짓고 나가려고 아니 해 보는 궁리가 없었다.
발 단 2
그러나 워낙 가난한 동네인데다가 그나마 돈이 한창 마른 때라, 기부금은 적어 놓은 액수의 십분의 일도 걷히지를 않고, 친목계원(親睦契員)들이 봄누에를 쳐서, 한 장 치에 열서너 말씩이나 땄건만, 고치값이 사뭇 떨어져서, 예산한 금액까지 되려면 어림도 없다. 닭도 집집마다 개량식으로 쳤지만, 모이를 먹인 것과 레그혼 같은 서양 종자의 어미닭값을 따지고 보면, 달걀값과 비겨 떨어진다. 그러니
줄잡아도 오륙백 원이나 들여야 할 학원을 지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영신이가 하도 집을 짖지 못해서 성화를 하니까, 다른 회원들은
"급히 먹는 밥이 체한다오. 우리 선생은 성미가 퍽 급해서……"
하고 위로하듯 하기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럴수록 아니들은 한꺼번에 대여섯 명, 어떤 때에는 여남은 명씩 부쩍부쩍 는다. 보통 학교가 시오 리 밖이나 되는 곳에 있고, 간이 학교라고 새로 생긴 것도 장터까지 가서야 있으니, 배움에 목마른 아이들은, 등잔불로 날아드는 나방처럼 청석골로만 모여들 수밖에 없는 형세다. 요새 들어온 아이들까지 합하면 거의 백삼십여 명이나 된다.
발 단 3
그러나 처소가 좁다는 이유로, 한 아이도 더 수용할 수 없다고, 오는 아이들을 좇을 수는 없다.
영신은
"아무나 오게, 아무나 오게"
하는 찬송가(讚頌歌) 구절을 입 속으로 부르며, '오냐, 예배당이 터지도록 모여라. 여름만 되면 그늘도 좋고, 달밤이면 등불도 일없다.' 하고, 들어오는 대로 받아서, 그 곳 보통학교를 졸업한 젊은 사람들의 응원(應援)을 얻어, 남자와 여자, 초급과 상급으로 반을 나누어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영신을 숭배하고 일을 도와주는 순진한 청년이 서너 명이나 되지만, 그 중에도 주인집의 외아들인 원재는, 영신의 말이라면 절대로 복종을 하는 심복이었다. 같은 집에 살기도 하지만, 상급 학교에는 가지 못하는 처지라, 새새 틈틈이 영신에게서 중등 학교 과겅을 배우는 진실한 청년이다.
가뜩이나 후락(朽落)한 예배당 안은 콩나물 기르는 것처럼 아이들로 빽빽하다. 선생이 비비고 드나들 틈이 없을 만큼 꼭꼭 찼다. 아랫반에서,
"'가' 자에 ㄱ하면 '각' 하고"
"'나' 자에 ㄴ하면 '난' 하고"
하면서, 다리도 못 뻗고 들어앉은 아이들은 고개를 반짝 들고 칠판을 쳐다보면서, 제비 주둥이 같은 입을 일제히 벌렸다 오므렸다 한다. 그러면 윗반에서는 '농민 독본'을 펴놓고,
"잠자는 자 잠을 깨고,
눈먼 자 눈을 떠라
부지런히 일을 하여
살 길을 닦아 보세."
하고 목청이 찢어져라고 선생의 흉내를 낸다. 그 소리를 가까이 들으면 귀가 따갑도록 시끄럽지만, 멀리 축동 밖에세 들을 때,
'아아, 너희가 인제야 눈을 떠 가는 구나!'
하여, 영신은 어깨춤이 저절로 났다.
전 개 1
그러던 어느 날 저녁때였다. 영신의 신변을 노상 주목하고 다니던 순사가 나와서, 다짜고짜
"주임이 당신을 보자는데, 내일 아침까지 주재소로 출두를 하시오."
하고 한마디를 이르고는, 말대답을 들을 사이도 없이 자전거를 되짚어 타고 가 버렸다.
―― 무슨 일로 호출을 할까?
