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의 비유
지난여름은 너무 더워서 호수공원에 나온 사람이 거의 없었다. 인적 없는 공원에 연꽃이 피어서 그윽했다. 수련 꽃은 물위에 내려앉은 별처럼 보였다. 연꽃은 여기저기 피어 있어도 무리를 짓지 않고, 혼자서 피어 있다. 연꽃은 활짝 피어 있어도 소란스럽지 않다. 연꽃은 늘 고요하고 차분하다.
수련의 잎은 수면 위에 붙어서 기름진 빛으로 반짝거리고 연잎은 코끼리 귀처럼 너울거리면서 꽃을 받쳐준다. 연잎은 꽃과 봉오리에 시립(侍立)한 시녀들 같다. 연꽃의 봉오리는 멀리서부터 가까이 다가오는 기별처럼 기척이 없는데, 그 봉오리가 조금씩 벌어지는 모습은 곤한 잠에서 서서히 깨어나서 이승으로 다가오는 꿈처럼 보인다.
억새꽃 씨는 바람에 흩어지는 미립자이다. 억새는 바람의 풀이다. 억새가 가진 것은 저 자신 하나와 바람뿐이다. 그래서 억새꽃은 꽃이 아니라 꽃의 혼백처럼 보인다.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면 이 혼백 안에 가을빛이 모여서 반짝거린다. 작은 꽃씨 하나하나가 가을빛을 품고 있다.
매미의 울음은 수매미가 암매미를 부르는 구애의 절규하고 하는데, 저 작은 벌레가 어찌 그런 놀라운 사랑의 마그마를 쓰나미 같은 목청으로 폭발시키는 것인지, 사람보다 낫구나 싶다.
가을볕에 마른 말똥에서는 마른풀 냄새가 난다. 물론 구린내도 섞여 있지만 이 구린내는 사람똥의 구린내와 달라서 공격성이 없다. 이 구린내는 사람을 찌를 듯이 달려들지 않고, 넓게 퍼져서 평화롭다.
너무 늦기는 했지만, 나이를 먹으니까 자신을 옥죄던 자의식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나는 흐리멍덩해지고 또 편안해진다. 이것은 늙기의 기쁨이다. 늙기는 동사의 세계라기보다는 형용사의 세계이다.
날이 저물어서 빛이 물러서고 시간의 밀도가 엷어지는 저녁 무렵의 자유는 서늘하다. 이 시간들은 내가 사는 동네, 일산 한강 하구의 썰물과도 같다. 이 흐린 시야 속에서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것들이 선연히 드러난다. 자의식이 물러서야 세상이 보이는데, 이때 보이는 것은 처음 보는 새로운 것들이 아니라 늘 보던 것들의 새로움이다.
아이들은 걸어갈 때도 춤추듯이 걷는다. 어떤 아이들은 옆으로 뛴다. 아이들의 생명은 리듬과 율동에 실려 있다. 그 생명의 힘이 몸의 기쁨으로 표출되면서, 아이들은 걸을 때도 춤춘다. 나이를 먹으니까 나 자신이 풀어져서 세상 속으로 흘러든다. 이 와해를 괴로움이 아니라 평화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나는 비로소 온전히 늙어간다. 새로운 세상을 겨우 찾아낸다.
오래 연애하다가 결혼한 부부가 성격 차이로 이혼했다는 말을 흔히 듣는다. 연애를 오래했으면 서로 성격을 잘 알 터인데, 성격 차이로 이혼했다는 말은, 이른바 사랑이 사그러진 자리에 연민이 생겨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랑은 단거리이고 연민은 장거리이다. 빚쟁이처럼 사랑을 내놓으라고 닦달하지 말고 서로를 가엾이 여기면서 살아라.
결혼식장에 모인 젊은이들은 가엾이 여기며 살라는 주례를 하는 동안에 진지하게 듣고 있었는데, 그 후 귀에 들려온 반응은 없었다. 아마도 좋지는 않았을 것 같다. 집에 와서 아내에게 나의 주례사 내용을 말해주었더니, 오늘 결혼하는 애들한테 왜 그렇게 다 산 사람의 신음 같은 얘기를 했느냐고 핀잔을 받았다.
