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려타곤(懶驢 坤) 31-2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고 시간도 많이 걸려요. 어쩌면 우리가 늙어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을 때가 되어서----." 정옥은 아내의 말을 들으면서 절망했다. 천하에서 제일 예쁜 마누라를 얻었다고 좋아했다가, 이제 천하에서 못생긴 여자가 되어버린 아내와 평생을 같이 살 생각을 하니 미칠 것 같았다. "처남의 능력이라면 어떻게 안될까?" 방수련은 고개를 흔들었다. 이런 일은 누가 도와준다고 해서 쉽게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었고 오직 스스로의 노력에 달린 일이었다. "우리 일은 나중에 의논하고 지금은 먼저 화련 누나의 장례식부터 해야 되요." "그래, 그럼 우리 일은 나중에 의논하기로 하지. 전에 듣자하니 자식이 있다며? 만주에서 산다는 그 자식이 여기에 와야 장례식을 치르든지 말든지 할 거 아닌가?" "올 수 있을지 확신할 수가 없어서--. 언제까지 시신을 이곳에 방치할 수도 없는 일이고--." "그놈의 홍방과 운룡회도 완전히 망했고--, 솔직히 청방도 망했어. 남은 것은 칠호라는 자인데--. 그자는 완전히 모습을 감춰서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고---." 자꾸만 말을 흐리고 있는 남편을 향해 방수련이 화가 난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예요?" "우리도 그만 이곳을 떠나는 것이 어떨까? 또 언제 그놈이 이곳에 쳐들어올지도 모르는 일이고---." 남편의 말에 방수련은 어이없다는 듯 입을 열어 말했다. "지금 이곳에는 소구가 있고 내가 있어요. 거기다 취하와 취앵이가 있지요. 칠호라는 놈이 다시 여기로 온다면 그 순간이 죽는 순간일걸요?" "지금은 그렇지. 하지만---. 여보 다시 생각해 보구려. 넷이 언제까지 이곳에서 꼼짝 않고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요? 거기다 처남이 죽인 사람들---. 군산에 모여 있는 무리들이 백초당을 적대한다고 해서 몽땅 다 죽여버렸으니--. 그 사람들도 사람이요. 그 사람들도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단 말이오. 백초당에 원한을 품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졌소. 아무리 강하다해도 영원히 버틸 수 있다고는 믿을 수 없구려." 남편의 말에 방수련은 침묵했다.
두 명의 시종만을 데리고 자금성을 벗어난 소년 황제 현엽은 개봉까지 최대한 빨리 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그 길을 방해하는 무리들을 곳곳에서 만나야 했다. 평민들이 입는 옷을 입고 있었지만, 비단으로 만들어진 옷을 입고 있는 현엽의 모습은 부티가 줄줄 넘쳐흐르고 있었고, 당연히 있는 자의 것을 뺏어서 나눠 써야 된다고 생각하는 무리들의 눈에 띨 수밖에 없었다. 현엽은 골치가 아프다는 얼굴로 자신이 궁에서 데리고 나온 시종들과 싸우고 있는 산적의 무리들을 바라보다 신경질 적으로 소리쳤다. "죽여도 좋다!" 시종들을 향해 그렇게 소리치면서 현엽 역시 등에 메고 있던 한 자루의 검을 뽑아들고, 말들을 박차고 위로 뛰어올랐다. 푸른 검기가 맺힌 한 자루의 검이 허공에서 머리 위를 내리쳐 오자, 산적들 중의 하나가 검을 위로 비껴들며 막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현엽의 검은 산적의 검을 베고 목까지 한꺼번에 베어버렸다. 쇠를 두부처럼 베는 현엽의 검에 검기까지 맺혀 있으니, 산적들이 실력으로 그 일검을 막기에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근보와 또 한명의 시종인 엽관은 한 손에 검을 든 챈 멍한 얼굴로 싸움 상대를 빼앗아서 모조리 죽이고 있는 그들의 주군을 바라보았다. 획하는 바람 소리를 내며 소년 황제가 움직일 때마다 시체 한구가 늘어나고, 일각이 지나지 않아서 그들의 앞길을 막고 재물을 빼앗으려는 산적들은 모조리 죽어버렸다. 검에 묻은 피를 땅에 털어 내고 다시 말 위에 오른 현엽은 근보를 바라보며 물었다. "근보야, 앞으로 그곳까지는 얼마나 남았느냐?" "적어도 사흘은 더 가야 할 것입니다." "객잔에서 쉬어가지 않고 간다면?" "그럼 내일 저녁 무렵에는 도착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좋다. 그럼 쉬지 않고 계속 간다." 말 위에 올라탄 세 사람은 다시 개봉이 있는 서쪽을 향해 말을 달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지나가고 있는 뒤에는 열 세 구의 시신이 땅에 아무렇게나 널려 있었다. 개봉까지 무지막지하게 말을 달려온 세 사람은 모두 허벅지가 쓸리고 까진 상태였다. 말에서 내린 현엽이 어기적거리며 문 앞으로 다가가며 물었다. "근보야, 이곳이냐?" "예, 이곳이 바로 그분의 집입니다." 안으로 들어서는 현엽 일행을 막아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커다란 담장 안에는 건물 대신 곳곳에 천막들이 들어서 있었다. 그 중 한 천막에서 밖으로 나오고 있는 수척한 안색에 피묻은 옷을 입고 있는 한 사람을 발견하고 현엽은 달려가며 소리쳤다. "숙부님!" 