―― 강습소 기부금을 오백 원까지 모금을 해도 좋다고 허가를 해 주지 않았는가?
영신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웬만한 일 같으면 출장 나온 순사에게 통지만 해도 그만일 텐데, 일부러 몇십 리 밖에서 호출까지 하는 것은 무슨 까닭이 붙은 일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영신이가 처음 내려오던 해부터 이 일 저 일에 줄곧 간섭을 받아 왔지만, 강습소 일이나 부인 친목계며, 그 밖에 하는 일을 잘 양해시켜 오던 터라, 더욱 의심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별별 생각이 다 나서, 영신은 그 날 밤 잠을 잘 자지 못하고, 이튿날 새벽밥을 지어 달래서 먹고는 길을 떠났다. 이십 리는 평탄한 신작로였지만, 나머지는 가파른 고개라, 넘느라고 발이 부르트고 속옷은 땀에 젖었다.
영신과 주재소 주임 사이에 주고받는 대화나 그 밖의 이야기는 기록하지 않는다. 그러나 호출한 요령만 따서 말하면,
"첫째는, 예배당이 좁고 후락해서 위험하니, 아동을 팔십 명 이상은 한 사람도 더 받지 말라는 것과, 둘째는 기부금을 내라고 돌아다니며 너무 강제 비슷이 청하면 법률에 저촉이 된다."
는 것을 단단히 주의시키는 것이었다. 영신은 여러 가지로 변명도 하고, 오는 아이들을 아니 받을 수는 없다고 사정사정하였으나,
"상부의 명령이니까, 말을 듣지 아니하면 강습소를 폐쇄시키겠다."
고 을러메어서, 영신은 하는 수 없이 입술을 깨물고 주재소 문 밖을 나왔다.
그는 아픈 다리를 끌고 돌아와서, 저녁도 아니 먹고, 그 날 밤을 꼬박 새우다시피 하였다.
전 개 2
'참자! 이보다 더한 것도 참아 왔는데, 이러한 일이야 참지 못하랴.'
하면서도, 좀더 시원하게 들이대지를 못하고 온 것이 종시 분하였다. 그러나 혈기를 참지 못하고 떠들었다가는, 제한받은 수효의 아이들마저 가르치지 못하게 될 것을 생각하고 꿀꺽 참았던 것이다. 아무튼, 어길 수 없는 명령이매, 내일부터 팔십 명만 남기고, 나머지는 쫓아 내야 한다. 제 손으로 쫓아 내야만 한다.
"난 못 하겠다. 차라리 예배당문에 못질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내 손으로 차마 그 노릇은 못 하겠다."
하고 영신은 부르짖으며, 방바닥에 가 쓰러져 버렸다. 한참 동안이나 엎치락뒤치락하며 홀로 고민을 하였다.
그는 불을 끄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다.
그러나 이제까지 갖은 고생과 갖은 곤욕을 당해 오면서, 공들여 쌓은 탑을 그 밑동부터 제 손으로 허물어뜨릴 수는 없다.
청석골 와서 몇 가지 시작한 사업 중에, 가장 의미 깊고 성적이 좋은 한글 강습소를 중도에서 손을 뗄 수는 도저히 없다.
―― 어떡하면 나머지 오십 명을 돌려 보낼꼬?
―― 이제까지 두말 없이 가르쳐 오다가, 별안간 무슨 핑계로 가르칠 수가 없다고 한단 말인가?
거짓말을 하기는 죽어라고 싫건만, 무어라고 꾸며 대지 않을 수도 없는 사세다. 아무리 곰곰 생각해 보아도 묘책이 나지를 않아서, 그는 하룻밤을 하얗게 밝혔다.
창 밖에 새벽별이 차차 빛을 잃어 갈 때, 영신은 세수를 하고 나와서 예배당으로 올라갔다.
땅위의 모든 것이 아직도 단꿈에서 깨지 않아, 천지는 함께 괴괴하다.
영신은 이슬이 축축이 내린 예배당 층계에 엎드려,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를 올렸다.