어린 냉이를 뜯어서 달래를 몇 뿌리 넣고 된장을 풀어서 끓인 국이었다. 냉이는 언 땅속에서 겨울을 견딘다. 냉잇국에서는 겨울을 벗어나는 해토(解土) 무렵의 흙냄새가 났고 그 흙에 스미는 봄볕냄새가 났다. 한 사발의 국물에 흙과 햇볕의 힘이 녹아 있어서 이 국물을 마시면 창자 속에 봄이 온다. 미역국은 온유하고 냉잇국은 양명(陽明)하다.
젊은이들은 헬조선!을 절규하다가도 날이 저물면 만나서 키스한다. 키스하는 젊은이들은 보면 나는 신난다. 연애하는 젊은이들은 이 나라의 동력이고 희망이다. 젊은이들이 연애를 하니까 이 나라는 미래가 있다. 연애는 정치 슬로건보다 확실한 미래다.
사람들은 나이를 먹으면 좀처럼 키스를 하지 않는데, 나는 젊은이들이 프라하 카렐 다리 위의 <키스>처럼 늙어서도 키스하기를 바란다. 젊은이들의 연애와 키스 속에는 헬조선을 쳐부술 만한 에너지가 들끓고 있다. 생활 속의 키스는 들판에 들꽃이 피듯이 자연발화 한다.
요즘 떡볶이는 가래떡에 고기 가루가 붙어 있었고, 고기 맛이 떡에 스며있었다. 간장의 짠맛과 설탕의 단맛이 섞여서, 가래떡은 쌀을 군것질로 바꾸어놓고 있었지만, 그 안에 쌀의 질감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어머니의 간장 베이스 떡볶이 맛은 요즘 것에 비하면 단정하고 질서가 잡혀 있었다.
고추장 베이스 떡볶이를 먹고 있노라니까 아득히 먼 시간의 저쪽에서 내 어머니의 간장 베이스 떡볶이 맛이 살아나서 내 마음을 찔렀다. 그 아픔은 슬픔과 기쁨이 섞인 생의 감각, 즉 융합고통이었다. 간장과 고추장 사이에서 6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러서 간장 베이스는 겨우 명맥을 유지할 뿐, 지금은 고추장 베이스의 전성시대다.
뷔페식 떡볶이는 손님들이 재료와 영념을 입맛대로 가져다가 테이블 위에서 조리해 먹는다. 손님은 주로 젊은 남녀들이다. 그들은 떡볶이를 간식이라기보다는 점심의 끼니로 먹고 있었는데, 떡볶이에는 끼니의 무게가 빠져나가서 끼니는 경쾌하다. 젊으나 늙으나 다를 밥벌이는 힘들 것일 테지만 떡볶이를 먹는 낮 시간의 밥벌이는 좀 덜 힘들어보였다.
고추장 베이스의 맛이 단맛과 매운맛의 융합반응이듯이 지금 떡볶이라는 요리의 스타일은 끼니와 군것질 사이에서 새로운 양식을 융합해내고 있다. 한국의 떡볶이는 군것질을 끼니 쪽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끼니를 가볍게 하고 군것질을 무겁게 해서 먹고사는 일의 긴장을 헐겁게 해 준다.
나이 먹으니까 입맛도 변해서 나는 이제 떡볶이를 먹지 않는다. 나는 가래떡에 아무런 양념을 하지 않은 채 오븐에 구워서 먹는다. 겉은 노릇노릇하게 익어서 바삭하고 속은 포근하다. 떡볶이가 아니라 떡구이다. 떡구이는 쌀맛의 순결한 원형이다. 나의 떡구이는 제로 베이스 속에서도 어머니의 간장 떡볶이가 어런거린다.
