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버거의 비유
테이블에 던져진 주사위처럼 계획 없이 우연히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는 마을들이 있다. 하지만 좀더 분명한 이유를 지니고 이루어진 마을도 있다. 두 계곡이 만나는 곳 혹은 강폭이 좁아지는 곳 등의 입지가 그것이다. 그러나 무언가를 뽐내기라도 하려는 듯, 처음 시작에서부터 또 그 마을이 앉은 자리에서부터, 능숙한 솜씨에 의해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는 마을도 있다. 날카로운 안목에 의해 만들어진 듯한 마을 말이다. 우리 마을이야말로 이런 종류의 마을에 속한다.
마을은 실제보다 더욱 행복해 보인다. 교회의 첨탑은 아름답다. 묘지는 마치 그 위에 자리한 발코니처럼 보인다. 길 위쪽으로 조금 물러서 있는 마을 사무소는 삼색기를 날리며 마치 성채의 자태로 당당히 서 있다. 레퓌블리캥 리르를 포함해 층계참을 통해 입구에 다다르는 두 개의 카페가 있다. 그리고 그 뒤의 언덕으로는 마치 커다란 녹색 극장의 특별석처럼 밭이 이어져 있다.
검은 옷의 그녀는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깨끗이 감은 머리였다. 하지만 미용실에는 여러 해 동안 가지 않은 머리로 보였다. 만약 사람으로 다른 생에 태어났다면, 아마도 그녀는 말을 돌보고 있지 않을까. 말을 타고서 또 다른 말들을 이끌면서 숲 저쪽으로 사라져 가는 그런 말과 함께 사는 사람들처럼 늘씬하고 강건한 몸을 지니고 있었다.
여러 사람이 있는 곳에서는 웃지 않으려고 애썼다. 상복에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다른 사람을 웃게 만들 때 은밀한 행복감을 느끼곤 했다. 그리고 그녀의 말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재치가 있었다. 방금 들은 말을 마치 칼로 자르듯이 싹둑 잘라내어 그걸로 되받아치는 작전을 구사했다.
그녀의 상복은 남편을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이십대 초반의 나이에 교통사고로 돌아간 아들을 위한 것이었다. 그녀는 그때의 고통- 그녀는 이 고통을 삼십 년 동안이나 껴안고 있었다. 고통이야말로 아들로부터 자신에게 남겨진 모든 것이었기에- 을 통해 고통 받는 모든 사람들과 연대감을 가지게 되었다. 병든 사람들을 찾았다. 남겨진 유족들을 찾았다. 그녀의 고통은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찾아갔고 서로 의지하여 함께 설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미키마우스를 본 떠 이름 지은 미키라는 이름의 개가 있었다. 요란스럽게 움직이면서도 천진한 검은색의 작은 개. 도무지 몸집이 자리지 않는 개였다. 야단을 치면서 바깥에서 키웠다. 아플 때면 그녀가 한 주에 두 번씩 윤이 나게 닦아 두는 스토브 아래 숨어들곤 했다. 그러나 다른 개에게 물리기라도 하는 날에는 마치 오디세우스를 간호하는 칼립소처럼 개를 무릎에 놓고 간호했다.
오늘 아침, 겨울 햇빛을 받으며 마을로 다가가면서 나는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마을은 근년 들어 많이 바뀌었다. 그러나 겨울 햇빛 아래 멀리서 보며, 마을은 이 세기가 시작되던 때의 모습 그대로일 것이다. 오늘 아침 갑자기 마을은 내게 그렇게 보였다. 그 이전에 무수히 보아 온 모습과 완전히 달랐다. 마을은 신비한 약속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가장 나중에 방으로 들어왔다. 키 크고 마른 체구의 사십대 중반 남자였다. 안경을 끼고 있었는데, 금세 그 눈빛을 느낄 수 있었다. 흔치 않은, 날카로우면서도 예민한 눈빛이었다. 밀리미터 단위로 사물을 파악하는 사람이리라. 악수를 나누면서 보인 환영의 미소 역시 감정을 적확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감금은 세상과의 교류를 최소화하는 것을 목적한다. 그리고 이것은 목소리에도 영향을 미친다. 책을 읽을 때 우리의 목소리는 죄수들의 그것과 달랐다. 우리가 내는 목소리는 창 밖으로 내다보이는 제비의 비행처럼 날아올랐다. 아마도 그런 목소리가 우리가 읽어 주던 얘기보다 더 흥미로웠으리라.