"주여 ! 당신의 뜻으로 이 곳에 모여든 귀엽고 사랑스러운 어린 양들이, 오늘은 그 삼분의 일이나 목자를 잃게 되었습니다. 다시 어둠 속에서 헤맬 수밖에 없이 되었습니다.
주여! 그 가엾은 무리가 낙십하지 말게 하여 주시고, 하나도 버리지 마시고, 다시금 새로운 광명을 받을 기회를 내려 주시옵소서!
오, 주여! 저의 가슴이 메어질 듯합니다!"
영신은 햇발이 등 뒤로 비추며 떠오를 때까지 그대로 엎드린 채 소리 없이 흐느껴 울었다.
위 기 1
월사금 육십 전을 못 내고 몇 달씩 밀려 오다가 보통 학교에서 쫓겨난 아이들이, 그 날도 두 명이나 식전에 책보를 들고 그 학교 모표를 붙인 채 왔다.
"애들아, 참 정말 안됐지만 이젠 앉을 데가 없어서 받을 수가 없으니, 가을부터 오너라. 얼마 있으면 새 집을 커다랗게 지을 텐데, 그 때 꼭 불러 주마, 응."
하고 영신은 그 아이들의 이름을 적고는, 등을 어루만져 주며 간신히 돌려 보냈다. 그리고는 다른 아이들이 오기 전에 예배당으로 들어갔다.
잠 한숨 자지를 못해서 머리가 무겁고 눈이 빡빡한데, 교실 한복판에 가서 한참 동안이나 실신한 사람처럼 우두커니 섰자니, 어찔어찔하고 현기증이 나서, 이마를 짚고 있다가, 다리를 간신히 떼어 놓으며 칠판 앞으로 갔다.
그는 분필을 집어 가지고 교단 앞으로 삼분의 일 가량 되는 데까지를 와서는, 동쪽 끝부터 서쪽 창 밑까지 한 일(一)자로 금을 죽 그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가 예배당 문을 한쪽만 열었다. 아이들은 여느 때와 조금도 다름이 없이 재깔거리며 앞을 다투어 우르르 몰려들어온다.
영신은 잠자코, 맨 먼저 온 아이부터 하나씩 둘씩 차례차례로, 분필로 그어 놓은 금 안으로 앉혔다. 어느덧 금 안에는 제한받은 팔십 명이 찼다.
"나중에 온 아이들은 이 금 밖으로 나가 앉아요. 떠들지들 말고."
선생의 명령에, 늦게 온 아이들은 영문도 모르고, 오늘은 왜 이럴까 하는 표정으로 선생의 눈치를 할끔할끔 보며, 금 밖에 가서 쪼그리고 앉는다.
아이들에게 제비를 뽑힐 수도 없고, 하급생이라고 몰아 내는 것도 공평하지가 못할 듯해서, 영신은 생각다 못해, 나중에 오는 아이들을 돌려 보
내려는 것이다. 나중에 왔다고 해도, 시간으로 보면 불과 십 분 내외의 차이밖에 나지 않지만, 그렇게 하는 도리 이외에 아무 묘책이 없었던 것이다.
영신은 아이들을 다 돌려 앉힌 뒤에, 원재와 다른 청년들에게, 그제야 그 사정을 귀띔해 주었다. 그런 소문이 미리 나면 일이 더 복잡해질 것을 염려하였기 때문이다.
그 말을 듣는 청년들의 얼굴빛이 금방 흙빛으로 변하였다.
"암말도 말고, 나 하라는 대로만 장내를 잘 정돈해 줘요. 자세한 얘긴 이따가 할게."
청년들은 영신을 절대로 신입하는 터이라,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침통한 표정을 지을 뿐이다.
위 기 2
영신은 찬찬히 교단 위에 올라섰다. 그 얼굴빛은, 현기증이 나서 금방 쓰러지려는 사람처럼 해쓱해졌다.
아이들은
― 선생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저러시나?
하고, 저희들 깐에도 보통 때와는 그 기색이 다르다는 것을 살피고는, 기침 하나 아니 하고 영신을 쳐다본다.