아이들은 라디오로 를 배워서 쉬는 시간에 교실에서 빈 도시락을 젓가락으로 두들기며 합창했다. 한 아이가 영어 가사를 구해 와서 칠판에 쓰면 옮겨서 적었다. 비틀스의 영어 가사는 단순하고 명료했다. 그때 영어를 겨우 배워서 영어 가사를 해독하고 영어로 노래 부르는 일은 신대륙을 발견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사실, 서태지와 방탄소년단의 음악을 음악으로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들의 춤동작을 이해할 수는 있다. 그들의 춤은 고도로 기획되고 훈련되어 있었다. 그들의 춤은 빛처럼 퍼져나가면서 부서지고 반짝였다. 그들은 ‘인생론’에서 벗어나 있었고, 기쁨과 힘으로 가득차 있었다. 음악은 몸이 하는 일이고 음악과 몸은 구별되지 않는다.
디너쇼에 갔었다. 그날 무대에는 한대수 송창식 들이 나왔다. 나는 맨 앞줄에서 손바닥에 깨지도록 박수를 쳤다. 청중은 자기 시대의 가수들과 함께 나이 먹어가고 있었다. 나는 내 또래 청붕 속에서 동지들에 둘러싸인 듯 든든했다. 나는 신세대의 노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게 부끄럽지 않았다. 내 생애의 음악은 풍요롭지 않지만 초라하지 않았다.
요즘은 가끔씩 LP바에 가서 그 옛날의 노래, 전쟁과 분단, 철조망, 흥남부두, 삼팔선, 호남선, 경부선, 실향과 망향의 노래를 듣는다. 그런 노래도 이제는 편안하다. 옛 가수들은 모두 세상을 떠났는데, 그 목소리가 남아서 사람이 옆에 있는 듯하다. 그 입김이 내 가슴에 닿는다. 새들이 아침마다 숲에서 노래하듯이, 날마다 새로운 노래, 새로운 시는 태어나고 있다. 비틀스로부터 나는 아주 멀리까지 와 있다.
박정희 소장이 한강을 건너올 때 비틀스가 따라왔다. 나는 한국 현대사에서 이 사태가 가장 난해하고 통쾌하다. 이것을 역사의 섭리라고 해도 좋을는지, 노래는 섭리다.
지난여름은 징글맞게도 더웠다. 어느 날 갑자기 밤이 가고 아침이 오더니 찬바람이 도적처럼 들이닥쳐서 또 추석이다. TV속의 미남 미녀들이 한복을 차려입고, 사람들은 고향으로 가고 또 간다. TV는 서울 사는 사람들이 고향에 가는 모습만을 거듭 보여준다. 마치 서울은 타향이고 비서울은 고향이다. 내 고향 서울은 이제 아무의 고향도 아니고 모든 타인들의 타향이다. 고향으로 가는 사람들아, 당신들의 고향이 만인의 타향이고, 당신들이 사는 자리가 당신들의 타향이라면 사람의 고향은 대체 어디인가.
추석에 내 고향 서울은 문득 고요하다. 상점들이 문을 닫고 행인이 끊긴 빈 서울에서 길고양이들이 길바닥에 누워 기지개를 켜면서 하품을 한다. 나는 냄새를 탐색하는 개처럼 혼자서 그 빈 거리의 이 구석 저 구석을 들여다보다가 기억의 먼 끝에 남아 있는 흔적을 발견한다. 통인 시장이나 금천교시장을 돌아다니다가 문을 연 식당을 겨우 만나면 국밥 한 그릇 먹고 돌아오는 것이 내 귀향의 전부다.
나는 무말랭이를 좋아한다. 무말랭이를 씹으면 섬유질의 골수에 배어 있는 가을햇볕의 맛이 우러난다. 고소하고 보숭보숭하다. 이 햇볕의 맛을 섬유질 안에 저장해서 인의 입속으로 전해주려면 무밖에는 없다.
나는 퇴계의 경학(經學)을 모두 따라 읽을 수 없고 다만 상소문이나 편지, 시문, 기행문, 행장을 읽는 정도지만, 여름밥상에서 무말랭이를 씹으면서 성인의 마음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는 있다. 글을 읽어서는 닿을 수 없고 마른 무쪽을 씹어보고서야 겨우 장님 더듬듯 하고있으니 나의 아둔함은 너무 심하다.