감옥 안에서, 소리는 마치 배의 화물칸에서처럼 크게 울렸다. 흡수하거나 완화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죄수들처럼 소리도 프라이버시가 없다. 따라서 꼭 들어야 할 것이 없는 한, 대부분의 시간은 귀를 막고 산다. 반면, 일단 듣기 시작하면 아주 민감하게 듣는다. 세 남자는 우리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한 젊은이는 얼굴을 찌푸린 채 등을 구부리고 앉아 있다. 마르세유 남자는 도시를 향해 혼자서 차를 몰고 가는 것처럼 몸을 뒤로 기대고 있었다. 문득 한경 쓴 남자가 입은 스웨터에 새겨진 녹색 라코스테 악어 마크가 눈에 띄었다. 명민한 인간이다. 우리가 책을 읽어 가는 사이, 마치 인사가 감사로 바뀌고 있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한 세기 전에 감화원을 설계했던 제도판부터, 새롭게 설치되는 비디오카메라까지, 감방 문 앞 쇠 바닥판에서부터 전자경보 시스템까지, 간수들의 강박적인 의심에서부터 교도소장들의 클라우제비츠 전쟁론식 훈련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은 탈출을 생각지 못하도록 기획되고 운용된다.
한 죄수가 탈옥에 ‘성공하면’, 안에 남은 사람들은 마치 위대한 예술작품을 말하듯 그 위업에 대해 얘기하고 또 그것을 꿈꾼다. 그렇다. 그건 걸작품이다. 상상력과 독창성, 극기와 끈기, 계획과 집중에 있어 이 업적은 도나텔로가 제작한 피렌체 성당 제위실의 청동문들과 또 셀로니어스 멍크가 연주하는 <에피스로피>에 비견된다.
우리가 잠시 읽기를 멈추자, 그 안경 쓴 남자는 손을 새의 날갯짓처럼 허공으로 뻗치면서 말했다. 훌륭하군요. 아름다운 상상력이군요. 정말 멋져요.
우리는 읽기를 계속했고, 세 남자에게 여러 가지를 계속 생각나게 했다. 미처 끝까지 읽지도 못했는데, 간수가 들어오더니 마치 감옥 시간을 모르는 게 아니냐는 듯 손목시계를 들어 올린다.
런던 옥스퍼드 광장, 때는 구십 년대의 어느 하루, 정확한 나이를 가늠하기는 어려웠지만 아마 마흔다섯쯤 되었을까. 여인은 슈퍼마켓에서 몰래 빼낸 듯한 쇼핑 수레에 소지품을 싣고 천천히 포도를 따라 가고 있었다. 마치 아이가 실려 있는 유모차를 내려다보듯, 고개를 약간 숙인 채 수레를 밀었다.
누빈 윗도리에 바지, 그 위로 흙빛의 인조털 코트를 걸쳐 입고 있는 여인은, 멀리서 보면 마치 에스키모 같다. 신발만은 에스키모와 달리 미국 스타일의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그녀는 사람들로 가득 찬 방을 마치 라벤나의 대오도라 여제처럼, 거의 비잔틴식의 거만함이라 할 만한 태도를 보이며 들어섰다. 그녀 같은 사람에게 늘 요구되듯이, 예의에 벗어나는 행동은 아예 가능성마저 없애 버려야만 자기 방어를 유지할 수 있음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할 얘기를 많이 가지고 있는 여자였다. 자신과 할머니의 얘기가 끝이 없었다. 재미있는, 사실인 것 같은, 혹은 사실이 아닐 것 같은 얘기들. 그 얘기들은 모두, 마치 혹독한 겨울을 나는 새들처럼, 어떻게 하든 간에 입에 풀칠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말해 주고 있었다. 그 중에는 까마귀도 있고 되새도 있다. 마치 수프에 넣을 감자를 벗기는 늙은 여인처럼 등을 구부린 채 그런 사람들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그녀가 베토벤 후기 소나타 중 한 곡에 몰입할 때면, 상기된 얼굴로 농부처럼 땀을 흘렸다. 이제 나는 그 소나타의 열정을, 건초가 말라 가면서 풍기는 것 같은 그녀의 땀 냄새와 따로 떼어서는 결코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대상과 닮게 그리는 것이 인물화의 조건이라고는 결코 생각지 않는다. 닮을 수도 닮지 않을 수도 있지만, 여하튼 그것은 신비로 남는다. 이를테면 시진의 경우 ‘닮음’이란 없다. 사진에서 그건 질문조차 되지 않는다. 닮음이란 생김새나 비율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아마도 두 손가락 끝이 만나는 것같이 두 방향에서의 겨냥이 그림에 포착된 것이리라.
