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말 영국은 추웠다.
우리 가족은 영국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고, 그곳에 우리를 마중하러 윤태대 목사님께서 오셨다.
윤태대 목사님은 일산충신교회에서 사역할 때 협동목사님으로 계셨던 분으로, 나와 인연이 있었다.
몇 해 전에 영국 중부 넌히턴에 YM과 관련하여 가족과 함께 선교사로 오시게 되셨고, 한국에서 출국하기 전, 난 목사님께 연락을 드려 도움을 요청했다.
공항에 나와 주신 목사님을 만나니 얼마나 마음에 위로가 되고, 든든하든지..
목사님은 우리 가족을 다 태우고, 2시간 넘게 운전하여 넌히턴 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 집은 정원이 큰 집이었는데, 사모님과 다섯 자녀들이 우리를 환대해 주었다.
목사님의 첫째와 둘째 딸은 내가 일산에서 중고등부 교역자로 있을 때 가르쳤던 아이들이었기에 더욱 감회가 새로웠다.
우리는 그곳에서 며칠을 유하며, 안정을 찾았다.
곧장 리전트 칼리지로 갔다면, 아이들도 아내도 새로운 환경으로 무척 힘들었을텐데, 윤 목사님 가정에서 며칠을 유하면서, 회복되고 마음이 재무장 된 것이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윤태대 목사님은 내 신앙의 영적 스승이며 선배다.
윤 목사님은 겸손과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낮은 곳에서 섬김의 본을 보이셨던 영적 거장이셨다.
나는 윤 목사님을 곁에서 보면서, 섬김과 겸손이 무엇인지?를 그 분의 삶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보고 배워도 그렇게 살 지 못하는 나 자신을 보면서, 그 분의 영성이 얼마나 깊고 대단한 것인지를 깨닫는다.
나에게는 숨겨진 교만이 있다.
누군가 대드는 자, 건방진 자, 무례한 자, 올라서려고 하는 자, 우기는 자에 대해 응징하려는 마음이 있다.
한 없이 너그럽고 모든 것에 대해 이해하고 포용적인 마음을 가졌지만, 어느 순간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것에 부딪히면 절대 용납하지 않고, 끝까지 타협하지 않는 그런 기질이 있다.
종종 그것이 비본질적인 것, 다시 말하면 내 주관적 판단에 따라 나타난다는 것이 문제다.
물론 그것이 비본질적이기 하지만 나를 쳐서 죽이고, 꺾는 것 또한 쉽지 않다.
난 윤태대 목사님을 생각하면, '어떻게 그 분은 그렇게 하셨을까?' 라는 생각을 한다.
끝까지 겸손하게, 지속적으로 섬김으로 사셨는지..
나는 그 분의 삶을 존경한다.
윤 목사님께서 나에게 해 주신 말씀이 있다.
'먼저 가지 말고, 보조를 맞춰 가세요..'
그 겸손과 섬김의 영성은 목사님의 깊은 기도와 말씀 묵상에서 나왔다.
그의 방 벽과 책상 위에는 손으로 쓴 말씀 카드가 가득 붙어 있었고, 늘 기도하셨던 분이셨다.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귀한 분을 통해 영국 삶을 시작하게 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다 나에게 그 분의 모범을 통해 배우라는 것이었는데... 하나님의 실전 수업이었는데...말이다.
며칠이 지난 후..
목사님은 우리를 난트위치까지 태워다 주셨다.
난트위치 대학교 앞에서 우린 헤어졌다. 아쉬움을 남긴채...
하지만 그 분이 우리를 위해 기도하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또 멀지 않은 곳에 의지할 대상이 있다는 것만으로 난 전혀 두렵지 않았다.