여름 점심때 잘 익은 오이지를 반찬으로 해서 찬밥을 먹으면 입안은 청량하고 더위는 가볍다. 오이지는 새콤하고 아삭아삭하다. 오이지의 맛은 두 가지 모순된 국면을 통합한다. 그 두 개의 모순은 맛의 깊이와 맛의 상쾌함이다. 이 양극단의 모순이 한 토막의 오이 속에서 통합되는 비밀을 나는 설명할 수 없다. 짐작건대 이것은 소금과 물과 오이가 항아리 속에서 스미고 배어서 새로운 맛으로 태어나는 모든 과정을 ‘시간’의 섬세허고 전능한 작용이 종합관리함ㅇ로써 가능한 것이지 싶다.
오이지를 먹을 때 나는 멀리서부터 가까이로 다가오는 간의 깊이와 알레그로비바체로 가볍게 흔들리며 목구멍을 내려가는 오이의 신선함을 동시에 씹는다. 글자를 들여다보고 짐작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이빨로 씹어서 관능으로 먹는다. 초복이 지나서 날이 볶듯이 더워진 연후에야 오이지의 청량함은 더욱 푸르르다.
오이지를 먹을 만하게 담그는 일은 쉽지 않다. 그 까닭은 아무런 양념이나 첨가물 없이 오직 물과 소금과 오이만으로 완성을 봐야 하기 때문이다. 너무 까다로워서, 레시피만 보고서는 아무나 할 수 없다. 이 솜씨는 가르쳐서 될 일이 아니고 스스로 수많은 실패를 거듭하면서 깨우쳐야 하는 자득(自得)의 세계이다. 자득의 세계는 숨을 곳이 없고 기댈 곳이 없다.
나의 아버지는 한 시대에 용납도지 못했고, 발 디딜 곳 없었던 방랑자였는데, 저녁마다 친구들과 술집에 모여서 시국을 성토했다. 아버지의 친구들은 대부분 현실에서 소외되어 있었고 울분에 가득차 있었다. 그들은 모두 가파른 말을 구사하는 언어의 협객들이었다. 아버지는 술 취해서 집에 돌아오시면 천장을 향해 “아하, 난세로다!”라고 혼자서 중얼거렸다. 아버지의 난세는 끝도 없이 계속되었다.
마을은 노인들이 지키고 있었다. 국토는 아무리 외지고 땅값이 싸더라도 거기에 사람이 살아 있고, 생활을 영위할 수 있어야 사람의 마을일 터인데, 이 노인들의 자연수명이 끝나면 국토는 벌레 소리 가득한 풀밭이 되는가 싶었다. 마을들은 위태로운 마지막처럼 보였다.
마을 할머니들은 식당 메뉴나 간판, 면사무소의 고지문, 동네 버스 정류장의 이름도 읽지 못했다. 기록된 역사가 없는 시대를 선사시대라 한다는데, 이 문맹 노인들은 일제감정기에 태어나 한국 현대사 속에서 전쟁, 이산, 이농, 기아, 가난, 억압의 시대고(時代苦)를 개인의 삶으로 치러냈고 한 새대 전체의 무늬가 나이테처럼 몸에 쟁여져 있고 옹이로 박혀 있지만, 그들의 생애는 당대사에 편입되지 못하고 선사의 지층 밑바닥에 매몰되어 있었다.
GP는 끝없이 출렁거리는 산맥 위에 고립되어서 인접 부대가 없는 멀리서 보면 유럽 중세의 요새처럼 보인다. GP는 후퇴 개념이 없는 사수진지다. 한번 배치되면 교대하는 부대가 올 때까지 수개월 동안 같은 자리에서 근무해야 한다.
내리는 눈송이를 바라보면서 젖은 눈인지 마른 눈인지, 적설량은 얼마나 될는지를 가늠한다. 밀판과 삽을 들고 눈을 치울 때, 나는 연장을 쓰는 작업의 행복을 느낀다. 연장은 몸의 연장(延長)이다. 연장은 인간 육체의 기능을 세분화해서 극대화한다. 삽을 쥐고 땅을 파거나 눈을 치울 때, 몸은 일 속으로 스미고 일은 몸에 각인된다.