영신은 입술만 떨며 얼른 말을 꺼내지 못하고 섰다. 사제 간의 정을 한칼로 베어 내는 것 같은, 마루바닥에 그어 놓은 금을 내려다보고, 그 금 밖에 오십여 명 아동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무슨 무서운 선고나 내리기를 기다리는 듯한 그 천진한 얼굴들을 바라볼 때, 영신은 눈시울이 뜨끈해지며 목이 막혀서 말을 꺼낼 수가 없다. 한참만에야 그는 용기를 내었다. 그러다가 풀이 죽은 목소리로,
"여러 학생들, 조용히 들어요. 오늘은 선생님이 차마 하기 어려운 섭섭한 말을 할 텐데……."
하고 나서, 주저주저하다가
"저…… 금 밖에 앉은 아이들은 오늘부터 공부를…… 시킬 수가…… 없게 됐어요."
하였다. 청천(靑天)의 벽력은 무심한 어린이들의 머리 위에 떨어졌다. 깜박깜박하고 선생을 쳐다보던 수없는 눈들이 모두 꽈리처럼 똥그래졌다.
"왜요? 선생님, 왜 글을 안 가르쳐 주신대요?"
그 중에 머리가 좀 굵은 아이가 발딱 일어나며 질문을 한다. 영신은 순순히 타이르듯이, "집이 좁아서 팔십 명밖에는 더 가르칠 수가 없게 되었다."는 것과, "올 가을에 새 집을 지으면 꼭 잊어버리지 않고,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불러 주마."고 빌다시피 하였다.
"그럼 이 때까지는 이 좁은 데서 어떻게 가르쳐 주셨어요?"
이번에 목소리가 팬 남학생의 질문이 들어왔다. 영신은 화살이나 맞은 듯이 가슴 한복판이 뜨끔하였다. 그 말 대답을 못 하고, 머리가 핑 내둘려서 이마를 짚고 섰는데, 금 밖에 앉았던 아이들이 하나 둘, 앉은 채 엉금엉금 기어서, 혹은 살금살금 뭉치면서 금 안으로 밀려 들어오다가,
"선생님!"
"선생님! 선생님!"
하고 연거푸 부르더니, 와르르 교단 위까지 뛰어오른다.
위 기 3
영신은 오십여 명이나 되는 아이들에게 에워싸였다.
"선생님!"
"선생님!"
"전 벌써 왔어요."
"뒷간에 갔다가 조금 늦게 왔는데요."
"선생님, 난 막둥이보다도 먼저 온 걸 차순이도 봤어요."
"선생님, 내일부터 일찍 올게요. 선생님보다도 일찍 올게요."
"선생님, 좀 보세요. 절 좀 보세요! 인젠 아침도 안 먹고 올게, 가라고 그러지 마세요. 네, 네?"
아이들은 엎드러지며 꼬꾸라지며 앞을 다투어 교단 위로 올라와서, 등을 밀며 넘어지는 아이에, 발등을 밟히고 우는 아이에, 가뜩이나 머리가 띵한 영신은 정신이 아찔아찔해서, 강도상 모서리를 잡고 간신히 서 있다. 제 몸뚱이로 버티고 선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포위를 당해서, 쓰려지려는 몸이 억지로 떠받들려 있는 것이다.
"선생님!"
"선생님!"
아이들의 안타까운 부르짖음은 귀가 따갑도록 그치지 않는다. 그래도 영신은 눈을 내려감고,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 뿐…….
"내려들 가!"
"어서 내려들 가거라!"
"말 안 들으면 모두 내쫓을 테다."
하면서, 영신을 도와 주는 청년들이 아이들을 끌어내리고, 교편을 들고 을러메건만, 그래도 아이들은 울며불며, 영신의 몸에 철거머리처럼 달라붙어서, 죽기로 기를 쓰고 떨어지지 않는다.
영신의 저고리가 수세미가 되고, 치마주름까지 주르르 뜯어졌다. 어떤 계집애는 다리에 깍지를 끼고 엎드려 꼼짝을 못 하게 한다.