그림이 진행돼 가면서, 나는 또 다른 어떤 것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종이에 그리고 고치는 낱낱의 자국들이 그녀가 태어나기 전에 그녀에게 상속된 유산처럼 여겨진다. 그리는 행위는 지난 시간을 들추어내는 작업이다. 그리고 그 흔적들은 염색체처럼 유전된다.
토니오는 이 집을 짓느라고 삼 년을 보냈다. 집이라기보다는 오두막에 더 가깝긴 하지만 말이다. 깨진 바위가 널려 있는 사이로 너도밤나무들이 군데군데 서 있는 해발 천 미터의 산록에, 그 집은 마치 기대어선 무덤처럼, 혹 테이블의 끝에 웅크려 앉은 사람처럼 그렇게 서 있었다.
오두막을 지은 뒤로 토니오는 이 엘 레켄코 계곡의 그림을 많이 그렸다. 깨져 나간 바위, 너도밤나무, 드문드문 보이는 잔디들, 말라서 바닥을 드러낸 여울 들을 화폭에 담았다. 그가 그린 검은 화폭엔 이 지역의 굴곡진 땅의 모든 것이 마치 고대의 커다란 거북등을 연상시키듯 표현되어 있었다.
하늘 높은 곳에서는 독수리가 맴을 돌았다. 그림을 그릴 때면 그 희미한 울음소리가 들리곤 했다. 그 소리는 마치 땅에 있는 먹잇감들을 격려하면서 그 마지막 신음소리를 흉내 내는 것처럼도 들렸다.
그가 ‘엄청난 물’ 이라고 말하면 그건 폭풍우 때 내리는 억수 같은 비를 의미했다. 거무스름한 모자를 쓰고 다녔는데, 그 옛날 솔로몬이 왕관을 썼을 때의 자부심을 보는 듯했다. 오랜 동안 소들과만 지내 왔던 안토닌에게 ‘카사 토니오’ 는 잊어버린 옛 풍경을 엄숙하게 돌이켜 주는, 사진틀 속의 사진처럼 멋진 집이었다.
하루는 토니오가 감자와 베이컨으로 식사를 준비하고 있는데 안토닌이 우연히 들렀다. 토니오는 그에게 함께 식사하자고 권했다. 그저 별 생각 없이 초대한 것이다. 어젯밤에 오소리를 봤다고 얘기를 건네는 것만큼이나 가벼운 초대였다.
토니오는 테이블에 접시를 놓고 나이프와 포크를 가지런히 놓았으며 그 옆에는 잔을, 또 그 옆에는 포도주 병을 놓았다. 그리고 빵도 내왔다. 안토닌은 이런 것에 전혀 익숙지 못했다. 어색한 듯 의자에 뒤로 기대어, 동물 우리와 개울, 또 토니오에겐 낯선 이름들에 관해 가끔 한마디씩 떠듬떠듬 말했다. 하지만 마치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는 사람처럼 대체로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앉아 있기만 했다.
안토닌을 마주 보고 선 토니오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두 사람 모두 눈물을 감추지 않았다. 개들이 물끄러미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주인은 등을 돌리고 서 있고, 또 다른 사람은 마치 소금 병을 찾아 주기라고 하려는 듯 엉거주춤 서 있었다. 꽤 긴 시간이 흘렀다. 가만히 선 두 사람은 움직이지 않았다. 이윽고 두 사람 모두 천천히 팔을 들어 올렸다. 그리곤 서로를 껴안았다.