새벽에 눈을 치우러 골목에 나가면, 대체로 나이든 사내들이 나와 있다. 젊은이들은 눈 내리는 거리에서 연애를 하지만, 눈을 치우지는 않는다. 젊은이들은 연애를 하기 바빠서 몸과 삽과 땅의 교감을 모른다. 연장의 의미를 알게 되면, 어느 정도 나이 먹은 것이다. 눈 치우기는 노인의 노동이다. 나는 삽을 쓰고 싶어서 눈을 기다린다.
성남 모란시장으로 구경 갔더니 마침 오일장이다. 망치, 펜치, 톱, 호미, 낫, 삽 같은 쇠붙이 연장을 파는 장수가 전을 벌이고 있었다. 맨 앞줄에 앉아 구경했다. 행수쯤 되어 보이는 사내가 마이크를 잡고 핏대를 올려가며 소리를 질렀다.
-아, 니미, 서울공대를 톱을 나온 녀석들이 못대가리 하나를 못 박고, 닭 모가지를 못 비틀어, 아, 제미, 로스쿨 톱으로 나온 놈들이 펜치를 못 쥐고 도라이버를 못 돌려. 이게 사람이냐, 오랑우탄이냐. 몸이 다 썩은 놈들이 어떻게 밤일을 해서 새끼를 낳는지.
나는 박수를 쳤다. 다들 박수를 쳤다. 나는 그 연설에 감동해서 당장 삽 한 자루를 샀다.
여야 간에 싸움이 벌어질 때마다 ‘물타기’로 쟁점을 뭉개버리면 여당도 야당도 손해 보지 않는다. 나의 물과 너의 물을 섞음으로써 오염도가 평균화된 물을 공유한다. 너의 오염이 나의 오염을 희석시키는 생수가 되고, 나의 과오는 너의 과오를 덮어주는 이불이 된다. 물타기는 문제를 규명해서 해결하지 않고, 쟁점을 일단 물 대 물의 대결로 바꾸어놓고 물과 눌을 섞음으로써 대결구도를 지워버린다.
물타기는 오염된 이 물과 저 물을 섞어서 더 큰 오염수를 만드는데, 이 오염수의 바다에서는 현실의 판단준거가 몽롱해져서 사람들은 있는 것과 없는 것, 청정과 오염을 구분할 수 없게 되고 오염은 생활화된다. 물타기는 대한민국 국회의 연금술이다.
물타기판이 벌어지면 세상은 와글거리고 웅성거린다. 이 모든 뒤죽박죽은 ‘정치’의 이름으로 벌어지는 것인데, 물타기하는 쪽은 상대편의 물타기를 ‘정치공세’라고 부른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정치’라는 단어를 가장 추악하고 비열한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인류문화의 가장 아름답고 신뢰할 만한 부분은 말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리고 말은 인간이 저지른 대부분의 죄악에 개입했거나, 그 죄악 자체다. 이제, 말은 소통에 기여하기보다는 인간 사이의 단절을 완성시키고 있다. 말은 말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나는 별의 은총을 빌기로 했다. 서울은 밤마다 불야성이고 먼지가 하늘을 덮어서 별을 볼 수 없으므로 나는 우륵의 고향 대가야의 고토인 경북 고령의 별을 보러 갔다. 가을이었다. 하늘이 찢어질 듯이 팽팽했다. 눈이 내려서 대가야박물관 뒤쪽 지산동 능성의 옛 무덤들이 하얬다고, 낮이 저물고 저녁이 되니 눈에 어둠이 스며서 무덤들은 파랬다.
밤하늘의 별들이 돋아나서, 끝이 없었다. 별들은 어둠의 먼 저쪽에서 천천히 다가왔다. 별들은 돋아났다기보다는 배어나왔다. 별이 보이지 않던 어둠의 자리를 계속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둠의 저쪽에서 희미한 빛의 그림자 또는 가루 같은 것이 어른거리다가 점점 다가오면서 뚜렷해졌다. 별들은 다가오고 다가온다.