영신은 뜯어진 치마폭을 휩싸 쥐고, 그제야
"놔라, 놔! 얘들아, 저리들 좀 가 있어라. 원, 숨이 막혀서 죽겠구나."
하며, 몸을 뒤틀며 손과 팔에 매달린 아이들을 가만히 뿌리쳤다. 아이들은 한번 떨어졌다가도 혹시나 제가 빠질까 하고 다시 극성스레 달라붙는다.
이 광경을 본 교회의 직원들이 들어와서, 강제로, 금 밖에 앉은 아이들을 예배당 밖으로 내몰았다.
사내아이, 계집아이 할 것 없이, 어머니의 젖을 억지로 뗀 것처럼, 눈이 빨개지도록 홀짝홀짝 울면서, 또는 흑흑 흐느끼면서 쫓겨 나갔다.
절 정 · 결 말
아이들의 등 뒤에서 이 정경을 바라보던 영신은 어리었던 눈물이 주르르 흘려내렸다. 영신은 그 눈물을 아이들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소매로 얼굴을 가리며 돌아섰다. 한참이나 진정 하고 나서는, 저희들 깐에도 동무들을 내쫓고 공부를 하게 된 것이 미안쩍은 듯이 머리를 떨어뜨리고 앉은 나머지 여
든 명을 정돈 시켜 놓고, 차마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칠판 앞으로 갔다. 그는 새로운 과정을 가르칠 경황이 없어서,
"오늘은 우리 복습이나 하지."
하고, 교과서로 쓰는 '농민 독본'을 펴 들었다. 아이들은 독본에 있는 대로,
"누구든지 학교에 오너라."
"배우고야 무슨 일이든지 한다."
하고, 풀이 죽은 목소리로 외기를 시작한다.
영신은 그 생기 없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듣기 싫은데, 든 사람은 몰라도 난 사람은 안다고, 이가 빠진 듯이 띄엄띄엄 벌여 앉은 교실 한 귀퉁이가 빈 것을 보지 않으려고 유리창 밖으로 눈을 돌렸다.
창 밖을 내다보던 영신은 다시금 콧마루가 시큰해졌다. 예배당을 두른 야트막한 담에는 쫓겨나간 아이들이 머리만 내밀고 족 매달려서, 담 안을 넘어다보고 있지 않는가! 고목이 된 뽕나무 가지에 닥지닥지 열린 것은 틀림없는 사람의 열매다. 그 중에도 키가 작은 계집애들은 나무에도 기어오르지 못하고, 땅바닥에 가 주저 않아서 홀짝거리고 울기만 한다.
영신은 창문을 열어 젖혔다. 그리고 청년들과 함께 칠판을 떼어, 담 밖에서도 볼 수 있는 창 앞턱에다 버티어 놓고, 아래와 같이 커다랗게 썼다.
"누구든지 학교에 오너라."
"배우고야 무슨 일이든지 한다."
나무에 오르고 담에 매달린 아이들은 일제히 입을 열어, 목구멍이 찢어져라고, 그 독본의 구절을 바라다보고 읽는다. 바락바락 지르는 그 소리는 글을 외는 것이 아니라, 어찌 들으면 누구에게 발악을 하는 것 같다. <후략>
이 소설의 줄거리에
<상록수>는 경성농업을 졸업하고 진학하라는 권유를 물리치고 부곡리에서 '공동경작회'를 만들어 농촌운동을 일으킨 장질 심재영을 모델로 하여 수원군 반월면 천곡리에서 활동하다가 죽은 최용신과의 허구적 로맨스를 만들어 씌어진 소설이다. <상록수>에는 심재영이 박동혁으로 최용신이 채영신으로 주인공이 되어 있고, 심재영이 한 '공동경작회'는 '농우회'로 샘골이 청석골로 바뀌어져 있으며, 심재영은 작품과의 인연으로 최용신의 무덤을 찾아보기도 했다고 한다. <상록수>는 당시 브나로드 운동의 선봉에 서서 농촌활동을 하는 박동혁과 채영신의 헌신적인 봉사와 둘 사이에 얽혀지는 사랑을 내용으로 한 소설이다. 청석골을 다듬어지고 가꾸어진 성취된 사회로 만들려는 지향적 욕구와 식민지 치하라는 존재적 현실 사이의 갈등과 그 비극적인 현실을 그린 농민소설이다.