방소구는 소리치며 달려오는 자신의 조카를 바라보았다. 거의 올 수 없을 것이라고 포기하던 조카를 이곳에서 보리라고는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천막 안에 머물고 있던 또 한 사람이 천천히 걸음을 옮겨 천막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아직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서 양려군의 부축을 받으며 밖으로 나온 방종구는 처음으로 보는 누이동생의 아들을 바라보았다. 형제는 말없이 자신들의 조카를 바라보았다. "네가 현엽이냐?" 먼저 말을 꺼낸 것은 방종구였다. 방종구의 질문에 현엽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까지 오느라고 고생이 많았겠구나. 일단 안으로 들어가자."
커다란 천막 안의 한 가운데 놓인 관속에 누워 있는 어머니 방화련의 시신을 내려다보며 현엽의 눈가에는 소리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머니의 얼굴을 다시 보기까지 참으로 긴 세월이 필요했던 것이다. 방씨의 형제들 셋과 이제 외인이라 할 수 없는 신기서생과 현엽이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앉아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방화련의 시신이 안치된 관 앞에서 다섯은 앞으로의 일을 의논하기 시작했다. 천막 밖에서는 취하와 취앵이 이 안에서 나누는 대화가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지키고 있었다. 관에서 시선을 돌린 현엽이 방종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제가 조사한 바로는 어머니의 죽음에 관계한 자들이 마교의 인물들이라는 것이고, 운남(雲南)을 지배하고 있는 오삼계과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삼계? 그자가 이 일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것이지?" 방종구의 질문에 현엽은 등봉현의 관아에서 조사한 내용이 담긴 서류를 넘겨주며 말했다. "그 마교의 인물들 열 넷의 시신 속에서 오삼계의 직인이 찍힌 신분증명서와 여행 허가증이 있었습니다." 대화를 나누고 있는 조카와 형의 모습을 보면서 방소구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안았다. 두 사람의 머리 속에서 떠오르고 있는 복잡한 생각들이 모두 방소구의 머리 속으로 흘러 들어오고 있었다. '어머니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자들은 모조리 죽여버려야 돼. 마교의 일은 숙부가 해결할 테고--, 내가 오삼계를 맡아야겠지? 내가 동원할 수 있는 군사가 얼마나 될까? 광동의 경정충과 복건의 상지신이 오삼계와 합치지 않도로 손을 써야 할 텐데----.' 복잡한 정치 상황과 군사력의 비교 그리고 들어갈 비용에 대한 계산을 끊임없이 머리 속에 떠올리고 있는 조카의 생각과 함께 오랜 시간 동안의 동면에서 깨어난 형 방종구의 머리도 복잡하기만 한 상태였다. '화련이를 자살하게 만든 놈들을 가만 놔둘 수는 없는 일이지만, 아직 살아있는 우리 가족의 안녕을 생각해야 돼. 깨어나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양매와 혼인하는 일인 줄 알았더니---. 청방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 놓았던 세력은 너무 약해져서 있으나 마나한 상태가 되어버렸고, 백초당의 사업도 지금 심각하게 위태롭다. 이런 상황에서----.' 두 사람의 생각뿐만이 아니었다. 매형인 신기서생의 머리 속에서 떠오르고 있는 추녀가 되어버린 누나의 모습에 대한 생각과, 살고싶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는 누나가 생각하고 있는 모든 것이 여과 없이 방소구의 머리 속으로 흘러 들어오고 있었다. 동시에 방소구의 머리 한 구석에서는 옛날에 구정문 사부가 해주던 말이 떠오르고 있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이 보인다는 것을 견딜 수 없기 때문에 혼천지계라 명명된 단절된 공간 속에서 산다고 하셨지? 정말 그렇구나. 더 이상 견디기 힘든데---. 언제까지 참아야 할까?' 다른 사람의 생각과 자신의 생각을 동시에 하고 있는 소구는 머리가 빠개질 듯 아파 왔지만, 꾹 참고 의논이 끝나길 기다렸다. "소구야, 넌 무슨 할 말이 없냐?" 형 방종구의 질문에 소구는 얼굴을 찡그리면서 대답했다. "별로--, 난 할 말이 없어." 이렇다할 결론도 내놓지 못하는 상태에서 회의는 흐지부지 끝나버리고, 잠시 뒤 현엽은 하얀 상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어머니인 방화련의 시신 앞에 무릎을 꿇고 않아 평생 처음으로 마음놓고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단 한번도 어머니를 어머니라 부를 수 없었고,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었던 어머니였기에 현엽의 설움은 더욱 컸다.