밤에 등을 끄고 누워 있으면, 벽에 걸린 그림 속의 색깔들과 마당에 핀 도라지꽃의 흰색, 보라색이 어둠 속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인지를 나는 걱정한다. 어렸을 적에 하던 걱정을 늙어서도 한다. 어둠 속에서 촛불을 켜면, 그림 속의 색들은 촛불의 빛에 흐려져서 느리게 다가온다. 색은 빛이 사라지면 사라지고 빛이 닿으면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색은 주민등록지가 없다.
팔레트 위에서 화가의 색이 드러나는 비밀은 저녁 염전에 소금이 내려앉는 모습과 같다. 염부들은 ‘소금이 온다’고 말한다. 화가의 팔레트 위에서 색들은 섞인 물감의 합성이 아니라 이 세상에 지금까지 없었던, 전혀 낯설고 새로운 색으로 태어난다. 이때 물감을 섞는 화가의 붓과 나이프는 대장장이로부터 이어받은 것일 테지만 그의 팔레트 위에는 연금술사의 낙원이 펼쳐진다.
강화도 화도면 장화리 해안도로와 장곶돈대의 일물은 하늘에 번지고 마을의 집들과 사람들 사이에 스며든다. 이 해안선은 조수간만의 차이가 크고 해안경사가 완만하다. 썰물은 아득하고 밀물은 가득해서 갯벌은 수평선에 닿아있다. 거기까지 따라온 산들은 순해져서 봉우리들은 물에 잠기듯이 몸을 낮추어 바다와 평행을 이룬다.
내 발길질이 축구공을 걷어낼 때, 공은 새로운 질감과 방향으로 튕겨져 나간다. 그렇게 튕겨져 나간 공은 저쪽에서 달려들고 있는 다른 사람의 발길 앞에 또다시 새로운 질감의 시간을 선사한다. 공이 몰고 오는 이 새로운 시간은 몸속의 시간이 몸밖으로 뛰어나와 굴러다니는 것처럼 신기하다. 그래서 공은 살아 있는 생명이다.
저무는 운동장에서 혼자 공을 차는 아이가 있다. 혼자서 공을 찰 때는 자신이 찬 공의 질감을 자신이 수습해아 한다. 그래서 혼자서 공 차는 사람은 공을 길게 내지르지 않는다. 혼자서 공 차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차는 것과 같다.
지중해의 바람은 늘 부는 바람이었다. 그 가볍고 투명한 바람은 계절과 계절 사이를 건너가는 바람이 아니었고 늘 불어와서 지속과 생성을 느끼게 하는 바람이었는데, 기류라기보다는 기산에 가까웠다. 바람을 박물관에 보존할 수는 없을 테지만, 바람은 가장 오래되고 또 새로워서 가장 강력하게 작동하는 문화재였다. 그 바람이 바다의 빛을 일깨워 퍼덕이게 하고, 섬의 꽃들을 흔들고, 올리브나무 우듬지의 새잎을 떨리게 하고, 무너진 신정의 돌기둥을 스치고 그곳에 새겨진 벌거벗은 여자들의 허벅지에 감겼다.
공은 그의 육신이 어찌해볼 수 없는 공간을 가르며 네트에 꽂혔다. 몸이 땅에 찍히기 직전에, 아마도 그는 자신의 실패를 알았을 것이다. 쓰러진 그의 뒤쪽으로 그가 막아내지 못한 골문의 양쪽 기둥 사이는 바다처럼 넓었다. 그는 쓰러졌던 두 다리로, 쓰러졌던 자리를 딛고 일어섰다. 미드필드 쪽에서는, 태풍과도 같은 관중의 축복을 받으면서 상대팀의 골세레머니가 폭발하고 있었다.
맛은 인간 정서의 심층부를 형성한다. 삶은 설명될 수 없고, 다만 경험될 뿐인데, 맛 또한 그러하다. 맛은 음식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동안만 그 실체가 살아있고, 먹고 난 후에는 만질 수 없는 기억이나 그리움으로 마음의 밑바닥에 깔린다. 맛을 경험할 때 생명은 발랄하게 작동되어서 충만감에 도달하지만, 이 실존의 전율이 지나가고 나면 충만감은 사라지고 맛은 결핍으로 변해서 목구멍은 다시 먹고 싶어진다. 중생의 고통은 한이 없다.