<상록수>에서 여러 촌로(村老)의 거부와 일제의 가혹한 탄압 속에서 청석골을 낙후되고 고질화된 농촌에서 보다 활기차고 운명을 같이하는 공동체로서의 한 이상향으로 변혁시키기 위하여 채영신과 박동혁이 각기 청석골과 한곡리에서 농우회를 조직하고 야학을 운영하여 '갱생의 광명은 농촌으로부터' '아는 것이 힘이다, 배워야 산다' '일하기 싫은 사람은 먹지도 마라 !' 등의 기치 밑에서 낡은 관습에 젖어 잠자고 있는 농촌을 일깨워 새로운, 갱생되고 다 같이 웃고 살 수 있는 한 낙원을 건설하기 위하여 전력을 다한다. 안에서의 관습에 의한 방해와 밖에서의 일제의 탄압을 극복하면서 그날을 성취하려는 집요한 의지와 행동이 보인다.
[교과서 앞의 내용] 영신과 동혁은 xx신문사 주최 계몽 운동에 가담했던 열성파들로서, 주최측이 계몽 운동에 가담했던 열성파들로서, 주최측이 베푼 위로회 석상에서 체험담을 발표한 것이 계기가 되어 서로의 이상이 같음을 알고 가까워진다. 동혁은 학교를 중단하고 고향인 서해안의 한곡리로 돌아가 계몽 운동을 벌이고, 영신은 기독 청년회 농촌 사업부의 특파원 자격으로 경기도 청석골로 내려가 농촌 계몽 운동에 투신한다.
[교과서 뒤의 내용] 영신은 청석골에서, 동혁은 한곡리에서 갖은 고생을 해 가면서 그들의 일에 심혈을 기울인다. 동혁은 악덕 지주 강기천의 농간에 휘말리다가 투옥된다. 또한, 일본에 신학을 공부하러 갔던 영신은 심한 각기병으로 청석골로 다시 돌아왔는데, 과로와 맹장염으로 낙성식날 졸도하여 끝내 숨을 거둔다. 출감한 동혁은 영신의 죽음을 알고, 비탄에 잠기나, 곧 두 사람 몫을 해낼 것을 굳게 맹세한다.
상록수 전편의 구성
[발단] 영신과 동혁의 만남
[전개] 동혁은 한곡리로 가서 농촌 계몽 활동을 하고, 영신은 청석골에서 야학 활동을 함
[위기] 영신은 갖은 어려움 끝에 모금한 돈으로 학원을 짓는데 지나친 과로로 쓰러지게 됨. 영신을 간호하고 돌아간 동혁이 일제의 간교로 인해 경찰에 잡혀 감.
[절정] 동혁이 감옥에서 나오던 날 영신이 죽음.
[결말] 동혁이 영신의 관을 안고 울면서 새롭게 결심함
참고 자료
[현상 모집에 당선] 동아 일보는 창간 15주년을 맞이하여, 농. 어 .산촌을 배경으로 하고 진취적인 청년을 인물로 하는 장편 소설을 현상 모집하였다. 당선작인 '상록수'는 1935년 9월10일부터 다음 해 1936년 2월 15일까지 연재되었다.
[브나로드 운동] 브나로드는 '민중 속으로'라는 뜻의 러시아 말. 1870년 제정 러시아에서 청년 귀족과 학생들이 주동이 되어 농민을 주체로 한 사회 개혁을 이루고자 전개한 계몽 운동. 동아 일보에서 1931년부터 이 운동을 전개하다가 1935년 일제의 탄압으로 중단됨. 여기서 나온 작품이 이광수의 '흙, 심훈의 '상록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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