방소구는 백초당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로 몸을 피했다. 백여장이나 떨어진 거리였지만 백초당에서 울려 퍼지는 곡소리는 언덕 위까지 들려오고 있었다. 바위 위에 걸터앉아 앙상한 나뭇가지만 남아 있는 나무들을 바라보며 소구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으-- 이대로 있다간 또 심마(心魔)가 찾아오는 것이 아닐까? 전 번에도 취하와 취앵이를 죽일 뻔했는데---. 조금만 더 있다간 가족들을 모두 내 손으로 죽이는 일이 생길지도 몰라--." 다른 사람의 마음속이 들여다보이는 경지에 이른 소구는 불안했다. 자신이 이성을 잃고 가족들을 죽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집 밖으로 나와 있지만, 여전히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시야가 미치는 곳에는 한 걸음이면 다가갈 수 있는 능력도 생긴 탓에, 집 안에 있으나 집 밖에 있으나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사람들과 멀리 떨어진 언덕 위에 홀로 있는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들이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소구의 머리 속으로 끊임없이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안되겠다. 이대로 다시 혼천지계로 들어가는 거야. 나중에 이 상황에서 벗어나게 되면 그 때----." 말을 하는 사이 소구의 몸은 언덕 위에서 점점 흐릿해져 가고, 백초당의 담장 위에 앉아서 사방을 감시하고 있던 취하와 취앵은 서로를 서글픈 얼굴로 바라보았다. '취하야, 우리 버림받은 것일까?' 취앵이 전음으로 질문했다. '아니야, 우리를 생각해서 사라진 것이야. 도련님도 자신의 상태가 안 좋다는 것을 알고 있어--. 우리를 죽이고 싶지 않아서 모습을 감춘 거야.' 둘이 전음으로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언니의 시신이 안치된 관 옆에 앉아 있던 방수련은 벌떡 몸을 일으켜 세우면서 소리쳤다. "소구야!" 방화련의 시신이 안치된 관이 있는 천막에 모여 있는 모두가 갑작스러운 방수련의 행동에 놀라 그녀를 바라보았다. 면사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방수련은 멍하니 허공만을 응시하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가족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소구가 떠났어요." "여보, 그게 무슨 소리요?!" 정옥이 아내의 말에 놀라 물었다. 이제 백초당과 청방의 힘을 막을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었고, 중원의 상계와 무림을 백초당이라는 이름과 청방이라는 이름으로 지배할 수 있게 된 상황이었다. 천하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아내가 너무나 추하게 변한 상태에서 정옥의 유일한 위안이 되었던 것은 자신의 손으로 세상을 지배하고 경영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처남인 방소구가 없으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었다. "말 그대로 떠났다구요." 방수련은 우울한 목소리로 다시 한번 같은 말을 반복했다. "이모님, 숙부님이 떠나시다니요? 어디로 가셨단 말입니까?" 현엽이 소매로 얼굴의 눈물자국을 훔치며 면사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이모 방수련을 바라보며 물었다. 방수련은 말을 하지 않고 자신을 바라보는 가족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바라보았다. 막내가 떠났다는 말에 모두의 얼굴 위로 당황하는 빛이 어려 있었다. "소구가 어디로 간 것인지 알 수 있겠니?" 방종구가 누이동생을 바라보며 물었다. 방수련은 모른다는 듯 면사로 가린 얼굴을 좌우로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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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소구는 떠나서 언제 어떤모습으로
나타날가요 ?
방소구의 퇴장으로 백초당이 많이 뒤숭숭해지겟네요. 다음회를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