남쪽과 북쪽에 청춘남녀가 수없이 많은데도 이념과 체제를 깔아뭉개고 철조망을 넘나드는 연애사건, 치정, 불륜, 사랑의 망명, 줄행랑, 들통 난 밀회가 70년 동안 한 건도 없었다. 국가보안법상의 잠입, 탈출죄(6조), 회합, 통신죄(8조)에 해당하는 로맨스도 불륜도 없었고, 내로고 남불이고가 아예 없었다.
메밀껍질로 속을 넣은 베개를 베어보면 메밀이 어떤 곡식인지를 알 수 있다. 메밀 베개는 가볍고 서늘해서 장마 때도 습기가 차지 않는다. 이 베개에서는 가을의 마른 풀밭을 스치는 바람 소리가 들린다.
평양냉면의 맛은 젓갈이나 양념, 간을 많이 쓰지 않고 재료의 생명력을 온전히 살려내는 여러 가지 북한음식들과 친인척관계에 있다. 평양냉면의 맛은 자작나무 우거닌 툰드라숲과 눈보라 치는 고구려의 벌판을 향해 열러 있고, 거기에 찾아오는 새벽을 맞는다. 이 육수 속의 시간은 차갑고 새롭다.
평양시민들은 폭파된 대동강철교 철근 구조물의 잔해 위를 기어서 대동강을 건너왔다. AP통신의 맥스 데스포 기자가 찍은 이 대동강 피난민의 사진은 퓰리처상을 받았다. 나는 이 사진을 들여다볼 때마다, 시진 속의 사람들이 아무 나라 국민도 아닌 사람들로 보인다. 그들은 다만 서식지를 파괴당해서, 또다른 서식지를 찾아가는 야생의 무리들처럼 보였다.
겨울새들의 선발대는 10월 18일 해질 무렵에 한강 하구에 도착했다. 나는 장항습지 쪽에서 바라보았다. 김포 쪽으로 해가 지는데, 멀리서 다가오는 새들의 비행대열은 노을 속을 흘러가는 한줄기 연기처럼 보였다.
송년회에는 많은 친구들이 와있었다. 이 늙은 친구들은 서너 살 때 육이오를 당해 엄마 등에 업혀서 피난 갔다가 국민소득 80달러 시대에 소년기를 보냈다. 출세한 사람은 없지만 대기업에 말단사원으로 들어가서 임원까지 했거나, 지방 소도시에서 통닭 가게 서너 개를 별여놓았거나, 유럽 주재원으로 나갔거나, 조그마한 공장을 차려놓고 티셔츠를 만들어 팔아서 처자식을 건사해온 가장들이었다. 다들 얼굴이 쭈그러들었고, 머리털에 먼지가 낀 듯했고, 눈동자에 쏘는 힘이 빠져서 헐렁해 보였다.
나는 한강의 하류 언저리에서 20여 년을 살아왔다. 내가 사는 마을에서 늙은 강은 더디 흐르고 건너편 산은 멀고 흐려서 산하는 진양조의 리듬으로 펼쳐진다.
강물이 만나서 더 큰 물을 이루어 앞으로 나아가는 풍경은 소멸함으로써 신생하는 미래의 소망으로 인간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그 설렘 속에서 강물은 새로운 시간을 향해 흐르는데, 지금 오두산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산하는 무인지경의 적막강산이다.
전망대에서 망원경에 동전을 넣으면 강 건너 장사정포가 검은 구멍을 드러냈고, 선전마을의 단층 슬라브집들이 하모니카 구멍처럼 잇닿아 있는데, 사람도 가축도 줄에 널린 빨래도 장독도 보이지 않았다. 손수레를 끌고 나온 사내 한 명이 빈 밭에서 무언가를 줍고 있었다. 풍경 속에서 사람은 그 사내 한 명 뿐이었다. 그 사내도 밭에 주울 것이 없었던지 선전 마을 뒤쪽으로 사라졌다. 사내가 사라지자, 풍경은 완벽한 무인칭으로 변했다. 사람이 없는 풍경은 보는 사람을 소외시키서 밀쳐낸다. 제적봉에서도 그렇고, 동양 산수화 속에서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