이 집은, 저명한 건축가 그 코르뷔지에가 앙드레의 어머니 베르테와 조각가인 그의 의붓아버지를 위해 1923년에 지은 것이다. 짙은 유리벽의 스튜디오와 콘크리트를 개어 만든 편평한 지붕 등, 지금 보면 마치 주유기를 떼어 간 지가 한참 된 폐주유소같이 보인다.
그날 기온이 영하 이십팔 도였어. 춥다다는 것 외엔 아무 다른 생각이 들지 않더군. 마치 파리 새내로 나들이를 가는 것처럼 차려 입고 있었던 거야. 얇은 윗도리에 반바지, 그 위에 짙은 상아빛 단추가 달린 멋진 흰색 레인코트 걸치고 두꺼운 고무 밑창이 달린 신발을 신고 있었다. 눈에 금방 띄었지. 금방 얼어 죽을 것 같았어.
부엌 창턱에 놓아 둔 구근이 싹을 뻗어내고 있다. 봄이 오면 감자 싹들은 빛을 찾아 마치 송곳인 양 판자를 뚫거나 심지어는 나무도 뚫고 나간다. 창턱에 놓인 구근이 지난 해 그녀가 보내 준 그것이라면 아마 작은 수선화 모양의 꽃을 피우리라 손톱 크기보다 작은 꽃들. 갓 태어난 짐승의 냄새와도 같은 달콤하고도 얼얼한 향을 지닌. 북쪽의 꽃. 순록의 꽃.
자전거와 사람 모두 길 옆 도랑에 처박혔다. 차는 서지 않았다. 어떤 무게가 실린 것이라야 사고나 충돌로 기록된다. 아무도 앞 창문에 부딪친 나비 때문에 차를 세우지는 않는다. 차가 받은 충격은 그런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여인은 욕을 내뱉으면서 일어나 피해 상황을 살폈다. 자전거 먼저, 그런 다음 자신을, 앞바퀴가 휘었고 페달에 손상되었다. 그녀 자신은 무릎이 약간 베였다. 그녀의 피부는 대리석처럼 매끈했다. 일생에 걸친 바닷물에서의 단련으로 그런 피부를 가지게 된 것이리라. 짙은 피가 흘렀다.
모든 게 다 시간문제지요. 그가 말한다. 나는 그를 쳐다본다. 여든여섯인데도 마치 흐르는 세월과 특별한 계약을 맺은 것처럼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 찌를 듯한 연푸른 눈이었는데, 마치 냄새를 탐색하는 개가 코를 찡그리듯 이따금씩 눈을 찌푸렸다.
숨김없이 드러나 있는 눈이지만, 순결하다기보다는 관찰에 중독된 눈이다. 눈이 영혼의 창이라면, 그의 창에는 유리도 커튼도 없으며, 그는 늘 창틀 곁에 서 있고 어느 누구도 그의 시선이 미치는 곳 너머를 볼 수가 없다.
위층에 복원 작업을 하는 방이 하나 있었다. 마침 황금 제단에 붙어 있던, 나무로 만든 부러진 소용돌이 장식과 17세기의 채색 마돈나상을 복원하고 있었다. 좋은 복원가들의 작업이 그러하듯, 마치 전혀 손이 닿지 않은 것처럼 눈에 띄지 않게, 또 아주아주 깊게 복원했다.
해는 적당히 높이 떠서, 해안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구시가지의 중심에 위치한 산타 마리아 델 마르 성당 주위, 거기 늘어선 오층 건물들 사이로 난, 노새 한 마리 길이만큼 좁은 샛길들을 비추고 있었다.
슬리퍼를 신은 늙은 여인들이 거리에 나와 얘기를 주고받으며 서너 개의 양파를 산다. 중년의 여인들은 더 시끄럽게 목소리를 높이기도 하고, 때로는 낮 시간에 조깅도 한다. 미니스커트의 젊은 여자들은 손목을 튕기고 손가락을 흔들면서, 경멸과 무시라는 양보할 수 없는 저들만의 권리를 확인한다.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는 여름― 엘 카에 푸에고― 이 오면, 이 도시의 가장 시원한 침대 시트도 몸을 누일 수 없을 만큼 뜨거워진다. 송곳니 같은 더위 아래 도시는 한 덩어리로 엉겨 붙는다. 벽과 쇠붙이들, 방안의 공기와 쇠 난간, 빨래가 놓인 테이블과 비둘기, 심지어는 수도관 속의 물까지도. 이런 더위를 잊는 유일한 길은― 만일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면 ― 서로 부둥켜안고 사랑에 빠지는 길밖엔 없다.
괜찮은 거라고 내가 말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죽어 가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을 때, 그는 전에도 종종 그랬듯 마치 내게 무슨 신비한 것이 있기라도 한 양, 또 동시에 내가 바보이기라도 한 양 나를 바라보았다.
산에서는 개 두 마리와 암소 마흔 마리 정도, 그리고 수소 한 마리와 함께 살았다. 친구들이 찾아오면, 마을 사람들 소식과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즐겨 물었다. 마치 사람들이 엊저녁 텔레비전 연속극 내용을 묻는 것처럼 그렇게 묻곤 했다.
그의 진정한 삶은 그 산 위에 있었다. 오두막이 자리한 평평한 바위턱을 스쳐 지나가는 낮과 밤, 계절과 햇수들의 그 끝없는 흐름 위에, 어김없고 하릴없는 일상을 띄우면서, 또 치즈를 만들면서, 바위턱에서는 번갯불이 가까이에서 흩어졌고, 마치 다리를 건너는 사람에게 다리 아치가 내려다보이듯 무지개가 내려다보였다.
그곳 산에서는 개연성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어떤 때는 소나무숲이 지금 막 걸음을 멈춘 것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은하수가 마치 모기장처럼 가깝게 보일 때도 있다.
갈라지고 닳고 마디가 커다랗게 부풀어 오른 마르셀의 손은 아주 따뜻했다. 굳은 살갖 밑에 예민함을 감추고 있었다. 마치 이제는 쓰이지 않게 된 옛 단어들 같았다.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함께 신년을 맞은 후 차로 그의 집까지 바래다주었을 때였다. 그때 벌써 소들을 데리고 알파주로 올라갈 6월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렴 그리 될 거라고 나는 말했다. 그는 마치 메아리가 되돌아오는 바위 앞에 선 사람이 그러듯,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머리를 저었다.
마르셍의 빈 오두막 문을 밀었다. 기차의 칸막이 방만한 방이 둘 있다. 나는 속으로 번져 가는 감정을 누르며, 유리잔에 물을 채우고, 한 묶음 손에 들고 간 꽃을 꽂아 테이블 위에 놓았다. 하루가 저물 때면 거기 앉아 나는 커피를, 마르셀은 우유를 마시곤 했었다.
착유기가 없었기 때문에 손으로 젖을 짰다. 잔의 솜씨가 빨랐다. 매일 저녁 외양간을 치우고 소들에게 물을 먹이는 것이 내 일이었다. 소가 물을 마실 때 목에서 나는 소리는 마치 홈통으로 쏟아져 들어가는 수도관의 물을 연상케 한다.
아무 데나 칼을 대서는 안 된다. 꼭 한 군데 매듭을 정확히 끊어야만 실 전체가 힘들이지 않고 풀려 나온다. 다른 곳을 자르면 종이를 찢거나 매듭을 풀거나 하는 수고를 해야 한다. 정확한 장소에 칼을 대면, 그 실을 당기는 재미가 마치 팽이를 돌릴 때와 같다. 순식간에 풀려 나오는 실에서는 윙 하는 경쾌한 소리마저 들려온다.
두 시간쯤 항해하자 육지는 우리 뒤로 사라지고, 길게 이어진 섬들을 따라 키클라데스 제도(諸島)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바구니 속에 갇혀 먼 장에 가는 깃 쳐지고 졸린 닭처럼, 승객들은 그예 모두 쳐져 있다.
당시의 로스티아는 스스로 그럴 만하지도 못했을 뿐더러 여자들도 그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여자들은 그를 서커스 포스터에 나오는 곰 정도로 치부했다. 군에 오래 있었던 사람들처럼 그 역시 약간 편집증적인 데가 있어서, 이런 상황을 호전시키지 못했다.
언젠가 어깨동무를 하고 다리들을 지나 돌아오면서, 우리는 문 하나의 크기가 트럭만했던 프라하의 목조 관문들을 떠올렸다. 우리 둘 모두에게 그 순간만큼은 센 강이 볼타바 강으로 바뀌어 있었다.
최근에 그린 그림을 봐 달라고 했다. 스튜디오 바닥으로 내려가, 틀을 떼어낸 켄버스를 스테이플러로 벽에 하나씩 하나씩 붙였다. 커다란 그림 하나는 로렌스도 거들었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민첩하게 균형 잡힌 그녀의 작은 모습이 서커스에서 곰과 함께 요술 자전거를 타는 사람처럼 보인다.
나나 로스티아가 미술품 전문 거래소의 고위직과 마주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우연히 실제 그런 사람과 만나게 된다 하더라도, 우리를 어떤 시골 서커스단에서 온 사람들 정도로 바라볼 것이다. 나는 이 그림들이 액자에 넣고, 전시하고, 팔리고, 집에 걸어둘 만한 그림이란 걸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런 쪽에서 내 능력은 전무했다.
나는 그녀에게 여러 가지 복합적인 감정을 느낀다. 육체에 대한 혐오, 나 자신의 부족함에 대한 자각, 그녀가 줄 것 같은 사랑의 기회에 대한 들뜬 기분 등. 풀라톤의 《티마이오스》에서처럼 가난을 어머니로 삼아 생겨난 사랑. 그녀는 늘 의문의 여지없이 나를 당혹시키곤 했다.
그 책상에 앉아, 나는 그녀 삶의 전환점이 되었던 한 편의 시를 읽는다. 그녀는 상형문자 같은 그녀의 글씨로, 그 영어로 된 시를 베껴 쓰고 외었다. 절망이 엄습하거나 편두통에 시달릴 때면 마치 기도하듯이 그 시를 암송했다.
오십 년이 지난 지금, 조지 허버트의 그 소네트을 읽는 나에게, 시는 하나의 공간, 하나의 집이 된다. 그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사하라 사막에 가면 볼 수 있는 무덤과 집들처럼 그 안은 돌로 만든 벌집 모양이었다.
아비딘 디노는 파리 사가 서민 아파트 구층에 화가들을 위해 마련해 준 스튜디오에서 사랑하는 아내 구진과 함께 살았다. 그들은 거기서 행복했지만 스튜디오에 따린 방을 모두 합해도 장거리 버스 승객에게 주이진 공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아비딘은 자기가 앓고 있는 암에 대해 리얼리스트였다. 얼마나 위중한 상태인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건강상태를 말하면서 사용하는 형용사는, 꽉 조이지만 신고 먼 길을 갈 수밖에 없는 신발을 얘기할 때 쓰는 형용사와 같은 것이었다.
살아 있을 때 그의 이미지는 언제나 길, 대상(隊商)들의 숙사(宿舍), 항해 같은 것들로 내게 다가왔었다. 그에게는 여행자의 조심성이 있었다. 페르시아의 시인 사디가 썼던 것처럼
- 길에서 잠드는 자는 모자나 머리를 잃으리. -
스튜디오의 작은 벽감 책꽂이 앞에서, 그리고 밤이 되면 접어야 하는 휴대용 이젤 앞에서, 그는 여행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행성이 되어 버린 여인들을 그렸다. 지진계의 기록침으로 그려낸 것처럼 환자들의 고통을 그렸다.
그가 죽은 날 밤, 나는 새벽 이른 시간에 잠에서 깼다. 그가 죽었다는 느낌에 깨어났고 그를 위해 기도했다. 그와 동행할, 어디엔가 있을 천사가 그를 좀더 잘 볼 수 있도록, 나는 망원경 속의 렌즈가 되고 싶었다. 아마 도움이 안 될 것이지만, 조금은 도움이 될지도 몰랐다. 그 시간, 어떤 독립된 단색도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없는, 빛으로 충만한 하얀 종이 한 장과 마주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사람들은 귀인(貴人)의 죽음에 대해 밝은 빛 하나가 사라져 갔다고 표현한다. 상투적으로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사라짐 뒤의 어스름한 황혼이란 표현이 훨씬 나은 것 같다. 내가 보았던 흰 종이는 숯이 되어 갔다. 숯, 검정, 그것은 부재의 색깔이다.
많은 얼굴 이미지를 보여주었을 때, 나는 그 얼굴들이 해독되지 않은 어떤 문서 속의 글자들 같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너무 빽빽해 걷기가 힘들었다. 사람들은 조약돌 사이의 빈틈을 찾는 작은 물줄기처럼 앞으로 나아간다. 그 물줄기가 다른 사람에게는 또 다른 조약돌이 된다.
숫돌을 하나 찾고 있었다. 이 점포 저 점포를 기웃거린다. 산뜻한 것은 아무 데도 없다. 모두가 중고품에 먼지를 쓰고 있다. 하나씩의 얘기는 다 가지고 잇을 그런 물건들. 어떤 것은 산뜻함을 뛰어넘는 어떤 자부심도 엿보인다.
드디어 숫돌 하나를 발견하고 침을 뱉어 잘 갈리는지 시험을 해 보았다. 주인은, 값을 물어 보기도 전에 사지 않으면 안 될 짓을 하는 내게, 무뚝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날 위를 달리는 숫돌은 날렵하면서도 알갱이 긁는 듯한 소리를 낸다. 모래 위를 잘리는 뱀 같은 소리.
올리브 숲과 두서너 채의 작은 집들을 지나, 무솔리니가 정권을 잡은 1920년대에 리카르도의 어머니가 태어난 마지막 집에 다다르고, 길은 구릉이 끝나는 그 곳에서 또한 끝난다. 그곳에서는 마치 커다란 배의 뱃머리에 서서, 저 멀리 지평선으로 펼쳐져 있는 구릉과 계곡의 바다를 굽어보는 느낌이 든다.
비가 쏟아지고 천둥이 치고, 그런 후 햇빛에 반짝이는 은빛의 젖은 올리브 잎, 다음날 길을 따라 걸을 때면 발목에 감겨 오는 따가운 이른 오후의 정적, 마치 유년기 그 자체처럼 끝없이 이어지던 이런 일상들, 그것들은 하루와 함께 길 저쪽 끝으로 꿈틀거리며 사라진 후 다음날 어김없이 다시 돌아왔다는데, 어느 것 하나도 오래 붙잡고 있을 수 없었기에, 길은 늘 경이로 가득 차 있었다. 아주 작은 체계 하나가 만들어지는 데도 여러 세대의 시간이 필요했다.
난로 뒤 바구니 속 땔감 나무 위, 거기 고양이 두 마리가 잠들어 있다. 그 정경이 새해 첫 잘 달력에 그려진 그림 같다. 두 놈은 머리를 맞대고 앞발로 서로를 안고 있다. 어미와 딸이다. 때로 꼼작거리면서 서로의 얼굴을 핥아 주기도 한다.
파리 막심에서의 식사였다. 서로 얘기를 나누며 먹고 마시기 시작했다.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적게 먹으려는 인상을 주면서! 고급 레스토랑에 있다는 생각은 금방 잊혀졌고, 내겐 긴 배를 타고 강을 저어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테이블에 앉은 우리들 중간중간에 노 젓는 사람이 한 사람씩 눈에 띄지 않게 있었고, 우리가 잠시 다른 곳에 한 눈을 팔 동안만 자신들의 일을 했기 때문에 거의 계속 노를 젓고 있었지만 눈에는 띄지 않았다. 그들은 다름 아닌 웨이터들이었고 접시 하나하나마다 일일이 예측하고 챙기면서 노 저어 가고 있었다.
우리는 캔버스 하나하나를 면밀히 살폈다. 이렇게 강한 집중력으로 가득 찼던 경우는 아마도 전에 없었을 것이다. 벨 일 지방에서 몇 주 동안 그려진 풍경이, 틀에서 떼 내어져 가장자리가 하얀 캔버스의 형태로, 우리 앞에 서 있다. 우리는 어떤 조그만 실수 하나도 그냥 넘기지 않으려고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푸른 언덕들이 옅은 오렌지색 하늘 아래 쟁기날처럼 수직으로 미끄러져 내려, 마치 밭고랑처럼 보이는 캔버스.
첫댓글 너무나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곰곰히 새겨 읽으니 보물 같은 표현이 녹아 있어요.
여려 가지로 구부려 표현하면 참 도움이 되겠다 싶어
적극적으로 써먹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